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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의 요즘 미술 읽기 (41) 삶 속의 예술, 디자인] 디자인 제품으로 ‘날 사랑하는 공간’ 만들어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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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0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7.11.06 10:07:21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지난 칼럼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만나는 일상의 많은 물건들은 모두 감상하고 비평할만한 누군가의 창조물이라 적었다. 오늘은 이 내용을 이어 특별한 물건들을 만드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삶 속의 예술이 중요한 시대인 만큼 삶의 공간에 놓이는 물건들도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이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성화봉을 디자인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디자이너인 김영세가 ‘아름답고, 쓰기 좋고, 만들기 쉬운 디자인이 최고의 디자인’이라 말했듯 서로 공존하기 어려울 것 같은 요구를 다 만족시켜야 하기에 디자인은 어떤 면에서 더 어려운 작업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어려운 요구들을 모두 만족시키는 탁월한 제품들은 끝없이 만들어졌다. 때로는 예술보다 더 예술 같은 제품이 창조되기도 한다. 

디자인의 영향력이 커진 시대인 만큼 미술관에서도 디자이너의 작업 세계를 확인할 수 있는 전시들이 많이 기획되고 있다. 올해 연말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디자이너의 세계’전(2017. 12. 22~2018. 3. 4)이 열릴 예정인 예술의 전당에서는 건축, 가구, 패션, 텍스타일 등, 다양한 디자인 영역의 전시를 (거의)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다. 얼마 전 열렸던 카림 라시드(Karim Rashid),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의 전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디뮤지엄(D MUSEUM)과 대림미술관 역시 수준 높은 디자인 기획전들을 선보이고 있다. 디뮤지엄은 현재도 플라스틱을 매체로 하는 디자인 작업을 선보이는 ‘PLASTIC FANTASTIC: 상상 사용법(2017. 9. 14~2018. 3. 4)’을 진행 중이며, 이전에는 샤넬(CHANEL), 에르메스(Hermès)의 전시가 열리기도 했다. 한편 대림미술관에서는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 핀율(Finn Juhl), 칼 라거펠트(Karl Lagerfeld)뿐 아니라 예술과도 같은 책을 만드는 게르하르트 슈타이들(Gerhard Steidl) 등도 소개했다. 아마 인상적이었던 디자인 관련 전시들을 나열하려면 끝도 없을 것이다. 

▲예술의 전당에서 12월부터 열릴 예정인 ‘알렉산더 지라드(Alexander Girard), 디자이너의 세계’전 포스터.

현대 디자인의 문을 연 윌리엄 모리스

그렇다면 오늘날과 같은 디자이너의 모습을 가장 먼저 보여주었던 인물은 누구였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거의 모든 디자인사 책의 가장 첫 장을 장식하는 인물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를 꼽을 것이다. 그는 산업화로 비롯된 사회 문제들, 특히 장인 정신과 인간 노동의 존엄성이 사라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창조적이고 예술적인 물건들을 제작했다. 사회 속의 예술을 이루고자 했던 미술공예운동(Art and Craft Movement)의 중심인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모리스는 산업화에 비판적이었지만, 좋은 재료로 실제 생활에 도움이 되는 좋은 품질의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목표 속에서 작업했기에 시대에 역행했다고만 말할 수 없다. 그가 디자인한 가구, 태피스트리, 타일, 벽지 등은 오늘날 사용하는 데에도 전혀 무리가 없다. 모리스의 디자인에 근거한 제품들은 인터넷에서도 어렵지 않게 구매 가능한데, 그의 트레이드마크와 같은 식물과 동물들이 조화를 이룬 패턴이 돋보인다. 

예술과도 같은 물건이라면 아르 누보(Art Nouveau)도 빼놓을 수 없다. 이름 자체가 ‘새로운 예술’인 아르 누보는 미술공예운동과 달리 대량생산이나 기계문명을 인정하면서도 예술과도 같은 공예품을 제작해서 차별화를 시도했다. 곡선이 강조된 자연의 유기적 형태, 여성 도상, 화려하고 섬세한 세부묘사 등이 두드러진 아르 누보의 대표 디자이너는 보석 디자이너이자 유리공예가였던 르네 랄리크(René Lalique)일 것이다. 랄리크는 향수 브랜드로도 우리에게 익숙한데, 그 정체성에 맞게 오늘날에도 남다른 향수병 디자인을 선보인다. 지금도 대중적으로 사랑받는 램프를 만들어낸 루이스 컴포트 티파니(Louis Comfort Tiffany)나 스페인을 대표하는 건축가인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도 이 시기에 활동했다. 이전 칼럼에서 언급했던, tvN의 ‘꽃보다 할배 스페인 편’뿐만 아니라, 우디 앨런(Woody Allen)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Vicky Cristina Barcelona)’(2008)에서도 가우디의 건축을 즐길 수 있다. 

▲유리공예가 르네 랄리크가 만든 ‘잠자리 여신’ 브로치. 사진 = 위키피디아

예술보다 더 예술스러운 디자인-공예의 세계

기계가 만들기 어려워 보이는, 마치 오늘날의 한정판 제품으로 보이는 작업들에서만 남다름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업화 시대의 표준을 제시하는 디자인을 추구했던 바우하우스(Bauhaus) 디자인은 생산성과 기능성을 극대화하면서도 디자이너의 독창성을 절묘하게 결합시켰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바우하우스 의자로도 불리는 마르셀 브로이어(Marcel Breuer)나 미스 반 데어 로에(Mies van der Rohe)의 의자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요즘도 많이 판매되는 가장 기본적인 형태의 탁상용 스탠드 램프도 바우하우스 디자인에서 일찍이 선보였던 것이다. 

▲산업화에 반대하면서 미술공예운동을 벌인 윌리엄 모리스가 만든 태피스트리 디자인(부분). 사진 = 위키피디아

그렇다면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어떨까?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변화는 디자인에서도 나타난다. 우선 매우 정밀한 제품까지 대량 생산이 가능해진 시대인 만큼 디자이너들도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한편 오늘날의 디자이너들은 기능성에 집중했던 모더니즘 디자인의 규범을 벗어나 장식성이나 디자이너의 개성이 담긴 표현을 강조하고, 때로는 형식적인 실험을 위해 실용성을 과감히 벗어나기도 한다. 재미와 웃음을 불러낼 수 있는 디자인을 통해 사용자와 심리적 교감을 이끌어내기도 한다. 아마 오늘날 가장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타 디자이너로는 필립 스탁(Philippe Starck)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주시 살리프(Jucy Salif), 마스터스 체어(Masters chair), MS 옵티컬 마우스 등등, 최고가 상품에서부터 건축, 일상의 소품까지 디자인하지 않은 제품이 없을 정도다.  

디자인 역시 상상을 통해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하듯 디자인한다’는 김영세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우리를 둘러싼 일상의 제품들이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울림을 주고, 우리의 정서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대단한 디자인 제품을 소장할 필요는 없다. 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취향에 맞는 물건들로 나의 방, 사무실, 그리고 내가 소중히 여기는 공간을 꾸민다면 미술관 못지않은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정리 = 최영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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