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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 박근혜 풍자화 ‘더러운 잠’] 여성비하 vs 표현의 자유, 그리고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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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1호 김연수⁄ 2017.02.03 17:48:01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들에 의해 훼손된 작품 '더러운 잠' 앞에서 입장 발표를 하는 이구영 작가. (사진=연합뉴스)


탄핵 시국 및 조기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과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최서원)이라는 민간 여성의 변호인단과 특별 검찰, 그리고 여-야 당의 신경전이 한창인 가운데, 그림 한 점이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더러운 잠’이라는 제목의 박근혜 대통령을 대상으로 한 이 그림은 지난 1월 20~31일 국회의원 회관에서 열린 풍자만화전 ‘곧, Bye!'에서 등장한 이구영 작가의 작품이다. 벌거벗은 여인이 정면에 누워있고 그 여성의 얼굴은 박근혜 대통령이다. 그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여성의 얼굴은 최순실이다. 

최순실 얼굴을 한 시종의 모습은 헝겊위에 쌓인 꽃다발을 받쳐 들고 있는데, 그 꽃 주위를  장식한 것은 많은 의혹을 낳았던 주사기들이다. 그리고 배경에는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세월호가 보인다. 아직도 속 시원히 밝혀지지 않고 있는 세월호 침몰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관한 의혹을 풍자한 것이다. 전시가 한창 진행 중이던 1월 23~4일 경, 온라인에서 이 그림에 대한 의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24일 소식을 듣고 달려온 흥분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전시 중인 그림을 떼어내 부수는 등의 훼손을 하면서 논란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 그림에 대한 의견과 해석들은 이전에 찾기 힘들 정도로 많고 다양하지만, 그 무엇보다 작년부터 뜨겁게 달궈졌던 여성 혐오의 문제와 이번 국정 농단 사태의 핵심 쟁점이기도 한 블랙리스트 관련,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가 한 번에 겹쳐지며 뜨거운 논쟁거리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더불어 이번 전시가 국회의원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주최로 열렸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선보인 장소가 국회였다는 점 역시 논란거리들 중 하나였다. 

▲카페 '벙커1'에 전시된 캘리그라피 작품.(사진=김연수)


논란은 진행 중

국회의원회관에서의 전시는 차마 제대로 끝맺음을 못한 채 마무리됐고, 더불어 민주당은 표창원 의원을 당 내부 윤리심판원에 회부했다. 2월 2일 윤리 위원회는 표 의원에게 ‘당직자격정지 6개월’ 징계를 내렸고, 표 의원은 같은 날 페이스북을 통해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다’며, ‘징계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겠다’고 밝혔다. 이와 더불어, 표 의원과 논란의 작품의 당사자인 이구영 작가가 밝힌 것은 ‘여성이 아닌 권력자의 국정농단 범죄혐의에 대한 풍자’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을 여성성으로서 폄하할 의도는 없었다는 것이다.
 
한편, 전시는 충정로의 카페 벙커1에서 이어지고 있다. ‘더러운 잠’ 뿐만이 아닌, 다른 작품을 통해 전시의 성격을 보기 위해 방문한 카페에서 처음 목격한 것은 카페 앞을 둘러싼 폴리스 라인과 내부로 진입하기 위해 대치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의 모습이었다. 이들은 “이 그림을 전시한 이곳도 빨갱이 집단” “너희는 애비 애미도 없냐” “왜 우리가 낸 세금으로 빨갱이 집단을 보호하냐”는 등의 항의를 경찰에 하고 있었다. 어렵게 진입한 카페의 내부는 무대가 전면에 설치돼 있고 무대의 한쪽에 논란의 작품 ‘더러운 잠’이 캔버스 프레임이 부서진 채로 전시돼 있었다. 이 그림 외에도 박근혜 대통령을 주제로 한 한 컷 풍자 만화를 비롯, 시사 만화가들이 받았던 탄압에 관한 내용을 담은 만화, 그리고 ‘나는 난민이다’ ‘나는 흙수저다’ ‘나는 흑인이다’ ‘나는 외국인이다’ 등 사회적으로 소위 약자거나 소수자로 생각되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캘리그라피 등도 볼 수 있었다. 하나의 그림이 커다란 논란거리가 됐을 뿐이지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들의 전반적인 수위는 우리가 쉽게 접할 수 있는 정도였다.

하지만, 전시를 주최한 표 의원이 ‘본의 아니게 상처를 준 여성들’에게 사과를 하고, 징계를 수용한 상황에서도 논란은 쉽사리 사그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도 복잡다단한 생각들이 얽혀있는 이 그림 한 점이 현 시국과 맞물려 개인의 사회 안에서의 힘을 깨달은 시민들에게 사회 이슈에 대한 명확한 판단을 내리고자 하는 의지를 일깨울 계기를 마련해 준 것은 아닐까. 이와 함께, 찬-반으로 나뉘는 수 많은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그 중에서도 주목해 볼 만한 의견들을 정리해본다. 

▲(위에서부터) 이구영 작가의 '더러운 잠',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 (출처= 연합뉴스, 위키피디아)


‘더러운 잠’의 원작은 ‘올랭피아’?

논란의 그림에 대해 조금 더 살펴보자면, 이구영 작가는 대안 언론 방송인 ‘김어준의 파파이스’에 출연해, 패러디의 원작이 에두아르 마네의 ‘올랭피아’ 뿐만이 아니라,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를 포함한다고 밝혔다. 미술사적으로 가장 예전 세대인 조르조네의 ‘잠자는 비너스’는 배경에 자연의 모습을 배치함으로서 신화적이고 이상화된 여성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조르조네의 후배인 티치아노는 전면에 똑같은 포즈의 여성의 모습을 배치했지만, 잠자는 인물이 아닌 조금 더 관능적인 여성의 모습을 그려냈다. 인물의 시선은 눈을 뜨고 있긴 하지만, 정면을 바라보고 있진 않다. 이 작품들은 작품 자체로서는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는 한편, 여성성을 ‘소비되는 도구’로 바라보던 구시대적인 사고의 결과로서 해석되는 대표적인 작품들이기도 하다. 특히,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는 신혼부부의 방에 걸릴 장식으로 주문받은 것으로서, 여성의 신체를 장식으로서 바라본 사고라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그 이후인 19세기 등장한 마네의 '올랭피아'는 이상화 된 여성이 있어야 할 자리에 매춘부를 배치하며 관객들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소비되는 여성’을 내세움으로서, 상위 계급의 허위의식을 찌르는 작품이다. 티치아노의 작품에 등장하는 꽃과 마네의 작품에 등장하는 꽃의 의미 역시 다르다. ‘우르비노의 비너스’에 등장하는 여성이 들고 있는 꽃은 정절을 상징하고, ‘올랭피아’에서 하녀가 받치고 있는 꽃은 당시 성을 사러 온 남성들이 하나씩 가져왔던 것이라고 한다. 

쟁점 1. “여성 비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자들은 “여성인 대통령의 나체를 그려 성적으로 희화화 했다”며, “대통령의 이미지를 훼손했기에 국격도 훼손됐다”는 주장을 했다. 이 작품을 ‘여성 비하’ 혹은 ‘성폭력’으로 바라보는 여성단체들도 많은데, ‘여성해방전선’의 경우, “대통령을 대통령이라는 이유로 공격하는 것은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공격이자 시민으로서의 저항이지만 대통령을 여성이라는 이유로 공격하는 것은 모든 여성에 대한 공격이자 남성으로서의 성폭력 행사”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들의 주장에 대한 조금 더 구체적인 이유는, 그림의 해석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앞서 밝혔듯이 ‘우르보노의 비너스’와 ‘잠자는 비너스’에 등장한 여성의 모습은 과거 남성의 권위가 앞선 시대의 관점에서 그려진 여성이고, 마네의 ‘올랭피아’는 그런 권위에 반하는 여성의 상징이다. 하지만, ‘더러운 잠’에서 시중드는 하녀의 모습은 올랭피아에서 차용한 것이지만, 정작 대통령의 모습은 남성중심적인 시각의 결과인 ‘우르비노의 비너스’와 ‘잠자는 비너스’에서 차용했다는 것이다. 한편, 이구영 작가는 오히려 매춘부로 알려진 ‘올랭피아’의 여체를 사용할 경우, 여성 대통령을 폄하하는 의도로 논란이 될 것을 우려했다고 밝힌 바 있다. 

최범 미술 평론가 역시,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더러운 잠’이 여혐에 가깝다는 의견을 보였다. 그는 “누드화라는 것이 원래 예술을 빙자해 남성이 여성의 신체를 은밀하게 또는 노골적으로 감상하기 위한 장치다 … 하지만, 서양 미술에서 여성의 신체를 공개적으로 볼 수 있도록 허용된 하나의 (문화적)형식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며, 누드화의 문법과 그 안에 내재돼 있는 남성적 시선의 권력을 폭로, 비판하는 케네스 클라크의 ‘누드의 미술사(The Nude)’와 존 버거의 ‘보는 방법들(Ways of Seeing)’을 대표적인 참고 자료로 제시했다. 그는 ‘더러운 잠’이 "이러한 누드화의 전통을 제대로 계승한 것도 비판적으로 재해석한 것도 아닌, 그저 얼치기 합성으로 치달으면서, 한갓 외설의 나락으로 추락해버렸다”고 평가했다. 

▲신군부 시대 당사의 만화가 활동을 그린 정용연 작가의 '심의필' 중 일부. (사진=김연수)


쟁점 2. “표현의 자유”

이번 사건에서의 ‘표현의 자유’에 관한 문제는 논란의 작품이 선보인 전시의 성격 자체가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탄압’을 전제로 한 데다가 ‘여성 혐오’의 문제, ‘장소성’ ‘작품훼손’의 이슈까지 맞물려 한층 더 복잡하게 느껴진다. 김용익 작가는 페이스북을 통해 여러 의견을 모으며,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약 세 번의 과정을 거친 그가 피력하는 의견의 기저에는 ‘과연 ‘표현의 자유’가 언제 어느 조건에서나 허용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깔려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는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옹호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여성 혐오- 젠더 억압구조’를 들어 표현의 자유를 공박하는 것도 언제 어디서나 옹호될 수 없다. 두 경우에서 공히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그것을 주장하느냐이다”라며, “지금 현.재. 한.국.에서는 ‘표현의 자유’보다는 ‘젠더 억압구조’에 대한 비판이 더 주장되어야할 당위성이 있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 ‘이.제.는’ 젠더억압구조가 공론화되고 비판 받아야할 때인 것이다. 왜 그렇게 주장하느냐고 묻는다면 더 나은 세상으로 한 단계 올라서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는 ‘표현의 자유’라는 논제가 당연히 용인되는 상태에서 더 나아가 다른 공론이 이뤄져야 하는 시기로서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이 비춰진다. 

이번 논란과 관련한 현재 한국의 시각에 대해 페이스북 사용자인 황성필 씨는 “보수와 진보 모두 '선진국'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힐러리 클린턴 미 대선후보에게 비키니를 입히고 '창녀'에 비유한 패러디가 쏟아져 나와도 큰 논란이 없었다는 미국을 '자유로운 국가'라며 찬양한다”며 “예술을 예술로, 풍자를 풍자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한국은 아직 멀었다고 탄식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그는 ‘미국 뉴욕 힐러리 클린턴 나체 동상 사건’ ‘호주 멜버른 힐러리 클린턴 트리키니(trikini) 벽화 사건’ 등을 인용하며, “‘큰 논란이 없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힐러리 클린턴 동상은 시민들에 의해 내동댕이쳐지기도 했고, 호주의 벽화는 시의회에 의해 철거요구를 받았다. 당시 시의회장은 그 이유에 대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무례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반라의 여성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격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성평등 지향과 맞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성필 씨는 “문제적 작품에 대해 논란이 없다는 것은 오히려 훨씬 전체주의적이고 반민주적인 사회를 뜻한다”고 이야기 한다.

조금 더 좁은 장소성의 의미에서 국회 안에서의 전시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이구영 작가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거기(국회)에 어떤 작품은 되고 어떤 작품은 안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어떤 장소에 대한 성역화가 아닌가 싶다”라는 의견을 말했다. 미술 평론가 홍경한 역시 블로그 글을 통해 “소위 ‘민의의 전당’에서 ‘민의’를 말하는 것이 무엇이 이상한지 의아하다”며, “혹자는 ‘국회의 권위’라며 장소성을 문제 삼기도 하던데 권위란 대체 누구로부터의 권위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밝힌다. 

한편, 원로 시사만화가 박제동 화백은 예술 영역의 ‘풍자화’ 혹은 ‘시사만화’에 대한 역할을 짚어주기도 했다. 그는 “풍자화는 기본적으로 권력 견제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며,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노예로 느껴질 수도 있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자존감을 유지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라고 전한다. 박 화백은  시사만화가(예술가)는 정부 정책과 논조에 이용당하거나 억압받았던 사실들을 밝히며, 다소 직접적인 풍자의 방식에 대해 조금 더 너그럽고 여유 있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의 필요성을 말하기도 했다. 

▲뉴욕에서 힐러린 클린턴의 지지자들에 의해 훼손된 풍자 동상. (사진=유튜브 캡쳐)


쟁점 3. 작품으로서의 ‘더러운 잠’

미술 전문가들의 의견 중에는 작품으로서의 수준 평가로 이어지는 시각들도 눈에 띈다. 물론 표현 방식에 있어서는 취향 차이로 해석되는 것이 현대 미술의 다양한 흐름에도 걸맞은 것일 것이다. 또한 풍자화의 직접적인 표현들이 시민들에게 위안이 돼왔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바는 앞서 여성혐오 논란이 부각된 측면과 맥을 같이 한다. 홍경한 미술 평론가는 “내용에 있어 재치와 해학이 깃든 풍자화라 보기엔 수준이 떨어지고 현실을 반영한 리얼리즘으로 해석하기에도 다소 표피적”이라며, “한마디로 비평적 관점에서는 그리 좋은 작품이 아닌 ‘핀트’가 어긋난 작품에 가깝다. 차별적 시선으로 차별에 반대하는 블랙리스트를 말한다는 게 어불성설인 탓이다”라고 전한다. 

최범 평론가는 “‘더러운 잠’은 외설적인 여성 혐오 표현물이 맞다”고 하면서도, “그런데 예술이 외설적이고 여성혐오하면 안되나? 적어도 예술의 탈을 쓴 이상 그것은 허용되어야 한다. 정작 이 작품의 문제는 패러디의 실패로 인한 미적 수준의 저급함에 있다. 외적으로는 예술이지만 내적으로는 예술이 되지 못했다. 그러므로 사회적, 법적(외적)으로는 보호 받아야 하지만 비평적(내적)으로는 보호 받을 수 없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사회 시스템 속에서의 ‘표현의 자유’는?

자세히 파고들수록 세세하게 입장이 나눠지는 이번 문제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공통된 입장이 있다면, ‘표현의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는 것이며, 박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작품을 훼손한 행동은 명백히 폭력적 행위라는 것이다. 이번 사건이 작품 자체가 가진 핵심 쟁점에 앞서 정치 세력들에 이용당한 측면이 있다는 점 역시 많은 사람들이 꼬집고 있다. 

이번 사건은 “자유의 권리를 주장하기 위해선 그만큼의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상식적인 사실을 되새기게 한다. 재작년 1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대한 테러사건이 있었다. 경찰 2명과 직원 10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다. 이 사건 역시 수위 높은 만평에 대한 보복 테러였다. 이 주간지는 테러 이후로도 수위를 낮추지 않고 각종 영역을 비판해오고 있다.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심정으로 작업한다”는 양한모 만평가의 말 역시 되새겨진다. 자유로운 표현을 보장받아야 되는 예술가 역시 사회적인 책임과 의무에서는 자유롭지 않으며, 자유의 권리가 확보되는 만큼 예술가 스스로가 자기 검열이 아닌, 사회를 읽어내는 역할 위에서의 세세한 숙고 역시 필요해 보인다.  

한편, 사단법인 민족미술인협회(민미협)는 3일 더불어민주당 윤리심판원이 표창원 의원에게  '당직자격정지 6개월'의 징계를 결정한 것을 철회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민미협은 성명서를 통해 이번 징계는 “헌법에 보장된 '사상과 예술표현의 자유'를 보호해야 할 정당이 본질을 망각하고, 당리당략에 야합한 결정”이라며, “'논쟁과 토론'을 통해 규명해야 할 '예술 표현'의 문제를 '징계'로 결정한 더불어민주당과 '블랙리스트'에서 자유롭지 못한 새누리당의 표창원 의원에 대한 '사퇴 요구' 결정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더불어 ‘공공을 위한 전시 및 공연'의 보장 및 전시 작품을 폭력적으로 손괴하는 사태를 막지 못한 것에 대한 사과와 책임을 요구했다.

▲'곧,바이!'전에 선보인 최정민 작가의 작품. (출처= 최정민 작가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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