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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돈벌이 식량의 복수’를 인간은 당해낼까…자기 닭의 알 받아먹는 이 부러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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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2017.08.25 17:26:51

▲최영태 발행인-편집국장

이번 주 CNB저널을 편집하면서 재밌는 문장 두 군데가 발견돼 흥미로웠습니다. 첫 번째는 이철호 한국식량안보연구재단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님의 칼럼(39쪽)에 나오는 다음 문장입니다. 

필자는 광릉수목원 인근에 작은 텃밭이 있는 농가에서 살고 있다. 오리 한 쌍과 수탉 한 마리에 암탉 4마리를 키우고 있다. 오리는 아침에 풀어주면 냇가에 나가 놀다가 저녁에 들어와 매일 알을 하나씩 낳는다. 이들이 주는 알로 우리 집 계란은 자급이 되고 남는다. 여건이 가능하면 이렇게 계란을 자급하는 집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광릉수목원 근처에 사시는 이 이사장님의 주거환경에 남다른 시샘을 가지고 있던 필자로서는, 이렇게 계란까지 완전 ‘無살충제-친환경-친건강’으로 드신다는 말씀에 잠시 멍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이사장님은 물론 ‘여건이 가능하면’이라는 조건절을 달아 놓았지만, 실제로 대부분의 수도권 거주민에게는 불가능한 조건입니다. 아파트 안에서 닭이나 오리를 키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따로 주말농장을 임대해 내가 먹을 상추를 키우면서 그 한켠에 닭장까지 만들어 키울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닭을 키워 그 닭이 낳는 無살충제-친환경-친건강 달걀을 먹을 날이 살아생전에 있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잠시 말풍선처럼 떠올려보지만 이내 지우면서, 한심한 도시살이에 고개가 꺾어집니다.

용산 사태를 바라보는 윌리엄 모리스의 시선

두 번째로 재밌는 문장은 커버스토리로 소개된 임옥상 미술작가(56쪽)의 말에서입니다. 기사의 해당 문장을 보지요.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을 다룬 ‘상선약수-물 2011’, 용산 화재 참사를 주제로 한 ‘삼계화택-불 2011’,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윌리엄 모리스’ ‘존 버거’가 설치됐다.(중략) 존 버거와 윌리엄 모리스는 작가가 존경하는 예술가들이다. 같은 예술가의 입장에서 ‘이들의 시선으로 우리 현대사를 바라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작품을 함께 전시장 가운데 설치했다.

▲온통 불바다인 용산참사의 현장을 묘사한 임옥상 작 ‘삼계화택-불 2011’ 옆에는 이를 바라보는 윌리엄 모리스의 얼굴이 배치됐다. 사진=가나아트


존 버거는 올해 초 작고한 영국의 좌파 비평가-소설가-화가이고, 윌리엄 모리스(1834~1896년)는 그에 앞서 1800년대를 산 영국의 디자이너-건축가-작가이지요. 존 버거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고, 윌리엄 모리스에 대해서는 영남대 박홍규 교수의 외로운 노력(그는 루이스 멈포드나 윌리엄 모리스처럼 한국 지식인 사이에 인기가 거의 없는 해외 지식인들을 그의 3자주의 - 자유-자치-자연을 최고로 치는 - 에 따라 소개해 왔습니다) 덕분에 조금은 압니다. 박 교수의 모리스 관련 책으로는 소설 ‘에코토피아 뉴스’ 번역(2004년)과 ‘윌리엄 모리스 평전’(2007년)이 있습니다. 

윌리엄 모리스는 1800년대 영국의 산업화에 따라 자연이 완전히 망가지는 런던의 모습에 절망하면서 14세기 중세 시대를 이상향으로 삼아 평론을 쓰고 강연을 했고, 또 윌리엄 & Co.라는 디자인 회사를 만들어 중세 문양에서 힌트를 얻은 ‘현대적인 디자인’을 처음 시작한 인물로 꼽히지요. 

이 모리스라는 사람은, 부르주아의 아들로 태어나 영국 교외의 대저택(엄청나게 넓은 땅을 가진)에서 자랐고, 어른이 돼서도 돈을 안 벌어도 될 정도로 유산을 많이 받았다니, 요즘 한국으로 치자면 수구꼴통이 되기 쉬운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살던 지역에서 사회주의 모임을 만들고, 철-유리 같은 공업 생산물로 집을 짓는 현대식 건물에 구토감을 느끼면서 14세기 고딕건축 양식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벌였지요. 상업화된 건물에 구토감을 느낀 그였기에, 요즘처럼 먹을 것을 상업적-공업적으로 생산하는 21세기를 그가 구경한다면 아마 먹기를 거부할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돈 많은 귀족 출신인데 유일하게 반제국주의자였다니… 

모리스나 톨스토이처럼 친자역주의적인 사람에게서 항상 신기하다고 생각되는 점은, 자연을 중시하는 부잣집-귀족 자식들인만큼 정치적으로도 보수적일 것이라 생각되기 쉬운 이들이, ‘당시 지식인들 중 거의 유일하게 영국의 제국주의에 반발’하고(모리스), 애국주의가 들끓는 20세기 초 러시아에서 러일전쟁에 반대하는 공개서한을 쓰는(톨스토이) 등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택들을 해왔다는 것입니다. 

진보-사회주의-미래파를 자처하는 지식인들이 유럽의 경우 1차대전, 2차대전이 일어나고, 일본의 경우 태평양전쟁이 발발하면서 거의 대부분 “전쟁 지지” 또는 “천황 만세”로 표변한 데 비한다면, 모리스나 톨스토이처럼 평소 말로는 진보주의를 자처하지 않았지만 중요한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점은, 특히 ‘말로만 진보’가 무성한 한국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말로는 생태주의를 말하지만 자가용은 배기량 큰 비싼 자가용을 항상 타고 다니거나, 입으로는 진보지만 뒤로는 돈 세기에 재주가 뛰어난 잘난 이들이 우리 주변에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모리스나 톨스토이를 눈여겨보는 이유는, 이들도 인간인지라 때로 돈 욕심도 내곤 했지만, 그래도 인생 전체적으로는 돈 아닌 다른 그 무엇, 자연이랄까, 인간이랄까 하는 것을 지향점으로 삼았다는 점 때문입니다.  

다시 달걀 이야기입니다. 이번 달걀 사태는 어떻게 결말이 날까요? 문재인 대통령이 “축산업에 대한 근본 개선책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지만, 과연 제대로 될까요? 전국에 5300만 마리나 있다는 닭을 다 땅에 풀어서(흙 목욕을 해 닭 진드기를 스스로 없앨 수 있도록) 키울 수 있을까요? 그만한 땅이 있나요? 아니면 쾌적한 닭 아파트를 만들어 거기 입주시키나요? 그 비용은 누가 대고요? 닭은 몸뚱아리나 작지, 커다란 돼지-소는 도대체 어떻게 풀어서(그들이 쾌적하게) 키울 건가요? 

▲DDT 성분이 검출된 경북 영천시의 한 산란계 농장. 닭들이 흙 목욕을 하는지 흙먼지가 뿌였다.(사진=연합뉴스)


축산업에 대한 근본 개선책으로 어떤 게 나올지 그래도 기대를 해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살충제 계란 사태가 터지자 농림축산식품부는 초기 조사 단계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신뢰도를 떨어뜨렸습니다. 더 가관은 식약처로, “먹어도 문제없다”고 발표했지요. 아니 먹어도 문제없다면서 왜 계속 조사를 하고, 달걀을 폐기처분하고 그러나요, 그냥 먹게 놔두지? 국민을 안심시킨다면 하면 오히려 더 혼란이 초래되는 “괜찮아” 발표부터 한 꼴입니다. 

어제(8월 24일) JTBC ‘썰전’에서 유시민 작가는 “정부는 첫 조치로 계란 유통을 완전 중단시켰어야 한다, 농가에 피해가 발생하면 정부예산으로 보충해줘서라도”라고 말했지만, 돈 벌기가 삶의 제1목적인 이 나라에서 돈벌이에 방해가 되는 그런 과격한 조치를 취하면, 돈 많이 벌자고 사는 게 목적인 이 나라에서 관련 기업이나 언론-야당들이 가만히 있었겠어요? “대책도 없이 ‘자유’민주주의를 망가뜨린다”며 빨갱이-좌파 어쩌구부터 튀어나올 텐데요? 이 나라에서 가장 큰 죄는, 남의 돈벌이를 막는 짓 아니었던가요? “암덩어리 같은 규제”라는 무시무시한 말이 나온 배경이 거기에 있지요. 돈이 인생 제1의 목적으로 머무르는 한, 돈을 벌기 위한 공장식 식량 생산은 계속될 것이며, 축산물의 인간에 대한 복수 역시 계속될 것입니다.

▲지난 8월 16일 앵커브리핑에서 "자주 먹진 못했어도 깨끗하기만 했던, 짚으로 엮은 달걀꾸러미를 그리워합니다"고 말하는 손석희 앵커.(사진=JTBC 화면 캡처)


달걀 얘기를 하면서 손석희 앵커는 “과거 짚단에 싸서 팔던 시절이 그립다”고 했습니다. 그렇지요. 먹고살기 헉헉대던 그 시절에는 그저 먹고사는 게 목적이었기에 식량생산도 살기 위해 이뤄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푸념조로 “그저 먹고 살기만 하면 좋겠다”고 하지만, 제1목적을 먹고살기(생존)에 두는 그런 삶이, “뭔 짓을 해서라도 돈만 많이 벌면 좋겠다”는 요즘보다는 그래도 인간적으로 풋풋하고 살만했던 세상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도대체 먹을 게 없는 세상"보다는 "근근이 먹고 사는 세상"이 더 좋지 않나 

우리는 근대화-선진화를 향해 달려왔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앞선 미국-유럽-일본인을 상전으로 모시고, 뒤쳐진 후진국들을 멸시해왔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살충제를 닭몸에 뿌려서라도 더 값싸게 생산해 더 많은 이윤을 남기는 것을 당연시하고 그렇게 공장식으로 생산된 ‘자본주의적 달걀’을 먹는 선진국 사람들을 우러러 보고, 그저 자기 집에서 닭이나 키워 매일 아침 닭이 낳는 달걀을 주워 먹는 후진국 사람들을 양껏 내리 깔봐 온 것이지요. 

▲아프리카를 정복하는 영국 식민주의자를 나타낸 그림. 한국인들은 일본의 조선 병합을 도와준 영국의 식민주의자들을 많이 존경하지만, 19세기 당시에 유일하게 반제국주의 입장을 취했다는 윌리엄 모리스에 대해선 거의 모르는 게 특징이다.(사진=위키피디아)

헌데, 이제 아주 큰 회전이 이뤄지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번 해봅니다. 이러다가는 ‘공장식 달걀’을 먹는 사람들이 천민이 되고, 자기 집 근처에서 닭을 키워 먹는 사람이 상전 대접을 받는 것 아닌가 하는 상상입니다. 여태까지는 돈 많이 버는(자연을 망치고 사람을 죽여서라도) 나라가 선진문명국이었지만, 앞으로는 돈은 많이 못 벌더라도 자연을 잘 보존하고 그래서 사람이 안전한 나라가 상국(上國)이 되는 것 아닌가 하는…. 

한국인은 그간 선진화-문명화-근대화-공업화를 향해 달려왔지만, 그 ‘ㅇㅇ화’의 끝에서 이제 “믿고 먹을 게 없다”는 탄식을 내뱉게 됐습니다. 믿고 먹을 게 없어지면 그 다음 순서는 죽는 것뿐이 없을 테니까요. 그간 여러 번 그랬듯 이번에도 또 기껏 정상에 오르고 난 뒤에 “이 산이 아닌가벼”라는 탄식을 터뜨리지나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나저나 ‘윌리엄 모리스가 대영 제국주의가 그 정점에 있었던 당대에 거의 유일무이한 반제국주의 지식인이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윌리엄 모리스 평전’ 150쪽)는데, 한국인은, 한국 지식인은, 19세기 영국 지식인에 대해서 별의별 사람은 다 알지만, 윌리엄 모리스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지요? 조선을 침략한 일본을 열심히 도와준 영국의 제국주의자들은 마음으로부터 존경하고, 그런 제국주의에 반대한 거의 유일한 지식인인 윌리엄 모리스는 거의 전혀 모르는 게 한국 지식계의 토대에서 ‘살충제 달걀’은 무럭무럭 자라나는 것은 아닌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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