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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 전시] 김지원 작가 “평범한 것들이 신기하게 다가오는 순간들”

PKM갤러리서 개인전 ‘캔버스 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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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41호 김금영⁄ 2019.06.11 16:26:19

김지원 작가.(사진=PKM갤러리)

(CNB저널 = 김금영 기자) “너 아직도 비행하고 다니니?”
고등학교 동창이 농담으로 건넨 이 말이 김지원 작가의 이번 전시를 이루는 토대가 됐다. PKM갤러리가 김지원 작가의 개인전 ‘캔버스 비행’을 7월 7일까지 연다.

작가의 친구가 꺼낸 비행 이야기는 청소년기 일탈을 상징했다. 이 말에 웃으면서도 작가는 비행이 지닌 또 다른 의미에 주목했다. 그는 평소 작업 노트를 들고 다니며 도표를 그리거나 드로잉하는 것이 습관이었다. 이중 ‘사회’ ‘그림’ ‘일상’이 작가의 작업관을 이루는 주요 키워드였고, 이 세 가지를 엮어 표현해주는 세상이 바로 캔버스였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건 캔버스 사이를 자유롭게 비행하는 행위와도 같았다. 그리고 이번 전시는 작가의 주요 작업들을 여행하는 ‘캔버스 비행’의 장이 됐다.

 

‘캔버스 비행’전에 설치된 작가의 ‘맨드라미’ 작품들.(사진=김금영 기자)

이번 전시는 작가의 대표적인 페인팅 시리즈 ‘맨드라미’ 신작 다수를 포함해 ‘풍경’ ‘비행’ ‘무제’ 연작 등 90여 점의 회화, 드로잉, 설치 작업을 선보인다. 특히 눈길을 끄는 공간은 ‘비행’ 페인팅과 ‘무제’ 드로잉 시리즈가 설치된 곳. 단순히 벽에 작품을 거는 데 그치지 않고 비행기 조각을 전시장 천장 높은 곳 여기저기 설치했다. 조용한 전시장을 비행기가 평화롭게 날아다니는 모양새다. 그림에도 높은 천장에 매달린 거대 조형물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는 캔버스 비행의 한 여정으로 작가의 작업실을 전시장에 옮겨놓은 것이다.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한 큐레이터가 보여준 사진엔 그림과 똑같은 풍경이 보였다. 작가 자신이 조감하듯 둘러본 작업실의 풍경을 ‘비행’ 페인팅과 ‘무제’ 드로잉 시리즈에 담았고, 이는 작가의 일상이 반영된, 1인칭 시점의 풍경들이다. 즉 작가는 작업의 주요 키워드인 ‘그림’과 ‘일상’을 반영한 작업들을 전시장에 끌고 온 것이다. ‘비행’ 조형물들은 1인칭 시점에서 더 시야를 넓혀 작가의 행위가 이뤄지는 작업실 현장을 관망하는 또 다른 시점을 보여준다.

 

‘비행’ 페인팅과 ‘무제’ 드로잉 시리즈가 설치된 공간.(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내 일상의 대부분은 작업실에서 이뤄진다. 많은 시간을 작업실에서 혼자 앉아 있다. ‘한 작가가 쭈그려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모습, 그리고 이를 위에서 내려다보면 어떨까?’ ‘이것 또한 ‘캔버스 비행’의 일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이번 전시 공간을 구현했다”며 “비행기 조형물들은 캔버스 틀로 만든 것으로, 확장적인 의미에서 캔버스라고도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전시장에서 ‘캔버스 비행’의 현장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대표작인 ‘맨드라미’ 또한 작가의 삶과 연결돼 있다. 작가는 다양한 맨드라미를 그려 왔다. 화려함을 발하는 맨드라미부터 늦가을, 초겨울 사이 마치 갈대처럼 보이는 황량한 맨드라미까지 정말 다양한 맨드라미가 그의 붓끝에서 꽃을 피웠다.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예쁜 꽃’의 범주에서 다소 동떨어져 있는 맨드라미에 작가는 왜 시선이 꽂혔을까. 그는 “맨드라미는 이상해서 그렸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상해서 그렸던 맨드라미서 발견한 자화상

 

김지원 작가의 작업실 풍경을 담은 그림들.(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평범한 일상에서 신기하게도 시선이 머무는 곳과 존재들이 있다. 맨드라미가 그랬다. 강원도 분교에서 맨드라미를 봤는데 장미, 백합처럼 아름답다기보다는 섬뜩한 느낌이 있었다. 그런데 그 맨드라미가 마냥 아름다울 수는 없는 인간의 욕망과도 닮아 보였다. 또 그건 동시에 내 욕망을 상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맨드라미를 그리는데 마치 내 자화상을 그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꼭 실제 모습과 닮게 그려야만 자화상이라 할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욕망을 상징하는 오브제로서 맨드라미를 그리다 보니 어느새 ‘맨드라미 작가’라 불리고 있더라”고 덧붙였다.

 

전시장 천장에 비행기 모양의 오브제들이 설치됐다.(사진=김금영 기자)

2000년대 초반부터 맨드라미를 그려 왔기에 긴 호흡이 이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현재 작가의 작업실 마당에도 맨드라미가 꽃을 피우고 있다 한다. 분명히 식물이지만 동물적인 느낌이 공존하고, 천엽 같이 징그럽게도 느껴지기도 하는 맨드라미의 여러 면모에 작가는 점점 빠져들었다.

그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맨드라미는 좀 더 계절이 겨울로 가 쓸쓸해진 모습이다. 여기에 거창한 이야기를 덧씌우려는 의도는 없다. 화려함 뒤에 오는 자연스러운 스러짐, 이번 맨드라미는 그 풍경을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앞에서 볼 때는 평범한 그림이 가로로 줄지어 설치된 것 같지만 옆쪽에 서서 그림을 바라보면 캔버스의 두께가 서로 다른 것을 발견한다.(사진=김금영 기자)

대부분 다른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는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는 작가의 일상 습관은 앞선 ‘비행’ 페인팅과 ‘무제’ 드로잉 시리즈에서도 엿보인다. 그의 작업실을 채운 오브제들의 존재를 자세히 살펴보면 해변에서 주운 플라스틱 조각, 자그마한 아톰 캐릭터 장난감, 망가진 그물망 등 이미 그 쓸모를 잃었거나 버려진 것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작가는 “멋있는 것을 찾아 그리거나 작업하는 건 내게 맞지 않더라. 내 인생의 비행이 그런 것 같다”며 “뻔하고 누구나 시선이 가는 건 흥미가 없다. 맨드라미도 그래서 그렸고, 남들이 볼 땐 쓸데없어 보이는 오브제들이 내게는 훌륭한 조형물의 도구가 됐다”고 말했다.

 

김지원 작가는 겨울의 황량한 맨드라미부터 그로테스크한 강렬함을 드러내는 맨드라미까지 다양한 모습의 맨드라미를 그려 왔다.(사진=김금영 기자)

또 다른 전시 공간에서는 앞쪽에서 보면 알아챌 수 없지만 옆에 서서 바라보면 똑같은 크기의 캔버스의 두께가 피아노 건반처럼 들쭉날쭉한 걸 발견할 수 있는데, 이 또한 뻔한 전시 풍경에서 벗어나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깃들었다. 1초 만에 그림에서 시선을 떼는 게 아니라 ‘저게 뭐지?’라고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 이는 그냥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일상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나름의 가치를 스스로 찾아보는 행위와 연결된다. 작가의 ‘캔버스 비행’은 여기에 의의를 두고 있다.

한편 작가는 인하대학교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 미술학교(슈테델슐레)를 졸업했으며,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제 15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했으며 대구미술관(2015), 금호미술관(2011, 1995), 하이트 컬렉션(2011) 등 유수의 미술 기관에서 개인전을, 국립현대미술관(2015, 2011, 2004, 2001, 1986, 1983), 서울시립미술관(2012, 2005), 부산시립미술관(2018), 문화역서울284(2019), 성곡미술관(2017, 2000, 1999), 일민미술관(2015, 2004), 베이징 얀황예술관(2012), 타이중 국립대만미술관(2012) 등에서 단체전을 가졌다.

 

김지원 작가의 일상이 주를 이루는 그림들.(사진=김금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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