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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한 국민연금, 첫 타깃은 대한항공?

재계 우려 반영해 행사 범위 제한… 참여연대, "대한항공에 첫 행사"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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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0호 윤지원⁄ 2018.08.08 08:35:53

7월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방안 공청회'. 사진 = 연합뉴스

기관투자자들을 위한 의결권 행사 지침 ‘스튜어드십 코드’가 우여곡절 끝에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도입됐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가 자칫 정부의 ‘재벌 길들이기’에 악용될 것을 우려하고 있지만, 시민단체 등은 보다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첫 번째 스튜어드십 코드의 대상으로 최근 갑질 논란의 대상이 된 대한항공이 거론돼 귀추가 주목된다.

 

스튜어드십 코드, 기관투자자의 윤리

 

지난 7월 30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Stewardship Code) 도입이 확정되면서 국민연금이 지분을 보유한 주요 기업에 ‘경영 참여’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연기금, 보험사, 자산운용사 등 기관투자자들이 타인의 자금을 맡아 운용하는 수탁자로서의 책임을 보다 충실히 수행하고 더 적극적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유도하고자 만들어진 자율 지침이다. 스튜어드는 집사나 청지기, 비행기의 남자승무원 등을 지칭하는 용어다. 기관투자자들이 신뢰받는 집사처럼 투자자의 재산을 책임있게 관리해야 한다는 의미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기관투자자들의 새로운 운영 지침으로 등장한 것은 지난 2010년의 일이다. 당시 기관투자자들이 투자한 기업들의 방만한 경영과 모럴 해저드를 방치한 것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한 원인이 됐다는 반성과 함께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이후 캐나다, 네덜란드, 스위스, 일본, 말레이시아, 홍콩, 미국 등 스튜어드십 코드를 시행하는 국가가 급속히 늘었다. 

2017년 12월 2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왜곡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무엇이 문제인가' 정책 토론회에서 주제 발표를 하고 있는 신장섭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사진 = 연합뉴스

국내에서도 2014년부터 금융 당국에서 논의가 시작돼 2016년 12월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을 통해 기본 7개 원칙을 발표하고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5개월 넘게 참여 기관이 나오지 않으며 지지부진하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불거지며 관심이 높아졌다. 

 

과거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당시 삼성물산의 1대 주주였던 국민연금이 삼성물산에 불리한 합병에 찬성함으로써 약 3000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고, 이 과정에 박근혜 정부와 삼성 사이에 금전적 거래가 오갔다는 의혹이 터져나오자 국민연금에 보다 투명한 운용지침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됐다. 

 

결국 2017년 5월 경제민주화 공약을 앞세우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스튜어드십 코드를 적극 도입하겠다는 방침을 공언했고, 이후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사들이 하나둘 늘었다. 마침내 지난 7월 30일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제6차 회의에서 최종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의결이 이뤄지며 국민연금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경영참여, ‘제한적 허용’의 의미

 

국민연금은 2017년 기준 약 600조 원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국내 주식에 131조 5000억 원을 투자, 코스피·코스닥 시가총액의 7% 규모를 보유한 국내 증시의 ‘큰손’이다. 국민연금이 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국내 상장사만 약 300여 곳에 달한다. 

 

그럼에도 국민연금은 그간 개별 기업 주주로서의 의결권 행사에서 대부분 안건에 찬성표를 던지는 행태로 일관해 사실상 ‘기업 측의 거수기’로 간주됐다. 하지만 이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으로 이같은 양상은 변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이번에 의결된 도입 방안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원칙적으로는 경영 참여를 하지 않지만, 기금운용위원회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에는 임원의 선임·해임 또는 직무의 정지, 정관의 변경, 자본금 변경, 합병·분할·분할합병, 주식 교환·이전, 영업 양수·양도, 자산 처분, 회사 해산 등의 주주권을 제한적으로 행사하게 된다. 기업 경영 가치가 심각하게 훼손되거나, 사회적 여론이 형성되는 등 아주 특별한 경우에 한해 기금운용위원회 의결을 거쳐 예외적으로 경영 참여를 할 수 있다는 의미다.

 

게다가 기업명 공개, 공개 서한 발송, 의결권 행사 연계, 의결권 행사 사전 공시 등 경영 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주주권은 보다 적극적으로 행사할 방침이다.

7월 30일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6차 회의에서 발언 중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사진 = 연합뉴스

‘제한적’이라는 단서는 달렸지만 여전히 재계는 국민연금의 경영참여가 기업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같은 우려를 감안해 국민연금 측은 조만간 관련 법령을 정비한 후 위탁운용사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할 예정이다. 위탁운용사 역시 국민연금과 마찬가지로 수탁자 책임 활동을 수행하도록 위탁운용사 선정·평가 시에는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및 이행 여부에 대해 가점을 부여한다.

 

국민연금 고유의 주주 활동 수행과 관련해서는 기존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9인)를 개편해 만들어지는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14명)가 관리할 예정이다. 이 위원회는 정부 인사가 아닌 가입자 대표 등을 중심으로 구성되며, 주주권행사 분과와 책임투자 분과로 구성돼 사안에 맞게 권한 행사 방식을 검토·결정하게 된다.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 따르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목적은 ‘기금의 장기수익 제고’와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의 투명성·독립성 제고’다. 국민이 맡긴 노후자금을 보호하고 장기적인 수익성을 높이겠다는 것. 

 

배당뿐 아니라 기업의 부당지원 행위, 경영진 일가 사익 편취 행위, 횡령, 배임, 과도한 임원 보수 한도 등에 대해서도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방침 역시 이 사안들이 국민연금의 미래 수익에 영향을 주는 중대 사안이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정조준’한 참여연대… 총수 일가 퇴진 가능성은?

 

하지만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실제로 주요 대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찍힌다. 외부자의 경영권 침해를 꺼리는 기업의 입장과 보다 투명한 경영과 투자 수익 제고를 추구하는 노동‧시민사회 진영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립되기 때문이다. 

 

재계는 일단 이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여전히 경계하는 분위기다. 30일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확정되자 한국경영자총협회가 “국민연금이 주주권 행사에 적극 나설 경우 기업들에 상당한 부담 요인이 된다”며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개별 기업의 경영 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거나 시장을 교란시키는 일이 없도록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돼야 한다”고 밝힌 것은 재계의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경총 관계자는 “지금도 임원 선임이나 주요 경영 사항에 대한 의사 표시는 기금운용위가 결정하면 할 수 있는데 이를 이번에 스튜어드십 코드에 명문화했다”며 “기업들 입장에서는 좀 더 부담스러워진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정부의 입김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것을 지난 박근혜 정권에서도 확인된 사실”이라며 “기업들의 경영 활동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맞추려고 유도하거나 옥죄는 수단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악용될까 봐 우려되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노동‧시민사회 진영은 재계의 우려 때문에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가 후퇴하거나 무력화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히 참여연대는 총수 일가 갑질로 논란이 되고 있는 대한항공을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하는 첫 번째 사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6일 참여연대는 “총수 일가 갑질과 불법‧편법 의혹으로 문제가 된 대한항공 등 한진그룹 산하 기업에 대해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계획이 있는지 밝혀달라”는 내용의 공개 질의서를 국민연금에 보냈다. 

 

참여연대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횡령·배임·사기 혐의를 받는 등 한진 총수 일가가 기업 이사로서 자격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기업가치를 훼손해 연기금에 피해를 입히고 있다. 한진그룹은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 이후 국민연금이 적극적 주권을 행사해야 할 대표 기업집단”이라며 “총수 일가 퇴진 같은 개선책을 대한항공에 요구할 계획이 있다면 밝혀 달라”고 촉구했다. 

7월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서 대한항공 상표권 부당 이전과 관련한 배임 혐의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을 고발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참여연대와 대한항공조종사노조, 대한항공직원연대 관계자들. 사진 = 연합뉴스

실제로 대한항공은 국민연금의 첫 주주권 행사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기업이다. 이미 지난 4월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벼락 갑질’ 논란이 불거지고 이후 총수 일가의 각종 갑질·비리 의혹이 확산되던 6월 5일 국민연금은 관련 의혹에 대한 사실관계와 해결 방안을 묻는 공개서한을 발송했는데, 이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한 최초 사례였다. 

 

이후 6월 15일 국민연금은 대한항공으로부터 회신을 받았지만 내용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의례적인 답변이었다. 이후 양측이 한 차례 비공개 만남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쯤되면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가 대한항공에 대해 제한적 주주권을 행사할 대상이라고 판단할 근거는 충분하다. 다만 실제로 주총장에서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총수 일가의 퇴진을 요구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의 지분은 약 12.45%로 타 대기업에 비해 충분히 높지만 대한항공 최대주주의 지분은 약 33.35%라 경영권이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며 “최대주주와 2대주주의 정면대결은 자칫하면 논란만 키우고 단기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본에 악용될 우려가 있으며, 결과에 관계없이 지속적인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아 여러모로 쓰기 힘든 패”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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