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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부부가 왜 함께 자?”…‘각방문화’가 침대시장 재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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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0호 윤지원⁄ 2017.04.10 10:52:27

▲한샘은 소비자의 다양한 니즈와 생활 패턴에 따라 맞춤형 침대를 제안하는 '침대맞춤법'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스테디2' 패밀리 침대는 부부와 아이가 함께 잘 수 있도록 퀸사이즈 침대와 싱글 침대를 이어 붙여 쓸 수 있는 제품이며, 아이가 성장하면 싱글 침대만 분리해 독립된 침실을 꾸며 줄 수도 있다. (사진 = 한샘)


요즘 우리나라의 경제 사정에서 저녁이 있는 삶은 사치다. 사람들은 맞벌이, 투잡에 이어 잠자는 시간까지 아껴가며 일을 한다. 그렇게 살면 주머니 사정은 조금 나아질지 몰라도 몸이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짧게 자도 충분히 재충전이 되길 바란다. 이런 경제 사정과 ‘질 좋은 수면’에 대한 니즈는 습관을 바꾸고, 가정의 풍경을 바꿨다. 그에따라 침대에 대한 인식이 바뀌고 시장 지형까지 바꾸고 있다. 


침대시장 급변:
에이스·시몬스의 ‘형제천하’는 옛말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5%에 해당하는 740만 가구에 이르고, 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다. 가구 시장에서는 프리미엄 가구보다 소형가구, 맞춤형 가구 등의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 가구 유통에서도 온라인 거래나 원스탑 쇼핑이 가능한 대형매장이 늘어나는 등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케아의 국내 상륙도 국내 가구 업계의 변화를 이끌었다.

침대에 국한해 살펴봐도 시장 변화는 뚜렷하다. 국내 침대 시장은 1조 2천억~1조 5천억 원 수준이며, 형제 기업인 에이스침대와 시몬스가 점유율 4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1인 가구, 맞벌이 부부, 졸혼(卒婚) 부부들이 점점 늘어나고, 부부들 간에도 동침이 아닌 각방을 선호하는 트렌드가 자리 잡으면서 침대 시장은 물론 침대문화 자체를 바꾸고 있다.

여기에 2011년 한샘을 필두로 현대리바트, 까사미아 등 브랜드 가구사들이 OEM 방식으로 매트리스를 제작 판매하던 것에 그치지 않고 자체 브랜드를 선보이며 침대시장에 진출했고, 코웨이, 청호나이스, 쿠쿠전자 등 렌탈 업체의 성장도 눈에 띈다. 또한, 환자용 침대로만 여겨지던 모션베드가 일반 가정용 제품으로 변신해 300억 원대 시장을 형성하고, 모듈형 침대가 등장하는 등 침대 산업 전체가 역동적인 변화를 맞고 있다.

에이스침대와 시몬스는 최근 연매출이 꾸준히 증가했지만 시장 전체가 커지는 데 비해 성장률이 더뎌 변화의 필요성이 절실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전략은 일단 프리미엄 전략을 더욱 거세게 밀어붙이는 것이다. 두 회사는 나란히 1천만 원대의 초고가 제품을 내놓고 후발주자 기죽이기에 나섰다.

하지만 밖에서 보는 전망은 다르다. 업계 관계자는 “업체 간 기술력 격차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차별화 된 서비스까지 제공하는 후발업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중”이라며 “침대 교체 주기가 짧아지는 추세가 뚜렷한 요즘 같은 때 프리미엄 수요는 감소하기 마련”이라며 두 회사의 선택에 우려를 표시했다.

▲코웨이의 매트리스 케어 서비스 - 침대 렌탈 사업자들은 가구를 대여할 뿐 아니라 일정 기간마다 매트리스 살균, 진드기 방지 등 위생 관리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사진 = 코웨이)


① 1인 가구와 렌탈 침대
이사 자주 하는데 침대는 거추장스러워

늘어나는 1인 가구와 2인 가구는 아직 내 집 마련을 이루지 못했거나, 집을 샀더라도 그 규모가 좁은 경우가 많다. 침대는 집안의 여러 가구들 중에도 가장 부피가 큰 편에 속하며, 매트리스 가격만 1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고가 제품이다. 수입이 아직 넉넉지 않고 작은 집에 사는 젊은 1인 가구나 맞벌이 부부에게 침대 구입은 큰 부담이다.

서울에서 혼자 사는 한 40대 독신 직장인은 “전세와 월세를 살면서 2~4년마다 이사를 다녀야 했는데, 침대를 가지고 다니면 불편하다”며 “원룸이나 오피스텔의 풀 옵션에는 대부분 침대가 기본으로 딸려 있어 침대를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밝혔다.

그는 또 “침대가 없는 집에서 살 때는 그 기간 동안만 렌탈 업체에서 대여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며 “아토피로 고생하는 편이라 침구 위생이 중요한데, 방문 클리닝 서비스를 주기적으로 해 주기 때문에 진드기나 곰팡이 같은 위생 걱정에서 자유롭다”고 말했다.

렌탈 전문 업체인 코웨이는 매트리스 렌탈과 관리를 주축으로 하는 홈케어 사업에서 2016년 1700억 원의 매출을 돌파하며 전년 대비 44.3%나 증가했다. 침대업계 부동의 1위 에이스침대의 작년 매출이 2029억 원이니 바로 턱밑까지 추격한 셈이다.

코웨이가 침대 렌탈 사업에 진출한 것은 2011년이다. 2013년까지만 해도 코웨이의 침대 렌탈 사업은 매출 4o0억 원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높은 성장률을 꾸준히 기록하며 전통적인 침대 시장을 흔들어놓고 있다.

▲에이스침대의 새 프리미엄 브랜드 '헤리츠'. (사진 = 에이스침대)


② 수면장애 환자 늘어나니
숙면에 대한 니즈가 프리미엄 침대 수요로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0년 46만여 명이던 우리나라 수면장애 환자 수는 2013년 60만 명을 넘어 섰고, 2015년엔 72만여 명에 달했다. 또한, 2015년 불면증 진료 환자는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불면증 외에도 밤에 6시간을 자고 나서도 낮에 졸린 과다 수면증, 잠들 무렵 다리에 느껴지는 불편감으로 인해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하지불안 증후군, 코골이 같은 수면무호흡증 등 수면장애의 종류도 80여 종으로 다양하다.

가뜩이나 먹고 살기 힘들어 잘 시간도 부족한데, 그나마도 수면장애 때문에 삶의 질이 엉망이 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 프로포폴 남용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배경도 이와 무관하지 않으니, 숙면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침대를 고르는 기준을 까다롭게 바꾸는 것도 당연하다.

숙면에 대한 니즈의 증가는 ‘가치 소비’ 열풍과도 궤를 같이 한다.

또한 합리적인 소비를 선호한다고 무조건 값싼 침대를 찾지는 않는 다. 내수 침체로 소비자 눈높이는 양극화되었고, 값싼 렌탈 침대 시장이 커지는 것과 동시에 고가의 프리미엄 매트리스 침대와 모션베드처럼 가격대가 높은 침대 수요도 늘어났다.

▲에이스침대의 새 프리미엄 브랜드 '헤리츠'. (사진 = 에이스침대)


프리미엄 침대 시장의 규모는 전체 침대 시장의 10%인 약 1000억 원에 달한다. 과거에는 해외 명품 수입업체들이 프리미엄 침대 시장을 주도했지만, 지금은 국내 업체들이 자체 생산하고 있다.

국내 침대업계 부동의 1위인 에이스침대는 ‘침대는 과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92년 국내업계 최초로 침대공학 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꾸준히 수면의 질을 강조해 왔다. 최근 활발하게 변하고 있는 침대 시장에서 에이스침대가 취한 전략은 프리미엄 이미지를 강화하는 것이다.

에이스침대가 지난해 새로 내놓은 ‘에이스 헤리츠’는 1100만 원에서 최대 2400만 원의 가격대를 형성하는 고가 제품이다. 에이스침대는 이 제품이 천연 양모와 말털 등 천연 소재와 함께 3차원 특수소재 등 자체개발 기술을 적용해 수면의 질과 내구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숙면의 필수 요건인 탄력, 안락함, 위생을 모두 갖춰 편안한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다.

▲한샘의 분리형 모션베드 '헤더'. (사진 = 한샘)


③ 부부 각방쓰기, 금기 아닌 트렌드
트윈 베드, 라지 킹 사이즈 등 시장 세분화

2017년 1월, ‘각방예찬’이라는 책이 국내에 출간되었다(장클로드 카우프만 지음 / 이정은 옮김 / 행성B잎새 / 2017. 1. 20). 프랑스 소르본느 대학교의 사회학 교수가 쓴 이 책은 프랑스 커플 150쌍을 인터뷰해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은 한 침대 쓰기가 아니라 부부의 의지” 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책은 출간 20여일 만에 2쇄 찍기에 돌입하는 등 인기를 얻었다.

서점가에는 ‘낡은 결혼을 졸업할 시간, 졸혼시대’라는 책도 나와있다(스기야마 유미코 지음 / 장은주 옮김 / 길벗 / 2017. 2. 14). 또한, 최근 한 공중파의 리얼리티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유명한 원로 남자 배우가 아내와 ‘졸혼’했음을 고백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졸혼이란 학교를 졸업하듯 결혼 생활을 마치고 떠난다는 뜻의 단어로, 굳이 이혼하지 않고 사이가 나빠지지 않았어도 함께 사는 것을 청산하고 각자 사는 삶을 존중하기로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한동안 해마다 황혼이혼이 증가한다는 통계가 꾸준히 나왔는데, 이미 졸혼의 형태로 살아가는 부부들도 많았을 것을 감안하면 ‘백년해로’가 더 이상 부부의 필수 덕목이 아닌 시대가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15년 전국수면재단 연구에 따르면 한 방에서 잠을 자긴 하지만 침대를 따로 쓰는 부부가 전체의 25%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아예 침실을 따로 쓰는 부부도 10%인 것으로 조사됐다. 한 여성 포털에서는 성인남녀 46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현재 각방을 쓰고있다’고 응답한 사람이 52%로 집계되기도 했다. 잠자리를 분리하는 이유는 부부 사이의 갈등보다 육아나 잠버릇, 생활 패턴 등 다른 이유가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졸혼이건 각방이건 이제는 잘 때 한 이불을 덮지 않는 부부가 상당히 많음을 알 수 있다.

▲소르본 대학의 사회학 교수 장클로드 카우프만의 저서 '각방예찬'의 표지. (사진 = 인스타그램)


부부생활의 잠자리 변화는 침대 시장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우선 한 침대를 쓰던 중년 부부들이 침실을 새로 꾸미면서 퀸 사이즈 침대를 없애고 싱글 침대 두 대를 놓아 트윈 룸으로 만드는 사례가 늘었다. 한샘은 트윈 룸 트렌드에 맞춰 1인용 침대 ‘체드’를 출시했다. 한샘 측은 “지난 2월 침대 매출을 분석한 결과 중년층 구매 고객 10명 중 6명이 침대 2개를 세트로 구입해 트윈 룸을 꾸민 것으로 나타났다”며 “앞으로 한샘 플래그샵은 물론 대리점 등으로 트윈 룸 전시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반대로 큰 사이즈의 2인용 침대 판매량도 늘었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부부간에 사적인 영역을 지킬 수 있는 가구가 시장 트렌드”라며 몇 년 전까지 2인용 침대의 표준은 퀸 사이즈(폭 150cm)가 주류였는데, 최근 2인용 침대의 표준은 이보다 큰 킹 사이즈(160cm), 라지 킹 사이즈(170~180cm) 등으로 커졌다고 밝혔다.

▲이탈리아 매트리스 매출 1위인 '돌레란'의 모션 베드. (사진 = 돌레란)


④ 각자 맞춤형으로 잠들기
분리형 모션베드 급부상

또한, 침대 업체들은 2016년 하반기부터 ‘분리형 모션베드’를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시작했다. 분리형 모션베드는 2인용 침대 프레임 안에 두 개로 분리된 모션베드와 매트리스가 들어있는 침대다. 모션베드는 전동 침대라고도 부르며, 매트리스의 등받이나 다리, 머리 부분 등의 각도를 따로따로 조절할 수 있다.

모션 싱글침대 가격이 300만~500만 원에 이르는 등 가격이 일반 침대보다 2~3배 비싸 의료용으로나 쓰이는 것으로 여겨졌지만, 수면 장애 해소 등 숙면에 도움 될 뿐 아니라 척추 건강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일반 소비자들 사이에서도 활발히 판매되기 시작했다.

모션베드는 유럽과 북미 등에서는 상당히 대중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덴마크의 경우엔 모션베드 사용률이 5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국제수면협회(The International Sleep Products Association)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에서 모션베드는 1990년대부터 판매되기 시작했으며, 2014년에도 판매량이 전년 대비 36%로 늘어나는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특히 가정용 가구 시장 전체의 연성장률이 2%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모션베드 시장의 성장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미국의 모션베드는 주로 노년층에서 구매했지만 최근 경제력이 있는 30~50대로 주요 타깃 층이 이동했다. 우리나라도 40~50대 고객이 가장 많지만, 30대 전문직 층의 구매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난해 국내 모션베드 시장 규모는 약 300억 원 정도였으나 리클라이닝 소파 시장이 1000억 원대까지 성장한 것처럼 올해는 훨씬 큰 폭으로 성장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분리형 모션베드는 수면 패턴이 다른 부부들을 위해 등장한 것으로, 코골이가 심한 남편은 머리 쪽을 올려 잘 수 있고, 다리가 잘 붓는 아내는 다리 부분을 올려 잘 수 있다. 남편이 누워서 자는 동안 책을 읽고 싶은 아내가 등받이를 높여 소파처럼 편한 자세를 취할 수도 있다.

가구업계 관계자는 분리형 모션베드 판매량이 최근 두 달간 전보다 2배 이상 늘었다고 밝혔다. 그는 “전에는 중년부부가 타깃이었지만 요즘은 신혼부부도 많이 찾는다”고 말했다.

▲일룸의 트윈 모션 베드, '아르지안'. (사진 = 일룸)


모션베드 춘추전국시대

2013년 국내에 론칭한 모션베드 전문 업체 ‘에르고슬립’은 미국의 에르고모션 사와 제휴를 맺고 최상위 모델인 S600 시리즈를 독점 도입하면서 국내 모션침대 시장을 본격화했다. 에르고슬립의 모션베드 세트는 1천만 원에 육박하는 고가 제품이지만 판매 호조를 보이고 있다. 에르고슬립은 2015년 매출이 전년 대비 69% 증가했고, 2016년 3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30%나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예비 신혼부부들의 구매 비중이 올해 1~2월 14.5%를 나타내, 전년 동기 7.9%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으며 판매량도 3배 이상 증가했다고 밝혔다.

퍼시스의 가정용가구 브랜드인 ‘일룸’은 지난해 트윈 모션침대 ‘아르지안’을 출시했다. 일룸의 트윈 모션침대는 최근 드라마 ‘도깨비’에서 PPL로 노출되어 일명 ‘공유 침대’로 알려지며 세간의 화제가 되고, 하루 평균 60~70대씩 출고되고 있다.

6년 전, 스프링매트 위주의 국내 시장에 메모리폼 매트리스를 내세우며 성공적으로 정착한 템퍼코리아도 2016년에 모션베드를 출시했고, 전체 가구매출 1위 업체인 한샘도 지난해 9월 헤드틸팅 기능까지 적용된 ‘헤더’를 출시하며 모션베드 시장에 첫 발을 내딛었다.

이탈리아의 매트리스 점유율 1위 브랜드인 ‘돌레란’은 2017년 신제품 모션베드 ‘퓨튜라 플러스 (Futura plus) 모션 프레임’을 내놓았고, 까사미아도 1인가구를 위한 슈퍼싱글(SS) 사이즈의 모션베드인 ‘플렉시베드’를 출시했다.

특히 135년 전통의 세계 1위 브랜드 ‘씰리’가 지난 1월 국내 모션베드 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것이 주목된다. 씰리는 독특하게도 기존의 모션베드들이 100% 폼 매트리스를 적용하고 있는데 비해 처음으로 스프링 매트리스를 접목한 모션베드로 차별화 한다는 전략을 밝혔다


 혼자 자야 오래 산다고?


▲'각방 예찬'의 저자 장클로드 카우프만 교수. (사진 = 위키피디아)

“갈등은 인간이 곁에서 신경을 써줄 누군가를 간절히 필요로 하지만, 또 한편에선 자율적인 인간으로서 자기의 존재가 사라지지 않기를 바라는 모순된 감정에서 빚어지는데, 침대라는 공간은 서로 가까워지고 싶은 애정 욕구와 개인적인 안락에 대한 열망이 부딪히는, ‘혼자’와 ‘함께’가 투쟁하는 전쟁터다.”
-장 클로드 카우프만 ‘각방 예찬’ 중 -

이 책을 쓴 카우프만 교수는 “더 잘 사랑하려면 떨어져서 자야 한다. 같이 자는 한 침대는 사랑을 죽일 수 있다”고 쓰고 있다. 침대가 살인 무기가 된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코를 골거나 이를 가는 등의 잠버릇은 배우자의 숙면을 방해한다.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고, 갈등을 야기하며, 건강을 망가뜨려 수명을 단축시킬 것이라는 얘기다. 카우프만 교수는 “그러므로 각방을 쓰는 것은 갈등을 해소하고 정신-육체 건강을 다 챙기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부부는 싸울지언정 잘 땐 한 이불을 덮고 자야 한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관습적인 불문율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실제로 조사해보니 잠자리를 따로 하는 부부가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국립수면재단(NFS: National Sleep Foundation)의 2015년 조사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방은 한 방을 쓰지만 침대를 따로 쓰는 부부가 전체의 25%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아예 침실을 따로 쓰는 각방 부부도 10%인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이들이 개별 침대나 각방을 쓰는 주된 이유는 갈등 때문이 아니다. 이 조사에서는 잠자리를 따로 쓰는 이유의 90%가 ‘숙면을 위해서’라고 대답했다. 가장 주된 이유로 꼽힌 것은 육아였는데, 이것 역시 밤에 깨어나서 우는 아이 때문에 다음날 출근하는 배우자의 숙면에 지장을 주지 않으려는 선택이니 궁극적으로 같은 이유로 해석된다.

각방 쓰기와 결혼 햇수의 연관성도 흥미롭다. 결혼한 지 1~9년 차인 젊은 부부나 결혼 생활 30년이 넘은 오래된 부부는 각방보다 한 방을 쓰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사회 활동이 왕성한 시기에는 각방을 쓰고, 은퇴 이후에는 다시 합방하는 예가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동침과 각방 쓰기의 문제를 부부의 성생활과 연관 지으면 갈등의 지표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NSF의 같은 조사에 따르면, 각방 쓰기를 한 뒤로 부부의 성생활 만족도가 더 높아졌다고 대답한 커플이 26%나 된다. NSF는 숙면이 활력을 되찾아 주므로 성생활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분석했다.

갈등 때문이 아니라도 잠자리를 따로 하는 부부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팔다리를 대(大)자로 뻗고 자는 남편 때문에 결혼 생활 5년 동안 침대 구석에서 칼잠을 자야 했던 한 30대 주부는 퀸사이즈 침대를 없애고 트윈 침대로 바꾼 뒤 해방감을 만끽했다고 고백했다. 이와는 반대로 남편이 잘 때 예민한 탓에 두 사람 모두 매일 밤잠을 설쳐야 했던 결혼 7년차 부부도 싱글침대 두 개를 붙여 쓰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했다고 밝혔다.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이 일상인 직장인 아내와 밤샘 촬영이 일상인 방송국 카메라맨 남편은 신혼 때부터 각방을 쓴다. 애초에 같은 침실에 함께 있을 시간이 많지 않아서다. 이들은 연애 기간에도 이미 서로 다른 생활 패턴을 알고 있어 신혼집의 작은 방 두 개를 각자의 침실로 삼는 데 쉽게 동의했다. 대신 가장 넓은 안방과 거실은 두 사람이 취미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정성들여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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