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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그림값 산정 라이벌]“가격 산정보다 진위 판정이 먼저”

[인터뷰]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엄중구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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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33호 왕진오 기자⁄ 2015.06.04 09:12:24

▲엄중구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원장. 사진 = 왕진오 기자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왕진오 기자) 2014년 1월 화랑가를 발칵 뒤집은 사건이 발생했다. 국내외에서 높은 가격으로 거래되는 이우환 화백의 위작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고,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이 소식에 가장 분주했던 곳은 화랑도 경매업체도 아닌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이하 감정평가원)이었다. 이곳으로 이목이 집중된 이유는 무엇일까? 엄중구(67)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원장을 5월 18일 만나 감정평가원에 대해 들어봤다.

“당시 ‘시중에 떠도는 자료 말고, 감정평가원의 자료를 갖고 오라’는 주문이 나올 정도였어요. 감정평가원이 공신력을 갖고 있다는 점을 새삼 느꼈고 더욱 책임감을 갖게 됐어요. 지금까지 진실되게 일을 해왔다는 데 자부심도 느꼈고.”

감정평가원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작품의 진위 감정이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먼저 판단하지 못하면 그림 값 산정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진위 판정에서 오심이 나올 수도 있다. 위작을 진품으로 감정한 사례는 유럽과 미국 유수의 전문 감정기관에서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그래서 감정평가원은 덜 주목된 작가라서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자료가 부족하고, 감정위원들이 정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할 때는 ‘진위 판정 불가’ 결정을 내린다. 이처럼 판단을 보류하는 조심성 때문에 신뢰가 쌓인 것 같다는 게 엄 원장의 말이다.

감정평가원이 미술품 감정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안목 감정’이다. 미술품에 사용된 재료를 기준으로 하는 ‘과학 감정’도 있지만, 물감과 액자의 제작년도 등만을 기준으로 분석하는 데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관찰이 가진 정확성은 엄청납니다. 감정위원들의 감정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이들은 수십 년간 현장에서 직접 거래하며 눈으로 본 작품들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고, 출처에 대한 흐름까지도 한 눈에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 감정보다 안목 감정에 무게를 더 두는 것입니다.”

최근 미술품 경매 시장이 활황 양상을 보이면서 미술품 가격 산정의 새 기준으로 경매 낙찰가가 대두하고 있는 데 대해서 엄 원장은 반론을 내세웠다.

“경매시장의 맹점은 낙찰가만을 논한다는 것입니다. 감정위원들의 어려움은 지금 이뤄지고 있는 거래 가격과 예술성을 판단해야 하는데, 작품성보다는 경매 낙찰가만을 기준으로 삼자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안타까울 뿐이죠.”

대형 화랑 주인들의 모임인 화랑협회와 각별한 관계를 가진 감정평가원의 그림 진위-값 산정 기능에 대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아냥거림도 있다. 이에 대해 엄 원장은 “감정위원 중에 화랑 주인들이 있어서 그런 말이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감정평가원이 감정을 진행할 때 해당 작품과 관련있는 화랑주의 참여는 엄격히 제한한다. 또한 평론가, 미술사가, 기획자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감정을 진행하기 때문에 어느 개인의 이득을 위한 감정의 여지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비판에 “수업료 충분히 냈다”

엄 원장은 “감정은 원칙상 혼자서 진행하면 안 된다. 복수의 사람이 한 작품을 보고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했다. 그는 미술 시장을 보호할 의무가 감정평가원에 있으며, 감정평가원에 권위가 있어야 진위 감정에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감정위원들의 대다수는 작품의 거래 가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착각에 의한 오판은 있을 수 있지만, 거짓으로 진위 여부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고 말했다. 엄 원장은 “그동안 충분히 수업료를 냈습니다. 진품을 팔지 않으면 손님도 오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객관적으로 진위-시가 감정을 잘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고 말했다.

경매 업체들이 경매품의 진위 감정을 피하려는 관행도 있다. 이에 대해 엄 원장은 “미술시장 보호 차원에서 경매업체의 프리뷰 전시를 보고 진위 여부를 지적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경매사 입장에서는 진위 여부에 대한 논란을 피하고 감정료를 아끼려는 차원에서 감정을 받지 않으려는 관행도 있었죠.”

감정평가원은 70년대부터 미술계에 알려진 거래 가격 자료와 서울옥션·K옥션의 경매 가격들을 모아 데이터화 해보려 시도했었다. 그러나 데이터가 주로 경매 기록에서 나오기 때문에 작품 거래의 트렌드를 분석하기에는 취약점이 있었다고 엄 원장은 전했다.

실제 경매 시장에서 거래되고 있는 작가는 250여 명뿐이라는 점도 그는 지적한다. 활발히 거래가 이뤄지는 작가는 10여 명 남짓으로 가격 지수를 만들기 위한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그래서 감정평가원은 이에 착안해 역대 작가별 데이터를 모으고 있다.

“실제 거래는 미술품 거래의 1차 시장인 화랑에서 대부분 이뤄집니다. 그런데도 2차 거래 시장인 경매시장의 낙찰가가 전체 가격 트렌드를 결정하는 것으로 이야기들을 일부에서 하고 있는데, 1차 시장의 가격을 수면위로 올린다면 정확한 거래 금액 데이터를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은행들이 인수합병 되고 파산도 하면서, 소장 미술품의 처분 또는 가격 산정의 필요성이 커지면서 미술품 가격의 합리적인 감정과 평가 필요가 커졌다. 또한 기업들도 국제 회계 표준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3년마다 자산평가를 하면서 소장 미술품의 시가 감정을 해야 한다. 이런 추세에 따라 감정평가원이 잘 만든 데이터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경매 업체들은 진위 감정부터 받아야 하고,
기업-공공기관은 합리적 가격으로 그림 사야”

“감정평가원은 청와대, 국회, 한국은행 등의 금융기관, 조달청과 관공서 등이 보유한 미술품에 대해 수십 년간 진위 감정과 시가 감정을 해주고 있습니다. 특히 외환-하나은행의 합병 때 과거 국책은행이었던 외환은행의 소장 미술품 가치를 평가하기 위해서 감정평가원이 주도적으로 나선 것도 우리의 역할이 인정되는 증거죠.”

엄 원장은 그림 값 산정 기능에 대해 “우선 컬렉터들이, 그리고 기업, 공공 미술관 등이 미술 작품을 구입할 때 합리적인 가격으로 매입해야 합니다. 그래서 구매 내역 데이터를 공개하라는 것이지요. 기업과 관공서들에서 작품과 관련해 문의가 많이 오지만, 정작 기업 오너들이 구입한 미술품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며 비밀스레 이뤄지는 그림 거래 관행에 일침을 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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