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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 일상을 기록하는 미술] 나의 하루하루는 의미없는 반복인가, 아니면 의미있는 행복 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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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47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7.08.07 09:31:10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다. 지난 7월 30일, 인천공항의 이용객은 약 20만 명이었다. 고속도로와 휴게소를 가득 채운 자동차들, 캠핑장과 해수욕장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실은 기사들도 눈에 띤다. 사람들은 휴가 기간 동안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쉬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휴가를 이용해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휴가 기간 동안 집에서 은둔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 역시 매일매일 출근하거나 학교를 가는 일상과는 다른 특별한 하루를 보낸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특별한 하루를 사진으로 기록한다. 낯선 장소와 풍경, 그리고 그 속의 자신을 찍는다. 평상시에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않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휴가지가 아니라도 유명한 음식점이나 카페에 가거나, 공연을 보거나, 유명인을 만나거나 하면 우리는 자동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생일파티나 결혼식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는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고, 두고두고 음미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미술은 예로부터 특별한 순간들을 기록해왔다. 기록화가 성행했던 조선시대에는 종묘제례(宗廟祭禮)와 같은 국가의 행사, 과거(科擧), 임금이 농사를 짓거나 외국의 사신을 맞이하는 모습 등을 그림으로 남겼다. ‘화성능행도병(華城陵行圖屛)’(1796년경)처럼 임금이 특정한 지역에 행차하고 머무른 모습을 담은 것도 있다. 개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집안의 각종 행사를 기록한 것 외에도 선비들의 모임 장면을 그린 계회도(契會圖)가 인기였다. 

역사적 순간만 기록했던 고전시대의 미술

그렇다면 역사화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서양의 미술은 어떨까? 서양의 고전적인 미술 대부분은 주로 영웅이나 황제와 같은 특별한 사람들의 중요한 일화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화로 유명한 미술가인 다비드(Jacques Louis David)의 ‘마라의 죽음(Mort de Marat)’(1793년)이나 ‘나폴레옹의 대관식(Couronnement de Napoléon)’(1805~1807년)처럼 당대의 중요한 인물들의 중요한 순간들이 감동적으로 재현되었다. 이후 사실주의와 인상주의 미술이 평범한 사람들을 그리기는 했지만, 쿠르베(Gustave Courbet)와 모네(Claude Monet)가 그렸던 일상의 모습은 추상 미술이 부상하면서 다시 사라지게 되었다. 

▲박준형, ‘타임라인 드로잉(170207~170710)’, 종이에 색연필, 잉크, 수채화, 콜라주, 가변크기(각 21×14.8cm), 2017, 사진제공 = 박준형 작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오늘날에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출근하는 등의 하루 일과를 촬영하지 않는다. 길에서 만나는 행인들, 늘 만나는 가족들과 친구들, 동료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늘 반복되는 매우 평범한 일상이기에 기록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인들이 보내는 평범한 하루는 거의 똑같아 보인다.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집 밖을 나가고, 비슷한 시간에 사람들을 만나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마치 동일한 과거의 한 순간을 향해 타임 슬립(time slip)을 반복하듯 개인의 하루, 일주일, 한 달은 매우 같아 보인다. 너무 비슷하기에 우리는 일상의 평범함에서 무료함이나 지루함을 느끼고 그러한 일상을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가고 모험을 시도한다. 그리고 그 특별함을 기록으로 남긴다. 

그러나 우리의 일상은 늘 같지 않다. 평범하지도 않다. 이 세상에 하나뿐인 내가 살아가는, 단 한번만 존재하는 하루가 어떻게 평범할 수 있겠는가? 나의 일상이 무미건조한 반복이 아닌 것처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모든 이들의 일상도 그렇다. 또한 특별함을 결정하는 기준도 하나가 될 수 없다. 거시적인 역사적 순간만 소중한 것도 아니다. 이에 오늘의 미술가들은 평범함 속의 비범함을 찾아낸다. 평범한 삶을 기록하게 되면서 자신의 일상 이야기를 담아내는 미술가들도 늘어났다. ‘요즘 미술 칼럼’에서도 다루었던 낸 골딘(Nan Goldin),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Felix Gonzalez-Torres) 등은 자신의 평범한 삶, 때로는 소외받았던 삶을 작품에 담았다. 한두 명의 작가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당장 미술 정보를 전달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일상’이라는 단어를 검색해보면 일상을 주요하게 다루는 작가들이 참여하는, 일상을 주제로 한 전시들이 매우 많이 열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일상을 미술로 만드는 작가 박준형

오늘은 그 중 한 작품을 소개해보겠다. 박준형의 ‘타임라인 드로잉’(2017)은 “사소하고 특별한 작가의 하루하루의 일”들을 기록하는 프로젝트이다. 작가는 LP를 수집하는 지인과의 대화, 매일의 이동 기록을 확인할 수 있는 SNS 타임라인(timeline)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 박준형은 ‘요리, 식사, 이동, 만남, 대화, 음주, 작업, 잠’처럼 하루를 보내며 작가 자신이 하게 되는 일상적인 행위와 겪게 되는 사건들이 일어난 시간, 장소, 그 내용 등을 기록하고 정리한 뒤 이미지로 변환시킨다. 이미지로 변환할 때에는 작가가 만들어놓은 자신만의 문법을 따라 색과 형상을 고른다. 하루하루 수집된 LP가 쌓이고, 타임라인이 나열되듯 작가의 시간도 축적된다. 그런데 이미지가 쌓이고 보니 특별한 변화 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던 한 사람의 일상은 결코 단조롭지 않았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일상이 얼마나 다양한 차이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박준형, ‘타임라인 드로잉(170608)’, 종이에 색연필, 21×14.8cm, 2017, 사진제공=박준형 작가

영화 ‘어바웃 타임(About Time)’(2013년)에는 과거의 원하는 시점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집안에서 태어난 주인공 팀(Tim)이 등장한다. 팀은 자신의 중요한 순간들을 위해 그 능력을 발휘하고, -세계의 역사를 바꾸거나 다른 이의 생각과 감정을 바꾸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를 바꿔 자신의 현재를 바꾼다. 어느 날, 팀의 아버지는 행복의 공식 두 가지를 알려준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동일한 하루를, 어떤 것도 인위적으로 바꾸지 않고 다시 한 번 살아보는 것이다. 아버지의 말을 따라 팀이 처음 경험하는 하루는 힘들고 지치는 것이었다. 그런데 두 번째 보낸 똑같은 하루는 즐거웠다. 긴장과 걱정으로 놓쳤던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주인공은 더 이상 시간 여행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자신이 오늘을 위해 시간 여행을 한 것처럼 특별하고 평범한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려 노력한다. 

우리의 하루는 그 어떤 영웅의 하루 못지않게 의미 있고 아름답고 소중하다. 나의 일상도 예술의 주제가 될 수 있는 의미 있는 것이다.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로맨틱하게 들릴지라도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도 그 아름다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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