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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파격·깜놀·소탈…재벌 총수들 왜 변했나?

직원들과 셀카 찍고 토크쇼 ‘이유 있는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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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27호 도기천 기자⁄ 2019.02.18 10:16:13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8일 SK서린사옥에서 임직원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는 ‘행복토크’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제공 = SK

(CNB저널 = 도기천 기자) ‘소통’이 사회적 트렌드가 되면서 재벌 총수들의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전통적인 ‘지시형 리더’ 스타일에서 벗어나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고 젊은 사원들과 호프미팅을 갖는가하면 사업설명회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활성화되고 권위주의, 갑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서 생긴 변화다. CNB가 달라진 재계 문화를 들여다봤다.

기업인 중에 가장 활발한 소통 행보를 펼치고 있는 인물은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겸직하고 있는 그는 소탈하고 털털하기로 유명하다.

대한상의는 재계를 대표해온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약 2년 전부터 제구실을 못하자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왼쪽)이 작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환영 만찬에서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 단장(가운데), 가수 조용필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 박용만 회장 페이스북

박 회장은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리더십으로 대한상의 위상을 재계 대변인격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여타 총수들과 달리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아끼지 않고 있다.

작년 11월 전국상의 회장단회의에서는 “(규제가) 바뀌는 게 없으니 어디다 하소연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돌직구를 날렸다. 지난달 홍남기 경제부총리와의 간담회 자리에서는 파격적인 규제 개혁을 요청했으며,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기업인들과의 대화’에서는 기업들의 애로점을 터놓고 얘기했다.

회사 경영에 있어서도 이런 모습은 여지없이 드러난다. 젊은 사원들과 격없이 저녁을 함께하는가하면, 기업설명회나 채용설명회에 직접 참석해 특유의 대중 화법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SNS를 활용한 소통도 눈에 띈다. 지난해 4월 남북정상회담 판문점 행사 때는 ‘일일 기자’를 자청했다. 자신의 페이스북에 현장 사진과 소회를 올려 누리꾼들의 관심을 모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달 3일 수원사업장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을 함께하며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 = 삼성전자 직원 인스타그램

재계 총수들의 맏형 역할도 그의 몫이다. 작년 9월 평양 방문 때는 55년생인 자신보다 연하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51), 최태원 SK 회장(59), 구광모 LG 회장(41) 등을 챙기며 분위기를 이끌었다는 후문이다. 작년 가을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때는 SK와이번스가 두산베어스를 이겨 우승을 차지하자 최태원 SK 회장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또 두산그룹 경영에 있어서도 혁신을 주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산그룹 창업자인 고 박두병 회장의 5남으로서 두산인프라코어를 맡기 전부터 두산그룹을 소비재 사업에서 중공업 위주의 기업으로 변신시키는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모습들로 인해 그는 ‘재계의 소통왕’으로 불린다. 정관계와 재계, 정부를 잇는 가교 역할은 물론 파격적인 소통 경영에서 비롯된 별명이다.

 

세대교체로 재계에 젊은 바람이 불면서 자신의 SNS에 사생활을 공개하는 오너들이 늘고 있다.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는 지난 11일 아내 조수애 전 JTBC 아나운서와의 모습을 공개했다. 앞쪽은 힙합그룹 에픽하이 멤버들. 사진=박서원 인스타그램

이런 영향 때문인지 그의 장남인 박서원 두산매거진 대표도 ‘소셜 인플루언스(SNS상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통한다. ‘보그’, ‘더블유(W)’ 등 유명 패션지를 보유한 회사의 대표답게 배우 송중기, 박보검, 개그우먼 박나래 등과 함께 찍은 사진을 자신의 SNS 계정에 공개하는 등 연예계 황금 인맥을 자랑하고 있다. 최근에는 조수애 JTBC 아나운서와 웨딩마치를 울렸는데, 웨딩 화보와 결혼식 영상을 직접 자신의 SNS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소통 행보에 직원 사기 ‘쑥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임직원들과의 소통 행보로 주목받고 있다.

신년회에서 올해 안에 임직원들과 100차례 만나겠다고 공언한 뒤, 지난달 8일 SK서린사옥에서 SK수펙스추구협의회와 SK이노베이션의 임직원 등 300여명과 ‘행복토크’ 시간을 가졌다. 사전 각본 없이 진행됐고, 격의 없고 솔직한 대화가 오갔다.

최 회장은 이날 “저처럼 일하라고 하면 제가 꼰대” “제 워라밸은 꽝”, “(줄무늬 양말을 보이며) 행복 창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라” 등 진솔한 워딩으로 직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평소 지론인 ‘사회적 기업론’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빈부격차와 실업 등 우리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공유 경제’라 믿고 있다. SK는 전사적으로 이를 실행하고 있는데, SK에너지가 GS칼텍스 등과 합작한 주유소 인프라 기반 택배서비스 ‘홈픽’, SK하이닉스의 공유인프라 포털 등이 대표적이다. 최 회장은 이를 확산하기 위해 ‘소통’ ‘공감’의 전도사로 나선 것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근들어 각종 행사에 스스럼없이 모습을 드러내 주목된다.

지난달 2일 청와대가 초청한 신년회에 참석한데 이어 다음날에는 수원사업장을 방문해 5G 네트워크 장비 생산라인을 둘러봤다.

특히 이날 임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했는데 이 와중에 직원들의 셀카(셀프 카메라) 요청에 흔쾌히 포즈를 취해 화제를 모았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이 주관한 ‘기업인과의 대화’에서는 “어려울때 진짜 실력이 나온다”며 반도체 산업에 대한 자신감을 보였다.

이런 모습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지난해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출소한 이후 언론 노출을 최소화하며 정중동 행보를 이어갔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작년에 총수 자리에 오른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은 ‘투명 경영’을 내걸고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주회사 체제 전환 뒤 각각 분할된 효성티앤씨·효성중공업·효성첨단소재·효성화학의 ‘공동 기업설명회’ 자리에 직접 참석해 “효성과 시장의 상호 신뢰 구축을 위해 정기적으로 사업에 대해 설명하고 시장의 목소리를 듣겠다”고 선언했다. 기업설명회는 주로 금융사, 관계사 등을 대상으로 이뤄지는데 조 회장이 직접 사업을 알리고 투자자들을 설득하겠다는 의미다.

 

월마트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사진=정용진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 상에서 자신과 회사를 알리는 기업인들도 늘고 있다.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과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이 대표적이다.

정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회사제품 홍보는 물론 해외출장 모습, 맛집, 일상생활을 공유하면서 젊은층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팔로워가 18만명에 이른다.

정 사장은 페이스북 매니아로 통한다. 실수로 신용카드를 옷속에 넣은채 세탁기를 돌린 이야기, 유희열의 스케치북 방청기, 혼술하기 좋은 곳 등 일상생활의 소소한 에피소드부터 글로벌 경제상황에 대한 단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글을 올리고 있는데 어떤 날은 4~5건에 이를 정도다.

특히 미국 워싱턴에 위치한 120년전 대한제국 주미공사관을 문화재청이 매입하도록 현대카드가 도와준 일화는 유명하다. 정 사장이 숨은 선행과 사연을 페이스북에 공개해 지난해 6월 언론에 소개됐는데, 올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맞아 다시 조명되고 있다.

세대교체가 변화 이끌어

이런 총수들의 행보는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풍경이다. 오너가 지시하고 임직원들은 실행하는 ‘수직적’ 구조가 한국의 일반적인 기업문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재계의 세대교체, 권위주의와 갑질에 대한 부정적 인식,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추진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선 주요 대기업의 오너들이 최근 몇년 새 3·4세로 바뀌면서 재계가 젊어진 점이 단초가 된 것으로 보인다.

LG그룹은 작년에 구본무 회장이 타계하면서 40세의 구광모 회장이 총수 자리에 올랐고, 현대차그룹은 정몽구 회장의 장남인 정의선 총괄수석부회장이 그룹의 사령탑으로 올라섰다. 효성은 작년부터 조석래 회장의 장남인 조현준 회장 체제로 전환했으며, 삼성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친인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그룹을 이끌고 있다.

GS그룹은 지난해 연말인사에서 오너가 4세인 허세홍 사장을 GS칼텍스 대표이사로, 3세인 허용수 사장을 GS에너지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코오롱그룹은 23년 동안 그룹 경영을 이끌어온 이웅렬 회장이 최근 퇴임하고, 이 회장의 장남인 35세의 이규호 상무가 최근 전무로 승진했다.

한화그룹은 김승연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큐셀 전무와 차남 김동원 한화생명 상무 중심으로 승계구도가 짜여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30~40대로 SNS에 익숙한 세대다.

 

‘소통’은 문재인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이 지난달 15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왼쪽) 등 기업인들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최근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에서 ‘혁신성장’으로 기업정책 방향을 전환한 점도 이들의 소통행보에 힘을 싣고 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를 비롯한 경제핵심 관료들은 재계 인사들을 만날 때 마다 기업투자를 독려하며 제도적 지원을 약속하고 있는데, 이로인해 재벌 총수들이 ‘개혁 대상’에서 ‘경제 주역’으로 포지션이 바뀌면서 자신감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갑질’에 대한 사회적 비판 심리가 커진 점도 작용했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기기의 발달과 사내 게시망의 활성화로 각종 갑질 행태가 도마 위에 오르면서 변화의 동력이 됐다는 것.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성주디앤디, 하림, 미스터피자, 비비큐, 부영, 대림산업, 효성, 한진(대한항공), 금호아시나아, BHC, 교촌치킨, SPC 등 숱한 기업이 갑질 등으로 비난 받으며 기업실적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되자, 오너들 스스로 몸을 낮췄다는 얘기다.

사회평론가 구병두 교수(서경대)는 CNB에 “미투 운동, 네티즌 수사대, SNS 등을 통해 약자들의 인권이 크게 향상 된데다 진보정권의 집권으로 이런 현상이 더 확대되는 분위기”라며 “기업문화 또한 자연스럽게 수직적 구조에서 수평적 구조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재계 관계자는 “소통경영은 노사 화합, 창의력 확대 등 생산성 향상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면서도 “아직은 보여주기식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끝장 토론, 호프 간담회 등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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