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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내부거래 논란 언제까지

“기업 간 지원” vs “사익편취”… 법안은 국회서 ‘쿨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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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52호 이성호 기자⁄ 2019.10.01 09:30:52

지난 17일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민변 민생경제위원회·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 제7간담회실에서 열린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경영권 승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를 위한 입법 토론회’ 모습.  사진 = 이성호 기자

(CNB저널 = 이성호 기자) 문재인 정부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해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나누자는 소득주도성장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대비한 혁신성장에 경제정책의 무게를 두고 있다. 이를 위해 규제개혁, 양질의 일자리 창출, 재벌지배구조 개편 등을 국정운영의 우선 과제로 추진 중이다.

#사례1. 2005년 매출액이 1225억원에 불과했던 에이치솔루션(구 한화S&C)은 지난해 매출액 9270억원대 회사로 성장했다.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이 회사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2016년 기준 내부거래 비중이 70%에 육박했다는 게 이를 뒷받침한다. (최태돈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테크윈지회 부지회장)

#사례2. SBS미디어홀딩스의 지배주주 태영건설 지분 38.5%를 태영그룹 회장 등 특수관계인이 보유 중으로, 2008년 지주회사 체제 전환 이후 SBS 콘텐츠 유통수익 중 상당액이 지주회사 산하 계열사로 빠져나가 태영건설에 지속적인 배당 수익을 보장했다. 이러한 ‘이익 터널링’은 태영건설 부회장 부인 명의의 ‘뮤진트리’가 SBS콘텐츠허브와의 독점 수의계약을 통해 지속적 용역 매출을 보장받아온 것에서도 드러난다. (윤창현 전국언론노동조합 SBS본부장)

#사례3. 2007년 매출액 170억원, 당기순이익 223억원이었던 (주)호반은 내부거래를 통해 2017년 매출액 1조6033억원, 당기순이익 6165억원으로 급성장했다. 이후 (주)호반의 최대주주 김대헌 부회장은 그룹의 핵심회사인 호반건설의 최대주주(54.7%)로 등극했다. (장형우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신문지부장)

이는 지난 17일 이학영 의원(더불어민주당)·민변 민생경제위원회·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공동주최로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경영권 승계, 이대로 방치할 것인가…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 강화를 위한 입법 토론회’에서 발표된 사례들이다.

이상훈 변호사(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에 따르면, 한화그룹의 경우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세 아들이 100% 지분을 보유한 에이치솔루션에 대한 그룹 차원의 전폭적인 일감 몰아주기가 있었지만 물적분할로 공정거래법상 규제를 회피했다.

또 SBS는 당초에 방송 독립성 강화 수단으로 제시된 지주회사 체제가 뮤진트리에 대한 일감몰아주기 등과 결합해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조직적인 사익추구 수단으로 전락된 경우라고 분석했다.

호반건설의 사례는 종전의 재벌 세습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아 일감몰아주기 남용 행위가 중견그룹까지 광범위하게 진행됨을 확인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실 내부거래는 여러 대기업에서 나타나는 일상적인 현상이다. 참여연대가 최근 발표한 ‘2018 지주회사 수익구조 실태 분석 이슈리포트’에 의하면 20개 대기업집단 주요 지주회사(SK, LG, 롯데지주, GS, 현대중공업지주, 한진칼, CJ, 부영, LS, 하림지주, 코오롱, 한국테크놀로지그룹, 세아홀딩스, 셀트리온홀딩스, SBS미디어홀딩스, 동원엔터프라이즈, 한라홀딩스, 아모레퍼시픽그룹, 하이트진로홀딩스, AK홀딩스) 중 17개 회사의 내부거래 비중이 80% 이상이었으며, 내부거래 비중이 100%인 지주회사도 7개에 달했다.

CEO스코어가 2018년 기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59개 대기업집단 중 총수가 있는 49개 그룹 계열사 1848곳의 일감몰아주기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내부거래 총액은 176조5393억원으로 전년 170조9억원 대비 3.8% 증가했다.

수직계열화·전문화·기밀유지 등 정상적인 목적으로 이뤄지는 내부거래의 경우 탓할 수야 없겠지만 과도한 일감몰아주기는 눈총을 받는다. 총수의 자녀나 친척 등이 경영하는 계열사에 집중적으로 일을 주면 응당 지원을 받는 회사 규모가 커지고 그 이익은 고스란히 오너일가와 최대주주에게 돌아가게 돼 결국 부당한 부와 경영권을 승계하는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관련기업의 시장참여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시킴에 따라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일거리를 빼앗기게 돼 공정거래 생태계가 파괴되는 부작용을 야기한다. 문재인 정부가 재벌개혁의 핵심 중 하나로 ‘일감몰아주기 근절’을 꼽고 있는 이유다.
 

한계 드러낸 현행법, 구멍 숭숭

그럼에도 내부거래는 좀체 줄지 않고 있다. 이유는 뭘까.

일단 현행 공정거래법에서는 자산총액 5조원 이상인 기업집단의 계열회사가 총수일가의 지분이 일정 비율 이상(상장 30%, 비상장 20%)인 다른 계열사와의 일정한 거래(대가성 거래, 사업기회제공, 일감몰아주기)를 할 경우 감시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내부 거래액이 연간 200억원 또는 연매출액의 12% 이상일 때 위법성 여부를 따져서 위반 시에 관련 매출액의 5%내 과징금, 3년 이하 징역이나 2억원 이하의 벌금 등 제재가 가해진다.

즉, 현행 사익편취규제는 총수일가가 상장회사 지분 30% 이상, 비상장회사 지분 20% 이상을 직접 보유하는 경우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지난해 말 기준 내부거래 규제 대상인 기업은 193곳에 불과한 형편이다.

더군다나 빠져나갈 구멍도 많다.

자회사는 아예 제재를 받지 않는 사각지대며, 상장회사의 경우 29.99%까지만 보유토록 지분을 매각해도 규제 회피가 가능하고, 마찬가지로 비상장사도 규제 턱밑까지 지분을 낮추면 오히려 면죄부가 주어지는 상황이다.

더불어 ‘효율성 증대효과가 있는 거래, 보안성이 요구되는 거래, 긴급성이 요구되는 거래’ 등은 규제에서 제외되며 무엇보다 법원에서는 공정위로 하여금 경제력 집중을 유지·강화할 수준의 일감몰아주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토록 하고 있어 행정력을 발휘하기 쉽지 않은 구조다.

이처럼 현행법이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 개선책이 요구되는 실정인데 이미 국회에는 총수일가 지분요건을 상장·비상장 모두 10% 이상으로 강화하거나 상장 여부를 불문하고 20% 이상으로 단일화 그리고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지분율 산정 시 간접지분도 포함토록 하는 각각의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계류 중이다.

공정위 역시 지난해 국회에 제출한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에서 총수일가 지분요건을 상장·비상장 구분 없이 20%로 일원화하고, 이들 회사가 발행주식총수의 50%를 초과하는 지분을 보유한 자회사까지 규제대상에 포함시키도록 했다. 공정위가 마련한 강화책이 실행될 경우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은 현 200여곳에서 600여곳으로 늘어나게 된다.

또한 지난 5월 국회에 접수된 ‘국세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채이배 의원 대표발의)’은 국세청으로 하여금 특수관계법인과의 거래 등에 대한 과세정보를 공정위에 지체 없이 통보하도록 해 일감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행위를 실효성 있게 규제토록 명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따르면 공정위는 공정거래법에 따라 공시된 거래현황 등을 토대로 법위반 혐의점을 감지하고 있으나, 공시된 정보만으로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부당내부거래의 적발이 어렵고 거래조건의 적정성 등에 대한 파악도 어려워 과세정보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과잉 규제 논란…관련법 통과 안개속

반면, 경제계에서는 쌍수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는 미국·독일·영국·캐나다 등 선진국은 물론 중국·대만 등 우리의 수출경쟁국에서도 기업 간 지원행위를 불공정행위로 규제하는 입법례를 찾아볼 수 없는 과잉 규제라는 주장이다.

특히 수직계열화는 경영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고 비용합리화를 통해 수출시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선진기업의 일반적 경영전략으로 그간 허용됐던 내부거래마저 축소될 경우 가격경쟁력 하락에 따른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찬·반이 극렬하게 엇갈리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들 법안 논의는 진척이 없는 상태로 국회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법안 논의가 답보 상태이다 보니 시민사회단체에서는 하위법령인 시행령이라도 손봐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으로 일감몰아주기 규제대상 상장사의 총수일가 지분율 기준을 현 30%에서 20%로 강화할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공정위는 CNB에 국회에 관련법이 제안돼 있기에 일단 법 개정이 우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시행령 수정(30%→20%)을 통해서는 자회사를 규제대상에 포함할 수 없기에, 많아야 약 20개사만 추가됨에 따라 취지에도 맞지 않고 정책 효과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다만 공정위는 당정협의를 통해 발표한 ‘공정경제 성과 조기 창출 방안’으로 오는 12월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지주회사와 그 소속회사(자·손자·증손회사)간 대규모 내부거래에 대해 이사회 의결 및 공시의무를 부과키로 했다.

공시대상기업집단 소속회사는 50억원 이상 규모의 거래 등의 대규모 내부거래를 미리 이사회의 의결을 거친 후 공시해야 한다는 것. 또한 지주사 내부거래 중에서도 소속회사로부터 수취하는 브랜드수수료, 경영컨설팅수수료, 부동산임대료 등이 계열사 부당지원 및 총수일가 사익편취 등의 우려가 있다는 판단으로 이 내역 역시 기업집단 현황고시를 개정(2019년 12월)해 공표토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정상가격 산정방법 ▲행위유형별 적용요건 ▲상당히 유리한 조건·규모의 거래에 해당하지 않는 거래의 구체적 기준 및 일감몰아주기 적용 예외사례 등 심사지침을 오는 12월까지 마련, 총수일가 사익편취행위에 대한 명확하고 일관된 집행기준을 제시한다는 복안이다.

일감몰아주기 억제책이 국회에 발이 묶여 있는 가운데 나온 이 같은 대안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지 여부는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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