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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인사이트] 돌아온 엘리엇,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어떤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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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3호 정의식⁄ 2018.04.13 11:09:02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엘리엇이 변수로 등장했다. (사진 = 연합뉴스)

지난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을 반대했던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3년 만에 돌아왔다. 이번 타깃은 지배구조 개편을 선언한 현대차그룹이다. 엘리엇은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찬성한다면서도 보다 강도 높은 주주 이익 제고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혀 ‘벌처 펀드’답게 행동할 것임을 시사했다. 보유 주식 수나 현대차그룹의 상황 등이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와는 많이 달라 엘리엇의 영향력이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이미 현대차 3사 주가는 엘리엇 특수를 누리고 있는 상황. 갑자기 등장한 엘리엇 변수가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엘리엇, 추가 조치 요구… 현대차 구상에 ‘변수’ 

 

3월 28일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을 통해 그간 공정위로부터 해결 압박을 받아온 4개 순환출자 고리를 모두 끊는 내용의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현대모비스의 모듈‧AS부품 사업을 인적 분할해 현대글로비스에 흡수합병시키고 이후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대주주와 기아자동차, 현대글로비스, 현대제철 등 계열사들이 합병된 현대글로비스의 지분을 매각하는 일련의 작업을 통해 현대글로비스를 기아차 산하 기업으로 만들어 현대모비스가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순환출자를 해소한다는 구상이었다.

 

그간 증권가에서 많이 거론됐던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차 3사를 사업 부문과 투자 부문으로 정리해 현대모비스를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는 방식을 선택하지 않고 훨씬 많은 비용이 소요되는 직접 지분 매입 방식을 선택한 데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는 물론 증권가에서도 호평이 쏟아져 현대차의 구상은 곧 현실화될 것처럼 보였다.

3월 28일 현대차그룹이 공개한 지배구조 개편안. (사진 = 연합뉴스)

하지만 일주일 후 변수가 등장했다. 4월 4일 미국계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투자자문사 ‘엘리엇 어드바이저스 홍콩’은 보도자료를 통해 자사가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사의 보통주 10억 달러(한화 약 1조 500억 원) 규모를 보유하고 있다며 지배구조 개편의 추가 조치를 주문하고 나섰다.

 

일단은 엘리엇이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에 긍정적인 입장을 표명했지만, 과거 삼성그룹이 추진했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해 강력한 태클을 걸었던 전력 때문에 이번에도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주주 이익을 내세워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투자금융업계가 엘리엇의 일거수일투족을 면밀히 주시하는 이유다. 과연 이번에 엘리엇은 어떤 전략을 취할까?

 

시체 뜯어먹는 벌처 펀드… 국가‧기업 무차별 공격

 

엘리엇의 전략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먼저 엘리엇이 어떤 회사인지 알아야 한다. 엘리엇은 일반적으로 행동주의(Activism)를 표방하는 헤지 펀드(hedge fund)로 분류된다. 헤지 펀드는 소수의 투자자들을 비공개로 모집해 고수익을 추구하는 기업형 펀드를 말하는데 이 중에서도 행동주의 펀드는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주주 이익을 추구하는 전략을 택한다. 

 

대표적인 행동주의 전략으로는 배당 확대, 자사주 매입, 인수합병(M&A), 지배구조 개편 등이 있다. 한마디로 주가를 부양할 수 있는 다양한 조치를 기업에 적극적으로 요구, 관철시키는 펀드다. 과도한 기업 경영권 침해로 인해 일각에서는 ‘기업 사냥꾼’으로 매도되기도 하지만 헤지 펀드 중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어 행동주의 펀드의 투자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엘리엇(Elliott Management Corporation)은 1977년 미국의 거부 폴 엘리엇 싱어가 설립한 투자회사로 2017년 기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행동주의 펀드다. 관리 대상 자산이 350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는 전세계 헤지 펀드 중 9위에 해당한다. 파산 혹은 파산 직전의 기업 채권을 집중 매수해 일명 ‘벌처 펀드’라고도 불린다. 부실 기업 채권을 인수해 높은 수익을 얻는 행태를 시체를 뜯어먹고 사는 독수리에 빗댄 명칭이다. 

엘리엇의 창업자. 폴 엘리엇 싱어 회장. (사진 = 엘리엇)

엘리엇은 지난 2014년 아르헨티나를 두번째 국가부도 사태로 몰아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과거 2001년 아르헨티나가 950억 달러 규모의 국가 부도를 냈을 때 아르헨티나 정부는 자국의 국채를 매입한 해외 투자자들과 여러 차례 협상을 벌여 채무의 70% 내외를 탕감받았다. 하지만 엘리엇 등 헤지 펀드들은 국채 탕감을 거부했다. 특히 엘리엇은 국가 부도 당시 4800만 달러라는 폭락가에 구입한 아르헨티나 국채에 대해 액면가 6억 3000만 달러의 ‘전액 상환’을 요구했다. 

 

헤지 펀드들은 아르헨티나 정부가 약 15억 달러의 국채를 상환하기 전까지는 채무 조정된 다른 빚들도 상환할 수 없게 해달라고 미국 법정에 소송을 걸었고, 2014년 6월 미국 대법원은 엘리엇 등 헤지 펀드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아르헨티나 정부는 궁지에 몰렸다. 아르헨티나로서는 헤지 펀드들에게 액면가로 전액을 상환하게 되면, 앞서 채무 조정을 약속한 다른 채권자들에게도 같은 조건을 적용해야 했다. 결국 아르헨티나 정부는 13년 만에 다시 국가 부도를 선언했다.

 

엘리엇은 비슷한 전략을 콩고, 페루 등 빈곤 국가에 적용해 거액을 벌어들였다. 2000년 말 반정부 시위의 격화로 망명을 모색하던 페루의 알베르토 후지모리 대통령이 좋은 사례다. 당시 그의 대통령 전용기는 엘리엇에 압류된 상태였다. 후지모리가 대통령으로서 내린 마지막 명령은 엘리엇이 앞서 1140만 달러에 구입한 부실 국채에 대해 5800만 달러를 상환하는 것이었다. 

2013년 4월 영국 런던에서 아르헨티나 국가 부도 사태를 야기한 벌처 펀드에 반대하는 희년 부채 캠페인(Jubilee Debt Campaign) 시위자들. (사진 = 희년 부채 캠페인)

기업에 대해서도 엘리엇은 비슷한 전략을 사용한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의 석면 기업 오웬스코닝, USG 등에서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석면증 증세를 호소, 소송이 잇따르자 석면 기업들은 파산 상태가 됐다. 이 때 헐값으로 오웬스코닝을 사들인 폴 싱어는 ‘석면증 환자들이 꾀병을 부리고 있다’는 캠페인을 조종하고 공화당 정부와 언론을 활용해 배상금 액수를 크게 줄였다. 이후 폴 싱어는 기업가치가 오른 오웬스코닝을 매각해 약 10억 달러를 벌었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삼성그룹의 3세 승계 방향이 드러나면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간의 합병 물밑 작업이 진행되던 2015년 3월 경부터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집중 매집했다. 합병계획 발표 직전까지 공시의무 지분율 5%에 근소하게 부족한 4.95%를 보유하고 있다가 합병 발표가 나자 지분율을 7.12%로 올리며 제3대 주주가 된 후 삼성물산 주식가치가 과소평가됐다며 합병 반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3세 승계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함이었다.

 

엘리엇은 주주총회 소집통지 및 결의 금지, 자사주 처분 금지 가처분신청 등을 제기하며 합병 절차에 번번이 제동을 걸었지만 당시 국내 법원이 최종적으로 삼성 손을 들어주고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엘리엇의 의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이후 2016년 10월 엘리엇은 삼성전자 주식을 매집한 후 삼성전자의 주가 제고를 위해 지주회사와 사업회사로 분리하고 사업회사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하라고 주장했다. 이에 삼성전자는 지주회사 분리 등은 시행하지 않았지만 특별배당, 자사주 매입 등 일련의 주주환원 정책은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엘리엇의 요구를 부분적이나마 수용한 것이다.

 

엘리엇 '진짜 의도’에 관심 집중

 

이번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엘리엇은 “현대차그룹의 주요 주주로 현대차그룹이 개선되고 지속 가능한 기업 구조를 향한 첫발을 내디딘 점을 환영한다”며 “출자구조 개편안은 고무적이나 회사와 주주를 포함한 이해 관계자를 위한 추가조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경영진이 현대차그룹 각 계열사 기업 경영구조 개선과 자본관리 최적화, 그리고 주주환원을 어떻게 달성할지에 대한 더 세부적인 로드맵을 공유할 것을 요청한다”며 “이런 사안에 대해 경영진과 이해 관계자들이 직접 협력하고, 나아가 개편안에 대한 추가 조치를 제안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당장은 아니지만 근시일내에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과 관련해 자사의 입장을 요구할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다만 과거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와는 달리 이번에는 엘리엇이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당시보다 보유 주식 수가 현저하게 적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엘리엇이 보유한 현대차 3사의 주식은 약 1.4% 내외로 추정된다. 

 

이번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이 최종 결정될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임시 주주총회는 오는 5월 29일로 예정돼 있다. 이날 주총 특별결의 사항으로 참석 주주의 3분의2 찬성, 발행주식 총수의 3분의1 이상이 찬성하면 분할합병안이 통과된다. 엘리엇이 보유한 주식으로는 주주총회에서 이렇다할 영향력을 발휘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엘리엇이 노리는 것이 어느 정도 주가를 띄우고 차익을 내려는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구조. (사진 = 연합뉴스)

다만 엘리엇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처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에 이의를 제기하고 합병을 반대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현대차그룹이 산정한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은 순자산 가치 기준에 따른 0.61 대 1이다. 현대모비스 주주가 주식 1주당 현대글로비스 신주 0.61주를 배정받는 구조다. 현대모비스 주식은 분할 비율만큼 주식 숫자가 줄어들지만, 지분율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 국내 증권업계나 시민단체에서 이번 현대모비스 분할이 기업 가치 제고보다 정 회장 부자의 그룹 지배력 확보에 더 초점을 맞춘 전략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 현대모비스 주주들이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현재 현대모비스 지분 중 오너측 우호지분은 개인 지분과 기아차(16.9%), 현대글로비스(0.7%), 현대제철(5.7%) 지분 등을 합해 약 30% 정도로 알려졌다. 외국인 지분율은 약 48%다. 엘리엇이 분할에 반대하고 외국인투자자나 국민연금 등 기관투자자, 소액주주가 이에 동조할 경우 분할이 무산될 수도 있는 구조다.

 

“삼성 때와 다를 것” vs “합병 무산 가능성 있어”

 

현대차그룹은 원칙에 근거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그룹은 엘리엇의 보도자료가 발표된 직후 “향후 기업가치를 제고하고 투자자 이익을 높이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며 국내외 주주들과 충실히 소통할 계획”이라는 짧은 논평을 내놨다.

 

금융당국도 이런 시나리오의 추진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보는 분위기다. 5일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와 관련 “민감한 이슈가 아니다”며 “현재 엘리엇이 가지고 있다고 밝힌 지분 구조가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할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삼성-엘리엇의 분쟁을 통해 교훈을 많이 얻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엘리엇이 삼성 때와는 다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엘리엇이 민감한 이슈로 등장하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사진 = 연합뉴스)

증권가에서는 엘리엇 이슈가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보는 의견과 주주 친화 정책 요구에 그칠 것이라는 의견이 동시에 거론되고 있다.

 

이재일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6일 보고서에서 “엘리엇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안에 찬성할 경우 존속 현대모비스의 주주환원정책은 분할 전보다 약화하고 합병 현대글로비스는 기존 대비 재무와 현금 흐름 모두 개선돼 주주환원정책이 강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또 “엘리엇이 분할·합병에 반대하면 현대모비스 매수가 더 유리하다”고 봤다.

 

이 연구원은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면 주주권 행사를 위해 현대모비스 지분을 추가로 인수해야 하므로 주주권 프리미엄이 높아질 것”이라며 “현대모비스의 외국인 지분율이 48.25%에 달해 엘리엇과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10% 이하 지분만으로 합병이 무산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준섭 KB증권 연구원은 “엘리엇이 합병에 반대하지 않고 계열사별 주주친화정책을 구체화하라는 요구를 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에 반대했을 때 실익보다 계열사 주주친화정책이 이뤄졌을 때 실익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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