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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정의선의 도전…현대차그룹 기로에 서다

주사위 던진 정 부회장, 2019년은 운명의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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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0-621합본호 도기천 기자⁄ 2018.12.31 09:45:09

지난 11일 현대모비스 충주 수소 연료전지시스템 공장을 방문한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왼쪽),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 세번째)이 수소연료에 관해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도기천 기자) 현대자동차그룹이 연말 인사를 통해 정의선 수석 총괄부회장 중심의 세대교체를 이룬 가운데, 10년 넘게 공들여온 신사옥(글로벌비즈니스센터) 건립이 조만간 첫 삽을 뜨게 됐다. 정 부회장이 위기돌파 카드로 꺼낸 7조6000억원 규모의 수소차 프로젝트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다가올 새해는 정 부회장과 현대차에게 중대한 기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겨울은 현대차그룹에게 ‘변신의 계절’이다.

2009년 현대차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다른 직함은 맡아오지 않던 정의선 부회장이 지난 9월 전 계열사 경영을 총괄하는 수석 총괄부회장 자리에 오르면서 그룹 전체가 엄청난 변화를 맞고 있다.

정 부회장은 현대차는 물론 기아차와 현대제철, 현대건설, 현대엔지니어링,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현대캐피탈, 현대카드, 현대차증권, 현대라이프, 현대글로비스, 현대로템, 이노션 등 계열사 전체를 통솔하고 있다.

그가 정몽구 현대차 회장의 장남이자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손자라는 점에서 재계에서는 사실상 3세경영이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우선 눈에 띄는 변화는 두 차례에 걸친 연말 인사다.

지난 12일 단행된 그룹 사장단 인사로 정몽구 회장을 보좌하던 그룹의 핵심 임원들이 2선으로 물러나고, 정 부회장 중심의 새 진용이 꾸려졌다.

특히 세대교체 기조까지 반영돼 정의선 체제가 공고해졌다. 현대로템 대표이사에 내정된 이건용 부사장을 비롯해 현대다이모스-현대파워텍 합병 법인의 여수동 사장, 현대오트론 문대흥 사장, 현대케피코의 방창섭 대표이사 내정자 등은 모두 50대다. 정 부회장이 만48세(70년생)인 만큼 이들과의 소통과 미래 혁신에 한층 속도가 붙게 됐다.

임원 승진자가 예년에 비해 크게 늘어난 점도 주목된다. 지난 19일 임원인사에서는 총24개사에서 347명의 승진자가 나왔다. 현대·기아차 판매량이 801만대로 정점을 찍었던 2015년 433명의 승진자를 낸 후, 판매량 감소와 함께 지난해에는 310명으로까지 감소했던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올해도 11월 누적 판매량이 675만대에 그치고 있어, 목표판매량(755만대)을 채우기 어려운 상황임에도 승진 규모가 되레 늘어난 데는 차세대 리더 후보군를 육성하겠다는 정 부회장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전체 승진자 중 연구개발·기술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42.1%(146명)에 이르는 점은 미래차 산업에 ‘올인’ 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재벌개혁→기업친화’ 정책변화 호재

문재인 정부의 정책 기조 변화로 오랜 숙원이던 신사옥 건립이 탄력을 받게 된 점도 고무적이다.

정부는 지난 17일 발표한 새해 경제정책방향에서 현대차 신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건립과 관련한 심의를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GBC는 현대차가 3조7천억원을 투자해 105층 규모로 짓는 신사옥으로, 주요 계열사 15개사와 직원 1만여명이 이곳에 입주한다. 지하 7층∼지상 105층 규모로 높이가 569m에 달한다.

그동안 이 프로젝트는 수도권정비위원회에서 3차례 보류된 바 있다. 고층건물이 전투비행에 영향을 줄 수 있으나 국방부 등과 충분히 협의하지 않았고, 강남 한복판에 100층 이상 대형 오피스 건물이 들어서는 만큼 교통·인구집중 등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재벌개혁을 주도했던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퇴진하고, 김동연 전 경제부총리까지 물러나면서 경제정책에 변화가 생겼다. 시장친화적 인물로 알려진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경제사령탑에 오르면서 이른바 ‘소주성’(소득주도성장)이 후순위로 밀려나고 ‘기업투자 활성화’가 경제살리기의 주 화두로 등장했다.

 

현대기아차 양재동 사옥(왼쪽)과 조만간 착공 예정인 현대차그룹 통합신사옥인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의 조감도. 사진 = 연합뉴스, 서울시 제공

특히 홍 부총리가 첫 산업현장 방문지로 충남 아산시 소재 자동차 부품업체 ‘서진캠’을 찾은 점은 완성차업계 1위기업인 현대차를 고무시키고 있다. 글로벌 무역장벽 등으로 최악의 위기에 처한 자동차산업을 살리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뚜렷해진 만큼 신사옥 건립도 탄력을 받게 됐기 때문.

국토교통부는 이달 중 수도권정비위 소위원회에서 GBC 조성으로 인한 인구집중 저감 방안에 대한 합의가 도출되면 내년 1월에 수도권정비위에 다시 안건으로 올려 처리할 계획이다.

매머드급 신사옥, ‘시즌2’ 발판

신사옥 착공은 정 부회장에게 새로운 시대의 개막을 의미한다.

정몽구 회장은 서울 양재동 본사가 공간이 협소한데다, 건물만 우뚝 솟은 오피스 빌딩 형태라 자동차 기업의 철학을 제대로 담지 못한다는 지적에 따라 오래전부터 신사옥 건립을 추진해왔다.

현대차는 지난 2006년 서울 성수동 뚝섬 인근 옛 삼표레미콘 부지에 2조원을 들여 110층 높이의 건물을 짓고 그룹 소속 모든 계열사를 입주시킨다는 매머드급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무려 7년간 뚝섬 개발에 집착해왔지만 서울시가 2013년 ‘초고층 건축관리 기준’을 강화하면서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다.

현재의 예정부지는 한국전력 본사가 있던 자리다. 한전이 2014년 전남 나주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현대차가 무려 10조5500억원을 들여 부지를 매입했다. 서울의 노른자위 교통요지인 강남구 삼성역 일대며 면적이 축구장 크기의 11배에 달할 정도로 넓다. 여러 계열사를 한데 합치려는 현대차그룹으로서는 최적의 장소다.

하지만 서울시가 코엑스~종합운동장 일대에 조성 중인 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과 맞물려 수년간 난항을 겪었다. 시는 현대차가 기부채납한 토지·시설 등을 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에 포함시켰는데, 용도를 두고 강남구 주민들과 서울시가 마찰을 빚었고, 환경·교통문제 등이 부상하면서 착공이 지연됐었다.

또 천문학적인 부지매입 자금을 두고 일부주주들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반발했다. 정 회장이 한 소액주주로부터 고발당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으며,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동안 주식을 매각했다.

따라서 이런 우여곡절 끝에 새해 첫 삽을 뜨게 되면, 오랜 숙원을 마침내 이루는 셈이다. 그룹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는 정 부회장 입장에서는 ‘뉴 현대차’를 선포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신사옥과 함께 야심차게 진행 중인 수소차 사업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정 부회장은 지난 11일 충북 충주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수소전지 2공장 기공식에서 현대차그룹의 ‘FCEV(수소차) 비전 2030’을 공개했다. 2030년까지 7조6000억원을 들여 수소차 생산 능력을 연 50만대로 늘리고, 5만1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초대형 플랜이다.

정 부회장의 이런 전략은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는 도전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된다.

완성차업계에 따르면, 2018년 전세계 자동차 수요는 중국의 판매 감소(-4.1%)와 미국, 유럽, 일본의 저성장으로 지난해보다 0.2% 증가에 그치고, 2019년에도 0.1% 성장에 그친 9249만대가 판매될 것으로 예상된다. 수소차 플랜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내놓은 생존카드다.

현대가 장손, 범(凡)현대 아우를까

하지만 넘어야할 산도 높다. 지난 7일 국회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비준 동의안이 처리되면서 미국의 관세 폭탄 시계가 빨라지고 있는 점은 당장 눈앞에 닥친 난제다.

 

울산 현대자동차 수출선적부두의 모습. 사진 = 연합뉴스

앞서 미국은 중국과의 무역분쟁 와중에 한국산 자동차에 대해 관세 부과(최대 25%)를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현대차노조는 최근 성명을 내고 “미국이 한국산 자동차와 부품에 관세 폭탄을 현실화하면 한국 자동차산업을 몰락시키는 핵폭탄이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정 부회장은 지난 9월 남북정상회담 특별수행단 참여를 포기하고 미국으로 가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조니 아이잭스 조지아주 상원의원 등을 만나 관세 면제를 요청하는 등 외교 수완을 발휘한 바 있다. 현대차는 물론 재계는 미국통으로 알려진 정 부회장의 역할에 기대를 걸고 있다.

대북사업의 방향타를 어떻게 설정하느냐도 중요한 과제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한·미 정부와 관세 문제를 놓고 긴밀히 공조해야만 하는 만큼,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는 남북경협 논의를 외면할 수 없다. 남북철도 분야에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철도레일을 생산하고 있는 현대제철이, 철도차량 제작·보급에는 현대로템이, 북한 내 도로·항만 등 인프라 구축에 있어서는 현대건설이 각각 기대주로 부상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현대차그룹 계열이다. 

이 과정에서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과의 불편한 관계가 개선될지도 관심사다.

현대가(家)는 2000년 3월 ‘왕자의 난’으로 불리는 경영권 승계 다툼이 벌어지면서 현대차그룹,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해상, 현대백화점그룹 등으로 분리됐다.

이후 고 정주영 창업주의 5남인 정몽헌 회장이 2003년 급작스레 숨지면서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모기업(현대그룹)을 이끌게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정몽구 회장 등은 현 회장과 대립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대그룹에 속한 현대아산이 금강산·개성공단 등 북한 7대사업 독점권을 갖고 있고, 정주영 회장이 20여년전 남북경협을 최초 시작한 기업인이자 정 부회장의 조부라는 점에서 현대가 장손인 정 부회장이 현대그룹과의 관계를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현대차 사정에 밝은 한 재계관계자는 CNB에 “수소차, 무역장벽, 대북문제, 신사옥건립 등 정 부회장 앞에 굵직한 과제들이 산적해 있다”며 “정몽구 회장이 아들(정 부회장)에게 이를 전부 맡긴 것은 그룹의 미래를 맡긴 것이나 다름없는 만큼, 2019년은 정 부회장의 리더십이 세밀하게 평가받는 시기이자 현대차의 운명이 결정되는 한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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