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쇄
  • 전송
  • 보관
  • 기사목록

[주목 작가 - 손경진] 마음 모으면 마을이 로봇이 돼 지켜주지요?

갤러리오 ‘빛 안의 마을’전 속 숨은 그림 찾기

  •  

cnbnews 제537호 김금영⁄ 2017.05.26 09:26:26

▲손경진, ‘협력하는 사람들의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45.5 x 38cm. 2017.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언뜻 멀리서 그림을 보니 만화 ‘로봇 태권브이’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로봇 모양의 형체가 화면 한가운데에 당당히 우뚝 선 채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서면 또 다른 모습이 발견된다. 그 로봇 모양의 형체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작은 집들. 그리고 이 집들 주위를 둘러보면 또 다른 풍경들이 보인다. 하늘엔 아름다운 해가 떠 있고 새들이 날아다니며, 아래엔 싱그러운 나무들, 그리고 나무 주변에 행복한 모습의 사람들이 있다.


그림은 멀리서 보는 것과 가까이에서 보는 것이 다르다고들 하지만 손경진 작가의 그림은 특히 그렇다. 그냥 지나치면 놓쳐버릴 수 있는 이야기들이 그림 곳곳에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어 있다. 예컨대 멀리서 봤을 땐 그냥 점인 줄 알았던 풍경의 정체가 가까이에서 보면 산책하는 사람, 또는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으로 드러나는 등 또 새로운 그림을 만나는 기분이랄까. 작가는 갤러리오에서의 개인전 ‘빛 안의 마을’에서 이 매력을 한껏 품은 그림들을 선보인다.


▲손경진, ‘기뻐하는 사람들의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22.7 x 15.8cm. 2017.

전시명 ‘빛 안의 마을’은 그의 작업을 설명해주기에 충분하다. 대표적으로 두 가지 이야기가 있다. ‘빛’ 그리고 ‘마을’. 먼저 빛 이야기다. 작가의 그림 대부분에는 태양이 들어가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미세먼지로 새파란 하늘과 태양빛을 제대로 만끽하기도 어려운 세상. 그래서 작가의 그림은 더욱 청량감 있으면서도 따뜻하게 느껴진다.


“저는 비오는 날보다 햇빛이 가득한 날을 더 좋아해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특히 햇빛이 인상 깊었던 날이 있어요. 저는 평소 동네를 산책하다가 작은 동산에 올라가서 빛이 잘 드는 공간에 있곤 했어요. 하루는 햇빛 아래에서 눈을 감고 명상을 했죠. 그런데 그 색감 있잖아요? 햇빛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을 때 바로 보이는 색감. 눈을 감았음에도 불구하고 보이는 그 햇빛의 잔상이 정말 좋았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이었죠. 그 따사로운 빛의 느낌을 그림에도 담고 싶었어요.”


▲손경진, ‘가을 빛의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25 x 25 cm. 2017.

작가에게 빛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해주는 존재였다. 그래서 화면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빛을 담았다. 빛은 봄에는 화사하고, 여름엔 강렬하며, 가을엔 생명력이 넘치고, 겨울엔 푸근한 느낌이 있었다. 작가의 화면에는 빛의 이 오묘한 신비로움과 긍정의 에너지가 오롯이 담겼다.


그리고 이 빛 아래 마을이 있다. 요즘은 마을이라는 개념이 생생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아주 먼 과거에는 마을 사람들이 품앗이 등으로 서로 돕고 살았고, 기쁜 일이 있으면 마을 잔치를 열어 함께 어우르는 자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현대 사회엔 개인주의, 더 나아가 이기주의가 만연하다. 벌어지는 사건사고에 길거리도 걷기 무서운 가운데 ‘이웃사람’도 옛말이다. 이웃사람은커녕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다. 점점 늘어나는 고독사에서 이젠 무연사(無緣死: 고독사 중 시신을 인수할 사람이 없는 상태)까지 벌어지는 쓸쓸한 현실. 작가는 그래서 더 사람 사는 마을을 그리고 싶었다고.


마을을 지켜주는 파수꾼 로봇과
하늘 향해 만세 하는 사람과 나무들


▲손경진, ‘초봄 빛 안의 사람들’.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116.7 x 91cm. 2017.

“제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함께 어울리고 있어요. 가족들은 각자의 집이나 마을 곳곳에서 거리낌 없이 다른 이들과 시간을 보내죠. 요즘엔 잘 볼 수 없는 풍경이에요. 저는 우리가 무심함 속 놓쳐버리는 소중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다른 사람에 관심이 없고, 하물며 가족끼리도 어색한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에게 무엇보다도 힘을 주는 건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예요. 개인주의 사회라고는 하지만,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죠. ‘나’뿐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까지 함께 화면에서 보듬어 보고 싶었습니다.”


사람들의 형태가 둥글둥글한 것도 이유가 있다. 서로를 경계하느라 날이 서 있는 게 아니라 협력하고 어울리면서 둥글둥글해진 것이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가 아니라 옛날 고개를 빤히 들면 바로 옆집 사람과 인사할 수 있었던 낮은 담벼락의 집도 눈길을 끈다. 어렸을 때 골목을 돌아다니며 뛰놀던 작가의 기억이 들어간 것이다. 하늘을 향해 뻗어 있는 나무들은 잘 보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환한 태양을 향해 ‘만세’ 하며 소리치는 듯한 나무들의 모습은 그 주변의 사람들과도 조화를 이루며 모두 함께 희망의 ‘만세’를 외치는 것 같다. 이렇게 작가는 그림 여기저기에 흥미로운 요소들을 배치해 놓았다.


▲손경진, ‘봄빛 안의 마을과 사람들’. 종이에 색펜, 26 x 18cm. 2017.

그렇다면 가장 먼저 눈에 띈 로봇 모양의 형체는 어떻게 완성됐을까? 여기에도 작가의 마음이 담겼다. 작가는 어렸을 때 조립식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 좋아했다. 그 기억도 있었지만, 특히 그에게 각인된 로봇의 이미지가 있다. 어렸을 때 본 만화에서 로봇은 지구를 지키는 수호자이자 파수꾼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빛이 쏟아지는 이 사랑과 행복이 넘치는 마을을 지키는 존재로 로봇의 이미지를 끌어들여온 것. 하나의 로봇 모양의 형체를 띤 마을은 ‘빛의 마을’이자 ‘협력하는 마을’로 거듭난다.


화면 속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다. 함께 모여 사진을 찍기도 하고, 나무를 구경하기도 하고, 따스한 햇살 아래 걸어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이 소소한 순간 자체에 행복이 있다고 작가는 느꼈다고 한다.


▲손경진, ‘겨울 빛의 마을’. 캔버스에 아크릴 과슈, 25 x 25cm. 2017.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이 다르다고 해요. 어떤 사람은 돈이 많을 때 행복하고, 또 어떤 사람은 명예에서 행복을 느끼기도 하죠. 그런데 전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 자체에 행복이 있다고 느꼈어요. 특히 작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을 꾸리면서 이 점을 더욱 느꼈어요. 지금 흘러가는 이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요.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죠.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그냥 막연하게 흘러 보내는 것이 아니라 행복을 느끼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변하지 않는 진리를 그림에라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작가는 또한 이 이야기를 자세히 느낄 수 있도록 자신의 그림을 “꼭 가까이에서 봐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냥 흘러 보내면 잘 깨닫지 못하는 순간의 소중함처럼, 멀리서 그냥 지나치면 잘 알아차릴 수 없는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그림에 담은 작가의 이야기들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전시는 갤러리오에서 5월 31일까지.


▲손경진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관련태그
CNB  씨앤비  시앤비  CNB뉴스  씨앤비뉴스

배너
배너
배너

많이 읽은 기사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