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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범(凡)현대가, 대북 대장주 ‘현대아산’ 외면 왜

남북경협 불편한 진실 두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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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2호 손정호 기자⁄ 2019.04.01 10:08:12

최근 현대아산의 유상증자에 같은 현대그룹 계열사인 현대엘리베이터를 제외한 다른 범현대가 기업들이 외면해 관심을 받고 있다.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 등 현대아산의 다른 주요주주들은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았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모습. 사진 = 연합뉴스

(CNB저널 = 손정호 기자) 범(凡)현대가(家) 기업들이 현대그룹을 외면하고 있어 주목된다. 현정은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의 핵심계열사인 현대아산의 유상증자에 사실상 아무도 참여하지 않은 것. 이유가 뭘까.

현대아산은 3월초 최근 남북경제협력 사업을 재개하기 위해 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단행했지만 414억원의 자금만 모였다. 나머지는 채우지 못했다.

이번 유상증자는 주주배정 방식으로 진행됐다. 현대아산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주주들이 얼마나 증자에 참여하느냐에 따라 달성률이 달라지는 방식이다.

주목할 점은 범현대가 기업들이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대엘리베이터가 365억원(69%)을 투자했지만 이 기업은 현대그룹 계열사라서 의미를 두기 힘들다. 시장의 관심은 당연히 현대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다른 범현대 가문의 기업들이 얼마나 참여할 것인가였다.

하지만 현대아산의 주요 주주인 범현대가의 대형기업들은 참여를 거부했다. 2대 주주인 현대건설(7.46%)을 비롯, KB증권(옛 현대증권, 4.98%), 현대자동차(1.88%), 현대백화점(1.09%)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로 인해 현대엘리베이터만 지분율이 69.67%에서 70.16%로 높아졌다. 이밖에 현정은 회장을 비롯한 특수관계자들과 현대아산의 소액주주들이 증자에 참여했다.

현대아산의 이번 증자가 주목받은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현대아산이 과거 대북사업을 주도해왔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경협의 미래를 기업들이 어떻게 전망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는 계기였다.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고 정주영 명예회장은 1998년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남북 민간교류의 물꼬를 텄다. 이후 현대아산은 그룹의 대북사업을 담당해왔다. 현대가가 2005년 현대자동차그룹, 현대백화점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 HDC현대산업개발 등으로 분리되는 등 진통을 겪는 와중에도 현대아산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사업에 한결같이 전념해왔다.

 

현대아산의 유상증자에 범현대가 기업들이 참여하지 않은 이유로는, 2차 북미정상회담 결렬 후 남북경협의 미래가 불투명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 현대가의 계열분리 후 적통논란 속에 소원해진 관계도 이유로 꼽히고 있다. 현대아산 사무실 모습. 사진 = 연합뉴스

현대아산은 대북 7대사업 독점권(철도, 전력, 통신, 댐, 백두산 수자원, 통천비행장, 명승지 관광)을 갖고 있다. 향후 남북경협이 재개되면 현대아산의 수혜가 기대된다.

그럼에도 주요주주인 범현대가 기업들이 증자에 불참한 것은 그만큼 재계가 대북사업의 미래를 밝지 않게 보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렇게 된 이유는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후, 북미 양국이 지금까지도 의견차이를 좁히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현대아산이 유상증자 계획을 세울 작년 말 당시만 해도 남북경협이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컸다. 이런 기대는 지난달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이어졌고, 이는 남북경협 재개의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후 미국은 영변 이외 지역을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 북한은 영변 핵시설 폐기를 통한 단계적 비핵화를 주장하며 다시 팽팽한 긴장관계로 돌아섰다.

우리 정부도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실무협상마저 북한이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지연되고 있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들이 결국 현대아산의 유상증자가 흥행하지 못한 배경이 된 것으로 보인다.

유승민 삼성증권 통일경제TF 팀장은 CNB에 “북미 사이에 대화 등 진전이 있어야만 경협에 대한 기업의 흐름이 나타날 수 있지만 현재로서는 전혀 진전이 없다”며 “특히 내년에는 미국 대통령 선거가 있어 북미대화가 관심을 끌기 힘든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고 내다봤다.

다음으로는 현대그룹과 다른 범현대가 사이의 간극이 좁혀지지 못한 점을 이유로 들 수 있다. 현대가가 계열분리 된 후, 현정은 회장(고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의 부인)이 이끄는 현대그룹과 이밖의 현대가 기업들은 서로 소원한 모습을 보여왔다.

이유는 현대가 적통(嫡統) 논란이 배경이 됐다. 정몽헌 회장이 2003년 8월 급작스레 숨지면서 부인인 현정은 회장이 모기업(현대그룹)을 이끌게 되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정몽구 회장 등 현대가 형제들은 현 회장으로부터 현대그룹을 되찾으려 했다. 이른바 시숙과 제수 사이의 갈등이 벌어진 것.

2003년에는 시숙부인 정상영 KCC 명예회장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집중 매입하면서 현 회장을 압박했고, 2006년에는 시동생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대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현대상선 지분을 사들이면서 적대적 인수·합병(M&A) 의도를 드러내기도 했다. 2010년에는 정몽구 회장과 현 회장이 ‘현대건설 인수’를 놓고 충돌했다.

이런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멀어진 관계가 아직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현대아산의 유상증자가 흥행에 실패했다고 보는 시각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CNB에 “다른 범현대가 주주들은 그동안 6번의 유상증자에 한 번도 참여하지 않았다. 다른 회사의 결정에 대해 특별한 의견이 없다”며 말을 아꼈다.

이 관계자는 “대북사업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한 만큼 하루빨리 남북경협 재개되길 바라며, 기대와 희망을 잃지 않고 준비와 노력을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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