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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랑가] "시판 그림 30%가 위작"이라는데도 그림 살 건가?

위작 홍수에 칼빼든 정부…미술권력은 “괜찮은데 왜 정부 나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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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7호 최영태 기자⁄ 2016.06.10 19:20:54

▲미술품 감정에 관해서는 (왼쪽부터) 김영석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 이사장,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최병식 경희대 교수, 송향선 한국미술품감정평가원 감정위원장, 서성록 한국미술품감정협회장이 논의에 나섰다.(사진=김금영 기자)

이중섭-박수근에서 시작해 천경자-이우환으로 이어지는 고가 미술품 위작 사태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에 대한 토론회가 6월 9일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정부 주최로’ 열렸다. 시장에 맡겨 놓은 미술 거래 질서가 무너져 내리는 걸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는 문화부가 마침내 규제의 칼을 빼든 셈이다. 

이날 토론회에는 놀랄만한 발언이 이어졌다. 이른바 ‘아트 테크’ 차원에서 미술품을 소장하려던 사람이 들으면 “야, 이거 비싼 미술작품을 사는 건 완전 바보짓 되겠구나” 하고 느낄만한 증언들이었다. 하지만 이에 대해 내로라하는 국내의 미술 전문가, 화랑-옥션 관계자들은 “큰 문제 없다” “법규제는 시기상조다” “더 자정 노력을 하면 되는데 정부가 나서는 거 아니냐” “잘못하면 거래가 위축된다” 등의 한가한 발언을 내놔 한국 미술시장의 현재 상태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우선 이날 토론회에서 나온 놀랄만한 ‘실태 전달’ 발언들을 들어보자.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 “2005년부터 올 1월까지 국가기관으로부터 의뢰 받은 미술품 진위 감정 건수가 3000건을 넘는다. 그런데 진품은 단 한 점도 없었다. 시중에 유통되는 그림의 30% 정도는 위작으로 본다. 상황은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 
위작 사태가 일어나면 누가 책임지나?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화랑은 ‘그림 좋잖아? 모르고 팔았다’ 그러면 그만이다. 그림을 사들인 소장자만 소외되는 현실이다.”

최 소장은 이에 앞서 작년 10월 23일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발언한 바 있다. 당시 이우환 위작이 문제가 되자 그는 CBS라디오의 ‘김현정의 뉴스 쇼’에 출연해 “유명 화랑에 걸려 있는 이우환 위작을 보고 ‘야, 이런 걸 어떻게 걸어놓고 문을 열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헌데 나중에 문제가 되면 화랑은 ‘진짜인 줄 알았다’고 녹음기 틀어 놓은 듯한 소리를 똑같이 한다. 미술품 위작 판정에 내가 관여한 게 20년 됐는데 20년 동안 똑같은 목소리들을 녹음기 틀어놓은 것처럼 들었다”고 증언했다. 

▲자신이 20년간 해온 위작 감정 경험을 전하며 "오늘 같은 자리를 문화부가 마련해줘 고맙다"며 위작 판매 행태의 심각성을 말하는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 (사진=김금영 기자)


그의 말을 따른다면, 지난 20년간 위작 판매가 대형 화랑, 소형 화랑 불문하고 지속적으로 자행됐지만,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화랑들은 전문가가 보면 바로 알 수 있는 위작품일지라도 버젓이 걸어놓고 판매해 왔으며, 문제가 되면 “몰랐다”고 앵무새 같은 소리만 해왔다는 소리가 된다. 

△정준모 미술평론가 = “이번에 이우환 위작을 만들어 검거된 사람은 위작 그림으로 그간 두 번이나 붙잡혔었지만 집행유예 처벌만 받고 나와 다시 위작 범죄에 나섰다 또 걸렸다. 관련 법을 만들어 위작이 적발되면 일벌백계에 처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렇기에 위작 현장을 봐도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술평론가가 위작의 현장을 보면서도 “하지 마세요”라고 얘기하지 못한다는 발언에서, 미술 시장이 돌아가는 사정이 짐작된다. 

이렇게 사태의 심각함을 알리는 증언들이 이어졌지만, ‘크게 문제가 없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는 식의 편안한 발언 역시 이어졌다. 

△박우홍 한국화랑협회장 = “한국화랑협회는 거래 그림에 대해 자체 보증서를 발행하고 있다. 이 증명서를 더 강화하겠다. 자정이 먼저다. 화랑협회에는 150개 회원사가 있다. 위작 판매로 문제를 일으킨 화랑들은 우리 회원사가 아니다. 

문화부가 하겠다는 각종 조치와 법제화는 틀림없이 해야 하는 과제다. 그러나 올 8월 달에 최종 방안을 내놓겠다고 문화부 신은향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은 오늘 토론회에서 밝혔지만, 잘못된 징검다리를 놓으면 안 된다. 충분한 검토 과정을 거쳐 내년 8월쯤 최종 방안을 내놓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최윤석 서울옥션 이사 = (미술품 유통업체의 설립-운영 기준을 마련해 정부에 허가-등록 하는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문화부 안에 대해) “인허가 부분은 위작을 막는 데 도움이 된다. 큰틀에서는 동의하지만 개인 화상들, 작가가 작품을 파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것도 못한다는 소리인가? (문화부가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미술품 등록 및 거래이력 신고제’에 대해) 거래 내역을 정부가 들여다보겠다는 건데, 바람직한 방법인지 모르겠다. 크게 도움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규제를 위한 규제는 아닌지.”

△이상규 K옥션 대표 = (미술품 유통업체의 허가-등록 기준을 마련하겠다는 문화부 안에 대해) “미술 시장에 대한 진입이 자율적으로 이뤄져야 하기에 허가 제도는 반대한다. 안 지키면 퇴출시키는 방안이라야 한다.” 
(‘거래이력 신고제’에 대해)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거래 관련 내역에 이름을 올리게 하는 것만으로도 미술품 수요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 또한 고려해야 한다.”

△정준모 미술평론가 = “위작 사태가 논란이 되고 있지만 이는 미술계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인데 마치 미술계가 문제인 것처럼 거론된다. 한국화랑협회와 한국미술품감정협회가 보증서-감정서를 발행하는데 불투명 거래가 이뤄지는 것처럼 거론되는 것을 이해 못하겠다. 용산-장안평-청계천에 가면 박수근 그림을 1천만 원에 파는 짝퉁시장이 존재한다. 오픈한 지 3년도 안 된 화랑을 통해 고가의 이우환 작품을 사는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   

△서진수 강남대 교수 = “국내에서 만들어지는 미술 작품의 2.5%만이 팔린다. 미술품 판매를 도와줄 뉴딜 정책을 펴야 할 판이다. 2006~2007년의 미술시장 1차 활성화에 이어 2015~2016년 현재 제2 사이클이 돌아왔다고 할 정도로 오랜만에 시장이 좋아지고 있는데, 8월 법제화를 서두를 일인가. 우리의 미술 공개시장화는 이제 20년밖에 안 됐다. 250년 역사를 지닌 서구 미술 시장의 제도를 한꺼번에 도입해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나라에 맞는 제도들을 가려 첨삭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결국 이들의 발언은, ▽큰 화랑을 통한 거래에선 문제의 소지가 적으며 ▽대형 화랑과는 별도로 짝퉁시장이 존재하는데 그걸 제대로 처벌하지 않는 게 문제이며 ▽정부가 추진하는 거래이력 신고제 등은 부작용 소지가 있고 아직 시기상조이며 ▽겨우 살아나는 시장 분위기를 망칠 수 있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화랑협회장 “경매업체에 자정능력 없고 투명성 보장못해”
1차 판매자인 화랑 관계자가 참여하는 감정의 공정성 시비도

토론회에선 현재 미술 시장의 양대 축이랄 수 있는 화랑협회와 옥션사와의 갈등 양상도 일부 노출됐다. 박우홍 화랑협 회장은 “2차 거래 시장인 미술품 경매시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1차 시장인 화랑가 거래에 보탬이 돼야 한다”며 “그러나 경매 시장은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자정능력이 없어 미진한 상태”라고 비판했다. 위작 사태가 화랑협회를 구성하는 대형 화랑들에서보다는, 규모를 키운 경매 시장에서 발생하기 쉽지만, 국내 경매업체들은 투명성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질타였다.    

미술품 진위 감정 과정에, 판매 당사자인 화랑 관계자들이 더 높은 비율로 참석하는 문제도 지적됐다. 서성록 한국미술품감정협회 회장은 “현재 감정 작업에는 갤러리스트가 6, 미술사를 전공한 이론가 등이 4 정도 비율로 참가한다. 작품을 판매하는 갤러리가 감정한다는 문제점 때문에 감정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는 물건을 팔 사람이, 물건의 진위를 판정하는 격으로, 비유하자면 식품-의약품의 안정성을 엄격히 판정해야 할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판정관 자리에 제약업체 인사가 더 높은 비율로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꼴이다. 제약업체가 만든 물건을 제약업체 관계자가 “이건 팔아선 안 돼”라고 판정할 가능성은 낮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품 감정 시스템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전문가 판정 무시하는 사법 시스템에도 문제 제기 

위작이 불거지면 최종 판정은 결국 법원이 하게 마련이다. 헌데, 한국 사법 시스템이 미술품 위작에 대해 공정한 심판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도 터져 나왔다. 

경찰이 지난 6월 2일 “이우환 작가의 작품이라며 판매되고 있는 작품 13점을 압수해 조사한 결과 모두가 위작으로 판명났다”고 발표했을 때, 위작 판정을 한 주체 중 하나로 최명윤 국제미술과학연구소장의 이름이 들어가 있었다. 

최 소장은 법의 난맥상을 여러 예를 들어가며 질타했다. 그는 “작년 5월 이우환 위작 판정과 관련해 검찰 수사대가 도와달라고 왔다. 그때 나는 ‘그림을 모르는 당신들이 어떻게 위작 수사를 할 거냐? 이번에도 또 계좌 추적만 할 거 아니냐?’고 따졌다”며 “2006년부터 이중섭 위작 등의 감정을 해왔지만 위작 시비에서 가장 어려운 건, 담당 검사가 미술을 전혀 모른다는 것, 그리고 판사가 전문가의 판단을 건너뛸 수 있는 나라라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자신이 이우환 작품에 위작 판정을 내린 것에 대해 “이우환 작가는 그간 ‘내 그림에 위작은 없다’고 말해 왔다. 이우환 것이라는 작품 12점을 내가 위작으로 판정했으니 이제 법정에 나가야 할 텐데 위작 판정 과정이 그렇게 간단했겠느냐”고 자신의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최 소장은 “문화부의 오늘 토론회가 너무 고맙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간 미술품 위작 사태는 거론은 많았지만 제대로 된 처벌도, 진위 판명도 제대로 된 적이 거의 없다. 이는 마치 작년 불거진 소설가 신경숙의 표절 시비가 흐지부지 끝난 것과 비슷하다. 예술 작품의 위작 시비를 명확히 밝히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준다. 

신경숙 작가의 표절 시비가 불거졌을 때 많이 거론된 게 이른바 명문대 출신들로서, 대형 출판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작가의 작품을 주무르는 이른바 ‘문학 권력’이었다. 

이제 미술품 위작 사태가 대중의 시선에 포착되면서, 미술 작품을 떡주므르듯 하는 이른바 ‘미술 권력’이 전면에 등장할 차례다. 단, 차이가 있다. 문학 권력은 거론만 됐을 뿐 정부가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칼을 빼들지는 않았다. 반면 이번 미술 위작 사태에 대해서는 문화부가 칼을 빼들었다. 9일 토론회를 마련한 문화부의 신은향 시각예술디자인과장은 이날 “위작이 많다고 국민이 느끼는 게 문제고, 이러면 시장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좌시할 수준을 넘어섰다는 얘기다.

그런데도 ‘미술 권력’은 대체적으로, ‘별 문제 없는데 왜 그래? 우리가 더 잘하면 되잖아’라는 자세를 갖고 있음을 이날 토론회는 보여줬다. 문화부의 칼날이 정말로 미술시장의 썩은 부위를 도려낼지, 아니면 ‘미술권력’이 바라는대로 이번에도 또 흐지부지 지나갈지 두고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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