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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끄러운 경사길의 논증

동물의 권리는 옹호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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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22호 ⁄ 2007.07.02 13:13:35

논리학에 ‘미끄러운 경사길의 오류’ 혹은 ‘미끄러운 경사길의 논증(slippery slope arguments)’이란 게 있다. 어떤 주장이 연쇄 반응을 가져온다는 것에 논증의 결론이 의존하나, 사실은 그 연쇄 반응이 실제로 발생하리라고 생각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없을 때 발생하는 오류를 말한다. ‘거짓 원인의 오류’의 한 변형인 셈이다. 사실 이 역설적 논증의 뿌리는 ‘키케로’가 전해주는 ‘증대의 논변’ 혹은 무더기의 역설 논변이라 불리는 대머리의 역설이다. 누군가가 한 개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면, 당신은 그를 대머리라고 말하겠는가? 그렇다, 두 개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다면, 역시 그렇다. 그렇다면 대머리와 대머리 아닌 사람의 기준은 어디서부터인가? 이것을 좀 더 응용하면, 이런 역설적 주장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보통 사람 만큼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하자. 그녀의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보라. 대머리 인가? 아니다. 머리카락 또 하나를 뽑아보라. 대머리인가? 아니다. 머리카락 하나 차이가 대머리임과 아님의 구분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이렇게 계속나가다 보면, 그녀가 머리카락 하나 없어도 대머리라고 부를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왜냐면, 그녀가 대머리인 사람들의 무리에 편입될 정확한 지점을 지적해야 한다는 요구를 우리가 충족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예를 보자. 한 국회의원이 사이버 공간에 전면적으로 ‘야동’을 금지해야 한다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이렇게 주장한다고 해보자. “포르노를 금지하는 법안이 가급적 빨리 통과되어야 한다. 포르노물의 생산과 판매는 성폭행 및 근친상간과 같은 성범죄를 증가시킬 확률이 대단히 높다. 이것은 점차적으로 사회의 도덕적 구조를 파괴시키고 온갖 범죄를 증가시키는 원인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법과 질서의 해체와 더불어 문명의 철저한 와해를 가져 올 것이다.” 이 경우에 ‘야동’을 허용하는 것이 법과 질서의 파괴는 물론 문명의 해체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과 연쇄적으로 이어질 만한 고리의 인과적 필연성이 없다는 점이다. 이 점이 논리적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된다. ■ 낙태는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흔히는 이 ‘미끄러운 경사길 논증’을 느슨하게 사용하여 어떤 특정한 위험한 ‘전례’에 호소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한다. 가령 임신부의 태아를 검사해 보았더니 유전적 결함이 발견되었다. 이 경우에 우리가 ‘낙태’를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받아들이는 것은 원칙적으로 옳지 않을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어떤 중대한 질환이 발견되기만 하면, 낙태의 정당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나중에는 당뇨, 다운 증후군, 근시안, 색맹, 왼손잡이, 종국에는 피부색깔 까지도 낙태의 정당한 근거로 사용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태아 자신의 미래의 이익이라고 주장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가 어떤 이의 생명이 살 가치가 없을 것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에게 장애를 가진 사람의 생명이 가치가 없다고 결정할 권리는 없다. 이것은 생명의 존엄성과 평등성이라는 대원칙을 파괴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 원칙의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장애를 가진 사람은 <부모의 태만>으로 태어난 산물로 이해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장애우를 보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당신은 여기 있는 거죠? 당신은 낙태되었어야 할 사람인데 말이죠?”

이런 논리를 계속 전개하다 보면, 장애인들은 생명을 끝내야 하고, 이것이 그들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고 믿게 될 것이다. 결국 이 논증은 형식적으로는, 만일 A를 허용한다면, B를 허용해야 하고, B를 허용한다면, C를 허용하지 않을 수 없고, 마침내는 올바르지 않은 주장인 결론 N을 허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는 논증인 셈이다. 가령, 낙태의 경우에, 만일 우리가 수정난의 죽임을 받아들인다면 수태한지 14일 지난 배아에 대한 죽임을 금지할 이유가 없고, 이를 계속적으로 받아들이면 3개월 된 태아의 죽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다 보면 태아의 발달은 계속적인 것이므로, 수정란에 대한 보호를 인정하지 않으면 발달 중인 어떤 단계에서의 태아도 죽일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렇다면 수정란부터 태아를 거쳐 신생아가 되는 그 순간까지, 어느 시점 그리고 어느 지점에서 인간임과 인간 아님으로 구별할 수 있게 되는가? 우리의 <모자보건법> 14조에는 낙태의 허용 한계에 대하여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제14조 (인공임신중절수술의 허용한계) 의사는 다음 각 호의 1에 해당되는 경우에 한하여 본인과 배우자(사실상의 혼인관계에 있는 자를 포함한다. 이하 같다)의 동의를 얻어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 1.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2. 본인 또는 배우자가 대통령령이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3.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4.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 또는 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5.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히 해하고 있거나 해할 우려가 있는 경우 이 예외 규정을 거듭해 허용하다 보면 위에서 보았던 ‘미끄러운 경사길의 논증’과 같이 임의적 판단으로도 무한정하게 낙태를 허용하게 되고, 생명 존중과 평등이라는 기본 원칙을 파괴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다. 안락사의 문제에 대해서도 똑 같은 논증이 적용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게 되면 마침내는 모든 가능한 경우에 타인의 죽임을 허용한다는 극단적으로 위험한 결론에 빠질 수도 있다. ■ 동물도 ‘생명’에 대한 ‘평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는가 종 차별주의(speciesism)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인간 이외의 다른 종에 대해 차별하는 것은 인간 종의 집단주의적 이기주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또 생명의 권리라는 것도 호모 사피엔스 종 구성원만이 갖는 권리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임’이라고 하는 것이 인격체(personality)라는 것에 기반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는 모든 구성원이 인격체가 아니라는 것이다. 또 모든 인격체가 호모 사피엔스 종의 구성원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은 나아가 동물 실험에 반대하면서 동물의 권리를 주장하는 동물보호론을 내세운다. 피부색깔이 다르다고 인종차별(racism)을 하고, 여성에 대해 성 차별을 하듯이, 인간은 자신과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동물을 차별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동물해방 운동론자(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던 프린스톤 대학의 피터 싱어와 같은 사람)들은 사람이건 동물이건 지각과 의식이 있는 존재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못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차별을 피하려면 동물도 평등의 원칙에 따라 동등하게 배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나 동물 다 같이 삶의 주체(subject)가 될 수 있고 신경세포를 가지고 있으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동물 역시 고통과 기쁨을 느끼고 지각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한, 나름대로 고유한 가치와 권리를 갖고 있다는 논리를 편다. 결국 이들은 사람의 특별한 자연적 지위를 거부한다. 결국 인간 종을 선호하는 편견에 대한 거부는 모든 생명체를 동일한 가치로 대우하라는 종-평등주의(species-egalitarianism)를 내세우는 셈이다. 이에 대하여 ‘미끄러운 경사길의 논증’을 통하여 동물 보호론에 반대하는 주장을 내놓을 수도 있다. 동물 보호론자들은 개와 고양이와 돌고래도 나름의 권리를 가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이면, 이어서 그들은 닭과 소의 권리도 보호해야 한다고 떠들어 댈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거미와 같은 곤충들의 권리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낙농업은 완전히 몰락할 것이고, 인류의 기아(飢餓)가 뒤따를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주장을 애당초부터 봉쇄하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이 논증은 어떤 논리적 오류를 가지고 있을까? -김재홍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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