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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수첩] 극장의 '갑'은 누구? … ‘보헤미안 랩소디’의 천만 관객 도전과 영화 대기업의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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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3호 윤지원⁄ 2019.01.10 17:02:15

1천만 관객 돌파를 눈앞에 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 = 이십세기폭스코리아)


‘보헤미안 랩소디’의 1천만 관객 돌파가 확실시되고 있다. 지난해 10월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올해 1월 9일까지 71일 동안 968만 4097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10주 넘게 롱런 중인 ‘보헤미안 랩소디’의 최근 4주간 성적을 영화진흥위원회 실시간 발권데이터 통계에서 살펴봤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지난해 12월 2주차에 88만 2316명을 동원하며 주간/주말 박스오피스 1위를 달성했다. 3주차에는 전주 대비 -36.6% 줄어든 55만 9627명으로 4위로 떨어졌다. 4주차 순위는 동일했지만 관객은 61만 6010명으로 10.1% 늘어났다. 12월 31일부터 이어진 1월 1주차에도 순위는 동일하고, 관객 수는 49만2257명으로 -31.3%줄어들었다.

전주 대비 약 -33% 줄어든 약 33만 명의 관객이 이번 주 ‘보헤미안 랩소디’를 본다고 가정하면 일요일인 13일에 천만 영화 타이틀을 달게 될 것으로 보인다. 천만 관객 돌파 기념 프로모션 등으로 막판 관객몰이가 이루어진다면 앞당겨질 수 있겠다.
 

국민 배우 송강호와 '내부자들'의 우민호 감독이 만난 '마약왕'은 지난해 연말 최고 기대작으로 꼽혔으나 개봉 2주차부터 순위가 떨어지며 흥행에 실패했다. (사진 = 쇼박스)


연말 기대작들, 첫 주말 지나니 순위 곤두박질

그런데 이 통계자료를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12월 3주차에 큰 관객 감소율을 보였던 ‘보헤미안 랩소디’가 4주차 다시 증가세로 돌아선 점, 그리고 10주 정도 롱런한 영화가 매주 흥행 4위 정도를 유지하고 있는 데 비해 나머지 순위표의 영화들은 변동이 심하다는 점이다.

12월 3주차 관객이 크게 감소한 것은 당시 주말과 크리스마스 연휴로 이어지는 연말 최대 성수기를 맞아 ‘아쿠아맨’, ‘마약왕’, ‘스윙키즈’ 같은 각 메이저 배급사의 야심작들이 한꺼번에 개봉하면서 상영관을 많이 빼앗긴 탓으로 보인다.

주간 상영 횟수는 ‘마약왕’이 2만 5645회로 가장 많았고 이어 ‘아쿠아맨’ 2만 1533회, 스윙키즈 1만 6959회, 보헤미안 랩소디 1만 4270회의 순서였다. 그런데 주간 유료 관객 수는 ‘아쿠아맨’이 ‘마약왕’보다 많았고, 3위 ‘스윙키즈’와 ‘보헤미안 랩소디’의 관객 수 차이는 겨우 334명에 불과했다.

상영 횟수가 수천 회 더 많은데도 관객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것은 각 상영관의 좌석 개수 차이로 설명하기보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평가가 반영된 결과라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네이버 포털의 관객 평점을 보면 ‘스윙키즈’는 10점 만점에 9.05로 높은 편이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는 9.47로 이를 뛰어넘는다. 가장 많이 상영하고도 2위에 머문 ‘마약왕’은 ‘7.55’로, 1위 ‘아쿠아맨’의 8.77보다 낮았다.
 

'과속 스캔들', '써니'의 강형철 감독이 선보인 신작 '스윙키즈'도 개봉 다음 주부터 순위가 하락했다. (사진 = NEW)


12월 3주차 신작이던 ‘마약왕’과 ‘스윙키즈’의 흥행 순위가 4주차에는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낮은 5위, 6위로 각각 떨어진다. 1위의 기세를 유지한 ‘아쿠아맨’ 외에 새로 개봉한 ‘PMC: 더 벙커’와 ‘범블비’가 2, 3위를 번갈아 차지했다.

26일 개봉한 ‘PMC: 더 벙커’는 하루 먼저 개봉한 ‘범블비’에 밀려 주중 3위를 차지했지만 주말 3일 동안 순위를 역전시켰다. 상영일은 부족했지만 ‘PMC: 더 벙커’의 주간 상영 횟수는 22425회로 ‘범블비’의 23320회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PMC: 더 벙커’는 평일에 개봉했음에도 첫날 1047개의 상영관으로 출발했고, 금요일 최대 1081개 상영관을 차지하며 주말 3일 동안 1만 3272회 상영됐다. ‘범블비’는 개봉 당일이자 크리스마스인 25일 1016개의 상영관에서 개봉한 뒤 이튿날부터 상영관 수가 900개 미만으로 줄었고 주말 3일 동안 9322회 상영됐다.

각 배급사의 연말 야심작들 사이에서 ‘보헤미안 랩소디’는 1만 266회(주말 4543회) 상영하고도 4위를 차지했다. ‘마약왕’은 14800회, ‘스윙키즈’는 11773회 상영했지만 ‘보헤미안 랩소디’를 이기지 못했다.
 

지난해 12월 30일 서울 시내 한 멀티플렉스 극장 로비의 모습. '마약왕' 대형 포스터가 걸려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관객이 선호하는 영화를 틀지 않는 극장?

새해 첫 주. ‘보헤미안 랩소디’는 주중에 4위를 유지했다. 그리고 기대작 ‘주먹왕 랄프2: 인터넷 속으로’가 신규 개봉했음에도 ‘보헤미안 랩소디’는 주말 3위로 올라갔다. 3주차의 ‘아쿠아맨’이 2위를 했고 2주차의 ‘PMC: 더 벙커’와 ‘범블비’는 4, 5위로 내려앉아 전주와 똑같은 양상을 보였다.

이주 ‘보헤미안 랩소디’는 전주보다 많은 1만 2623회 상영됐다. ‘PMC: 더 벙커’는 훨씬 많은 2만 588회 상영했음에도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관객이 적었다. ‘범블비’는 1만 4944회로 ‘PMC: 더 벙커’보다 상영 횟수가 큰 폭으로 줄어 있었다.

‘마약왕’은 개봉 2주차에 관객이 -52.0% 감소했으나 ‘보헤미안 랩소디’는 오히려 10.1% 늘었다. ‘PMC: 더 벙커’와 ‘범블비’가 2주차에 각각 -40.1%, -58.8%의 관객 감소를 보일 때도 ‘보헤미안 랩소디’는 -20.1% 감소에 그쳤다.

상영 횟수와 관객 수 관계의 이해를 위해 네이버 관객 평점을 다시 살펴보면, ‘PMC: 더 벙커’의 네이버 평점은 6.95에 불과하다. 반면 ‘범블비’는 8.75로 ‘아쿠아맨’과 비슷하다.

상영관 수나 상영 횟수는 흥행 순위에 큰 영향을 미치지만, 관객 평점이 반영되어 변동이 일어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최근 상영작 중 가장 높은 평점을 기록 중인 ‘보헤미안 랩소디’는 관객 감소율이 가장 적은 편이며, 새로운 개봉작들보다 적은 상영관과 상영 횟수의 조건에서도 많은 관객들의 선택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극장주 입장에서는 관객평점이 높은 영화에 더 많은 상영관을 배정하고 상영 횟수를 늘이는 편이 극장 수익을 극대화하는 데 유리할 것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높은 관객 감소율과 낮은 평점의 ‘마약왕’, ‘PMC: 더 벙커’ 같은 영화들이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더 많은 상영관에서 더 자주 상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보헤미안 랩소디’는 해외 언론까지 주목하는 기이한 열풍 속에서 1천만 관객을 향해 달려가는 중이어서 11주차에도 적지 않은 상영 횟수를 보장받을 수 있다고 본다. 안타까운 건 완성도와 재미 등 모든 면에서 호평을 받는데도 상영관을 잡지 못해 관객과 만날 정당한 기회를 박탈당하는 영화들이다.
 

CJ ENM이 올 겨울 가장 큰 기대를 걸고 배급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PMC: 더 벙커'의 네이버 관객 평점은 6.95점이다. (사진 = CJ ENM)


극장의 ‘갑’은 관객이 아니라 배급사

다양성 영화들은 말할 것도 없고, 메이저 배급사의 영화들 중에도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 ‘범블비’, ‘스윙키즈’ 같은 영화들은 높은 관객 평점에도 불구하고 개봉 후 한참을 ‘마약왕’, ‘PMC: 더 벙커’ 등의 영화보다 적은 상영관, 적은 상영 횟수만을 배정받았다.

예를 들어 하루 차이로 개봉한 ‘PMC: 더 벙커’와 ‘범블비’ 사이에는 꾸준한 불평등이 존재했다. 지난 일요일인 1월 6일 ‘PMC: 더 벙커’는 5만 537명, ‘범블비’는 4만 6067명의 관객이 들었다. 이날 ‘PMC: 더 벙커’는 전국 극장에서 2072회 상영됐으며, ‘범블비’는 1610회 상영됐다.

그런데 ‘PMC: 더 벙커’에 배정된 좌석 수는 총 32만 461석, ‘범블비’는 21만 3531석이었다. ‘PMC: 더 벙커’의 좌석은 15.8%가 팔렸고, ‘범블비’는 21.6%가 팔린 셈이다. 참고로 이날 ‘보헤미안 랩소디’는 27만 4699석 중 22.9%인 6만 3005명이 들었다.

‘PMC: 더 벙커’는 더 많이 상영하고도 관객수가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적었던 날이 허다하다. 특히 좌석 판매율은 12월 26일 개봉 이후 하루도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높았던 적이 없고, 개봉 첫 주말이 지난 후로는 ‘범블비’보다도 낮은 날이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도 지난 9일 새로운 영화들이 개봉되기 전까지 ‘PMC: 더 벙커’에 배정되는 상영관과 좌석, 상영 횟수는 언제나 ‘범블비’나 ‘보헤미안 랩소디’보다 많았다. 어째서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9일 기준 누적 관객 500만 명에 육박한 '아쿠아맨'과 비슷한 관객 평점을 받으면서도 충분한 상영 기회를 얻지 못하고 아직 관객 150만 명 수준에 머물고 있는 '범블비'는 어쩌면 올 겨울 한국 극장가에서 가장 부당한 대접을 받은 영화일지도 모른다. (사진 = 롯데컬처웍스)


각 영화의 배급사와 극장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된다. ‘PMC: 더 벙커’의 배급사는 2017년까지 한국 영화배급시장 1위를 빼앗긴 적이 없는 CJ ENM이다. ‘범블비’의 배급사는 CJ ENM의 라이벌로 지난해 1위 자리를 빼앗은 롯데컬처웍스, ‘보헤미안 랩소디’는 이십세기폭스코리아다.

앞에 예로 든 1월 6일 일요일, 전국의 CGV는 ‘PMC: 더 벙커’를 846회, ‘보헤미안 랩소디’를 722회, ‘범블비’를 569회 상영했다. 전국 최대의 멀티플렉스 체인인 CGV는 세 영화 중 가장 안 팔리는 영화를 가장 많이 상영한 것이다.

CGV가 이날 ‘PMC: 더 벙커’를 상영한 846회는 이날 이 영화의 전체 상영 횟수인 2072회의 40.8%에 해당된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1788회 중 40.3%, ‘범블비’는 1610회 중 35.3%에 해당된다. CGV가 라이벌 롯데가 배급하는 영화보다는 기왕이면 CJ가 배급하는 영화를 더 자주 튼 것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다. 영화의 완성도와 재미, 관객의 선택권은 고사하고 극장 이익 극대화의 기회조차 무시하는 처사다.

영화계 관계자들이 수년 째 지적하고 있는 대형 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유착 문제를 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다. 관객이 더 보고 싶어 하고, 더 재밌어하는 영화가 아니라 배급사가 본전을 찾고 싶은 영화가 더 많이 상영되는 한국의 배급 시장은 정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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