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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탈‧겸손‧혁신의 리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유산

그룹 체질‧규모 확 바꿔… 정도경영‧사회적책임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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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0호 정의식⁄ 2018.05.21 16:11:05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구본무 LG 회장의 빈소. 사진 = LG그룹

지난 20일 타계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에 대해 국민적 추모 분위기가 일고 있다. 1995년부터 올해까지 23년간 LG그룹을 진두지휘해온 고인은 그룹의 체질과 규모를 일신한 것은 물론 정도경영과 윤리경영을 중심으로 사회공헌에 집중하는 특유의 기업 문화를 추구한 것으로 유명하다. 언제나 소탈하고 친근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한 구본무 회장의 리더십을 되돌아봤다.

 

23년간 회장 재임하며 그룹 5배 성장


“가장 존경했던 기업인이셨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지금은 LG를 떠났지만 그분의 경영철학과 리더십을 잊을 수 없다. 소탈하신 모습도…”
“졸부와 쓰레기갑부가 난무하는 세상에 진정으로 돈을 쓸 줄 아는 위인이셨다.”
“대기업 총수 중 가장 인간미 있던 분이셨다.”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타계 소식에 달린 네티즌들의 댓글들이다. 대부분 고인과 LG그룹이 그간 보여온 남다른 경영철학과 기업문화에 대한 호의적 평가를 담고 있다. 

 

숱한 대기업 오너 일가 구성원들이 각종 비리와 갑질로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것과 달리 고인은 5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하게 사법 처리를 받지 않은 기업인으로 남았다. 이는 고인이 ‘정도경영’와 ‘윤리경영’에 남다른 신념을 가지고 있었던 때문이다.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사진 = LG그룹

구본무 LG 회장은 1995년 50세의 나이로 부친 구자경 명예회장(93세)의 뒤를 이은 LG의 3대 총수가 됐다. 그가 취임할 당시만 해도 LG그룹의 총 매출 규모는 30조 원 내외에 불과했으나 23년이 지난 현재는 무려 160조 원(2017년 말 기준)에 달한다. 기존의 LG그룹에서 GS와 LS 등이 계열 분리로 떨어져 나간 것까지 감안하면 놀라운 성장이 아닐 수 없다. 

 

구 회장은 LG그룹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꾼 리더이기도 하다. 과거 LG는 여타 재벌그룹과 마찬가지로 문어발식 확장 경영을 펼쳤으나 구 회장은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 전략을 채택, LG의 사업군을 ‘전자-화학-통신서비스’ 3개 핵심 사업군으로 확정하고 각 부문의 경쟁력 강화에 집중했다. 그 결과 LG는 가전, 스마트폰은 물론 전기차용 배터리, 자동차부품, OLED 등 다양한 신사업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혁신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정도경영’으로 ‘1등 LG’ 추구

 

중요한 것은 그룹을 키우는 과정에서 구 회장과 LG그룹이 최대한 정도를 지키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구 회장은 1995년 취임 직후 정도경영 추진을 선언했다. “1등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못된 방법으로 이루는 1등은 의미없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었다. 

 

이후 2005년 구 회장은 ‘LG웨이’라는 기업문화를 선포했다. LG 웨이는 LG의 경영이념인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존중의 경영’을 달성하는 방식으로, 지향점은 ‘1등 LG’, ‘시장선도 기업’이다. LG웨이는 실력을 배양해 정정당당하게 승부하는 정도경영을 통해 1등 LG를 달성한다는 선언이다. 

 

구 회장은 1등 LG를 “고객이 신뢰하는 기업, 투자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인 기업, 경쟁사들이 두려워하면서도 배우고 싶어하는 기업”이라고 설명했다. 구 회장이 LG 웨이를 모든 경영활동의 기본이자 LG를 상징하는 기업문화로 선포하고 1등 LG라는 뚜렷한 비전과 방향을 구성원들에게 제시함으로써 LG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토대를 갖추게 됐다.

2002년 5월 구 회장(가운데)이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는 모습. 사진 = LG그룹

대표적으로 LG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 가장 먼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을 선택, 지배구조 논란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

 

과거 국내 대기업들은 계열사들끼리 거미줄처럼 얽힌 순환출자 구조를 채택한 경우가 많았다. 이는 그룹 총수가 소액의 지배지분으로 거대한 기업집단에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이점을 제공했으나,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이같은 구조는 한 순간에 기업집단을 몰락시킬 수 있는 단초로 작용했다. 

 

이에 구 회장은 1999년 말부터 2003년까지 선제적인 지주회사 체제 전환 작업을 추진, 지배구조를 최대한 단순화함으로써 지주회사는 사업 포트폴리오 등 장기적 경영 전략에 집중하고 자회사들은 개별 사업에 전념하는 구조를 완성했다. 이 과정에서 카드‧증권‧보험‧신탁 등 금융 계열사들을 매각하거나 계열 분리함으로써 금산분리 논란에서도 자유로와졌다.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가장 바람직한 지배구조를 갖춘 기업”으로 LG그룹을 꼽았다. 그는 LG그룹이 비교적 이른 시기인 1999년에 지주사 전환에 착수했고, 오너 일가와 관련된 사회적 논란이 거의 없었다는 점을 그 근거로 들었다. 

 

독립운동 후원 전통, ‘LG의인상’ 제정으로 이어져

 

LG그룹의 오랜 노블리스 오블리주 전통을 한층 체계화한 것도 구 회장의 대표적 업적으로 꼽힌다. 

 

원래 LG그룹은 과거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운동을 후원한 기업으로 유명했다. 창업자 구인회 초대회장은 1942년 중국 충칭에서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찾아온 백산 안희제 선생에게 거금 1만 원을 희사했다. 구 회장의 부친 춘강 구재서 선생도 1930년 경 독립운동가 구여순 선생을 통해 임시정부의 김구 선생에게 5000원을 전달했다.

 

LG가의 동업자였던 허씨 일가의 지산정 허준 선생(허창수 GS그룹 회장의 증조부)은 1914년 백산 안희제 선생과 함께 독립운동의 핵심 자금줄이었던 백산상회를 공동 설립한 인물이며, 그 아들인 효주 허만정 선생도 백산상회 주주로 자금을 지원했다. 

 

이같은 선열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구 회장은 현대에 맞게 재구성했다. LG그룹의 사회공헌 활동은 주로 LG연암문화재단, LG상록재단, LG상남언론재단, LG복지재단 등 4개의 공익재단을 통해 이뤄진다. 재단 4곳의 총 수입 대비 목적사업 지출 비중은 평균 72.6%(2016년 기준)로 높으며 특히 1997년 설립된 자연환경 및 생태계 보존을 위한 LG상록재단의 경우 85.9%에 달한다. 국내 30대 그룹이 운영하는 46개 공익재단의 평균 목적사업 지출 비중은 40.7%에 불과한 것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준이다.

LG의인상 수상자들. 왼쪽부터 빗길 고속도로에서 2차 추돌을 막은 시민 한영탁 씨, 불난 집에 갇힌 어르신을 구한 공무원 유명진 씨, 화재가 난 3층 건물에서 떨어진 어린 남매를 받아 구한 소방관 정인근 씨. 사진 = LG그룹

이 중에서 LG의인상을 시상하는 LG복지재단은 공익재단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을 듣는다. 

 

지난 2015년 구 회장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평범한 사람들에게 기업이 사회적 책임으로 보답하자”는 뜻으로 우리 사회의 의인들을 지원하는 LG의인상을 제정했다. 이후 소방관, 경찰, 군인 등 ‘제복 의인’부터 얼굴도 모르는 이웃을 위해 위험을 무릅쓴 크레인‧굴착기 기사 같은 ‘시민 의인’ 등 70명이 넘는 LG 의인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애국적 사회공헌 전통도 현대로 이어지고 있다. LG하우시스는 2015년부터 현충 시설 개보수와 국가유공자 주거환경 개선 등의 애국 사회공헌 활동을 전개해왔다. 지금까지 중국 충칭 임시정부 청사, 서재필기념관, 매헌윤봉길기념관, 우당이회영기념관, 안중근기념관, 만해기념관 등 총 6곳의 독립운동 관련 시설을 개보수하고 국가유공자 및 해외참전용사 12명의 자택 개보수를 지원했다.

 

“기업은 국민과 사회로부터 인정과 신뢰를 얻지 못하면 영속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활동 하나하나가 더 나은 고객의 삶을 만든다는 사명감으로 임해야 하겠습니다.” 올해 초 구 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밝힌 다짐이다. 구본무 회장의 시대는 갔지만 그의 경영철학은 오래도록 LG의 DNA에 각인돼 이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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