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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뉴요커 디렉터가 본 한국의 미투…"여성에 대한 고정관념 이제 끝"

페로탕 서울, 그룹전 ‘기념비에 대한 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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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김금영⁄ 2019.04.12 14:23:53

‘기념비에 대한 부정’전이 열리는 전시장.(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작고 청초한 얼굴과 대비되는 근육질의 몸이 눈길을 끄는 그림 속 한 여성. 또 다른 작품에서는 여성과 남성의 육체적 관계를 암시하는 장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고, 치렁치렁한 긴 머리가 부각된 여성의 조각상도 보인다.

페로탕서울이 그룹전 ‘기념비에 대한 부정’을 6월 8일까지 연다. 국내외 작가 12명이 이번 전시에 모였다. 각자 태어나고 자란 환경도 성별도 다른 이들의 공통 화두는 페미니즘. 전시를 기획한 발렌타인 블론델 ‘페로탕 뉴욕’ 디렉터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은 한국에서 마주한 ‘미투’ 운동이었다”고 짚었다. 지난해 광화문에 갔다가 미투 운동과 관련된 시위가 벌어지는 걸 목격했다는 것.

 

박가희의 작업은 개인적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은밀한 현장을 포착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미투 운동의 대중화는 배우 알리사 밀라노가 이끌었다. 그는 2017년 10월 할리우드 유명 영화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이 지난 30여 년 동안 다수의 여성에게 행한 성추문을 폭로하며 “성희롱이나 성폭력을 당한 적 있는 여성들이라면 MeToo(미투)를 써주길 바란다”며 소셜미디어에 해시태그 운동을 제안했고, 이에 목소리를 숨겨 왔던 여성들이 피해를 고발하기 시작하면서 24시간 만에 약 50만 건 이상 해시태그가 올라오는 등 대중적 운동으로 번졌다.

“나 혼자만의 피해라고 생각하지 말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높이라”는 미투 운동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한국에서는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가 검찰 내 성추행 사실을 알리며 미투 운동을 본격적으로 촉발시켰다. 같은 해 2월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 운동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미투 운동을 적극 지지한다는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이 가운데 한국에서 벌어진 미투 운동 관련 시위 현장을 블론델 디렉터가 마주했던 것.

 

루비 스카이 스타일러는 여성성과 모성을 대표하는 전통적 장면 속에 남성을 집어넣었다.(사진=김금영 기자)

여성들이 사회적 약자로서 참아왔던 피해를 고백하고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는 취지는 좋았지만, 이 가운데 피해자인양 가장해 미투 운동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사례도 있어 갑론을박이 치열했고 지금 또한 그렇다. ‘이기적 페미니즘’이라는 비판도 있고, 극렬화된 양상은 남성 혐오, 여성 혐오까지 번졌다. 이 가운데 ‘기념비에 대한 부정’이라는 웅장해 보이는 전시명과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다는 전시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다.

전시는 페미니즘을 둘러싼 갈등 양상보다 현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작가들이 지닌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 그리고 표현 방식에 집중한다. 참여 작가들은 모두 1970~80년대생 젊은 작가들로 구성됐다. 여성 작가뿐 아니라 남성 작가도 참여 작가에 포함시키며 다양한 관점과 가지각색의 목소리를 수용하고자 했다. 블론델 디렉터는 “이번 전시는 작가 12인이 다양한 것들을 집어넣은 에세이와도 같다”고 말했다.

제네시스 발란저가 정교하게 조각한 사물은 사람과 매우 비슷한 모습으로, 불편할 정도로 친숙한 모습이다.(사진=김금영 기자)

전시는 박가희의 작품부터 시작된다. 작품에는 고양이와 전등, 탁상 등 익숙한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마냥 천진난만하지는 않다. 그 속에 담긴 성적 행위는 그 행위가 이뤄지는 배경과 사뭇 대조된다. 개인적 공간에 관심이 많은 박가희가 그려낸 풍경이다. 그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얼마나 자신의 공간이 중요한지 느꼈다. 특히 한국에서 한 여성으로서 길거리를 걸을 때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느끼기도 했다. 그리고 이 불안감을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렇게 박가희는 화면 속에 개인적인 공간을 구축하고 은밀한 내용을 집어넣었다. 그가 어렸을 때는 여성들에게 성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던 시기가 아니었고, 오히려 이를 부끄러워하며 숨겼다. 하지만 이제 박가희는 남성 위주로 이뤄졌던 이야기들을 화면 위에 적극적으로 끌어내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을 만들어냈다.

1970~80년대 작가들이 읽은 오늘날의 페미니즘

 

회화와 조각을 혼합한 닉 도일은 은연중 사물에 부여돼 있는 성별의 이미지를 다룬다.(사진=김금영 기자)

적나라한 장면은 실리아 헴튼, 리들리 하워드, 루비 스카이 스틸러의 작품에서도 이어진다. 이들은 남성적 시선을 전복하며 고정적으로 주어졌던 성별 역할을 뒤집는 시도를 한다. 실리아 헴튼의 회화는 남성의 성기에 집착해 남성 화가들이 역사적으로 여성의 성기에 집착했던 것을 비판한다. 귀스타스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1866)과 유사하게 성기를 중심 소재로 다루는데 쿠르베가 인체의 정면을 묘사했던 것과 달리 헴튼은 후방을 묘사한다. 이는 미술 역사의 맥락에서 흔치 않은 모습으로, 헴튼은 여성 화가로서 음경을 묘사해서는 안 된다는 터부에 도전장을 내민다.

리들리 하워드 또한 고정된 이미지에 대한 전복을 시도한다. 캔버스 크기부터 그렇다. 일반적 크기보다 매우 작은 캔버스를 사용했다. 그 작은 캔버스엔 구강성교가 묘사됐다. 그런데 행위자와 대상자의 전통적인 역할, 즉 남성과 여성의 특징적인 성적 행위에서 각 성별에 기대되는 태도를 뒤바꿨다. 그의 그림에서 적극적이고 쾌락을 즐기는 주체는 여성이다.

 

루비 스카이 스타일러는 여성성과 모성을 대표하는 전통적 장면 속에 남성을 집어넣었다. 미술 역사 속 아이와 함께 등장하는 존재로는 여성, 특히 어머니가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회적으로도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의 모성이 부각되는 사례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압도적으로 많다. 하지만 그는 아이들과 함께 기댄 남성을 묘사하며, 초상화에 담긴 전통적인 역할에 다르게 접근한다.

 

사라 피터스의 청동 흉상은 여성의 목소리와 주체성을 담은 신체 기관으로서의 머리를 부각시킨다.(사진=김금영 기자)

기존 여성에게 부여됐던 이미지를 거부하는 작업들도 눈길을 끈다. 제네시스 벨란저와 닉 도일이 이야기를 꺼내는 방식은 ‘사물 사용하기’다. 제네시스 발란저가 정교하게 조각한 사물은 사람과 매우 비슷한 모습으로, 불편할 정도로 친숙한 모습이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벨란저는 인간 형상의 화병을 만들었는데, 여성의 상품화에 대한 비평 의지를 담았다.

 

회화와 조각을 혼합한 닉 도일은 은연중 사물에 부여돼 있는 성별의 이미지를 다룬다. 아름다운 꽃다발 조형물을 이루는 소재는 거친 데님이다. 그리고 이 작품에 가까이 다가서면 여기저기 못으로 뚫린 구멍이 매우 거칠고 투박하다. 블론델 디렉터는 “일반적으로 데님은 남성적인 소재, 꽃은 여린 여성을 상징하는 소재로 예술에 많이 쓰여 왔지만 닉 도일은 이를 혼합시키며 시선의 전복을 시도한다”고 말했다.

줄리 커티스, 사라 피터스, 얀슨 스테그너는 특히 신체에 부여됐던 이미지의 전복을 시도한다. 성적 대상화 되며 페티쉬화 되기도 한 여성의 머리카락이 신체를 집어삼켜 신체 그 자체가 된 줄리 커티스의 작품. 이 머리카락으로 된 밧줄이 신체를 옥죄는 코르셋을 형성하는 그림은 여성을 옥죄고 있는 현실을 꼬집는다.

 

얀슨 스테그너는 전통적인 초상화 장르 속에서 연약하게 표현된 여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린다.(사진=김금영 기자)

사라 피터스의 청동 흉상에서도 머리카락이 부각되는데 커티스와 의미는 다르다. 고대 조각품의 조각 양식을 빌린 그의 흉상은 여성의 신체를 없이 머리만 등장한다. 미술 역사에서 여성이 머리를 은유적으로 떼어버리고 신체에만 쏠렸던 시선을 바로잡는 것. 그의 작품에서는 여성의 목소리와 주체성을 담은 신체 기관으로서 머리를 부각시킨다. 얀슨 스테그너는 여성의 초상을 그리는데, 과장된 근육질의 몸이 기괴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이는 전통적인 초상화 장르 속에서 연약하게 표현된 여체에 대한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

이밖에 노들린 피에르와 에밀리 메이 스미스의 작품도 볼 수 있다. 종교적 회화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다루는 노들린 피에르는 기독교적 신심과 역사를 다룬 회화를 재구성한다. 역사적으로 이런 회화에서 수난을 겪는 남성의 모습이 주를 이루지만, 피에르의 작품에서는 동일한 자세를 취한 여성이 남성의 자리를 대신한다.

 

역사적 예술 작품의 모작과 팝 아트 풍자 속에 재치 있는 논평을 담아내는 에밀리 메이 스미스는 해학을 통해 가부장제와 남근중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기념비의 부정Ⅱ’에서 그는 미약한 크림 덩어리 소재를 마치 기념비적인 소재인양 과장되게 주인공으로 만들었다. 이런 방식으로 그는 우리가 굳게 믿고 있고, 또 은연 중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던 상징들이 사실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수 있음을 지적한다.

 

가장 왼쪽에 설치된 에밀리 메이 스미스의 작품은 해학을 통해 가부장제와 남근중심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마지막으로 제시 매킨슨의 회화는 성별 간 대립을 아예 제거해버린다. 그의 작품은 ‘남성들이 없는 사회는 어떨까?’라는 궁금증에서 비롯됐으며 그 결과 남성들이 전무한 유토피아적 세계관을 스스로 구축해보는 시도를 했다. 매킨슨은 주인공이 낯선 세계를 탐험하는 어슐러 르귄의 ‘사변소설’에서 많은 영감을 받는다고 한다. 르귄은 주로 남성 작가가 주를 이루는 공상과학 소설에 대한 본인의 관심, 그리고 페미니스트 이념 사이의 조화를 꾸준히 고민했다. 매킨슨의 작품 역시 유사한 고민을 담았다.

블론델 디렉터는 “어슐러 르귄은 1986년 쓴 ‘소설의 쇼핑백 이론’을 통해 역사 속 남성 본위의 기념비 중심적 경향을 비판하며 문화가 형성되고 존속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제안을 했다”며 “쇼핑백 이론은 최초의 도구가 정복을 위한 무기가 아닌 채집을 위한 용기였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남성 중심적 사회 구조로 인해 인류가 후자를 억누르고 보다 폭넓은 영웅적인 서사를 추구하도록 길들여졌다고 말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더 나아가 르귄은 문학 속 무찌르고 정복하는 내용의 영웅적인 서사가 구시대적이라 주장하며, 용기에 기반한 보다 복합적인 구조가 발전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통해 다양한 관점이 허용될 것이라 여겼다”며 “이번 전시는 전체적인 역사적 묘사 방식에 반기를 든 르귄의 의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담았다. 작가 12인의 목소리는 예술적 묘사와 그 역사를 기록하고 기념화 하는 과정에 대한 의문의 제기이며, 앞으로 나아갈 새로운 방식을 제시한다”고 강조했다.

 

종교적 회화의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다루는 노들린 피에르는 기독교적 신심과 역사를 다룬 회화를 재구성한 작품을 보여준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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