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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관피아에서 전문가로’ 대기업 사외이사 변천사

기업들은 왜 ‘유명대학 교수’를 원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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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29호 손강훈 기자⁄ 2017.04.03 10:22:01

▲대기업이 올해는 교수 출신 사외이사를 대거 영입했다. ‘정경유착’ 논란을 피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사진은 3월 17일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손강훈 기자) 대기업들이 올해 정기주총에서 교수 출신 사외이사를 대거 선임해 눈길을 끌고 있다. 과거 권력기관 출신의 ‘힘 있는 사외이사’를 앞 다퉈 영입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풍경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기업 풍토까지 바꿔놓은 걸까.

재계의 2017년 정기 주주총회가 대부분 끝난 가운데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들의 사외이사 절반 정도가 교수 출신으로 채워졌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10대 그룹 소속 상장사들의 신임·재선임 사외이사는 총 126명인데, 이중 57명이 교수 출신이다. 전체의 45.2%에 달한다. 

과거 기업들이 영입에 가장 공을 들였던 사외이사는 권력기관 출신이었다. 기획재정부, 국세청,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금감원, 판·검사 출신이 몸값이 높았다. 하지만 올해 권력기관 출신 사외이사는 33명으로 26.2%에 그쳤다. 지난해와 비교하면 교수 출신은 11.4%포인트 올랐고 권력기관 출신은 4.6%포인트 하락했다.

실제로 삼성그룹, LG그룹, 롯데그룹, 포스코, 현대중공업 그룹은 전체 사외이사의 절반 이상을 교수 출신으로 채웠다. LG, 롯데, 포스코는 60%를 넘었고 현대중공업은 사외이사 전원이 교수로 구성됐다. 

특히 지난해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언급돼 곤욕을 치른 포스코는 관피아(관료+마피아)가 존재하지 않았다. 관피아는 공공·권력기관 출신이 퇴직 후 대기업에 취업해 현직 공무원들과 유대 관계를 맺는 행위를 이른다. 전관예우(前官禮遇)라는 명분 하에 서로 봐주기가 이뤄지다보니, 대기업들은 관피아를 일종의 ‘보험용’으로 선호해왔다. 

관료 출신 사외이사들의 풍부한 경험과 인맥은 기업에 유리한 정책입안에 영향을 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패막이 역할도 했다. 

실례로 정부가 불법 보조금과 요금제에 따른 차별을 규제하기 위해 2014년 10월 ‘이동통신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단통법)’를 시행한 것을 두고 이동통신 3사(KT·SK텔레콤·LG유플러스)가 힘을 쓴 것 아니냐는 얘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 법 시행 당시 통신 3사의 사외이사 상당수가 통신분야를 총괄하는 방통위 등 정책기관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의혹이 일었다. 

결국 단통법이 시행되면서 보조금이 크게 줄어 소비자들은 비싸게 휴대전화를 구입하게 됐고, 반대로 이통 3사의 수익은 크게 늘었다. 

거수기 역할 여전할 듯

이랬던 과거 상황이 올해 크게 달라진 이유는 온 나라를 뒤흔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정부 출신 낙하산 인사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이 커졌기 때문이다. 관료 출신 사외이사 선임을 ‘정경유착’으로 볼만큼 현재 여론이 좋지 않다.

▲삼성,LG, 롯데, 포스코, 현대중공업그룹이 교수 출신 사외이사를 적극 영입하며 사외이사진 구성 변화를 이끌었다. 표 = 재벌닷컴

그러다보니 사외이사의 상당수가 전문가(교수 출신)로 대체되고 있는 것이다. 경영전반에 대한 폭넓은 조언을 들을 수 있는데다 정경유착 비판을 피하면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이 좋은 카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전부 긍정적으로만 평가되는 건 아니다. 

정부 낙하산 인사에 대한 비난이 일면서 급히 교수 출신으로 바꾸다 보니 업종이나 경영과 관련된 전문성보다 ‘학교간판’을 중심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선임된 교수 출신 사외이사의 출신학교를 보면 57명 중 19명이 서울대 교수였고 8명이 연세대, 5명이 고려대였다. SKY 출신 교수가 절반(56.1%)을 넘어섰다. 여기에 성균관대 4명, 한양대 4명, 한국외대 2명, 경희대 2명까지 합하면 서울에 있는 소위 명문대 출신 교수가 44명, 전체의 80%에 육박한다.

우리나라 사회는 학연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특히 기득권층으로 갈수록 출신 학교의 벽은 더욱 견고해진다. 기업 입장에서는 명문대 출신 교수 사외이사 선임으로 충분히 ‘보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교수 입장에서도 사외이사가 겸직·연임이 되는 특성상 적극적인 활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적당히 기업 입장을 맞춰주면 상당기간 동안 고정적인 수입을 낼 수 있는 부업의 개념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사실 사외이사는 IMF사태를 겪은 후 기업 총수의 독단적 경영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반영,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대주주·경영진과 무관한 사람들은 선임해 기업경영의 독단과 부패를 방지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즉 ‘기업의 감시’가 주된 임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대기업 사외이사들의 원안 반대 비율은 0.4%에 그쳤다. 거수기 역할만 했다는 뜻이다.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사외이사 선임과 관련 출신 직업의 변화보단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선임방법과 자격요건 등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수정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은 “현행 법령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제고할 만큼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의문이 제기된다”며 “제도를 보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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