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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벤트 전시 - 머머링 프로젝트] 미션: 헬조선을 탈출하라!…죽여야 나가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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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13호 김연수⁄ 2016.12.09 16:09:30

▲'머머링프로젝트'의 멤버들이 보드게임 '헬로 역정'을 만들기 위해 베타 테스트를 하고 있다. (사진= 머머링프로젝트)


머머링 프로젝트: 열심히 취미로 예술하기

'머머링 프로젝트(murmuring project)'는 친한 예술가들이 모인 시각 예술 프로젝트 팀이다. 친분을 바탕으로 특별한 목적을 가지지 않고 만난 이들이 매년 한 번씩 장소를 바꿔가며 전시를 선보인다. 그 전시는 각자가 진행해 왔던 작업이나 관심에서 벗어나 있으며, 최대한 취미에 가까운 방법과 주제로 "의외로 열심히"(그들의 표현) 준비되고 공개된다. 

올해 모인 멤버 다섯 명(고영준, 민성진, 손경환, 이진규, 이화평)이 소위 ‘꽂힌’ 키워드는 ‘헬조선’이었다. 2012~2014년도 OECD 국가 통계에서 한국은 출산율 꼴찌, 자살률 1위, 아동 삶 만족도 꼴찌, 평균수면 시간 꼴찌, 노인 빈곤율 1위를 기록했으며, ‘삼포세대(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인 20~30대는 이런 나라를 ‘헬조선’ 즉, 지옥 같은 나라라고 표현하며 자조적인 희화화를 하고 있다. 

평균나이 35세 남성인 이 작가들 역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았기에 이 삼포세대에 해당한다. 이들은 작업의 소재를 ‘탈한국’으로 설정하고, 주인공 한 명을 정한 뒤, 어떻게 하면 이 주인공이 한국을 벗어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2013년 한국의 국적 포기자 숫자가 아시아권에서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전시장에 선보인 '헬로역정'의 완성본. (사진=머머링프로젝트)


밀항부터 주식투자까지

주인공을 한국 땅에서 사라지게 하기 위해 가장 먼저 알아본 방법은 밀항이었다. 한국은 분단국가이며 삼면이 바다이기에 밀항이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루트였다. 몇 가지 밀항 방법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결국 도착하는 곳은 중국이나 일본이었으며, 그곳에서 다른 나라로 나가기 위한 또 다른 음성적인 방법엔 어마어마한 돈이 든다. 하지만 그것보다 주인공의 목숨을 부지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 보였단다. 

그래서 머머링 프로젝트는 방향을 선회해 정상적인 방법인 이민에 대해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민 방법에는 ‘투자 이민’과 ‘취업 이민’이 있다. 투자 이민은 최소 몇 억을 해당 나라에 투자해 사업을 하는 조건으로 가는 것이다. 취업 이민이라고 해서 돈이 안 드는 것이 아니다. 이민 수속 과정을 진행하며 수백~수천만 원이 사용된다.

투자 이민은 포기하더라도 취업 이민에 사용되는 돈만이라도 당장 마련할 수는 없을까. 이들은 이민 자금 마련을 위한 방법으로 아르바이트, 중고 거래, 로또, 도박, 주식 투자 등을 생각했으며, 그 중에서도 주식 투자가 가장 많은 돈을 벌 수 있다고 판단했다. 

“머머링 게임즈의 보드게임 'HELL로역정'은 빠른 주식의 매수와 매도, 플레이어 간의 답합과 견제를 통해 빨리 헬조선을 탈출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게임상에서의 생존을 통해 헬조선 탈출을 체험해보세요.”

이들이 전시장에 선보인 작품은 주식투자 시뮬레이션 보드게임이다. 언뜻 보면 블루 마블을 떠올리게 하는 게임은, 이민을 가기 위해 제시된 이민 행선지 국가별 카드에 설정된 금액을 획득하는 것이 승리 조건이다. 수차례 게임을 반복하며 완성시킨 만큼 그 규정과 결과가 꽤 치밀하게 짜여있다. 일확천금을 벌 수 있는 복권과 테마주를 얻기 위해 주사위를 던질 때 짜릿한 손맛도 느낄 수 있다. 

이 게임의 하이라이트는 테마주로 제시된 카드의 면면들이다. 김무성, 이재명, 안철수, 반기문, 문재인 같은 대권 주자들부터 손석희, 유시민, 이준석처럼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유명인들의 면면이 작가의 정교한 솜씨로 그려져 있다. 또한 테마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찌라시(지라시)’ 카드엔 뭉쳐 쌓여있는 사람을 밟고 올라가 싸우는 개들, 돼지 위의 개, 개 위에 닭이 탑을 쌓은 모습, 개들을 통제하고 있는 여왕의 모습이 초현실적이면서도 어두운 색감으로 표현돼 있다. 게임을 하다가도 그림이 전달하는 의미에 한 번씩 멈춰 생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보드판 위를 돌아다니는 게임 말은 돼지 위에 올라 선 개의 형상이며, 게임판의 이름은 ‘오방판’이다. 

▲작가 이화평이 그린 테마주 카드. 왼쪽부터 손석희, 박원순, 이준석, 이재명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다. (이미지 제공=머머링 프로젝트)

▲작가 이화평이 그린 테마주 카드. 왼쪽부터 문재인, 반기문, 안철수, 유시만 등의 캐리커처가 그려져 있다.(사진 제공 = 머머링 프로젝트)


개-돼지와 개미들

머머링 프로젝트의 결과물에는 보드게임과 함께 이민에 대한 꿈을 부추기는 각 나라별 이민 홍보 광고와 이민 과정과 희망자들의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상 ‘청년 인터뷰’, 이 프로젝트를 홍보하기 위한 영상 등이 있다. 

전시장 입구에서 눈에 띈 것은 이 게임의 결말을 말해주는 듯한 불타버린 고무 동력 비행기다. 멤버 중 한 명인 이화평은 “이민할 수 있는 돈을 모으기 위해서는 두 명 이상의 플레이어가 죽어야 하며, 한 사람이 독점을 해야지만 가능하다”고 말한다. 결국 작전주와 테마주, 복권 같은 사행성으로 이뤄진 게임의 구성은 한국의 기형적인 경제구조와 그 구조를 지탱하고 있는 희생양들, 즉 좁은 세상 안에서 서로 싸우고 담합하는 개미 주주들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이민을 나간다 하더라도, 이민 노동자로서 겪어야 하는 이 나라에서와 다르지 않은 현실이 존재한다. 그걸 알면서도 다른 나라로의 탈출을 꿈꾸는 한국 청년들의 모습과 테마주에 기대 일확천금을 꿈꾸는 개미 주주들의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작가 고영준이 그린 '찌라시 카드' 이미지 중 하나. (이미지 제공= 머머링 프로젝트)


이들은 영상 ‘청년 인터뷰’에서 “‘모든것을 버리고 한국을 나가겠는가?’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잠시 망설임을 보였다”며, “이 망설임이 어쩌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나라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전한다. 

전시는 12월 30일까지 충무로 역사 안(개찰구 안쪽) 오!재미동 갤러리에서 열리며, 지나가다 들러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소개한 것처럼 사행적 요소가 강해 만 18세 이상만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게임설명서는 꽤 적나라하게 느껴지는 현실의 민낯에 대해 느낄 공포도 조심하라는 경고문을 포함하고 있다. 

▲고영준이 그린 '찌라시 카드' 이미지 중 하나. (이미지 제공= 머머링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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