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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프랜차이즈는? ①] 60년 전 초창기에 '갑질' 많자 정부-검찰 나서 대대적 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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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53호 김광현⁄ 2017.09.15 10:15:27

맥도날드, KFC, 버거킹….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세계 10대 프랜차이즈는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다(2017년 프랜차이즈 다이렉트 조사 결과). 맥도날드가 1955년 현대적인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시작하면서부터 주입된 프랜차이즈 DNA가 지금까지도 공고히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프랜차이즈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미국도 처음부터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급격한 성장에는 진통이 따르는 법이다. 프랜차이즈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 이후에는 문제점도 속속들이 드러났다. 


2차 대전 후 급격 성장


2차 대전 후인 1950년대부터 20년간 미국의 프랜차이즈는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그 배경에는 두 가지 법이 있었다. 2차 대전 참전 군인은 당시 통과된 법에 따라 일정 수준의 자금을 지원받았는데, 마침 상표권이 제정되면서 프랜차이즈가 지식 재산권으로 인정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됐다. 이에 제대 군인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프랜차이즈 본사를 세우거나 본사와 가맹계약을 맺으면서 프랜차이즈 산업은 호황을 맞았다. 장사에 재능이나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 프랜차이즈 가맹점 형태에 혹하기 쉬운 것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다.


▲미국에서는 2차 대전 참전 군인에게 자금을 지원하는 법안(G.I. Bill)이 통과됐다. 사진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법안에 서명하는 모습.(사진 = FDR Library Photo Collection)


대표적인 브랜드가 맥도날드다. 맥도날드는 레이 크록을 초대 회장으로 영입하고 매장 운영 방식 통일, 매장에 관계없는 동일한 품질의 음식 제공, 가맹점주 교육, 공급업체와의 수평적인 관계 등을 특징으로 하는 독자적인 프랜차이즈 체계를 만들었다. 이러한 혁신에 힘입어 맥도날드는 10년 만에 미국에 700개가 넘는 매장을 두는 한편, 초대 회장 레이 크록은 <타임 매거진>에 의해 20세기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한 사람으로 지명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이 시기에 던킨도너츠(1955), 버거킹(1956), 피자헛(1959) 등 유명 브랜드들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다. 외식 분야는 물론 편의점, 자동차 대체 부품, 호텔, 세탁 전문 서비스 등 다양한 분야에서 프랜차이즈들이 생겨났다. 


▲맥도날드에 현대적인 시스템을 도입한 레이 크록 사장.(사진 = flickr 이용자 mbell1975)


프랜차이즈 산업은 금융계에도 손을 뻗쳤다. 1966년 KFC는 일반 투자자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월가(Wall Street)에 주식을 상장(public offering, 주식 공모)했다. 물론 이를 비아냥대는 시선도 있었다. 한 언론은 “수십 년 만의 가장 멍청한 인기” 중 하나라고 공격했다. 그러나 그러거나 말거나 프랜차이즈 업체들의 주식 상장은 유행처럼 번졌고 여러 프랜차이즈의 본사 임원은 백만장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유명 프랜차이즈 브랜드들은 주식 시장에 상장돼 큰 수익을 올렸다. 사진은 뉴욕의 금융 중심지 월 스트리트 표지판.(사진 = 위키미디어 이용자 Vlad Lazarenko)


프랜차이즈 호황 뒤 문제점들 터져 나와


1970년대 들어 미국의 프랜차이즈 산업은 절정에 이르렀다. 현대식 프랜차이즈가 시작된 지 15년 만에 프랜차이즈 시장 규모는 36배 커졌고 가맹점 사장님 수는 67만 명에 이르렀다. 규모가 커지면서 곳곳에서 문제점들이 불거져 나왔다. 


하나는 출점에만 집중한 본사의 경영 구조였다. 건전한 프랜차이즈 생태계를 만들기보단 가맹점주에게서 받는 초기 가맹비로 연명하려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많았다. 지금 한국에서 우리가 보는 현상 그대로다. 


대표적인 예가 치킨 프랜차이즈 미니 펄 후라이드 치킨(Minnie Pearl’s Fried Chicken, 이하 미니 펄)이었다. KFC가 시장에서 성공하자 이를 모방하는 치킨 프랜차이즈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났는데 미니 펄도 그 중 하나였다. 


▲광고 모델 미니 펄의 사진과 사인이 들어간 미니 펄 프라이드 치킨 상자.(사진 = Les Kerr)


미니 펄은 가맹 계약을 맺을 때마다 받는 가맹비를 주요 수입원으로 성장했다. 1968년에는 마침내 주식 시장에도 상장됐다. 미니 펄의 주식은 한 주당 68달러에 거래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치명적인 두 가지 약점을 갖고 있었다. 하나는 통일되지 않은 조리법이었다. 미니 펄은 “매장마다 치킨 맛이 다르다”는 악평을 받았다. 미니 펄은 각 매장에서 일하는 조리사들로 하여금 동일한 조리법으로 요리하도록 설득하지 못했다. 맥도날드 같은 미국 프랜차이즈는 전세계에서 동일한 맥도날드 맛을 제공한다는 게 생존의 첫째 조건이다. 서울의 맥도날드 맛과 부산의 맥도날드 맛이 다르다면 그건 맥도날드일 수 전세계 이름만 프랜차이즈이지, "각기 다른 집"이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고, 결국 프랜차이즈 전체가 망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는데, 미니 펄은 이런 원칙에서 벗어난 것이었다. 이런 측면에서 현재의 한국 프랜차이즈 산업 전체에 대해 "프랜차이즈 맞아?"라는 의혹을 던질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니 펄의 또 다른 문제점은 회사의 매출 거의 대부분을 신규 가맹비에 의존한다는 것이었다. 한국의 일부 문제적 프랜차이즈 본사의 행태와 똑같다. 1968년까지 405개의 가맹 계약을 체결한 미니 펄이 실제 운영 중인 점포는 단 5개뿐이었다. 1969년까지 미니 펄은 1600개의 가맹 계약을 체결했으나 운영 중인 점포는 260개 선에 그쳤다. 


이 같은 사실을 이상하게 여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1970년 미니 펄의 회계 장부 조사에 착수했고 이 과정에서 소득 신고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68달러였던 주가는 44센트까지 곤두박질쳤다. 투자자들은 소송을 제기했고 결국 미니 펄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여기서 미국과 한국의 차이점 역시 읽을 수 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방치하는 정부가 있고(시장경쟁 체제가 망가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정부가 존재한다는 점이 놀랍긴 하지만), 조사해서 '경쟁 시장체제'를 유지시키는 정부가 있다는 점이다. 


스타 마케팅


유명인을 앞세운 마케팅도 문제였다. 1960년대에는 수 많은 프랜차이즈가 유명인의 이름을 빌려 대중의 인기를 얻고자 노력했다. 


대표적인 예는 풋볼 스타를 모델로 내세운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로드웨이 조(Broadway Joe)였다. 조 나마스(Joe Namath)의 별명 '브로드웨이 조'를 상호로 딴 이 회사는 플로리다, 뉴욕, 텍사스 주에 11개 점포를 낼 만큼 성장했다. 이 회사는 증시에도 상장돼 한 주당 17달러까지 값이 오르기도 했다. 


▲햄버거 프랜차이즈 브로드웨이 조(Broadway Joe)는 당시 풋볼 스타 조 나마스(Joe Namath)의 별명 ‘브로드웨이 조’를 그대로 본뜬 이름이다. 사진은 뉴욕 예츠의 쿼터백이었던 조 나마스.(사진 = 위키미디어 이용자 New York Jets)


그러나 조 나마스가 프랜차이즈 사업에서 발을 빼면서 브로드웨이 조는 성장 동력을 잃었다. 주식은 1.5 달러로 떨어져 장외 시장에서 거래되는 굴욕을 겪었고 결국 1970년 12월 문을 닫았다.


프랜차이즈의 규모에 어울리지 않게 일급 슈퍼스타들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와, 대단한 업체인 모양이다"라는 탄성을 이끌어내는 작전은, 미국에선  젊은이들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인기 연예인으로 모델로 내세워 눈길을 끄는 행태는, 미국에선 50년 전 행태였지만, 지금 우리는 매일 보고 있는 프랜차이즈 전략 아닌가?


물품 강매로 집단소송 당해


가맹점주에게 물품을 고가로 강매하는 관행도 도마 위에 올랐다. 대표적인 사례가 치킨 딜라이트(Chicken Delight) 사건이다. 치킨 딜라이트는 1960년 미국 40개 주에 160개의 점포를 낸 치킨 프랜차이즈였다. 


치킨 딜라이트는 가맹점주에게 가맹비를 받지 않는 대신 필요 물품을 전부 가맹점주가 구매하도록 하는 데서 이익을 얻었다. 치킨 딜라이트 본사는 종이컵, 종이 접시, 치킨 믹스 등의 공급 가격을 올려 가맹점주에게 판매했다. 


이 같은 사실을 부당하게 여긴 가맹점주들은 집단 소송으로 본사에 대응했다. 94명의 가맹점주들은 필요 물품 구입을 본사로부터만 구입하게 하는 건 반독점법 위반이라며 변호사를 통해 1967년 본사에 집단 소송을 제기했다. 대법원까지 간 소송에서 대법원은 치킨 딜라이트 본사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이 사건은 치킨 딜라이트의 프랜차이즈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본사는 물품의 강매를 중지했고 800명의 가맹점주에게 각각 2600달러를 보상했다. 본사의 재정이 악화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가맹점 절반이 문을 닫게 됐다. 


그러나 이 사건을 계기로 프랜차이즈에 대해 사람들은 경각심을 갖게 됐다. 영세 가맹점주는 노후 자금을 잃는 반면 본사는 단단히 한몫 챙기는 일에도 경계심을 품게 됐다. 당시 뉴욕 검찰총장은 “프랜차이즈 본사는 많은 경우 화려한 색상의 유인물을 제시하며 한탕 챙길 생각만 한다”며 “시민들이 자기 삶을 포기해 얻는 것은 형편없는 가맹점뿐이다”고 비판했다. 


보스턴의 한 변호사도 프랜차이즈 본사에 대한 비판에 가담했다. 그는 “가맹점주는 주로 중년의 나이에 대피처를 찾으며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며, 이들은 급격한 변화에 완전히 무방비 상태다. 수많은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맹점주는 어린아이 같다'며 끊임없는 규율과 통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본사는 그 증거를 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언론사도 비판에 가담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은 1970년 5월 기사에서 “신참 가맹점주들이 가진 모든 자금을 프랜차이즈에 쏟아 붓고서야 그들은 모든 게 증발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고 말했다. 법조, 언론계 등을 통해 프랜차이즈 산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되면서 프랜차이즈의 명성은 추락했다. 문제가 드러나자 정부와 검찰-언론 등이 교정에 적극 나선 점이 미국의 초창기 프랜차이즈와 한국의 현재 프랜차이즈 산업과의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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