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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생경제] ‘벼룩 간’ 즐기는 대기업들…스타트업 기술빼먹기 “심각”

아이디어 도용 막을 제도 보완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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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37호 유경석 기자⁄ 2017.05.29 09:47:55

▲5월 23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에서 열린 ‘스타트업 청년채용 페스티벌’ 현장.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유경석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뒤 ‘1호 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이어 대통령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내걸었다. 공공부문은 물론이고 민간부문 일자리까지 직접 챙긴다는 계획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이 일부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발생한 고용 없는 성장을 끊겠다는 의지이지만, 결과는 더 지켜봐야 할 일이다. 신규 일자리 창출의 수원으로 중소벤처기업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대기업의 횡포는 스타트업의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 기술편취와 베끼기로 성장의 싹을 잘라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드는 것 못지않게 일자리 만들기를 가로막는 요소를 파악해야 한다는 지적이 힘을 얻고 있다. 

청와대 일자리 상황판의 흑기사 될 중소·벤처기업

문재인 대통령은 대통령선거 기간부터 줄곧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은 일자리로 시작해 일자리로 완성될 것”을 공언했다.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한 것도 그 바람의 연장선상에 있다. 언론에 공개된 일자리 상황판에는 실업률과 취업자 수 등 18개 일자리 지표와 함께 정책성과가 표시된다. 정책성과 지표는 일자리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청년고용, 창업 4가지 항목으로 구성된다. 문 대통령의 공약인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들의 일자리 창출도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만만한 게 없다.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우선 만들어 구매력을 키우고 소비시장을 키워 민간투자를 이끌어내며, 동시에 일자리 창출을 경제선순환의 마중물로 삼는다는 구상이다. 문 대통령은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를 직접 방문해 비정규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고, 이후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일반 기업들도 하나둘 늘고 있다. 최근 정부는 경찰직 공무원과 교사 수를 늘리는 계획을 발표했다. 공공부문의 일자리 창출에 시동을 건 것이다. 당장 기업들의 볼멘소리가 언론을 통해 터져 나오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기업들의 일자리 동향을 살피는 것이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중소-중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에 집중할 방침이다. 일자리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중견 기업과 창업·벤처 기업이 창출하고, 소상공인과 전통시장은 서민 일자리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실제 2011~2014년 중소기업은 177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어 국내 일자리 증가분의 97%를 담당했다. 반면 대기업 상위 20개 기업의 총 고용자 수는 2014년 55만 2000명에서, 2015년 54만 7000명, 2016년 53만 8000명으로 지속적으로 줄고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이 5월 15일 서울 마포구 서울가든호텔에서 열린 신용보증기금의 스타트업 육성프로그램 ‘스타트업 네스트(NEST)’ 클럽 발대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또 2014년 부가가치 비중은 중소기업(51.2%)이 대기업(48.8%)에 비해 2.4%p를 앞서며 추월했고, 대기업은 해외 생산의 증가로 대기업 성장이 국내경제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약화되고 있다. 해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가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중견 기업의 세계화를 위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가 최우선 과제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이에 따라 수출, 창업, R&D 등 모든 중소·중견기업 정책방향을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성과창출 중심의 집중육성으로 전환한다는 방침이다. 창업생태계를 혁신(start up)하고 도약·글로벌 성장(scale up)을 촉진하는 한편 창업·벤처 열기를 지속적으로 확산(boom up)해 나갈 계획이다. 저성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중소·중견기업이 주역으로 부상하기 때문으로, 새로운 흐름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사이즈가 큰 대기업보다 빠르고 유연한 벤처·창업 기업과 중소·중견 기업이 중요한 탓이다. 

Start up(혁신) 성장을 위한 지원 ‘봇물’

중소기업청은 창업인턴제 사업 참여를 희망하는 예비창업자와, 이들의 인턴 활동과 창업을 도와줄 기업을 선정했다. 창업인턴제는 창업·벤처 기업에 근무하면서 체험한 창업노하우를 사업화(창업)로 이어가는 프로그램으로, 2012년부터 미국에서 우수 대학 졸업생의 창업 촉진을 위해 운영 중인 ‘Venture for America’를 벤치마킹한 사업이다. 창업인턴은 창업·벤처기업에서 6개월간 사업계획 수립, 제품개발, 마케팅 등 다양한 현장체험과 함께 멘토링, 네트워킹 등 창업역량을 키우게 된다. 또 창업에 필요한 창업공간, 시제품 제작, 지재권 취득, 마케팅 등 사업화가 지원된다. 

아울러 신생 창업기업을 발굴해 글로벌 스타기업으로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창업기획자) 등록·관리 제도가 시행 중이다. 최초 등록된 액셀러레이터는 ㈜아이빌트세종(이준배 대표), 와이앤아처㈜(신진오 대표), 포항공대 기술지주㈜(박성진 대표), 케이런벤처스(유)(권재중, 김진호 공동대표) 4개 사다. 액셀러레이터는 초기 창업기업의 선발·투자, 전문보육 등을 수행하고 초기 창업자에 1000만 원 이상을 투자한다. 또 3개월 이상 전문 보육한다.

이와 함께 대학발 청년·기술창업 활성화를 위한 창업선도대학 육성사업도 실시되고 있다. 올해 가천대학교, 광주대학교, 부산대학교,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성신여자대학교, 울산대학교, 충남대학교, 한양대학교 8곳이 신규 창업선도대학에 선정됐다. 대학이 액셀러레이터로 변신해 석·박사, 교수, 연구원 등이 창업하고 글로벌 스타벤처로 성공하는 데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운영된다. 

끊이지 않는 대기업의 스타트업·벤처 기술편취 논란

이런 가운데 스타트업·벤처에 대한 대기업의 기술편취 행태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대기업이 스타트업과 벤처의 사업모델이나 기술을 빼앗는 사례는 언론 등을 통해 심심치 않게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대책은 미비한 실정이다. 대기업과 협력관계였던 스타트업의 노하우를 그대로 베껴 자사의 서비스로 삼거나 스타트업이 판매하는 유료 서비스를 대기업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등 스타트업에 대한 대기업의 사업모델 및 기술 편취 형태가 심각한 실정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5월 15일(현지 시간)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시에서 열린 세계 최대 스타트업 박람회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에서 오픈한 한국 공동관. 사진 = 연합뉴스

더 큰 문제는 기술유출 피해구제를 위한 정부의 정책수단인 분쟁조정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 중소기업청, 특허청 산하에는 각각 기술유출 피해 구제와 관련해 3개의 조정 위원회가 있다. 하지만 그 실적이 저조한 형편이다. 2015년 기준 산업부 산하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는 조정성립 건수 0건, 중기청 중소기술분쟁조정중재위원회 3건, 특허청 산업재산권분쟁조정위원회 8건으로 조정률이 평균 26%에 그치고 있다. 

기술유출 피해자가 조정제도를 이용하고 싶어도 쌍방이 참여해야만 조정을 할 수 있는 현행 규정도 문제다. 산업부 산업기술분쟁조정위원회, 특허청 산업재산권분쟁조정위원회의 경우 중기청과 달리 피신청인이 조정 참석을 거부하면 제재하거나 참석을 유도할 근거가 없다. 따라서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큰 소송을 선택하거나 소송마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언론 등을 통해 드러난 스타트업·벤처의 사업모델이나 기술을 빼앗은 대기업의 사례는 다양하다. 네이버의 ‘참여번역Q’는 네이버 사전이 출시한 서비스로, 이용자가 번역을 요청하면 다른 사용자들이 직접 번역문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집단지성 번역 플랫폼 ‘플리토’의 서비스와 비슷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표절 논란이 일었다.

네이버의 표절 논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난 2008년 네이버 툴바 출시 당시 알툴바의 기능과 유사하다는 표절 의혹을 받았다. 또 ‘V앱’은 페이스북의 동영상 앱 ‘리프’의 인터페이스를 그대로 따라 했다는 의심을 받았다. 스타트업인 시어스랩은 네이버의 동영상 셀카 애플리케이션 스노우가 자사의 셀카 앱 롤리캠의 포맷과 스티커 디자인이, 비바리퍼블리카라는 스타트업이 출시한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와 네이버의 ‘네이버 페이’의 간편송금 아이디어가 비슷하다는 지적을 제기했다. 

카카오 역시 베끼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권혁철 부산대 교수는 20년 이상 개발해 판매하고 있는 한글 맞춤법 프로그램을 대형 포털이 베껴서 서비스하는 것도 모자라 운영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를 공개해 중소 프로그램 개발사의 생존권을 빼앗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카카오의 주차 공유 앱도 베꼈다는 의심을 받았다. 카카오는 건물 지하의 주차장 정보를 공유해 원하는 곳에 주차하고 결제까지 자동으로 하는 서비스인 ‘카카오 파킹’을 서비스 중이다. 하지만 이 서비스가 파킹클라우드라는 스타트업의 주차장 예약 앱인 ‘아이파킹’을 베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 

▲서울시는 단일 창업보육기관으로는 국내 최대 규모인 마포구 ‘서울창업허브’에 입주할 148개 스타트업을 모집한다. 서울창업허브는 옛 산업인력공단 2개 동을 리모델링한 공간으로 5월 말 입주를 시작해 6월 21일 개관할 예정이다. 사진 = 연합뉴스

SK커뮤니케이션즈의 포토 SNS ‘싸이메라’에서 최근 출시한 신규 필터 중 일부가 ‘저작권 논란’에 휩싸였다. iOS용 카메라 애플리케이션으로 출시된 ‘아날로그 필름 시리즈’의 필터 일부를 아무런 사전 협의 없이 이름만 바꿔서 새 필터로 내놨다는 지적이다. IT 벤처기업인 이앤비소프트가 자사의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KT를 상대로 소송을 냈지만, 법원이 KT의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 마무리됐다. 이앤비소프트는 2013년 10월 ‘클립클립(CLIPCLIP)’의 상표권을 등록했고, KT가 지난해 8월 ‘클립(CLiP)’이라는 모바일 지갑 앱을 출시했다. 이앤비소프트는 KT가 클립 앱으로 상표권을 침해하고, 부정경쟁방지법상 부정경쟁행위를 했다고 소송을 냈으나 재판부가 상표권 침해로 볼 수 없다며 KT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스타트업·벤처 아이디어 도용 대처 위한 제도 강화 필요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스타트업 기업 수는 지난 2010년 8798개에서 지난해 3만1260개로 약 3.5배 증가했다. 덩치는 커졌지만 질적인 향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전체 벤처기업의 평균 매출액은 2010년 72억 원에서 2014년 71억 원으로 제자리를 걷고 있다. 평균 근로자 수는 같은 기간 27명에서 24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작은 스타트업 입장에서 대기업과 소송을 진행하기에는 시간과 돈 모두 부족하고 대기업과 계약 관계에 있는 경우 일이 끊길 수 있어 선뜻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소·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표절한다는 논란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마땅한 해결책이 없어서 답답함을 더한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를 중요시하지 않는 문화가 한몫을 차지한다는 평가도 있다. 미국에서는 스타트업 기업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대기업이 활용하고 싶을 경우 이 스타트업을 인수해야 하므로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대기업들이 소기업 인수·합병에 소극적이다. 스타트업들 입장에선 IT 대기업이 유사 서비스를 출시하면 투자가 끊기기 때문에 치명적이다. 

스타트업 업계 관계자는 “큰 업체가 유사 서비스를 론칭할 경우 몸집이 작은 스타트업에 투자할 투자자는 사실상 없는 실정”이라며 “리모택시가 카카오택시 진출 이후 1년 만에 폐업하고, 카카오가 가사도우미서비스를 출시하겠다고 하자 홈클이라는 스타트업이 투자를 받지 못해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당 김수민 국회의원(비례대표)은 “대기업과 협력관계였던 스타트업의 노하우를 그대로 베껴 자사의 서비스화 하거나, 스타트업이 판매하는 유료 서비스를 대기업에서 무료로 배포하는 등 스타트업에 대한 대기업의 사업모델 및 기술 편취의 형태가 심각하다”며 “창업·벤처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창조하는 능력만큼이나 그 결과물인 특허나 창업 기업의 아이디어를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기업이 스타트업·중소기업의 아이디어를 도용했을 때 더 이상 계란으로 바위 치는 격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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