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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 뉴스]갤러리 같지않은 갤러리들

당구장·폐건물·양옥집이 전시공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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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45호 김금영 기자⁄ 2015.08.27 08:51:15

▲2009년 최정화 작가가 젊은 작가들(권용주, 김상돈, 김상진, 이수성)과 함께 공간을 개조하는 ‘하하하 下下下 Low Low Low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트 스페이스 풀은 벽과 골조가 노출된 현재의 독특한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사진 = 아트 스페이스 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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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김금영 기자) 앨리스는 숲속 깊숙한 구덩이에 빠졌다. 헌데, 토끼가 말을 하고 머리 큰 여왕이 있는, 이상한 세상이 나타났다. 여기 한국에는 이상한 갤러리들이 있다. 미술관 하면 연상되는, 전형적인 ‘화이트 큐브’를 벗어나 당구장, 폐건물, 주택에 들어선 전시 공간이다.

오래된 단층집의 변신, 아트 스페이스 풀

10년이 넘은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아트 스페이스 풀은 서울 구기동 한적한 주택가의 오래된 양옥집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1999년 ‘대안공간 풀’이라는 이름으로 서울 종로구 관훈동에서 문을 열었다가 2006년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아트 스페이스 풀(이하 풀)은 “건축주의 배려와 후원도 이유였지만, 당시 예술가 중심으로 구성된 풀이 기존의 전형적인 미술 제도에 제한받는 공간이 아니라 색다른 곳에서 전시를 열길 원했다”고 이전 이유를 밝혔다.

낡은 주택을 갤러리로 개조해 사용하다가 2009년 최정화 작가가 젊은 작가들(권용주, 김상돈, 김상진, 이수성)과 함께 공간을 개조하는 ‘하하하 下下下 Low Low Low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벽과 골조가 노출된 현재의 독특한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100% DIY(제작 및 수리를 직접 하는 것) 방식을 취해, 외부 용역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작가들이 직접 48일 동안(2010년 2~3월) 개조 작업을 진행했다.

화이트 큐브의 외피를 벗겨 내고 주변 환경의 맥락을 고려하며, 70년대 목공이 손으로 지은 집의 본모습을 복구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재활용 원칙에 따라 공사 과정에서 나온 폐목재를 이용해 옥외 창고 위에 ‘동동동’이라는 누각도 지었다. 리모델링을 통해 낡았지만 튼실한 목공 구조와 구석구석 숨어 있던 공간을 드러내고, 이 공간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과정을 보였다.

▲서울 구기동 한적한 주택가의 오래된 양옥집을 전시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아트 스페이스 풀의 외모. 사진 = 아트 스페이스 풀

풀은 “‘하하하 프로젝트’는 새것으로 위장하고 감추는 표준형 지상주의의 재개발 계획과는 대조적으로, 낡았지만 내공있는 일상생활 환경을 미술 공간에 되살리는 걸 목표로 했다. 그 결과 김수영 시인의 ‘풀’처럼 낮고도 강인하며 곳곳에 미술인의 사연과 손길이 닿은 모습으로 다시 태어났다”며 “현재 공간은 전시 성격에 따라 부분적으로 가벽을 설치했다가 철거하는 방식으로 다양하게 꾸리고 있다. 안전을 고려하고 다시 참신한 공간을 기획하기 위해 외부 구조물들은 철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풀이 독자성을 갖춘 현재의 건물을 갖게 된 데는 주변의 도움이 있었다. 2006년부터 현 건물을 임대해 운영 중인데, 풀 전시장 옆 3층 건물(풀 사무실과 아카이브가 위치)을 설계한 조건영 건축가의 소개로 미술 애호가인 현 건축주를 만났다. 풀은 “저렴한 임대료로 오랫동안 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건축주는 비영리 공간의 취지를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든든한 후원자”라며 “임대료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비영리 전시 및 창작 공간금’에서 일부를 충당하고, 풀 후원회원들의 기부금 등으로 조달 중”이라고 밝혔다.

주택가 골목 안에 위치했고, 일반적인 갤러리의 모습이 아니라 처음 풀을 찾는 사람은 애를 먹기도 한다. 하지만 독특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오랜 시간 머물기 일쑤다. 풀은 “화이트 큐브보다 공간 활용이 자유로운 게 장점이다. 전시에 따라 공간을 나눠 벽을 설치하거나,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광을 살리기도 한다. 마감이 안 된 벽이라 무엇을 덧대도 크게 부담이 없다. 꾸밈없는 날 것 같은 상태로 작가 개개인에게 열려 있고, 새 전시 구성을 위한 영감을 준다”며 “이런 공간의 특징이 현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 꾸밈없는 미술을 추구하는 풀의 지향점과 잘 맞는다”고 밝혔다. 풀에서는 개인전, 그룹전, 연례 기금 마련전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 현재는 정은영 작가의 개인전 ‘전환극장’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도대체 전시장이 어디야?” 헤매는 커먼센터

4월 ‘혼자 사는 법’전 취재 차 커먼센터를 방문했을 때 입구를 찾지 못했다. 서울 영등포의 거대 쇼핑몰에서 10분 남짓 걸어가면 화려한 쇼핑몰과는 완전히 다른 동네가 펼쳐진다. 허름한 소규모 공장이 즐비한 거리에는 도통 갤러리로 보이는 건물이 없었다. 한 10분쯤 헤맨 끝에 한 낡은 건물에 전시 포스터가 붙어 있는 걸 보고 미심쩍었지만 밀고 들어갔다. 여기서 또 한 번 놀란다. 페인트칠이 벗겨지고 금 간 벽에 여기저기 뒹구는 잡동사니까지…. 처음엔 ‘아직 전시 준비 중이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대뜸 전시 오프닝을 시작한단다. 준비는 진작에 끝났고 현재 오픈 상태라는 것이다.

오프닝에 이어 전시를 둘러보며 3차 충격에 빠졌다. 깔끔한 공간에 작품이 전시되는 일반 갤러리와 달리, 커먼센터는 원래 있던 각 방에 작가마다 전시 공간을 꾸렸다. 네댓 평 좁은 원룸 방에 전시된 작품을 보면서 남의 방을 힐끗힐끗 훔쳐보는 것 같은 죄책감과 희열감이 동시에 가슴속에서 꿀렁거렸다.

커먼센터는 4층짜리 폐건물을 전시 공간으로 활용한다. 방문자에게 친절한 형태는 아니다. 일반적인 전시 공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모르고 지나치거나 아니면 화를 낼 수도 있다. 간판도 없고 건물 안은 어둑어둑하기까지. 세게 걸으면 무너질까 걱정도 된다. 그런데 이런 불편-불안감이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는지, 갤러리들 중에서 유독 기억나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

▲커먼센터에서 4월 열린 ‘혼자 사는 법’ 전시의 일부. 허름한 건물을 개보수하지 않고 그대로 전시 공간으로 활용했다. 사진 = 김금영 기자

함영준 디렉터를 중심으로 그래픽 디자이너 김영나-김형재, 미술가 이은우가 커먼센터를 꾸렸다. 주변에 폐건물이 가득한 이런 곳을 왜 골랐냐는 질문에 대답은 간단했다. “월세와 시기가 적당했다”는. 미술관은 미술관대로, 갤러리는 갤러리대로의 성격을 고집하며 전시를 여는 상황에서, 점점 늘어나는 작가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선보일 공간이 부족하다고 함 디렉터는 느꼈다. 그래서 젊은 작가들을 위주로 실험적 전시를 선보일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지만 갤러리 밀집 구역은 월세가 턱없이 비쌌다. 그러던 중 영등포에 한 건물이 비어 있다는 정보를 들었고, 고민 없이 현재의 자리를 택했다는 것.

작품을 전시하고 어떤 경우엔 판매하기 때문에 미술관이기도, 갤러리이기도 하다. 커먼센터가 추구하는 독창적이고 실험적인 전시라는 조건에 부합한다면 대관도 해준다. 함 디렉터는 “작품 판매 수익 및 대관료는 최소 운영비를 제하고 미술계 공공의 이익에 걸맞은 새로운 전시를 위해 사용한다”고 밝혔다.

보통 어떤 공간이 새 공간으로 이용될 때 조금씩 리모델링 과정을 거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커먼센터는 건물에 손끝 하나 대지 않고 본래의 허름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전시 성격에 따라 바닥에 깔끔한 카펫을 깔고 방에 페인트칠을 하는 변화를 주기도 하지만, 본연의 큰 틀 자체는 그대로다. 함 디렉터는 “무슨 전시를 하든, 전시보다 공간을 1차적으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그런 틀을 벗어나고 싶다”고 말했다.

거친 공간 탓에 처음에는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지만 재방문자가 생기는 등 마니아층이 탄생하는 조짐이다. 특히 젊은 작가 69명이 참여해 회화 148점을 선보인 ‘오늘의 살롱’전과 현대 사회의 늘어가는 1인 가구를 이야기하는 ‘혼자 사는 법’전이 많은 관심을 받았다.

전시장에서 당구 한 판? 구슬모아 당구장

서울 한남동 독서당로의 외진 골목. 2년여 방치됐던 당구장이 2012년 11월 전시 공간으로 태어났다. 대림미술관이 미술관 공간의 성격상 미처 보여주지 못했던, 보다 실험적인 전시를 선보이자는 취지 아래 마련했다. 기존 있던 당구장을 보수했는데, 당구대는 그대로 자리를 지켰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빨간 벽돌로 구성된 외관은 친근함을 준다. 전시장 입구의 당구장 상징 간판도 마찬가지다. 대림미술관 측은 “구슬모아 당구장은 지역의 역사와 함께 해 온 공간에 혁신적이고 새로운 전시를 선보여, 최종적으로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잇는 공간”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구슬모아 당구장에서 열린 김미수와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김영준의 ‘있음과 없음’전에선 당구대 위에도 작품이 전시됐다. 사진 = 대림미술관

전시 공간을 어렵게 느끼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것도 목적이다. 그 수단 중 하나가 당구대다. 고작 당구대가 무슨 큰 역할을 할까 싶기도 하지만, 당구대가 전시장 안에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전시장에 작품만 걸려 있으면 쭈뼛쭈뼛 밖에서 쳐다보다 가는 경우가 많지만 익숙한 당구대를 보고 친근함을 느껴 더 쉽게 들어온다는 것.

이 당구대는 여러 용도로 사용된다. 최근 니트 디자이너 김미수와 애니메이션 아티스트 김영준의 ‘있음과 없음’전에서는 당구대 위에 작품이 설치되는 낯선 풍경을 보여줬다. 당구대가 비었을 때는 작가 또는 관람객이 편하게 당구 게임을 하며 전시를 관람할 수도 있다.

구슬모아 당구장은 개관 이래 총 17팀의 창작자와 19번 전시를 열었다. 설치, 사진, 건축, 패션, 가구 디자인, 영화, 문학, 음악 등 장르 간 경계를 넘나드는 시도들이었다. 올해엔 공모를 통해 새롭게 선정한 9팀(무나씨, 빠키, 진달래&박우혁, 제로랩, 김미수, 김영준, 조규형, 계한희, 오민)의 작가에게 차례로 전시 공간을 제공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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