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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칼럼] '김예령 기자 시비'에서 美기자로부터 "천재" 소리 듣는 한국 언론 또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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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2019.01.11 12:03:22

최영태 CNB뉴스 발행인

어제부터 오늘까지 김예령 기자가 검색어 상단에 올라가 있다. 그래서 김 기자의 질문 장면과 대통령의 답변 동영상을 봤다. 이게 도대체 왜 문제가 되는지 모르겠다.

 

수준 낮은 질문이었고(팩트를 기반으로 한 날카로운 질문이 아닌, 그저 “자신감의 근거는 뭐냐”라는 감정을 묻는 질문이었기에), 대통령으로서는 “여태 얘기했는데 그걸 또 얘기하란 말이냐”는 상식적인 답변을 한 순간이었다.

 

청와대 기자회견에서 항상 보는 그 장면이 한 번 더 보여졌을 뿐인데…. (사진  jtbc 화면 캡처)


“자세가 불량하다”고 김 기자의 예의범절을 공격하는 목소리들이 거북하지만, 또 다른 편에서 “애국 투사가 탄생했다”고 칭찬하는 것도 꼴불견이기는 마찬가지다.

jtbc 손석희 앵커가 “우리 사회가 권위주의에서 벗어난 증거”라고 평했다고 해서 또 SNS 등에서는 손 앵커를 비난하는 발언들이 줄을 이으니, 이것도 꼴불견이다. 필자가 보기엔 손 앵커가 부분적이지만, 제대로 진단한 것 같은데….

 

한국의 수준을 처음 알았다는 듯 왜 난리들인지…


필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우리나라 수준이 항상 그랬는데, 왜 새삼스럽게들 난리냐?”고.

직전 대통령 시절, 시나리오 식으로 질문 순서와 답변까지 다 만들어 놓은 뒤 '드라마 찍듯' 청와대 기자회견을 하고, 그런 드라마 찍기에 기자들이 동의했던 것 자체가 바로 한국 정치판과 언론의 수준을 잘 보여준다.

 

지금도 수준 낮기는 마찬가지다. 백악관 브리핑에서 미국 대통령들과 미국 언론의 ‘고참’ 기자들이 팩트를 근거로 주고받는 공방전과 비교하자면, 한국 기자들 대부분의 질문은 그저 수준 이하일 뿐이다. 그게 한국의 풍경이다.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거다"라고 한국 기자들의 실력을 비판한 미디어오늘의 인터넷 기사 화면. 

 

필자는 20대 때 예전에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경제부 기자로 일하면서 미국에 출장을 갔을 때였다. 행사를 앞두고 기자들끼리 모여 대화를 나누는데, 한국에서 간 기자들은 대개 20~30대였고, 미국 기자들은 50대 이상의 중년들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필자의 나이를 물어봤다. “20대 후반”이라고 얘기하니, 그 ‘할아버지 기자’가 “당신은 천재가 분명하다”고 단정했다.

갑자기 천재라 높여주니 우쭐해지기는 기분이기도 했지만 도대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인지라 놀리는 건 아닌가 싶어서 “왜 나를 천재라고 규정하냐?”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그 할아버지 기자 왈 “미국 메이저 신문에서 경제 기자를 하려면, 나처럼 다 나이가 들어야 한다. 왜냐면 미국의 모든 기자는 지방지의 경찰 기자부터 밑바닥을 훑는 경험을 거쳐 유능함을 인정받아야 한 계단 한 계단 상급지로 스카우트 당하면서 나이 들어서야 유력 중앙지의 경제 기자로 기사를 쓸 수 있는데, 당신은 20대 후반에 한국 유력지의 경제부 기자라니 천재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 아니냐”고 했다.

 

이런 진단에다가 대고 “한국에서는 다 20대부터 경제부 기자를 한다”고 대답해주는 게 순서였겠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한국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아서였다.

 

우리의 언론 시스템은 정상인지부터 점검해야


백악관 출입기자도 마찬가지다. 백악관 기자회견을 한 번 봐라. 젊은 기자도 없지 않아 있지만 대개는 할아버지-할머니 기자부터 시작해 나이 지긋한 중년이 대부분이다. 그 정도 연차가 되기 전에는 백악관이라는 최고 출입처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로서 ‘정치에 대한 도사’가 되어야 비로서 백악관 출입이 가능하기에, 대통령과 기자가 만나는 브리핑 시간에는 날카로운 팩트 기반 질문이 불꽃을 튕기게 돼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 언론 현실에선, 언론사 사정에 따라 ‘정치에 도사가 아닌 기자’도 청와대 출입 기자로 배정받기도 한다. 미국의 기자 시스템은 유능함과 전문성을 꾸준히 인정 받아야 백악관 출입이라는 영광을 누릴 수 있지만, 한국의 언론사는 ‘각자도생’ 식으로 운영되기에 20대 약관에 좋은 언론사를 시험 잘 치러 들어가고, 또 사내에서만 인정받으면 일약 청와대 출입기자라는 대단한 자리에 입성하는 ‘천재적인 성취(미국 기자가 보기에)’를 이룰 수도 있다.

 

백악관 출입기자를 40년 넘게 한 헬렌 토마스 기자(왼쪽)가 89살 생일을 맞아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축하를 받고 있다. 배경의 기자들 모습을 보면 한국 청와대 출입기자들보다 대체적으로 연배가 훨씬 높음을 알 수 있다. (사진 = 위키피디아) 
토마스 헬렌 기자가 1976년 포드 대통령을 취재하는 모습. (사진 = 위키피디아)

모두 실력의 문제다. 실력을 입증해야만 대통령 또는 총리-수상이, 그리고 그들을 상대하는 기자가 될 수 있는 나라들이 있고, 실력 입증과는 상관없이 언론의 장난질에 힘입어 대통령이 될 수 있고 또 그런 대통령을 상대하는 기자들도 객관적인 실력 입증과 상관없이 사내에서만 잘보이면 청와대 출입기자가 될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김예령 기자의 예의없음을 한탄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시스템이 지금처럼 수준 낮아도 되는지, 언론-기자의 한심함(오바마 대통령처럼 말빨 좋을 것 같은 사람에게는 질문도 못하는. 사실 아는 게 있어야 질문도 할 수 있으니)을 그대로 방치해도 되는지가 더 고민거리가 돼야 할 것 같은데, 한국의 수준은 또 그냥 김예령 기자를 비난하거나 찬양하거나 하는 감정 수준으로 빠지니, 이 또한 한국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질문에 답 있다"는데…

 

흔히 기자에게 “왜 질문을 못 하냐?”고 추궁하지만, 질문이 그리 쉬운가? “질문에 답 있다”라는 말 이 있다. 질문을 어떻게 구성하냐에 따라서 답이 달라진다는 소리다. 예전에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왔을 때 “제발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해달라”고 부탁했어도 한국 기자들은 입 하나 뻥끗 못하고 결국 중국 기자가 질문을 했듯, 실력 없는 사람이 선뜻 질문을 하기란 쉽지 않다.

오바마의 부탁을 받고 한국 기자가 ‘아무 질문이라도 해야겠다’고 결심한 끝에 “당신 이름이 뭐요?”라든지 “요즘 미국 경제는 잘 나가요?”라는 저차원의 질문을 했다면 오히려 더 창피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실력 없는 한국 기자들은 ‘입 닥치면 중간은 간다’는 만고의 진리를 잘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우리의 실력과 시스템이 참 창피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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