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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고무줄 대출’ 후폭풍…금리견제권 힘 받나

금융시스템 3가지 대수술 초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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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95호 도기천 기자⁄ 2018.07.09 10:37:14

서울 시내 한 은행 앞에 걸린 대출상품안내문.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은행권의 대출금리 조작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가운데, 금융당국이 과거부터 시행을 검토해온 여러 금리 규제책들이 이번 기회에 빛을 발할지 주목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그동안 은행들의 ‘대출 장사’가 지나치다고 판단, 각종 대책을 마련해 시행을 예고해 왔지만 당사자들의 비협조와 반발로 속도를 내지 못해왔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낡은 금융시스템을 뿌리부터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나비의 날개짓이 폭풍우를 불러온다? 시중은행들의 대출금리 부당책정 사태가 ‘나비 효과(Butterfly effect)’를 예고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조작’ 의혹이 제기될 정도로 금리 산정 오류가 나타난 경남은행, KEB하나은행, 한국씨티은행에 대해 이자 환급을 조속히 실행할 것을 요구하는 한편 조사대상이었던 10개 은행(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기업·씨티·SC제일·부산·경남은행)과 지방은행들은 자체 점검 결과를 보고토록 했다. 


금감원 검사 결과, 일부 은행들이 대출금리 산정 때 소득금액과 담보물 등을 잘못 전산입력하거나 임의대로 입력해 기준보다 높은 이자를 책정해온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은행들은 단순 실수라고 해명에 나섰지만, 정치권과 시민단체는 이를 ‘범죄 행위’로 규정해 전수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내 금리 내가 정한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이 추진하고 있는 각종 대출 관련 대책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미 틀은 나온 상태에서 은행권과 협의를 벌이고 있는 사안들이다.      


우선 금융소비자가 자신이 받은 대출의 금리가 산출되는 과정에 대한 정보를 은행에 요구할 수 있도록 한 ‘금리견제권’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금까지는 대출금리라는 최종결과물만 받아봤지만 앞으로는 자신의 대출금리가 산출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의 가산금리가 적용됐는지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금융소비자는 이를 토대로 금리 산정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금리 인하를 요구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금감원이 지난달 초 마련한 ‘대출금리 체계 개선방안’에 담겨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연합회 등에서 이뤄지는 대출금리의 공시 내용도 더 구체화하기로 했다. 기존의 금리 공시가 은행별로 기본금리와 가산금리 정도를 알려주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는 가산금리를 구성하는 우대금리 등 주요 내용까지도 공개토록 한 것.  


은행 대출금리는 코픽스와 CD, 금융채 등 기준금리에, 우대금리 등 조정금리, 업무원가, 목표이익률, 위험프리미엄 등 가산금리를 더해 산출된다. 기준금리는 시장에서 결정되므로 은행이 정하는 대출이자는 가산금리에 따라 좌우된다. 


따라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산금리 내역이 좀 더 자세히 공개되면 금리라는 가격 변수를 보다 자세히 파악해 어느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의 이런 대책은 뒤늦은 감이 있다. 은행들의 고무줄식 금리운영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감원 검사 때마다 부당한 사례들이 다수 확인되곤 했다. 정책금리 인하 등 가산금리 인하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수년간 고정된 수치를 적용하거나, 기준금리가 일정한 상황에서 같은 금융소비자가 같은 은행을 가도 한 달 만에 대출금리가 오르는 상황이 비일비재했다. 또 은행 자체 내규를 적용해 최고금리를 부과하거나, 소득이 있음에도 소득을 과소 입력하여 가산금리를 과다하게 부과한 경우도 부지기수다.  


이렇다보니 시중에는 “예금이자는 그대로인데 대출이자만 오르고 있다”는 소비자 불만이 팽배한 상황이다.  


강명재 한국외대 겸임교수(경영학부)는 CNB에 “작년부터 미국의 정책금리가 상승세를 그리자 한국의 시중은행들은 예금금리는 그대로 두고 대출금리만 올리고 있는 추세인데,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소비자들도 알 권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은 금융소비자의 견제 권한이 강화되면 은행의 이 같은 고질병이 다소나마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금감원은 초안을 토대로 조만간 모범규준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은행들은 업무과중, 영업기밀 유출 등을 이유로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지만 이번 금리조작 사태를 계기로 비난여론이 거세진 상황이라 태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담합 원천봉쇄’ 입법예고  


한편에서는 대출금리의 주요기준을 법률로 강제하려는 법안도 곧 국회에 상정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CD금리와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등 대출금리를 결정짓는 ‘중요지표’의 운용방식을 담은 ‘금융거래지표의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정부안)을 마련해 이달 30일까지 입법예고한 상태다. 


제정안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나 금융투자협회 등 중요지표 산출기관은 산출업무 규정을 마련해 금융위의 승인을 얻어야 하며, ‘중요지표 관리위원회’를 설치해 지표 산출과 관련된 사항을 심의하도록 했다. 또 은행이나 보험사, 저축은행 등 중요지표를 사용하는 금융사들이 중요지표를 왜곡하거나 조작, 부정한 방법으로 사용할 경우, 부당이득의 2∼5배 규모의 벌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이 제정안이 나오게 된 이유는 금리담합 논란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CD는 은행이 단기 자금 조달을 위해 발행하는 무기명예금증서다. 10개 증권사가 하루에 두 번 수익(이자)율을 금융투자협회(금투협)에 보고하는 형식으로 금리가 결정된다.


이러다보니 증권사가 은행과 담합해 금리를 왜곡할 수 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실제로 2010년을 전후해 시중금리가 내려가는데도 증권사들이 의도적으로 CD금리를 높은 수준으로 유지하자 담합 논란이 크게 일었다.  

 

‘대출=실적’ 근본 수술 


이밖에 예대율 산정 시 가계부채의 가중치를 늘리는 규제안도 주목된다. 예대율은 은행의 예금잔액 대비 대출금잔액 비율을 말한다. 현재 금융당국은 은행의 예대율을 100% 이내로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금융위는 2020년부터 가계대출 가중치를 15% 높이고 기업대출 가중치는 15% 낮춰 예대율을 산정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가계대출을 많이 시행한 은행은 그만큼 ‘예대율 100% 이하’ 기준을 맞추기가 힘들어진다. 이전보다 가계대출 비중을 줄이거나 예금을 더 늘려야 한다.


이는 간접적인 대출 규제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의 금리조작 사태는 은행들이 과도한 실적압박에 내몰리며 발생한 측면이 있다. 대출 자체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실적압박은 덜해질 수 있고 ‘고무줄 대출금리’도 어느 정도 안정될 것으로 기대된다. 


강 겸임교수는 CNB에 “선진국 은행들은 신용도, 미래가치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대출금리를 결정하는 투자은행(investment bank) 개념이지만, 우리나라는 오직 담보물과 현재소득을 기준으로만 금리를 정하는 후진적인 상업은행(commercial bank)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이러다보니 이번 금리조작 사태는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금융시스템이 어디부터 잘못 되었는지를 뿌리부터 점검해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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