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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경협] ‘만주 밀정의 철길’, 70년만에 다시 연다

선거참패로 달라진 野…‘남북철도 패키지 법’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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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3호 도기천 기자⁄ 2018.06.25 10:37:30

6월 3일 서울역에서 열린 ‘서울역-평양역(도라산역) 열차 탑승 행사’에 참가한 학생들이 차창 밖으로 평양행 열차표를 보여주고 있다. 늦봄 문익환 목사 탄생 100주년을 맞아 마련된 이날 행사는 서울발 평양행 기차표로 도라산역까지 가서 도라산역에서 분단 현실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정부는 실제로 평양까지 달릴 열차를 개설하기 위해 현재 북측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두 차례에 걸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이 성과를 거두면서 한반도 경제지도가 새로 그려지고 있다. 비핵화가 실현되고 대북제재가 해제돼 북한경제가 개방의 길로 들어설 경우, 남북한  간의 경제협력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된다. 이에 CNB는 우리 기업들의 대북사업 전망을 기획연재하고 있다. 이번에는 성큼 현실로 다가온 유라시아 철도 이야기다. 

 

기차를 타고 유럽 대륙으로 여행을 떠나는 꿈은 언제쯤 실현될까.


북미(北美), 남북(南北) 간 화해 무드가 한반도를 달구면서 KTX를 타고 북한을 통과해 중국을 지나 유럽에 도착하는 상상이 점차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제2개성공단 조성과 광산자원 개발 등 여러 남북경협 가운데도 문재인 정부의 의지가 가장 강한 부분이 남북철도 개설이다. 이는 기존의 철로를 이용하면 되기에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고, 북한 입장에서도 안방문을 활짝 열어주는 게 아니라 철도 노선에 국한된 개방이라는 점에서 부담이 적다. 


지난 4.27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두 번째 만남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경의선(서울~신의주)의 현대화와 동해북부선(함경남도 안변∼강원도 고성) 연결을 재차 약속했다. 


경의선은 이미 연결돼 있으나 북측 구간이 노후화돼 현대화가 필요하고, 동해북부선은 남측 강릉∼제진(104㎞) 구간이 단절된 상태다. 


두 노선이 중요한 것은 단순한 남북열차 연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노선을 타고 유라시아 대륙까지 진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추진단과 북측 인사들이 지난 8일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 로비에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과 관련된 협의를 하고 있다. 분단 후 최초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개설되면 남북철도사업 등 남북경협이 속도를 낼 전망이다. 사진 = 통일부

경의선의 경우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을 통해 중국대륙철도(TCR)로 갈아탈 수 있다. 동해북부선이 연결되면 라진 선봉에서 중국 연변자치주 투먼(圖們)을 경유해 만주횡단철도(TMR)로 가거나 러시아 하산을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로 넘어갈 수 있다.


다만, 남북철도를 타고 유럽까지 간다면 경유시간 등을 감안할 때 일반열차보다는 고속열차를 이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고속철도 전용 노선을 새로 건설해야 한다. 중국은 대륙 전역에 걸쳐 고속철도 2만1천㎞를 설치해 놓았기에 한반도에만 고속철도가 깔리면 된다.  


고속철도 건설은 매머드급 프로젝트지만, 이미 북한이 기존 철로를 깔면서 터널과 교량 등을 만들어 둔데다 북한의 우수한 노동력을 활용하면 비용과 시일을 상당부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북한 철로시설을 최대한 활용할 경우, 2~3년 정도면 현대화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북미회담 성공에 선거 압승…힘 받는 文정부 


구체적인 사업 실행은 정부와 국회, 민간기업 등 크게 3개의 축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정부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설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통일부, 개성공업지구지원재단, 현대아산 관계자 등 17명으로 구성된 방북단이 지난 19~20일 경의선 육로를 통해 두 차례 개성공단을 방문, 개성공단 내 종합지원센터에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개설하기 위한 개보수 작업에 착수했다. 8월 중순경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문을 열면 철도사업과 관련된 구체적인 예산과 인력, 시기 등을 북측과 논의할 예정이다.  

 

경의선과 동해선 남북철도 연결구간 열차 시험운행이 성사됐던 2007년 5월, 경의선 열차가 남측 통문을 통과해 북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정부 관계자는 CNB에 “유엔의 대북제재가 해제되지 않은 상황이라 당장 (철도사업 등의) 실행은 불가능하지만 제재가 해제되면 즉시 사업을 진행 할 수 있도록 사전 준비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통일부는 경원선 남측 구간 공사를 연내 재개할 계획이다. 강원도 철원에서 월정리역까지 9.3km 구간과 월정리역에서 군사분계선까지 2.4km 구간이다. 2015년 시공사를 선정하는 등 사업에 착수했지만 남북관계 경색으로 중단된 노선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위원장 송영길)를 통해 마스터 플랜을 수립했다. 위원회는 지난 18일 ‘신(新)북방정책’ 중점 과제를 발표하며 구체적인 사업으로 동해안~유라시아 대륙 철도 연결 추진, 신의주와 단둥, 나진·선봉 지역 경제특구 개발 등을 제시했다.

 

강경파 사라진 한국당 ‘협조 모드’


국회도 관련된 입법과 간담회 등을 통해 정부와 보조를 맞추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남북교통인프라 연결을 위한 간담회’는 남북철도에 관한 정치권의 관심을 짐작케 하는 자리였다.  


이날 간담회는 ‘통합과 상생포럼(대표의원 조정식)’과 북방경제협력위원회가 공동 주최했으며, 조정식 국회 국토교통위원장, 송영길 북방경제협력위원장,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윤관석·홍영표·원혜영·이훈·진선미 의원 등이 머리를 맞댔다. 특히 오영식 코레일 사장, 김상균 한국철도시설공단 이사장, 김광수 한국도로공사 부사장, 나희승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원장 등 남북철도 사업의 시행 주체인 유관 기관의 수장들이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남북경협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는 북한 교통 인프라의 개발과 남북한 연결이 핵심 요건이라는 점에 뜻을 모았다. 오영식 코레일 사장은 이 자리에서 “남북 간 공동조사 등 실질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 관련 사업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지난 3일 서울역에서 열린 ‘서울역-평양역(도라산역) 열차 탑승 행사’에서 1일 역장을 맡은 박원순 서울시장(왼쪽)과 이재명 경기지사 당선자가 탑승객들을 배웅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대북정책의 발목을 잡았던 일부 야권의 분위기도 6.13지방선거 이후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자유한국당의 경우, ‘선(先) 북핵 폐기’를 고수하며 남북교류 반대 입장을 천명했던 홍준표 전 대표를 비롯한 당내 강경파들이 지방선거 참패의 책임을 지고 총사퇴하면서 달라진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지난 19일 국회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 성과와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남북경제협력 세미나’에는 민주당 의원들은 물론,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 등 야당 중진들이 대거 참석해 모처럼 한 목소리를 냈다.  


유라시아 철도 추진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국회 입법도 탄력을 받고 있다. 


최근 발의된 철도산업발전기본법 개정안은 철도산업발전기본계획과 철도산업위원회의 심의 조정 사항에 ‘남북·대륙 철도의 연결에 관한 내용’을 포함함으로써 정부가 대북 철도사업에 나설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우리나라가 지난 7일 북한의 찬성표를 얻어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정회원으로 가입, 유라시아 철도사업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이날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 장관회의에서 손명수 철도국장(왼쪽)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 국토교통부

정부와 지자체의 대북교류협력을 촉진하는 규정을 추가한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개정안과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발의된 상태며, 공공기관이 남북철도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 한국철도공사법 개정안도 마련됐다.  


우리나라가 대륙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여건도 무르익고 있다. 우리 정부가 최근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국제철도협력기구(OSJD:Organization for Cooperation of Railway) 장관급 회의에서 북한의 도움을 받아 정회원 자격을 얻었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회원 가입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번이 북한의 반대로 무산됐으나 이번에 북한이 찬성표를 던져 입성하게 됐다. 


OSJD는 유라시아 대륙철도 등의 운송과 관련한 제도와 운송협정을 마련하고 기술 분야 협력을 추진하는 국제기구다. 이번 정회원 가입으로 우리나라는 OSJD가 관장하는 국제철도화물운송협약(SMGS), 국제철도여객운송협약(SMPS) 등 유라시아 철도 이용에 반드시 필요한 기준들을 적용받게 됐다. 

 

철강기업들 기대감 커져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기업들도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남북철도 프로젝트가 시행될 경우, 북한 내 개발사업권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아산을 중심으로 사업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현대아산은 과거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개발 등을 도맡은 ‘경협의 상징’이었다. 2000년 8월 북한 노동당 외곽기구인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와 ‘개성공업지구건설운영에 관한 합의서’ 체결 등을 통해 개성공단 개발 사업권은 물론 전력, 통신, 철도 등 북한 7대 SOC사업의 개발 독점권을 갖고 있다. 


현대아산 이제희 홍보부장은 CNB에 “현대아산은 과거 남북경협을 위해 설립된 법인인 만큼 남북관계 단절은 회사차원에서 큰 고통이었다”며 “경협 재개에 대한 기대감 하나로 지난 10년을 버텨온 만큼, 다시 교류가 시작되면 할 일이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대아산이 밑그림을 그리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한다면 실제적인 철도 시공은 현대제철과 현대로템 등이 맡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남북철도 건설로 철강재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되면서 철강업계의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DMZ-트레인’ 관광 열차. 사진 = 연합뉴스

현대제철의 경우 국내에서 유일하게 철도레일을 생산하고 있으며, 현대로템은 철도차량을 제작·보급하는 기업이다. 양사가 과거 남북경협의 문을 열었던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의 현대그룹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국내 철강기업들도 수혜가 예상된다. 정부의 ‘한반도 통합철도망 마스터플랜’에 따르면, 북한 내 7개 노선의 개량·신설 및 유라시아 철도 연계에 약38조원 가량이 소요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철도 선로에만 850만톤의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작년 국내 봉형강 수요 2338만톤의 36%로, 금액으로는 6조2000억원 가량이다.


이에 따라 국내 대표적인 철강기업인 포스코, 동국제강, 현대제철 등이 수혜주로 꼽힌다. 미국의 철강수입 제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내 철강업계에 남북철도가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이밖에도 철도 관련 중견·중소기업으로는 부산산업, 동양철관, 삼부토건, 대아티아이, 푸른기술 등이 주목받고 있다.  


남북경협포럼 이승재 사무처장은 21일 CNB에 “일부 외신들은 북한의 핵폐기와 경제개방에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고 있지만, 철도 분야만 국한해서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며 “남북철도사업은 관광·물류 등에 제한된 분야라서 북한 입장에서는 체제변화 없이도 경제성장에 큰 도움이 되는 모델이다. 우리 정부도 이 점을 알기에 철도를 남북경제협력의 ‘0순위’에 두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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