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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시국선언 ②] 청와대 앞 청소 막는 경찰에 "깨끗한 거 싫어?"

광화문광장 노숙부대를 3박4일 따라다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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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3호 김금영⁄ 2016.12.09 17:54:26

▲박근혜 대통령과 세월호 관련 조형물이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11월 4일. 광화문광장에 캠핑단지 분양사업이 벌어졌다. ‘하루 숙박부터 장기 숙박까지 환영’한단다. 고가의 비용도 필요 없이, 그저 자신이 들어갈 텐트를 가져오면 된다. 이 캠핑촌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문화예술인들의 항의의 의미를 담았다. 시작 당일엔 이를 막는 경찰들과의 싸움이 벌어졌다. 텐트가 찢겨져 나가고, 경찰들은 “서울시장의 허가가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시민의 광장을 되찾고자 하는 문화예술인의 의지는 단지 텐트를 빼앗겼다고 끝나지 않았고, 추운 날씨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지금 광장은 허가를 받아야 하는 곳이 아니라, 시민들에게 개방의 장소로 바뀌었다. 박원순 서울시장 또한 “광장을 아고라로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어느덧 광장 캠핑촌이 세워진 지 한 달이 넘었다. 12월 5일엔 한 달을 자축하는 의미에서 광장에 자리를 깔고 앉아 자장면을 먹는 풍경도 연출됐다. 그간 참 변화도 많았다. 단지 시국선언에 참가한 문화예술인의 캠핑촌이 아니라 비정규직없는세상만들기 사회운동네트워크, 기륭전자, 쌍용차, 콜트콜텍 해고자들 등 사회의 부조리한 구조에 항의하고 깨끗한 사회를 꿈꾸는 집단들이 함께 힘을 합쳐 ‘우리의 광장’을 만들었다. 시민들의 응원과 참여도 있었기에 가능했다. 일반 시민의 텐트도 곳곳에 눈에 띈다. 캠핑촌을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계속 이어진다.


이 캠핑촌의 하루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광장 캠핑촌을 구성한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위원회’(이하 예술행동위원회)의 행적을 짧게 며칠이나마 따라가 봤다. 예술행동위원회는 캠핑촌 운영을 총괄하는 송경동 시인을 비롯해 노순택 사진작가, 이윤엽 판화작가, 문화연대의 신유아 작가, 정택용 사진작가, 이삼헌 춤꾼, 이하 작가, 홍승희 작가, 박은선 작가 등으로 구성됐다. 11월 4일 짐을 싸들고 캠핑촌으로 향한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12월 5일: 광화문광장 캠핑촌 풍경 살피기


▲현재 정권을 풍자한 그림 앞에 선 어린이.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할까.(사진=김금영 기자)

먼저 광화문광장 캠핑촌을 방문했다. 이전엔 넓기만 하고 텅 비어 있던 이곳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 텐트부터, 예술행동위원회의 텐트, 시민들의 텐트, 시민 단체들의 텐트까지 다양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은 광장에 세워진 전시물들을 보고 사진을 찍었다. 특히 인기 폭발인 건 재벌 기업들을 껴안고 웃는지 우는지 모를 표정을 짓는 박 대통령의 모형.


▲광화문광장의 캠핑촌. 추운 날씨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광장 바닥에는 박 대통령과 비선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을 풍자한 그림들도 많이 설치돼 있었다. 엄마와 함께 광장을 찾은 한 어린이는 그림을 보면서 “엄마, 이 아줌마는 왜 이리 사람들을 괴롭혀? 나쁜 사람이야?”라고 묻기도 했다. 엄마는 “나쁜 짓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해. 그래서 사람들이 열심히 촛불을 드는 거야”라고 설명했다. 참교육의 현장이었다.


해가 저물고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광장을 찾는 발걸음은 오래도록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노순택 작가에게 전화로 내일 일정을 물어보며 광장을 떠났다.


12월 6일: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과 국회 앞 청소하기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이 재벌 총수 청문회가 열린 12월 6일 국회 앞을 청소했다. 더러운 것을 깨끗하게 치운다는 의미에서 진행된 일정이었다.(사진=김금영 기자)

다음날, 기온이 하루사이 뚝 떨어졌다.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온몸이 떨리는 날, 그 이름도 긴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이하 청소봉사단)이 국회 정문 앞을 찾았다. 이 청소봉사단에는 노순택 작가도 포함됐다. 봉사단 이름의 연유를 묻자 그는 “박근혜가 어린 시절 이끌었던 ‘새마음구국봉사단’을 빗대 지었다. 이 봉사단은 함께하는 모두가 총재이자 단원”이라고 답했다.


청소봉사단은 나라 곳곳 더러운 곳을 자진해서 치운다는 의미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행위는 단순하다. 진짜 청소를 한다. 쓰레받기와 빗자루를 들고 건물 앞을 깨끗하게 청소한다. 그런데 청소를 할 때마다 난리다. 노순택 작가는 “청와대 앞에서 경찰이 막았다. 청소를 해준다고 해도 싫다고 한다. 더러운 것을 청소하는 게 정말 무서운가 보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국회의사당을 바라보는 노순택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청와대를 많이 찾던 청소봉사단은 국회를 찾았다. 28년 만에 재벌 총수 청문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국회 앞에서 청소봉사단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정몽구 현대차회장의 구속 소식을 알리는 ‘광장신문’을 무료로 배포했다. 광장신문은 예술행동위원회가 발간하는 매체로, 매주의 이슈 관련 소식과 국민들의 바람이 담긴 가상의 소식을 뉴스로 만들어 전한다.


오전 11시 반부터 국회 정문 앞 청소가 시작됐다. 재벌들의 부정부패를 싹 쓸어버리겠다는 취지 아래 평화롭게 청소가 이어졌다. 그런데 12시에 국회 정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청소봉사단이 들어와서는 안 된단다. 약 10여 명의 청소봉사단을 막기 위해 순식간에 약 30여 명의 경찰들이 방패를 들고 와 줄을 섰다. 10분 만에 청소봉사단은 모두 국회 정문 밖으로 내몰렸다. 활짝 열렸던 국회 정문은 바로 닫혔다.


▲(좌)청소를 하던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이 경찰의 제지에 의해 밖으로 끌려 나왔다. 노순택 작가는 이 현장을 사진으로 찍었다. (우)활짝 열렸던 국회 정문이 닫히고, 닫힌 문 앞에서 새마음애국퉤근혜자율청소봉사단은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사진=김금영 기자)

모든 것을 사진으로 담아 기억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노 작가는 이 모습들을 모두 사진기에 담았다. 영웅화 또는 이슈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노 작가는 그저 본 그대로의 모습을 찍는다. 11월 초 열렸던 블랙리스트 토론회 때 만난 노 작가는 약 한 달여 시간이 지나면서 입술이 많이 부르텄고, 머리는 산발이었으며, 가방은 찢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친 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내내 뛰어다니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고, 청소봉사단과의 일정 이후엔 점심 및 회의 일정으로 또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청소봉사단과 헤어진 뒤 저녁 때 다시 광장을 찾았다. 광장 토론회가 열렸다. 매주 주제를 바꿔 시민과 함께 의견 교류를 하는 자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번엔 이도흠 한양대 교수, 이광일 한신대 교수,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가 ‘진짜 퇴진을 위해 광장 정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을 펼쳤다. “촛불은 분노로만 모이지 않고, 비리를 처벌하고 새로운 사회를 열려는 공감의 힘으로 모였다”며 “단순히 박 대통령의 탄핵, 퇴진뿐 아니라 이후의 진정한 시민사회를 열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권리를 지금부터 더 이해하고 파악해야 한다”는 게 골자였다.


12월 7일: 음악회, 그리고 송경동 시인과의 만남


▲광화문광장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촛불을 든 시민들이 공연을 보기 위해 모였다.(사진=김금영 기자)

예술행동위원회의 행적을 따라가며 꼭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광장에서 ‘노숙택’으로 불리는 노순택 작가는 “광장에서의 캠핑을 송경동 시인이 제안해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러 증언에 따르면 송경동 시인은 이 캠핑촌의 시작 지점에 있었던 사람이다.


전날의 광장 토론회에 이어 이번엔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광장 캠핑촌에서 그를 만났다. 음악회에 앞서 사회를 보기 위해 무대에 오른 송 시인은 “헌법의 상위에는 민의(民意)가 있다. 부당함에 맞서는 우리의 움직임은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며 결의를 다졌다.


12월 8일: 기자회견에 울려 퍼진 “언니는 미용실을 좋아한다고 했어”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및 구속수사 촉구 문화예술인 기자회견'에서 양혜경 춤꾼이 공연을 펼쳤다.(사진=김금영 기자)

12월 5일에 이어 다시 국회 정문 앞을 찾았다. 이러다 정들겠다. 이번엔 예술행동위원회가 ‘박근혜 대통령 즉각 퇴진 및 구속수사 촉구 문화예술인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기환 문화다양성포럼 상임이사의 사회아래, 이해성 연출, 임정희 문화연대 공동대표, 이동연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신학철 작가, 전규찬 언론개혁시민연대 대표, 박장렬 연출, 정세훈 민예총수도권 이사장, 현린 노동당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이 참석해 발언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면서, 또한 최순실, 차은택 등의 이슈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기자회견문을 통해 “국회와 특검은 부패와 불법 행위를 반복하며 국가 문화정책을 유린한 박근혜, 조윤선(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박명진(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등의 문화예술 검열, 블랙리스트 작성 및 운영 등에 대해 즉각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손병휘 가수와 양혜경 춤꾼의 공연도 펼쳐졌다. 양혜경은 버선발로 춤사위를 펼치다 ‘탄핵 박근혜 퇴진’이 적힌 거대한 깃발을 휘둘러 눈길을 끌었다. 손병휘는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전’과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개사한 노래를 불렀다. 특히 “땅속의 최태민은 뭐라 그럴까” “언니는 미용실을 좋아한다고 했어, 언니는 비아그라를 좋아한다고 했어”라는 가사가 국회 앞에 널리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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