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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배형경 작가의 서 있던 조각이 누웠다

갤러리시몬 개인전 ‘말러와 눕다’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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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3호 김금영⁄ 2017.09.14 14:16:30

▲'말러와 눕다'전이 열리는 갤러리시몬 전시장.(사진=갤러리시몬)

(CNB저널 = 김금영 기자) 고대 오리엔트 신화에 나오는 스핑크스는 수수께끼를 냈다. “아침에는 네 발로 걷고, 낮에는 두 발로 걷고,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존재는 무엇인가?” 답은 인간. 인간은 태어나서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리고 가장 많이 움직이는 청장년 시기, 앞을 보고 계속 걸어간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인간이 걷고 있다.


배형경 작가의 조각은 이 두 발로 걷는 인간을 우뚝 제자리에 멈춰 세웠다. 두 발로 꼿꼿하게 선 인간. 그런데 그 모습이 심상치 않다. 웃는지, 우는지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의 인간 형상들은 초점 없이 먼 곳을 응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아예 고개를 푹 수그린 모습도 발견된다.


그리고 갤러리시몬에서 11월 11일까지 열리는 개인전 ‘말러와 눕다’에서는 이 조각들이 아예 누웠다. 누운 모습이 편안해 보이지는 않는다. 벽에 얼굴을 파묻은 채 엎드리거나, 몸을 한껏 웅크린 채로 모인 조각들, 팔을 안으로 한껏 모으거나, 머리를 땅에 박은 채 불편한 자세를 취한 조각까지 한데 어우러진 모습은 놀라운 가운데 묘한 탄성을 자아낸다. 작가는 왜 인간을 서 있게 하고, 이번에는 눕혔을까?


▲벽에 머리를 박고 있는 조각이 눈길을 끈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서 있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인간의 수많은 감정 속 번뇌, 그리고 도전을 표현해 왔다. 인간이 다른 짐승과 구별되는 대표적인 특성으로 ‘직립보행’이 꼽힌다. 인간은 두 발로 걸으며 세상을 보고, 그렇게 진화의 길을 걸어왔다. 하지만 바쁘게 걷다보면 놓치는 것들이 있기 마련이다. 또 지치기도 한다. 이 가운데 배형경의 조각은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삶에는 비관, 허무, 슬픔, 기쁨, 열정 등 수많은 면들이 있죠. 사람들은 이중 특히 빛나는 부분을 향해 걸으려고 하고요. 하지만 우리에겐 어두운 부분도 있어요. 저는 이 부분에 주목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고, 또 보지 않으려는 부분이요. 어둠이 있어야 빛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서 있는 채 멈춘 사람들은 이 어두운 부분을 생각하죠.”


▲전시장에 설치된 다양한 인물 조각들.(사진=김금영 기자)

하지만 작가는 자신이 세상을 어둡게 바라보는 비관주의자는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 깊은 곳에 숨은 어두운 부분을 돌아보는 것은, 그 부분을 인정하고 다시 한 번 힘을 내려는 준비 과정이라는 것. 즉 작가의 조각들은 멈춰 섰지만, 또 새로운 발걸음을 딛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의 밝은 단면만 보지 않고, 다른 부분도 인정하고 이해하기 위해, 그렇게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작가는 “서 있는 조각에는 새로운 도전의 이야기가 함께 들어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 조각이 이번 전시에서 말러와 함께 누웠다.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말러의 음악 세계는 ‘고독함 속의 해학’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평생 기구한 삶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15명의 형제 가운데 8명이 세상을 일찍 떠났고, 그 또한 조울증과 강박신경증에 시달렸다. 아내의 외도와 사랑하는 딸이 세상을 떠난 일도 말러에게 고통과 절망을 줬다. 이렇듯 한 인간으로서의 말러의 삶은 고통과 번뇌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이 고통이 그의 음악세계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 빛뿐 아니라 어둠을 직면한 말러의 이야기는 작가에게 많은 영감을 줬다.


서 있는 조각의 ‘도전’, 그리고 누운 조각의 ‘반성’


▲각기 몸을 웅크리거나 한껏 고개를 숙인 채 누운 조각들이 한데 모여 있다.(사진=김금영 기자)

“삶의 어두운 측면을 직면하고 이를 예술로 풀어낸 말러는 많은 예술가들이 당연히 관심을 갖는 인물이에요. 그리고 이번 제 작업과도 맞닿는 점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말러는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의 시대를 연 베토벤 다음 세대로, 현대음악의 도화선에 불을 붙인 첫 작곡가라고 할 수 있어요. 새로운 것을 선보인 거죠. 저도 기존 서 있던 조각상에서 이번에 처음으로 누운 조각상으로의 첫 시도를 하는 변화의 시점에서 특히 말러의 이야기가 와 닿았습니다.”


작가는 앞서 서 있는 조각상의 모습을 ‘도전’이라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이번에 누운 조각상들은 ‘반성’을 말한다고 한다. 작가는 지난해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표정을 알아볼 수 없는 조각이 누워 있는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제가 학생이었던 시절 학생들의 데모는 일상 풍경이었어요.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높이는 청년들이 많았죠. 그리고 지난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는 제 작업이 굉장히 정치적이라 생각해요.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내는 것 자체가 현실에 참여하는 정치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에 주목하는 제 작업은 당연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요. 예술은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더 인물 작업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하나 모여 광장을 크게 밝힌 촛불들. 이 가운데 작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한다. 복잡한 사회상황 속 작업에 바빠 자신이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었다고. 이런 고민과 생각 속 작업을 하다가 어느덧 반성하는 자신의 자세를 발견했다고 한다. 서 있을 때는 무언가에 새로 도전해보려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면, 쭈그려 앉거나 누운 자세에서는 또 새로운 생각들이 작가를 찾아 왔다.


▲'말러와 눕다'전에 설치된 배형경 작가의 조각.(사진=김금영 기자)

“인생은 도전의 연속이라지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간의 과정과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시기가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우리는 계속 걸으려만 했는데, 그러다 보니 정작 반성의 시간을 잊은 건 아닐까요? 자신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모두 바라보고 인정한 뒤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비로소 제대로 걸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항상 서 있던 조각을 눕혀보니 작가에게도 그 인물들이 새롭게 느껴졌다. 생각이 차분해지고, 서 있을 때는 또 보지 못했던 세상이 보였다. 앞만 보면서 서 있거나 걸을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을 누워야 비로소 볼 수 있듯이.


▲어떤 인물은 바닥에 머리를 박고 있고, 또다른 인물은 누워 있는 등 다양한 포즈의 조각들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항시 귀를 열고 세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해요. 잘 살고, 잘 먹고, 화려하게 사는 건 저 아닌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남들이 돌아보지 못하는 부분에 주목하려는 노력, 그게 제게 필요하고 더 중요하죠.”


이렇게 사람을 세우고, 눕히는 가운데 결국 지키고 싶은 것은 ‘인간의 존귀함’이다. 작가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그 자체만으로 참 의미심장한데, 하물며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에 집착하고, 연구하고, 만들지 않을 수 없다”며 “나 또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하고 살아가는 수많은 인간 중 한 명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초기 작업 때는 앞만 보는 사람들처럼 저도 앞밖에 보지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인간 자체에 관심을 갖고 돌아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인간은 그 존재 자체가 아름답다는 걸 깨달았고요. 앞으로도 새로운 시도를 끊임없이 이어가면서 작업으로서 세상에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추후 어떤 작업이 만들어질지 아직은 모르지만 그래도, 아마도 그 중심엔 인간이 있을 것 같습니다.”


▲배형경 작가의 드로잉 작업.(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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