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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14) APMAP 2018 jeju] ‘예술 감상’이라는 긴장 풀고 만나는 제주의 힐링 야외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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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09호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8.10.15 09:36:25

(CNB저널 = 이문정(미술평론가, 컨템포러리 미술연구소 리포에틱 소장)) 2013년부터 시작된 ‘APMAP(Amorepacific Museum of Art Project)’은 미술을 매개로 일상과 예술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 기획된 공공 미술 프로젝트다. 2017년부터 시작된 ‘APMAP part Ⅱ’는 오설록 티 뮤지엄(OSULLOC Tea Museum)이 위치한 제주도의 다양한 모습(신화와 전설, 자연, 삶)을 주제로 진행 중이다. ‘제주의 자연’이 주제인 올해는 제주라는 특별한 장소와 긴밀하게 영향을 주고받는 작품들이 소개되었다. 장소 특정적 미술은 어떤 공간에 놓여도 작품의 형태와 의미가 변하지 않는 전통적인 작품과는 다르다. 기후와 같은 물리적 조건뿐만 아니라 의미론적 조건 등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APMAP 2018 jeju - volcanic island’(이하 ‘APMAP 2018’)에는 총 15팀(김가든, 김명범, 김상진, 문연욱, 박길종, 윤하민, 이성미, 이예승, 이용주, 임승천, 정지현, 최성임, 홍범, ADHD, Bo-daa)의 작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제주도를 체험한 뒤, 자신에게 영감을 주었던 장소를 자유롭게 선정해 작업을 완성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들은 오설록 티 뮤지엄 내부와 야외 잔디밭 곳곳에 전시되었다.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제주도는 지질학적으로 매우 독특하다. 중앙의 한라산은 제주의 상징과 같으며 섬 전체에 고르게 퍼져 있는 368개의 오름(소형 화산체), 폭포와 동굴, 연못, 주상절리 등도 유명하다. 서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여행 안내서만 봐도 제주도에 얼마나 특별한 장소가 많은지 확인할 수 있다. 사방이 바다에 둘러싸인 섬이라는 사실도 낭만적 정취를 느끼게 한다. 또한 자연의 요소들이 풍부한 제주는 도시인들에게 휴식의 공간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것이 고정관념이라 느껴질 정도로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휴식을 원할 때 자연을 향한다. 사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자연보다는 도시에서의 삶이 익숙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자연 속의 휴식을 꿈꾼다. 

 

이예승, ‘점 선 면 그리고 바람’, 스테인리스 스틸, 나무, 디밍라이트, 모터 프로젝터, 오픈 모니터, 가변크기, 2018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P 2018에 전시된 작품들의 첫인상은 행복하고 생기 넘치는 공공 미술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장소 특정적 공공 미술, 예술의 사회적 역할, 미술 작품이 담아내는 시간성과 공간성, 다양한 매체의 탐구, 제주도(한국)의 역사, 생태주의와 같은 다양한 이슈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오설록 티 뮤지엄 전망대에서 전경을 바라볼 때와 가까이에서 작품을 일대일로 마주할 때의 대비되는 경험도 인상적이었다. 

 

장소특정적 예술을 만나는 편안함


APMAP 2018의 작가들은 해변의 밀물과 썰물의 반복, 폭포수의 반복적인 낙하 등에서 순환의 시간을 추출해내기도 하고, 동굴 안의 생성물이나 낙수 소리를 조형화시키기도 했다. 잔디밭에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조형물을 설치한 작가도 있었다. 바람을 따라 움직이는 설치 작품에서는 평온함과 생동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고, 제주도 숲의 생태계를 재현한 작품들 앞에서는 단어 그대로 신비로운 자연을 상상할 수 있었다. 

 

홍범, ‘가리워진 결과 겹’, 아크릴, 철, 베어링, 천, 가변크기, 2018 ⓒ아모레퍼시픽미술관

한편 참여 작가들의 많은 수가 추상화(단순화)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수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공공장소에 놓인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일부 작품들은 관객이 만지고 조작할 수 있었으며 놀이 기구처럼 아이들이 올라갈 수 있는 작품도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만나게 되는 미술의 목표와 형식, 나아가 미술관의 전시 목표는 매우 다양하다. 그런 만큼 미술의 감상법도 한두 개로 정해진 정답이 있을 수 없다. 하나의 작품도 여러 방식으로 경험되어져야 한다. 철학과 역사, 사회학 같은 전문적 이론을 바탕으로 분석(해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있는 그대로 작품을 즐기는 감상법도 필요하다. 또한 모두가 편안하고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라 하여 그 안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없다. APMAP 2018에는 동시대 미술의 담론을 만들어내는 동시에 대중들의 문화 향유, 나아가 휴식과 치유라는 또 하나의 목표를 만족시키는 작품들이 가득했다. 

 

이예승, ‘점 선 면 그리고 바람’, 부분, 2018 ⓒ아모레퍼시픽미술관

‘APMAP 2018 jeju-volcanic island’ 
참여 작가 이예승과의 대화  

 

- APMAP 2018에서는 작가들이 제주의 자연 그 자체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였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제주의 특정한 장소를 선택했다. 그런데 본인은 제주도 그 자체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진행했다. 매우 큰 주제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작품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파노라마(panorama) 사진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APMAP 2018의 주제는 ‘제주도의 자연’이었다. 자연이라는 측면에서 제주도는 매우 독특하다. 여러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기후 조건들이 섬 하나에 공존한다. 매우 흥미로웠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마치 하나의 독립된 세계 같다고 느껴졌다. 어떤 면에서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제주도에서 경험한 다양한 시공간을 모두 압축해서 작품에 담고 싶었다. 어느 한 지역만을 선택하면 제주도의 특별함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제주도의 자연을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사용했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면 좋겠다. 또한 제주도에 현실과 가상이 공존하는 것 같다고 말했는데 혹시 제주도가 공상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 이번에 전시된 나의 작품을 보면, 습지와 같은 자연 환경에서 볼 수 있는 원이나 타원, 호(弧) 같은 유기적이고 생태적인 형태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여기에 빛의 작용을 더해 환상적인 느낌을 더했다. 또한 하늘과 바다, 바다에 비치는 이미지들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도록 작업했다. 내 작업의 주된 기조는 여전히 서구적이고 기계적이라고 여겨지는 미디어 아트를 동양 철학(세계관)으로 읽어가는 것이다. 특히 미디어 아트가 가진 시간의 압축성, 가상과 현실 세계의 공존이 동양 사상의 유연함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나의 기조와 제주도가 매우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 제주도에 전해내려 오는 신화가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이지 않을까? 자연이라는 원형, 다시 말해 환경적이고 태생적인 제주도의 특성이 그와 같은 풍부한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고 생각한다.” 

 

ADHD, ‘켜’, 스틸 플레이트 구조물, 스틸 프레임, 260 x 496 x 133.6cm, 2018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이예승 작가의 대표작들은 장소특정적인 미디어 설치 작업이다. 주로 빛과 그림자의 효과가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로 기억한다. 이번에 작품을 설치한 오설록 티 뮤지엄의 장소가 독특했다. 폭이 좁고 길이가 긴 공간이라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완성된 작품을 보니 하나의 연극 무대를 마주한 것 같기도 했다. 혹시 야외에서 전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오설록 티 뮤지엄의 주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정원을 산책하듯이 걸어 다니며 작품을 감상할 때도 좋았지만 전망대에서 전체를 바라봤을 때의 광경도 훌륭했다. 혹시 전기 장치가 많아 실내에 전시한 것인가?  

 
“모든 기후 조건에 영향 받지 않는 안정적인 야외 설치 작품을 선보이려면 신경 쓸 부분이 많겠지만 그건 모든 작품이 다 그렇다. 미디어 아트라 해서 야외에 전시하기 힘들다는 생각은 고정 관념인 것 같다. 또한 미디어 아트, 특히 영상 작업은 어두운 곳 혹은 빛을 인공적으로 조절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장소에 설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반드시 그런 것도 아니다. 자연광 아래의 야외 공간에서도 충분히 효과적인 작업을 선보일 수 있다. 그림자도 인공적인 빛에 의해서만 생기지 않는다. 햇빛의 조건에 따라 더 재미있는 효과를 보여줄 수 있다. 또한 평상시에 다양한 장소 특정적 작업을 해왔기 때문에 나의 작품이 설치된 미술관 공간의 형태가 독특해서 다른 작업에 비해 어렵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전에 만나보지 못했던 형태의 장소를 만나면 오히려 즐겁다. 이번 전시에서는 관객들이 미술관에 들어서면 정면으로 나의 작품을 마주하게 되는 동선이어서 작품의 첫인상이 어떨지에 대해 고민했다. 야외 정원에서 받았던 이미지와 감흥이 실내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수 있도록 신경 쓰면서 작품을 완성했다.”
 

이용주, ‘접는 집’, 금속판 도장, 360 x 200 x 200cm, 2018  ⓒ아모레퍼시픽미술관

- 마지막으로 APMAP 2018에 참여한 소감을 듣고 싶다. 이번 전시에서만 체험할 수 있었던 독특한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가? 개인적으로는 미술관이 젊은 작가들에게 대형 설치 작업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적극적으로 제공하고 지원한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화이트 큐브(white cube)가 아닌 공간에서 대형 설치 작품을 전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당연히 작가에게는 훌륭한 경험이 된다. 작업의 규모와 완성도, 작품과 공간, 관객 등을 고민하고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제주도에서의 전시가 쉽지는 않았지만 미술관의 지원으로 큰 어려움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작가로서 이번 전시를 통해 느낀 것은 편안한 대중성이었다. 일상 공간에서 미술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작품을 미술만을 위한 공간이라 여겨지는 화이트 큐브와 같은 전시장에서 선보인다. 대부분의 관객들은 ‘여기는 작가의 예술 작품이 놓여 있는 장소이고, 나는 작가의 메시지를 읽어야 한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온다. 물론 그런 감상법도 필요하다. 그러나 때로는 미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너무 경직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작품 안에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가와 별개로 즐겁게 작품을 감상할 필요도 있지 않을까? 


‘APMAP 2018 jeju - volcanic island’의 관객 대부분은 편하게 쉬러 온 사람들이다. 오설록 티 뮤지엄의 주변은 말 그대로 힐링(healing)의 장소다. 그래서 다들 즐겁고 행복한 마음으로 푸른 하늘과 잔디밭, 녹차 밭을 거닌 뒤 미술관에 들어온다. 다들 매우 밝은 분위기다. 도시 공간에 설치된 공공 조각을 마주하는 것과는 또 다른 상황인 것이다. 그 자체가 매우 특별하다고 생각했다. 생생한 활력이 느껴지는 공간에서 긴장하지 않고 혹은 무방비 상태로 편안하게 나의 작품을 마주한 관객들의 반응이 무척 흥미로웠다. 미술을 그 자체로 즐길 필요도 있다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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