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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나홀로 세계여행 (150) 튀니지] 한니발이 호령하던 아름다운 흰 도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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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64호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2017.12.04 09:20:42

(CNB저널 = 김현주 광운대 미디어영상학부 교수)

3일차 (튀니스 ↔ 카르타쥬 당일 왕복)

동화 마을, 시디 부 사이드

프랑스 아브뉘가 끝나는 지점에 있는 시계탑을 지나니 튀니스 마린(Tunis Marine) 역이 나온다. 도시와 북쪽 교외를 잇는 TGM 전철이 출발하는 곳이다. 지중해를 오른쪽에 두고 열차는 북상한다.

30분 뒤 도착한 시디 부 사이드(Sidi Bou Said)에서 열차를 내리니 아주 예쁜 마을이 펼쳐진다. 지중해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하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고급 주택 지구다. 화강암 보도, 까페, 식당, 호텔, 갤러리 등 모든 것이 하얗거나 파랗다. 황홀하게 아름다운 바닷가 언덕 위 마을에서 하루 이틀 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곳이 너무 많지만 우리네 인생이 너무 짧고 각박함을 아쉬워하며 발길을 돌린다.

시디 부 사이드에서 시내 방향으로 전철 다음 역인 카르타쥬 아밀카(Carthage Amilcar) 역과 프레지덩스(Presidence) 역 중간쯤,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셍 시프리엉 교회(Basilique de Saint-Cyprien) 터에 들른다. 주춧돌 몇 개만이 남아 한때 이 자리에 교회가 서 있었음을 알려준다.

이랬던 미국이…

아밀카 역에서 서쪽으로  10분쯤 걸으니 북아프리카 미국인 묘지 및 추모관(North Africa American Cemetry and Memorial)이 나온다. 튀니지가 기증한 땅에 1960년 미국 정부가 세운 것이다. 1942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이어진 북아프리카 전투, 즉 모로코와 알제리, 튀니지에서 사망한 미군 2833 위가 모셔진 묘지와 실종되거나 시신을 찾지 못한 3724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가 서 있다.

2차 대전 중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승리함으로써 연합군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진격할 수 있었다. 당시 유럽 동서남북의 바다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군을 남쪽으로 우회해서 압박한다는 계산이 맞았던 것이다. 추모비에는 ‘명예로운 길을 갔던 그들에게’ ‘무덤은 없지만 그들의 이름은 영원할 것이다’라고 기록돼 있다. 미국은 언제든 대의를 위해서 피 흘릴 준비가 돼 있던 나라였다. 오늘날 트럼프의 미국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달랠 길 없다.

▲마치 동화책에 나오는 마을 같은 시디 부 사이드. 언덕 위에 하얀 집들이 늘어서 있는 고급 주택 지구다. 사진 = 김현주

▲시디 부 사이드에서는 지중해가 내려다보인다. 사진 = 김현주

허망하게 사라진 제국

카르타쥬 한니발(Carthage Hannibal) 역까지 이동해 바오밥 나무들이 늘어선 길을 따라 약 10분쯤 걸으니 카르타고 국립박물관이 나온다. 카르타고 유적지에 앞서 성당(Saint-Louis Cathedrale)이 먼저 반기는 것이 생뚱맞다.

박물관은 3000년 전(BC 9세기) 고대 카르타고가 섰던 터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모아 놓았다. 제국은 지중해를 놓고 로마와 패권 싸움을 벌였고, 제2차 포에니 전쟁(Punic War, BC 218)에서 한니발은 이베리아 반도, 피레네 산맥,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까지 진격해 15년 동안 이탈리아를 지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훗날 카르타고는 복수의 칼을 갈던 로마에게 역침공 당하면서 패배해(BC 146) 로마의 식민지가 됐고 도시는 철저히 파괴됐다. 카르타고 유물 몇 점만이 찬란했던 북아프리카 한니발 제국의 한때를 전해 준다.

▲아밀카 역에서 서쪽으로 10분쯤 걸으니 북아프리카 미국인 묘지 및 추모관이 나온다. 사진 = 김현주

이후 튀니지는 아랍(697), 오토만(1534), 그리고 프랑스(1881)로 통치자가 바뀌었다가 1957년에 가서야 독립을 얻었다. 박물관 경내 신전과 궁전 터에는 겨우 주춧돌 수십 개와 잘려나간 기둥 몇 개가 남아서 고대 북아프리카 제국의 시련 많았던 역사를 전해준다. 그때처럼 오늘도 짙고 푸르게 반짝이는 지중해만이 모든 사연을 아는 것 같다. 하얀 집들로 가득 찬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카르타고 유적지 언덕에서 지중해 건너 로마를 꿈꿨을 영웅 한니발을 그려 본다.


4일차 (튀니스 → 이스탄불 도착) 

튀니스 국제회의에 참석한 사람들

숙소 아침 식사 장소에서 여러 명의 아프리카인을 만났다. 체격이 작고 얼굴이 갸름한 모잠비크인, 체격이 큰 우간다인, 체격이 작고 둥근 얼굴의 부르키나 파소인…. 튀니스에서 열린 국제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이다. 용모와 체격의 다양성만큼 언어도 다양하다.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모잠비크인, 영어가 능숙한 우간다인, 프랑스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브루키나 파소인을 통해 아프리카의 다양한 모습을 읽는다. 상대적으로 시설이 좋고 교통이 편리한 튀니지가 아프리카의 요충이 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카르타고 국립박물관으로 향하는 길. 바오밥 나무들이 길을 따라라 늘어서 있다. 사진 = 김현주

▲카르타고 박물관은 3000년 전(BC 9세기) 고대 카르타고가 섰던 터에서 발굴한 유물들을 모아 놓았다. 사진 = 김현주

튀니스 메디나

오후에 이스탄불로 떠나기 전, 오전 시간을 이용해서 튀니스 시내 탐방에 나선다. 승리광장에 서 있는 프랑스 문(Porte de France)을 지나 메디나로 들어간다. 튀니스 메디나는 수스의 그것보다 규모가 훨씬 크다. 공방 장인들의 현란한 손재주를 감상하는 것도 큰 볼거리다. 메디나 곳곳에 박혀 있는 모스크는 때맞추어 일시에 코란을 낭송하는 확성기를 틀어댄다. 낮은 언덕을 따라 올라 메디나 끝나는 곳 카스바(Kasbah) 광장에 닿는다. 튀니지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지은 모스크와 각종 정부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1942년 11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이어진 북아프리카 전투에서 숨진 미군 2833 위가 모셔진 묘지, 실종되거나 시신을 찾지 못한 3724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비. 사진 = 김현주

▲튀니스 메디나 카스바 광장. 튀니지 특유의 건축 양식으로 지은 모스크와 각종 정부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다. 사진 = 김현주

아프리카 항공 교통 중심

튀니스 공항은 화려할 것 없는 소박한 공항이지만 유럽, 파리, 마그렙 지역 이외에도 사하라 이남 프랑스어 사용 지역(모리타니아, 말리, 세네갈, 코트디브와르, 부르키나 파소 등)으로 항공기가 떠나는 공항이다. 항공 연결편은 언제나 그 나라(도시)의 지정학적 환경을 말해주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회색 눈, 푸른 눈의 늘씬한 튀니지 여성들을 실컷 감상하면서 지루한 대기 시간을 달래며 이스탄불 행 항공기를 기다린다.  

다음 목적지가 같은 대륙 내 모리셔스임에도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아프리카 대륙 동남쪽 끝 인도양 한복판에 위치한 모리셔스까지 아프리카 대륙을 종단하는 루트는 항공기 연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있더라도 무척 비싸다. 이스탄불이나 유럽을 경유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다. 게다가 이스탄불에서 모리셔스까지는 아시아나항공과 함께 스타 얼라이언스(Star Alliance) 동맹체인 터키항공 운항 구간이므로 아시아나 마일리지를 사용해 보너스 항공권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항공기가 날아오른다. 튀니지여 안녕. 카르타고여 안녕. 항공기는 30분도 안 걸려서 이탈리아 시칠리 상공에 들어선다. 옛날 노예들이 죽을힘을 다해 함선을 저어도 여러 날 걸렸을 길이다. 수천 년 인류 역사가 겹겹이 쌓인 바다 위를 난다. 곧 아드리아해, 발칸반도, 그리고는 이스탄불이다. 지금이야 유럽, 아프리카, 중동으로 지역이 구분돼 있지만 정확히 얘기하면 그냥 지중해 지역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옳았을 곳들이다. 

(정리 = 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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