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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11년 영화계 장기집권 한 마블 스튜디오의 ‘사회적-정치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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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36호 윤지원⁄ 2019.04.24 11:36:53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프로모션차 한국을 방문한 안소니 루소, 조 루소 형제 감독, 제작자 케빈 파이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제레미 레너, 브리 라슨(왼쪽부터). (사진 = 연합뉴스)

‘아바타’의 역대 세계 최대 흥행 기록을 갈아 치울 가능성이 높다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드디어 24일 개봉했다.

‘어벤져스: 엔드게임’(이하 ‘엔드게임’)은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이하 MCU) 11년을 중간 결산하는 영화다.

2008년 ‘아이언맨’의 세계적인 흥행으로 시작한 MCU는 그동안 ‘캡틴마블’까지 21편의 영화를 내놓았다. 대부분 캡틴 아메리카, 토르, 블랙 팬서 등등 각 슈퍼히어로들의 솔로 영화지만, 거대한 하나의 세계관을 공유하며 메인 스토리 이면에 또 다른 큰 줄기의 이야기에 대한 파편적 단서들을 품고 있었다. 그리고 2~3년에 한 번, 큰 이야기 줄기의 국면(페이즈)이 전환될 때마다 ‘어벤져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 같은 대작이 나왔다. 슈퍼히어로들이 6명에서 십 수 명까지 한꺼번에 등장하는 이 영화들은 현재 글로벌 박스오피스 누적매출 순위 최상위를 장악하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 로고. (사진 = 마블스튜디오)


역대 MCU 영화의 엄청난 흥행성적

‘엔드게임’에 앞선 21편의 영화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극장 상영으로만 벌어들인 매출은 4월 셋째 주말(21일)까지 186억 1910만 달러(한화 21조 2537억 원)에 달했다. 편당 평균 1조 원에 육박하는 9660억 5000만 원 어치의 표를 판 것이다.

이는 할리우드 인기 프랜차이즈 영화들 중 최고 매출 기록으로, 2위인 ‘스타워즈’ 시리즈(94억 9천 달러)와 3위인 ‘해리포터’ 시리즈(‘신비한 동물사전’ 시리즈 포함 91억 9천 달러)가 올린 역대 글로벌 박스오피스 매출을 합쳐도 MCU 프랜차이즈의 매출이 더 많다.

2009년, 아직 ‘아이언맨’과 ‘인크레더블 헐크’ 외에 다른 영화를 만든 적이 없던 마블엔터테인먼트는 월트 디즈니 컴퍼니에 40억 달러에 인수되었는데, 이후 마블 영화로만 그 금액의 4.5배가 넘는 극장 매출을 올린 것이다.

21편의 MCU 영화는 한국 극장에서도 총 1억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과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는 각각 1천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했다. ‘엔드게임’ 역시 무난히 1천만 관객을 동원할 전망인데, 개봉 전날인 23일 오후 3시까지 사전예매로 팔린 표만 200만 장이 넘어, 개봉도 하기 전에 이미 올해 국내 개봉작 중 박스오피스 순위 7위에 드는 기록을 세웠다.

이처럼 MCU는 2010년대 엔터테인먼트 업계 최고의 히트상품일 뿐 아니라, 중요한 문화적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다.
 

마블 영화들에서 인생의 교훈들을 배웠다는 팬페이지 게시물. (사진 = 인스타그램)


11년, 21편의 흥행작이 갖는 사회적 영향?

21조 원이라는 금액만큼이나 11년이라는 긴 시간의 의미는 크다. 2008년 '아이언맨' 개봉 당시 관람등급 커트라인인 13세 청소년이었던 관객은 이제 24세의 어엿한 성인으로 성장해 ‘엔드게임’을 맞이하게 됐다. 누군가는 자신의 연애, 결혼, 첫 아이, 이혼까지 파란만장했던 개인사를 ‘어벤져스’ 시리즈의 타임라인에 맞춰 회상하기도 했다.

그동안 21편이나 되는 영화가 나오다 보니 MCU 영화의 타임라인에는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겹쳐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엔 ‘캡틴 아메리카: 윈터솔져’가,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날엔 ‘닥터 스트레인지’가 극장에 걸려 있었으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판문점에서 손을 맞잡던 날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개봉 3일째 되는 날이었다.

슈퍼히어로 장르 영화는 단순히 시간 때우기를 위한 오락거리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존재하지만, 강산이 변할 긴 시간 동안 수많은 대중에 거침없이 접근하면서 감정을 직접적으로 건드릴 수 있는 ‘문화 상품’이라면, 그 사회적 영향력 또한 막대할 수밖에 없다. 과거 ‘딴따라’라는 말로 비하되기 일쑤였던 대중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승리나 정준영이 올해 내내 뉴스에서 차지한 지분이 제1야당 당대표나 원내대표보다 월등히 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어디 그뿐이랴. MCU 영화들의 장르는 슈퍼히어로 액션물, 즉 영웅을 그린다. 삶의 롤모델을 정립할 10대 중후반 청소년들에게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 나이 때 청소년들이 스파이더맨이 되고 싶어 한다는 얘기는 아니고, 평범하지 않은 영웅적인 삶의 방식, 일상적인 차원을 뛰어 넘는 고뇌, 하다못해 신이 빚은 것 같은 완벽한 근육질 몸매 등에 크게 영향받는다는 얘기다.

최근 SNS의 마블 팬페이지 계정에는 팬들이 MCU의 11년 역사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는 고백이 올라왔다. "비록 그들은 진짜가 아니지만 나는 그들을 통해 가까운 이들을 소중히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사랑하는 법을 배웠고, 꿈을 꾸는 것의 중요함을 배웠고, 타인을 위해 사는 법을 배웠고, 모험을 추구하는 법을 배웠다. 그들은 내가 인생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으며, 좋은 친구를 가릴 수 있게 해 주었으며, 내 자신의 진정한 힘을 찾을수 있게 해 주었으며, 영웅은 우리들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다."

오글거리는 말이고 뻔한 교훈일 수 있지만 5만 명 이상이 좋아요를 눌렀다. 영화의 영향력이라는 것이 결코 미미하지 않아 보인다.
 

영화 '블랙 팬서'의 주요 출연진. (사진 = 월트디즈니컴퍼니)


정치적 발언에 대한 고민의 결과: ‘블랙 팬서’와 ‘캡틴 마블’

정작 MCU 영화로 천문학적인 돈을 긁어모으고 있는 마블 스튜디오(그리고 디즈니)가 이러한 영향력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리는 없다. 이윤 높은 히트 상품을 만든 데 만족하지 않고, 적어도 “우리는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서도 신경 쓴다”라는 인상을 어필하면, 불필요한 비판에 따른 리스크는 줄어들고, 신뢰도가 높아지며, 작품과 스튜디오의 수명이 연장될 수 있다.

문화 관련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번 돈을 기부하는 것보다 문화 상품을 만들 때부터 사회적 가치를 담아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단순히 당대의 히트가수를 넘어 가요계에 길이 남을 ‘문화 대통령’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가사에 사회적 메시지를 적극적으로 담아 경직됐던 대한민국 청년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마블 스튜디오는 최근 수년 동안 MCU 영화에 이러한 ‘사회적 책임’을 담으려는 모습을 보여 왔다. 단적인 예가 ‘블랙 팬서’와 ‘캡틴 마블’이다.

‘블랙 팬서’는 MCU 영화 21편 중 북미 지역에서 가장 많은 박스오피스 매출을 올린 영화로 기록되어 있다. 슈퍼히어로 영화로는 과거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다크 나이트’도 이루지 못한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 후보로 지명되기도 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것은 우선 ‘블랙 팬서’가 역사상 가장 비싼 제작비로 만들어진 ‘흑인 영화’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며 그동안 영화계 변두리로 배제되어 있던 흑인들의 자부심을 고조시켰기 때문이다.

단순히 흑인 캐스팅과 흑인 감독이 참여한 흑인 영화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블랙 팬서’는 판타지임에도 불구하고 전 세계 흑인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관한 다양한 시각과 갈등을 비교적 정확하게 조명했다. 그리고 갈등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백인 정치인들의 입법이나 폭력에 의한 인종주의 처단, 타 인종과의 화해같은 방법에 기대는 대신, 가능한 그들 내부의 논의와 투쟁, 그들의 힘과 자원만으로 결말을 이끌어 냈다.

21세기 들어 각국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성차별 논란에 있어서도 ‘블랙 팬서’는 모범적인 영화였다. 주인공 블랙 팬서(채드윅 보즈먼)와 악당 에릭 킬몽거(마이클 B. 조던) 등은 원작에 따라 남자일 수밖에 없었지만, 와칸다 최고의 전사 오코예(다나이 구리라), 최고의 과학자 슈리(레티샤 라이트) 외에 연인 나키아(루피타 뇽오)도 전투에서 제 몫을 하는 전사로 그려지는 등 주도적인 여성 캐릭터들의 비중이 컸고, MCU 내 여성 히어로들의 위상을 끌어올렸다.
 

영화 '캡틴 마블'의 한 장면. (사진 = 월트디즈니컴퍼니)


페미·난민은 싫다고? 당신만의 생각은 아닌지?

‘캡틴 마블’은 MCU의 21번째 영화다. 그런데 앞선 20편 중에는 한 편도 여자 슈퍼히어로가 단독 주인공이었던 것이 없다. 블랙 위도우(스칼렛 요한슨 분)와 스칼렛 위치(엘리자베스 올슨)가 등장한지 각각 9년, 5년이 넘었으나 이들을 단독 주인공으로 하는 솔로 무비는 없었다. 이에 관한 비판에서 마블 스튜디오는 자유로울 수 없었고, 이를 만회할 수 있었던 작품이 '캡틴 마블'이다.

‘캡틴 마블’은 여성이 주인공인 이야기에 남성 시각에 의한 왜곡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여성 감독과 작가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었다. 때문에 주제 면에서는 물론이고 주인공 캐럴 댄버스(브리 라슨)가 진짜 힘을 각성하는 계기나 악당의 본질 등에 여성 주의적 관점이 많이 녹아있다.

뿐만 아니라 ‘캡틴 마블’은 서구 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까지 제노포비아(타 민족에 대한 막연한 공포) 문제를 일으키며 논란이 되고 있는 난민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다루면서, 나름 정공법으로 갈등을 풀어나가기도 했다.

이에 페미니즘, 정치적 올바름, 다양성 고려의 중요성에 대한 거부감을 대놓고 드러내는 사람들이 맹렬한 비난을 가하며 불매운동, 평점 테러를 주도했다. 이는 할리우드 최대 영화 평점 싸이트 ‘로튼토마토닷컴’의 중요한 운영 기조를 바꾸게 만들 정도로 큰 영향을 미쳐 논란이 됐다.

하지만 이들 안티팬의 목소리는 ‘캡틴 마블’의 흥행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못했다. 이 영화는 역대 여성 단독 주인공 영화 중 가장 크게 흥행했을 뿐 아니라(2명 이상의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로는 ‘겨울왕국’이 더 흥행), 역대 모든 영화를 통틀어 글로벌 박스 오피스 누적 매출 순위 25위(4월 23일 기준)라는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고, 여전히 실시간으로 매출이 늘어나고 있다.
 

MCU의 인기 여성 히어로 캐릭터 블랙 위도우. (사진 = 월트디즈니컴퍼니)


1억 명 봤으면 단순한 오락거리 아니야

마블 스튜디오는 앞으로 나올 ‘블랙 위도우’ 솔로 무비도 여성 감독, 여성 작가들을 기용해서 제작하고 있으며, ‘어벤져스’처럼 다수의 초인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이터널스’나 동양인 히어로가 주인공인 ‘샹치’ 같은 차기작 계획을 발표했다. 역시 각 영화에 맞게 주요 제작진 및 출연진의 성별, 인종, 성적 취향 등의 측면에 다양성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

특히 현 인류와는 다른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류가 등장하는 '이터널스'에는 할리우드 주류 오락영화로는 드물게 커밍아웃한 게이 배우가 주인공으로 캐스팅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블 스튜디오의 케빈 파이기 회장이나 디즈니 경영진들은 앞으로도 그런 기조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에 디즈니나 마블같은 엔터테인먼트 기업은 가벼운 오락용 상품이나 만들어 돈이나 벌면 될 것을, 지나치게 정치적인 입장에 신경 쓴다며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앞서 얘기한 것처럼, ‘아이언 맨’ 이후 MCU 영화의 팬으로 10대 중후반을 보낸 20대가 엄청나게 많다. 대한민국에서 MCU 영화는 1억 명 이상의 관객을 불러 모았는데, 이중에도 상당수가 그 세대일 것이다.

최근 한국 사회가 ‘20대 남성’이라는 특정 세대의 사회적 감수성 및 심리 등에 관해 주목하고 있는데, 그들의 집단적인 정서 형성에 영향을 끼친 수많은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 대중문화, 특히 영화의 몫은 얼마나 될까하는 문제 역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그럼 그 안에서 최근 11년 사이 글로벌 박스오피스 톱10에 네 편이나 올라간 MCU 영화들의 몫은 얼마나 될까?

영화 '생일'의 한 장면. (사진 = NEW)


우리 영화 얘기를 해 보겠다. 지난해 '신과 함께' 영화 두 편, 그리고 올해 '극한직업'이 1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 한국 영화는 여전히 시장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한국영화 흥행순위 10위까지를 살펴보면 '신과함께 - 인과연', '신과함께 - 죄와벌', '안시성', '완벽한 타인', '1987', '독전', '공작', '암수살인', '국가부도의 날',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이 올라 있다. 이 중, 여배우 원톱 영화는 없다.

소위 '시장 논리'로 제작사는 잘 팔릴 영화에 투자하는 게 당연하고, 우연히도 남자들 나오는 영화가 인기라서 그렇다는 반박이 있어 추가로 지난해 백억 원 넘는 제작비를 쏟아붓고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영화들도 살펴보겠다. '명당', '마약왕', '창궐', '골든슬럼버', 'PMC: 더 벙커', '인랑', '물괴'. 모두 포스터에 남자들 얼굴만 나온 영화들이다. 반면 여성 원톱 영화였던 '마녀', '리틀 포레스트', '도어락', '미쓰백' 등은 모두 제작비 대비 흥행에 성공했다. 최근 최고의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으며 각종 신드롬을 일으킨 'SKY캐슬'의 주역은 모두 여자다.

최근 백만 관객을 넘긴 '생일'에는 전도연이 출연했다. 전도연은 칸 국제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까지 받았고, 굳이 그 타이틀이 아니라도 한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 첫 손에 꼽히는 배우다. 하지만 전도연이 영화에 캐스팅된 것은 3년 만이다. 그 사이 마동석, 조진웅 등은 각각 열두 편의 영화에 캐스팅됐다. 현실이 이렇다는 것을 과연 국내 메이저 영화사들이 눈치채지 못했을까? 이를 지적하는 것이 과연 일부의 여성 프로불편러 관객들뿐일까?


▲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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