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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미술평론] 배우가 된 미술작가, 관객과 설렘 나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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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63-464호(신년) 이문정(조형예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5.12.31 08: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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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이문정(조형예술학 박사, 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문화 예술의 거리인 대학로에선 일 년 내내 연극, 뮤지컬, 음악, 무용 등 다양한 공연들이 열린다.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공연 관람을 위해 모여드는 그곳은 설렘과 두근거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공연이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즐거운 긴장감, 공연을 보고 난 후의 행복한 흥분이 거리 곳곳에서 느껴지는 듯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꼽는 공연 예술의 대표적인 매력은 현재성과 현장성일 것이다. 연극의 예를 들자면 장소와 시간, 배우들의 대사 톤과 연기, 그들 사이의 상호 작용, 관객과 배우 사이의 교감 정도에 따라 매번 새로운 작품이 완성된다. 동일한 극이라도 매회 공연이 절대 같을 수 없다는 사실은 공연 예술의 가장 큰 차별성이자 특징이다. 

공연 예술에 비하면 미술은 시공간을 초월해 불변하는 예술적 경험을 제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모더니즘(modernism) 시대까지의 미술 작품 대부분은 작가가 작품을 완성하고 서명을 남기는 순간부터 영원성을 획득했다. 언제 어디에 전시되든 작품의 외형과 주된 의미가 바뀌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만나는 모든 미술 작품이 다 그러한 것은 아니다. 미술은 언젠가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시되는 장소에 맞게 매번 작품의 형태가 바뀌거나 처음부터 특정한 공간을 염두에 두고 제작되기도 한다. 전시 기간 중에는 주변의 빛과 온도, 바람과 같은 조건 혹은 관람자의 행동에 따라 작품이 변화하기도 한다.  

안도 다다오 건축과 함께 하는 ‘길 위의 공간’전

대학로 인근에 위치한 재능문화센터(JCC)에서 진행 중인 전시 ‘길 위의 공간’은 바로 이러한 미술을 한 자리에서 보여줘 지역적 정체성에 부응한다. ‘길 위의 공간’은 세계적 건축가인 안도 다다오(Ando Tadao)가 혜화동의 기억과 역사를 구현했다고 하여 주목받았던 재능문화센터의 건축적 공간을 탐구하고 해석한 장소 특정적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노해율, ‘무브리스 - 화이트 필드(Moveless - White Field)’. 철, 풍선, LED 조명. 30 x 30 x 160(h)cm x 100EA. 2010. 사진 = 노해율 작가 제공

전시에 참여한 아홉 작가들은 ‘바로 그 공간’에 유효한 작품을 창조해냈다. 전시장의 실내뿐 아니라 야외 공간에까지 설치된 작품들은 주변 환경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매순간 다른 경험을 제공한다. 마치 공연 예술이 그렇듯 특정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매번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하나의 특별한 무대와 극(劇)이 완성된 것이다.  
한편 작가가 무대 위 배우처럼 연기를 하거나 특정한 행위를 보여주는 퍼포먼스 역시 공연 예술과 많은 부분을 공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작품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퍼포먼스에는 무대, 대본 혹은 계획안, 행위를 하는 배우인 작가, 그것을 지켜보고 함께 호흡하는 관람객의 반응, 그 모두가 예술적 가치를 갖는다. 더 이상 미술은 정적인 시각 예술의 범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오감을 경험케 하는 종합 예술로 존재하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부상한 퍼포먼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백남준이다. 전통적인 예술 매체를 거부했던 백남준은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부수고, 존 케이지(John Cage)의 넥타이를 자르고, 머리로 그림을 그리는 등의 퍼포먼스를 통해 예술과 사회의 고정관념을 해체해 새로운 미술 시대가 열렸음을 증명했다. 

감상자에 그치지 않고 적극 동참하는  관람객

이후 많은 작가들이 전통적인 회화와 조각이라는 장르적 표현 방식을 벗어나 보다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퍼포먼스를 선택했다. 그리고 관람객과 생생한 예술의 시공간을 나누었다. 엄격한 장르 구별의 해체와 다원주의의 실현, 일상 세계와의 소통이라는 포스트모더니즘 미술의 지향점도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 캐롤리 슈니먼(Carolee Schneemann),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댄 그레이엄(Dan Graham),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c) 등은 이러한 미술 행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들이다. 

▲양주혜 ‘변주곡’. 벽면에 시트지, 아크릴 거울, 가변 설치. 2015. 사진 = 재능교육문화센터

오늘날에는 많은 작가들이 퍼포먼스를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통로로 선택하고 있다. 국내의 작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일례로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Venezia Biennale) 특별전의 개막 행사로 퍼포먼스를 선보여 이슈가 됐던 재불 작가 남홍은 고단한 현실을 살아가는 세계 속 존재들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퍼포먼스를 2000년 초반부터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살풀이 행위를 보여주는 그녀의 퍼포먼스는 또 하나의 종합예술이다. 

이제 관람객들은 전시장에 놓인 작품만 보는 게 아니라 작가의 연기와 행위를 보면서 감정의 동요를 경험하고 감동받는다. 스스로 배우가 되기도 한다. 아브라모비치의 ‘예술가가 재한다(The Artist Is Present)’(2010년)는 뉴욕 현대미술관(The Museum of Modern Art)에서 736시간 30분 동안 이뤄진 퍼포먼스이다. 작가는 마치 미술 작품이 된 것처럼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테이블 너머의 의자에 누군가 앉으면 특별한 행위 없이 그 혹은 그녀를 마주본다. 관람객들은 작가와 마주하는 행위를 통해 예술가의 존재를 인식하고 경험한다. 1500여 관람객들이 그녀와 마주해 작가가 만든 무대에 섰다. 작가의 행위를 바라보는 동시에 관람객 스스로도 행위를 한 것이다. 참여자 중에는 눈물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모두가 느끼듯이 이 작품에서 관람객은 감상자에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무대 위의 배우가 된다. 

▲신승백·김용훈, ‘클라우드 페이스’. 커스텀 소프트웨어, 가변 크기. 2012. 사진 = 재능교육문화센터

미술관의 풍경이 변했다. 미술은 더 이상 타임캡슐에 담긴 채 정지된 채로 존재하지 않는다. 작가들은 완성된 작품을 일방적으로 제공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행위와 감정을 공유하기를 원한다.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기를 바란다. 이제 전시장은 하나의 무대가 되고 작가는 그 무대를 이끄는 연출가, 배우가 된다. 우리도 엄숙한 관조가 아니라 두근거리고 설레는 체험을 할 때다. 그리고 그 체험 속에서 우리 모두가 생생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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