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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행근 중국부자 칼럼 - 딩 레이] 이메일로 시작해 양돈→게임 거쳐 ‘톱6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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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2호 송행근 중국 문화경제학자⁄ 2017.07.03 10:06:30

(CNB저널 = 송행근 중국 문화경제학자) “비록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은 모두 다르나 젊은이라면 모름지기 꿈과 목표가 있어야 한다. 직장의 변동에 상관없이 이상을 마음에 품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중국의 인터넷 시대 개척자 딩레이의 지론이다.  

딩레이(丁磊)는 현재 중국 인터넷 포털인 왕이(网易, 영어 이름 NetEase)의 회장이다. 넷이즈(NetEase) 즉, 왕이는 1997년 중국에서 최초로 등장한 포털사이트다. 우리나라의 ‘다음’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무료 이메일 서비스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검색과 전자상거래 등으로 영역을 확대해 중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사이트로 부상했다.  

딩레이의 강한 도전정신은 그의 트레이드마크이자 그를 억만장자로 만든 원동력이다. 그는 1971년 10월 저장성 닝보시(宁波市)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엔지니어였다. 아버지의 영향인지 어려서부터 전기제품을 분해하거나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처음으로 라디오를 조립했다. 당시 그가 만든 라디오는 중파와 단파, FM 방송을 모두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1993년 그는 쓰촨성 청두에 있는 전자과학기술대학에 진학한다. 어릴 적부터 전자 엔지니어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대학 도서관에 수 만 권의 전자 전문서적이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안정된 직장마다 “하는 일 없다” 박차고 나와

그는 대학 졸업 후 짧은 기간에 저장성 닝보시 전신국, 미국 사이베이스(sybase) 중국 사무소, 광저우 페이제(飛捷)까지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았다. 다양한 경험의 원천은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강한 도전정신에서 비롯되었다. 예를 들면, 1995년 대학 졸업 후 취업한 첫 직장으로 매우 안정적이었던 고향 닝보시 소재 전신국에 과감히 사표를 냈다. 특별히 하는 일 없어도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는 데 따른 회의감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 후 딩레이는 설립된 지 얼마 안 된 광저우(廣州) Sybase 사에 입사한 후 1년 만에 또 사직한다. 1년 동안 자신이 한 일이라고는 종일 데이터베이스를 설치하고 테스트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삶에 대한 아무런 진보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딩 레이 사장을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그림 = Danor Shtruzman

마침내 1997년 딩레이는 왕이를 설립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가치 있는 삶을 설계하고 싶은 도전정신이 창업의 동기였다. 몇 년간 프로그램을 작성해 모은 돈과 친구에게서 빌린 돈 50만 위안이 종자돈이었다. 다행히 창업 시기도 적절했다. 1997년은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가 설립되어, 중국에서 인터넷이 기지개를 켠 해였기 때문이다. 타이밍이 제대로 맞은 것이다. 

그는 누구나 쉽게 인터넷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창업의 주안점을 두었다. 특히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도메인 네임에 각별한 관심을 쏟았다. 그 결과 중국 인터넷 역사에서 처음으로 숫자가 등장한 도메인 163이 탄생했다. 163을 도메인으로 사용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무료 이메일이 성공하려면 반드시 입에 쉽게 붙는 도메인 네임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둘째, 163, 169가 중국에서는 차이나넷, 통신국, 인터넷을 가리키는 뜻을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부분 다음의 ‘한메일’ 계정을 갖고 있듯이 중국인들 대부분이 ‘163’ 메일 계정을 보유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에 재학하는 많은 중국 유학생들에게 연락처를 물으면 곧바로 163.com의 메일 주소를 알려준다. 

딩레이의 전망은 말 그대로 대박을 쳤다. 넷이즈의 하루 평균 방문자 수가 10만 명에 달했다. 1998년 넉 달 만에 광고 매출액 10만 달러를 달성했다. 1997년 5월 개설한 넷이즈가 2년 만에 중국의 가장 유명한 포털사이트가 된 것이다. 넷이즈가 중국의 첫 포털사이트로 성공을 거두면서 그는 중국 IT업계의 선두주자이자 황제가 됐다. ‘www.163.com’은 창업 이듬해 중국인터넷정보센터(CNNIC)가 뽑은 ‘중국 10대 사이트’에서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나아가 오늘날 전 세계에서 15번째로 방문객이 많은 유명 사이트가 되었다. 

포털 사이트가 돼지를 키운 뜻은?

딩레이는 강한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IT의 창조 신화를 거두었다. 무료 이메일 서비스로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둔 뒤 검색과 전자상거래 등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이후 게임사업, 모바일, 검색, 광고, 콘텐츠, 전자상거래 등 인터넷의 변화와 더불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가장 획기적인 사업변신은 단연 양돈 사업의 진출이다. 딩레이는 2009년 식품안전 의식을 높이고 농가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양돈 사업에 뛰어들었다. IT라는 첨단산업에서 가장 전통적인 축산업으로 방향 전환한 것이다. 양돈 사업을 하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다. 농업을 살리고, 농민이 부자가 되는 사회 구현이다. 죽어가는 농업을 살리고 농민을 부자로 만들려는 사업 취지와 상관없이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먹거리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국의 현실을 감안하면 참으로 의미가 깊다고 할 것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다음 포털’에 해당하지만, 양돈 사업 등 별난 사업 다각화를 통해 중국 부자 5등에 오른 딩 레이 넷이즈 회장의 젊은 시절 모습. 사진 = 넷이즈 홈페이지

두 번째 변신은 게임 사업이다. 2014년에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WOW) 등 유명 게임을 중국에 배포하면서 온라인 게임 시장의 최강자로도 부상했다. 세 번째 변신은 와인 수입업이다. 딩레이는 상당한 와인 애호가이다. 2011년 친구 5명과 함께 저장성 닝보 보세구에 설립된 와인회사 주주로 참여했다. 이 회사는 주로 프랑스에서 와인을 수입해 파는 주류 수입업체이다. 가격은 1병 당 수천~수만 위안에 달하는 고가이다. 이외에 얼마 전에는 도자기, 바이주(白酒, 고량주) 분야로 무한 사업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백화점식 혹은 문어발식 경영이라는 세간의 비판도 있지만 그의 도전 정신은 그칠 줄 모른다. 

연간 60~70%대 초고속 성장 중

지난해 넷이즈의 연 매출은 381억 7900만 위안(약 6조 3805억 원)에 육박했다. 이는 전년 동기대비 67.4% 급증한 것이자 지난 10년래 최고의 성적이다. 순익도 72.3% 급증한 116억 500만 위안으로 집계됐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겨울 ‘2016년 중국 부자 순위’를 발표했다. 딩레이는 152억 달러(약 17조 3584억 원)로 5위를 차지했다. 올해 1월 중국부자연구소인 후룬연구원은 딩레이의 자산이 1000억 위안(약 16조 7260억 원)이고, 중국 부호 순위 6위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1997년 50만 위안(약 8306만원)으로 왕이를 설립한 후 불과 20여년 만에 16조~17조원이라는 상상도 못할 부를 쌓았다. 하지만 그는 외부 행사나 TV에 얼굴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딩레이의 성공신화는 당분간 IT 업종이 중국에서 부를 거머쥐는 대세임을 증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CINIC)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인터넷 사용자는 7억 3100만 명이고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는 6억 9600만 명에 불과하다. 중국의 인터넷 이용률은 이제 갓 50%를 넘었다. 중국 인터넷 사용자는 매년 4000만 명씩 증가하는 추세이다. 도전정신이 트레이드마크인 딩레이는 중국의 빌 게이츠로 불린다. 빌게이츠를 넘어서는 그날이 올까.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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