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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어렵다구요? 알듯 모를듯한 작품 앞 체험이 더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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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1-482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2016.05.02 09:3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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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이화여대/중앙대 겸임교수))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어, 왜 이렇게 난해한 거야? 누가 옆에서 설명해주지 않으면 의미를 모르겠어.” 미술 전시를 관람하고 온 지인들에게 많이 듣는 하소연 중 하나다. 요즘 미술은 설명 없이 이해할 수 없어 감상할 때 긴장되고 즐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전시장을 채운 작품뿐 아니라 미술 잡지나 뉴스 등에서 다뤄지는 동시대 미술들은 하나같이 어려워 보인다. 무언가 엄청난 메시지들을 전달하는 것 같은데 그 의미를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노릇이다. 고상한 문화인의 모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매체가 다양해지고, 장르와 장르가 뒤섞이고, 그 동안 미술에서 보기 힘들었던 주제가 등장해 더 낯설어 보이기도 할 것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그림 읽으려면 아는 게 있어야

그렇다면 요즘 미술이 아닌 미술, 과거의 미술은 어떠했을까?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당신이 미술관에서 17세기 네덜란드 정물화를 마주했다. 바구니에는 각종 과일이 가득 담겨 있고 과일 주변에는 애벌레와 파리, 나비 같은 곤충들이 모여 있다. 명확히 지시할 수 있는 사물들을 그린 정물화이기에 설명 없이도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 사실 17세기의 정물화는 그려진 대상 하나하나가 모두 상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다양한 과일이 동시에 그려진 상황은 시간의 흐름과 자연의 순환을 의미한다. 애벌레는 물질적인 욕심을 버리지 못하는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며, 파리는 죽음과 부패의 상징인 반면 나비는 부활의 상징이다. 결국 이 그림은 인간의 삶과 죽음, 자연의 섭리를 나타내는 것이다. 단순히 정물을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미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역사화, 그리스 신화나 기독교의 내용을 담은 그림들 역시 기본 지식이 있어야 그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엄밀히 말해 과거의 미술도 설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윤정원 <아름다운 날들, Beautiful Days>, 비단에 채색, 190 x 112cm, 2014

앞서 정물화의 이야기를 했으니 이번에는 꽃 그림 이야기를 해보겠다. 요즘 시대에 활동하는 동양화가 윤정원은 꽃을 그린다. 꽃은 많은 사람들이 부담 없이 편하게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미술의 대표적인 소재다. 그러나 비단 위에 전통적인 채색화 기법으로 그려진 윤정원의 아름다운 꽃 그림은 그저 꽃을 그린 것이 아니다. 그것이 미술로 존재하는 한 꽃은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뒷면에서 채색하는 배채(背彩)법을 이용하여 은은하고 고아한 색감을 보여주는 윤정원의 작품에 별과 새와 같이 등장하는 꽃은 작가의 주변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하는 제의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담아낸다. 특히 ‘아름다운 날들(Beautiful Days)’(2014)의 경우, 처음 보았을 때에는 단아하고 고운 꽃 그림으로 보이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불에 탄 흔적, 얼룩 같은 것들이 보인다. 이는 작가가 화재로 훼손된 조선시대의 어진에서 영감을 받아 불탄 것처럼 보이게 표현한 것으로, 인간이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고난의 극복과 성장을 은유한다. 

이즈음 하나의 질문이 떠오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작가가 의도한 의미를 관객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일까? 작가와 작품에 대한 지식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관람 전에 반드시 모든 정보를 알고 갈 의무는 없다. 또한 사전에 준비를 하지 않아도 찬찬히 작품을 들여다보고, 작품 앞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보내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의미를 추출해낼 수 있다. 정말 가능할까? 전시장을 찾아 작품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길 바란다. 어쩌면 조금 다른 의미를 찾아내는 것도 괜찮다. 사실 작가의 뜻을 100% 완벽히 읽어내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작가 본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전시되는가, 누가 감상하는가에 따라 작품은 매번 다르게 해석될 수밖에 없다. 동일한 설명을 듣더라도 사람에 따라 이해도가 다르고, 연상하고 상상하는 내용도 다르다. 

대번에 뜻 알면 좋나요? 오히려 재미없지요

이것은 미술에만 국한되는 사실은 아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의미들도 마찬가지다. 이에 오늘날의 많은 작가들은 고정불변하는 진리와 정답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자신의 작품이 한두 개의 명확한 의미로 읽히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정해진 정답을 한 번에 우리 손에 쥐어주길 원하지 않는다.  

지난 4월 열린 전시 ‘예외상태: 우아한 예술가’를 준비하는 중 만났던 루나 이정은과 MR36(모즈 김동형, 료니)은 자신들의 작업 의도와 의미에 대해 열심히 설명하면서도 자신들의 작품이 다양한 의미로 읽히기를 바란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또한 자신들은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강조했다. 오늘날은 하나의 정답만을 추구하고 강요하는 시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맥에 따라 의미가 바뀌고 뒤섞이는 세계를 보여주듯 루나 이정은은 인터넷을 떠다니는 이미지들을 검색하고 선택하여 편집, 재조합한다. 첫인상은 밝고 명랑하지만 폭력과 어둠의 이미지들을 담고 있는 그녀의 작품은 우리의 세계와 우리가 만나는 수많은 이미지들 그리고 뉴스와 사건들이 행복하고 아름답기만 한 것은 아니며, 그 의미 역시 유동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루나 이정은 <XX Fountain>, 퍼스펙스(perspex)에 스크린 프린트, 아크릴, 에나멜페인트, 페인트마커, 60 x 84cm, 2014

지난 2010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던 개인전 <양혜규: 셋을 위한 목소리 Haegue Yang: Voice Over Three> 당시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양혜규는 “항상 쉬운 것에 함정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만들면 오히려 반성한다. 뭔가 금방 반응이 올 경우에 의심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무엇이든지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가 하는 말을 차분히 들어주는 시간이 필요하다. 가족, 친한 친구 사이에도 의사소통이 잘못되거나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하물며 만나보지도 않은 미술가가 하는 이야기를 어찌 한 번에 이해할 수 있겠는가? 한 번에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면 곱씹어보는 재미를 경험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당신 앞에 놓인 작품이 한 번에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도 조급해하거나, 우울해하기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한 번 더 마주하길 권해본다. 작품을 마주하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 순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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