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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9주년 인터뷰 - 승효상 서울시 총괄건축가] “랜드마크 시대 끝…건물 되살리고 연대시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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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57호(창간기념호) 안창현 기자⁄ 2015.11.19 08:54:19

▲초대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임명된 이로재 승효상 대표. 사진 = 안창현 기자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건축에 문외한인 이들에게도 이로재(履露齋) 승효상 대표는 이름이 낯설지 않은 건축가다. 1992년 ‘수졸당’을 시작으로 자신의 건축 철학인 ‘빈자의 미학’을 담은 건축물을 꾸준히 선보였고, 다수의 건축상을 수상했다. 파주출판도시 코디네이터,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총감독으로도 유명하다. 강연과 저서를 통해 대중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런 승 대표는 현재 서울시 총괄건축가이기도 하다. 2014년 9월 18일 서울시는 그를 서울시 총괄건축가로 임명했다. “서울 건축의 정체성을 확보해 600년 수도의 위상에 걸맞은 도시환경과 건축물을 만들겠다”는 것이 서울시가 밝힌 총괄건축가 제도의 도입 배경이었다.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역사 도시로서 서울의 정체성이 훼손된 데다, 공공건축이나 도시 외관이 개별 프로젝트 위주로 산발적으로 진행되다 보니 다양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 사실이다.

서울시의 초대 총괄건축가로 선임돼 지난 1년간 바쁜 활동을 이어온 승 대표를 동숭동의 이로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구 1000만이 사는 서울에서 건축이나 도시 환경과 관련해 총괄건축가가 해야 할 일은 정말 많았다. “서울시에 출근하는 이틀간은 30분 단위로 회의가 있을 만큼 바쁘다”는 그를 만나, 우리가 사는 서울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들었다.

“서울시에서 진행되는 크고 작은 건축 프로젝트에 대해 종합적인 자문과 조언을 하는 역할이다. 총괄건축가(City Architect) 제도는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지만, 이미 네덜란드나 독일 등 유럽 선진국의 여러 도시에선 보편적인 제도다.”

총괄건축가는 공공건축, 공공시설, 도시계획, 조경 등 도시 공간 및 환경 전반에 대해 총괄 기획, 자문을 수행한다. 국내에서는 서울시가 처음으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아무래도 서울과 같은 거대 도시에는 수많은 건축 행위가 일어나고, 이를 일관되게 계획하고 조정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승 대표는 “이런 역할을 기존에는 시장이 총괄했다. 하지만 시장은 건축 전문가가 아니지 않나. 시 산하에 개별적으로 도시계획이나 공공건축과 관련한 부서가 있지만, 이를 일관된 시각에서 자문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 일을 하는 게 바로 총괄건축가”라고 설명했다.

‘메가시티’에서 ‘메타시티’로

승 대표는 서울의 도시 발전 전략을 이제는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가 총괄건축가에 취임하면서 서울시의 도시 방향을 한 단어로 요약했다고 한다. 서울시의 비전과 전략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그가 선택한 단어는 메타시티(Metacity)다.

▲2013년 8월 20일 서울시청에서 박원순 시장이 서울건축의 기본 원칙을 담은 ‘서울건축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승효상 대표는 당시 서울시 건축정책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사진 = 서울시

지금까지 서울이 메가시티(Megacity)를 표방했다면, 앞으로는 메타시티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메가시티는 인구 1000만이 넘는, 말 그대로 거대 도시를 말한다. “팽창이나 성장을 전제로 만들어진 도시가 메트로폴리스(Metropolis)고 메가시티다. 하지만 그렇게 팽창과 성장이 계속된다고 해도 그 이면에서 도시의 질은 저하되고, 여러 가지 문제들을 야기했다. 서울이 더 이상 메가시티가 아닌 메타시티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메타시티는 어떤 모습일까? 그는 “메타시티는 고유한 풍경의 회복, 역사의 회복, 시민들의 일상의 회복을 지향한다. 지역의 연대가 중요하고 내적인, 질적인 증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무언가를 없애고 새로 개발하는 것보다는 기존의 것을 재생하는 것, 전체를 한꺼번에 바꾸는 것보다는 점진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거대한 마스터플랜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침술을 놓는 것처럼 작은 부분들을 잘 다뤄야 한다. 도시를 선진화한다는 명목으로 거대한 랜드마크나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이 중요하다. 이 모든 것들이 메타시티의 실천 방안들이라고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의 정체성 되찾는 비전 제시

승 대표가 메타시티란 방향을 내세운 것은 그동안 서울이란 도시가 너무 서양의 건축 양식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였다는 판단 때문이다. 서양 도시 흉내를 내는 데 급급한 나머지 서울이 가진 역사적인 정체성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서양 도시는 대부분 평지 위에 세워진 도시들이다. 평평하다 보니 랜드마크 같은 게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서울은 평지가 아닌 산을 간직한 입체적인 도시다. 우리나라 평지는 농지가 대부분이다. 우리 도시는 전통적으로 산 밑에 형성되는 특징이 있다.”

승 대표는 전통적으로 서울이 가진 정체성을 다음 5가지라고 봤다. △1000만 인구가 사는 메가시티 △드물게 도시 안에 산을 품은 도시 △무구한 역사를 간직한 도시 △한 나라의 수도로 600년간을 지탱한 도시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 위치한 도시. 이 5가지를 고려할 때 서울을 어떻게 회복시켜야 할지 그 방향도 분명했다.

“인구 1000만 도시가 전 세계에 25개 정도 있다. 그 중 서울은 거의 유일하게 평지가 아닌 곳에 건설된 도시다. 우리는 평지에서는 대부분 경작을 했고, 산비탈 아래에 마을이 형성됐다. 서울도 배산임수(背山臨水), 그러니까 산 때문에 수도가 됐다. 적어도 일제 시대까지는 이런 서울의 모습이 지켜졌다.”

하지만 전후 서울은 현대화되면서 급격히 변했다. 승 대표는 “서양 문화가 들어오면서 도시의 전통적인 관념이 사라졌다. 서구의 평면 도시가 들어온 것이다. 산이 있으면 깎고 터널 뚫고, 계곡이 있으면 메우면서 집은 이런 평면에 지어졌다. 서양 도시를 닮으려 한 게 지난 수십 년간 서울의 도시 계획이라고 할 수 있다. 전통적인 서울의 정체성이 망가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서울만의 도시 정체성을 확립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총괄건축가로서 이를 위한 비전과 방향을 제시하려고 노력 중이다. 물론 도시 건축이 한꺼번에 확 바뀔 수는 없다. 먼저 비전과 방향의 공유가 필요하다. 승 대표가 서울시 총괄건축가로서 이런 생각의 공유를 위해 세미나나 집중 회의를 꾸준히 열고 의견을 조율하는 이유다.

“사실 도시 계획의 이런 방향은 세계적인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선진 도시도 이런 방향으로 변화해왔고, 서울도 이제 여기에 맞춰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서울은 그동안 역사적으로 가지고 있던 고유성을 많이 잃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의 동의와 협력이 필요한 것이고, 지난 1년간 그런 설득 작업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승 대표가 언급한 메가시티는 구체적으로 시민들이 도심을 마음껏 걸어 다니는 보행 친화적인 도시, 낡은 건물과 시설의 재생을 통해 공공성을 회복하는 도시다. 그가 꿈꾸는 서울의 모습이기도 하다.

▲사진 = 안창현 기자

“요즘 도시 계획의 세계적 추세가 재생과 연대다. 이전 시대에는 랜드마크를 짓고 거대 도시 시설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파편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었다는 게 문제다. 앞으로는 기존 건축물들을 재생해서 쓰고, 서로 연대하고 연결하는 게 중요하다. 서울 역시 그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서울역 고가도로와 세운상가 재생 사업

서울역 앞 고가도로의 공원화 사업이나 세운상가 정비 등 최근 서울시가 추진 중인 굵직한 사업들이 모두 이런 재생과 연대의 관점에서 비롯한 것이다. 특히 지역 상인들의 반대로 논란이 됐던 서울역 고가 사업 역시 ‘메가시티로서의 서울’이란 큰 그림에서 진행됐다고 그는 설명했다.

“예컨대 서울역에서 남산을 가려고 하면 정작 그 거리는 얼마 되지 않는데 너무 막연하다. 어떻게 갈 수 있나. 걸어서는 도무지 갈 수 없는 구조다. 남대문 시장도 그렇다. 가까운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택시를 타는 방법밖에 없다. 그런데 서울역 고가를 이용하면 걸어서 10~15분에 다 갈 수 있다.”

그는 서울역 주변 상황이 굉장히 파편적으로 나뉘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차도로 이용하기 위험하다고 판명난 서울역 고가도로를 보도로 재생하면, 서울역 주변을 모두 연결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현실적인 이해관계가 있다. 남대문 시장의 상인들은 서울역 고가의 공원화 사업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승 대표는 서울시가 조율 중인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수없이 많은 회의를 진행했고, 현실적인 대안과 교통 대책을 마련했다.

그는 서울역 고가 사업은 서울시의 전체적인 도시 계획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성과를 내세운 보여주기식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승 대표는 현재 진행 중인 세운상가 정비 사업 또한 메타도시로 향하는 중요한 사업이라고 지적했다. 그의 스승이기도 한 고 김수근 건축가가 밑그림을 그린 세운상가는 철거 위기에 놓였지만, 서울시가 다시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세워진 지 50년도 지난 우리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승 대표는 세운상가 2층에 보행 데크를 만들어 종묘-청계천-을지로-남산까지 연결할 계획이다. “서울 도시 구조를 보면, 현재 진행하는 세운상가 리모델링은 중요하다. 서울은 을지로, 종로 등 동서로 길이 나 있다. 청계천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남북을 이어주는 통로가 중요한데, 세운상가에 보행 데크를 만들면 종로-을지로-남산까지 도보로 연결이 가능하다. 동서남북 전 방향으로 보행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도시와 건축의 공공성 생각할 때”

승 대표는 “지금까지 서울은 랜드마크를 파편적으로 만들어왔다. 이제 이 공간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네트워크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세운상가나 서울역 고가도로 등 기존의 것을 재생시키는 거다. 이게 연대와 연결, 재생을 상징하는 메타시티의 밑그림”이라고 말했다.
승 대표는 지난 1년간 서울시 총괄건축가로서 그가 내세운 메타시티의 방향으로 차분히 한발씩 내딛었다. 그리고 이런 방향은 ‘빈자의 미학’으로 대표되는 그의 건축 철학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빈자의 미학’이라는 것도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고민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년간 이런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노력했고,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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