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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성공한 갑부가 돈 쓰는 법…빌 게이츠와 현대차 그리고 우한

기업시민이라면 옆 나라 아픔 외면해선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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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66-667호 윤지원⁄ 2020.01.30 08:15:57

29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 인천교통공사 귤현차량기지에 정차한 지하철 전동차량에서 공사 관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인 '우한 폐렴'의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방역작업을 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기업을 얘기할 때 마이크로소프트가 빠지지 않으며, 그 창업주 빌 게이츠는 당연히 세계 최고 부자 순위에서 늘 첫 손에 꼽힌다.

그는 ‘빌앤드멀린다게이츠재단’(Bill & Melinda Gates Foundation)이라는 민간 재단을 운영하고 있는데(이하 게이츠 재단), 이 재단의 최고 경영진인 이사회는 빌 게이츠와 아내 멀린다 게이츠, 그리고 역시 세계 최고 부자 명단에서 빠지지 않는 워렌 버핏 등 3인으로 구성된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이 출연하는 재단인 만큼 그 운영 기금은 전 세계 민간 재단 중에서 가장, 혹은 두 번째로 많다. 미 경제전문지 포춘에 따르면 게이츠 재단이 2017년 말까지 기부한 액수는 455억 달러(한화 약 53조 원)에 달한다.

유일하게 이 재단과 기금 규모로 겨룰 수 있는 재단은 이케아 설립자인 잉발 캄프라드가 세운 스티흐팅잉카재단(Stichting INKA Foundation)인데, 기금 규모는 약 30조~40조 원 수준이지만 기부금 규모는 현저히 적고, 또한 기금 운영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공익 목적보다 세금 회피 및 경영권 방어를 위한 기구로 여겨지고 있다.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 로고. (사진 = 빌앤드멀린다게이츠 재단 홈페이지)


세계적 갑부와 세계 최대 재단의 관심사

게이츠 재단은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All lives have equal value)라는 활동 이념에 따라 글로벌 의료 향상, 전염병 퇴치, 개발도상국 공공의료 개선 등의 활동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

의료 수준이 낙후된 곳의 생명을 살리고, 전염병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한으로 억제하기 위해 매년 수조 원의 돈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어지간한 경제 규모를 갖춘 나라의 정부의 관련 예산보다 많은 금액이며, 특히 아프리카 대륙 전체가 게이츠 재단 덕분에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와 관련해서도 빌 게이츠의 이름이 다시금 회자되고 있는데, 바로 이처럼 재단 활동과 관련하여 그가 수년 전부터 주장해온 발언 때문이다.

빌 게이츠는 앞으로 인류가 실제로 직면할 가능성이 높은 대규모 재난은 핵전쟁보다도 지금껏 보지 못한 전염병일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빌 게이츠가 2015년 테드(TED)에서 전염병 대응의 중요성에 관한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사진 = TED 화면 캡처)


그는 1918년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일명 ‘스페인 독감’으로 인해 단 265일 동안 3336만 명이 사망한 사실을 예로 든다. 이 숫자는 1차세계대전으로 인한 전체 사망자 수는 물론 2차세계대전 사망자보다도 압도적으로 많다. 심지어 당시 교통 기술에서 글로벌 인구 이동 수준이 어느 정도에 불과했을지를 생각해보라.

또한, 그는 인류가 핵전쟁 억제를 위해 이미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해 왔고, 핵전쟁 발발 가능성을 한껏 낮춰 놨으며, 또 국지적으로 핵전쟁이 발발할 경우 이에 최대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시스템과 훈련된 군대를 상비하고 있는 국가가 많다는 점을 언급한다. 반면에 언제 어디서 어떤 식으로 정체 불명의 치명적인 전염병이 발발할 경우 이에 대해 효과적이고 조직적, 체계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력 양성이나 체제 유지에 대해서는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게이츠 재단은 이와 관련한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해오고 있다. 1999년 우리나라에 개소한 국제백신연구소(IVI)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기구인데, 이 또한 게이츠 재단 덕분에 가능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기금 덕분에 유지되고 있다.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지켜보면서 그가 주장해온 바가 떠오른 것도 당연했다. 그의 주장이 ‘예언’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동시에, 성공한 기업인이 인류에 관해 어떤 비전을 가지고 돈을 써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됐다.
 

유엔아동기금(UNICEF·유니세프)가 28일 중국 우한(武漢)으로 보낼 구호물품들을 항공기에 싣고 있다. (사진 = 유니세프한국위원회)


우한에 마스크 보내는 현대차

한편, 현대자동차그룹은 이번 일과 관련해 중국에 1500만 위안(한화 약 25억 3천만 원)을 지원한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지원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중국 내에서의 피해 복구 및 확산 방지를 돕는다는 취지이며, 1000만 위안의 성금과 500만 위안 상당의 물품으로 지원할 예정이라고 28일 밝혔다.

이번 사태가 설 명절을 전후하며 급격히 심각한 수준으로 변하면서 중국에 진출한 대부분의 국내 기업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각 기업은 중국 내 자사 임직원을 빠르게 철수시킬 수 있도록 조치하고, 중국 내 공장 가동을 멈췄으며, 국내 임직원의 중국 출장을 일체 금지했다.

하지만 전염병 발원지로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하고 있어 심각한 구호 용품 공급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우한(중국)을 향한 인도적 조치까지 실천한 기업은 아직까지 현대차그룹과 대웅제약 정도만 파악되고 있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중국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신속하게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번 지원을 결정했다”며 “앞으로도 국제사회 인도적 지원에 힘을 모아 동참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우리 정부도 우한의 우리 국민 700명을 데려오기 위해 급파하는 전세기를 통해 마스크 200만 개, 방호복·보호경 각 10만 개 등 의료 구호 물품을 전달할 계획이며, 추가 지원 방안을 중국과 협의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27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서 한 어린이가 마스크를 쓰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기업시민이라면 남의 아픈 곳도 잘 살펴야

우리 정부와 국내 대기업들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재해에 성금 및 생필품, 구호품 지원은 물론 현지 구호활동 등에도 적극 참여해왔다.

대표적으로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09년 아이티 대지진, 2010년 칠레 대지진, 2011년 미국 토네이도, 2013년 필리핀 태풍 피해, 2017년 페루/콜롬비아 폭우, 20018년 라오스 홍수, 2018년 인도네시아 강진·쓰나미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 자연 재해이며, 물리적 재난이었다.

그런데, 이번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역시 우한 지역에서는 재난 수준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우리 기업들의 소극적인 대응은 다소 이중적인 태도로 여겨진다. 자국민(자사 임직원)의 안전과 건강을 서둘러 챙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발 더 나아가 현지 재난 상황에 대해서는 무엇을 도와줘야 하는지 생각할 여유가 없는 것이 안타까운 것이다.
 

한국의 물품 지원 관련 내용을 보도한 중국 매체 홈페이지 및 웨이보 등에 달린 중국 누리꾼들의 감사 댓글들. (사진 = 웹페이지 화면 캡처)


빌 게이츠만큼 범인류적 대의를 생각하고 그만큼 돈을 기부할 순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인도적인’ 관심을 통해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모범적인 기업 시민의 모습을 기대하는 것이다.

인도적 관심이 특별하던가? 아프고 힘든 사람을 알아보고 할 수 있는 선에서 도와주는 것이다. 우한은 이번 사태의 ‘원흉’이며 ‘절대악’에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들이 그곳에 있고, 그들이 가장 아파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아픔을 극복해내기 위해 필요한 여러 가지가 부족하다고 한다. 내 사람을 그곳에서 챙겨 나오면서 옆에서 아파하는 그들이 보이지 않았을 리는 없다.

우리 정부와 현대차그룹의 지원 계획이 알려지자 중국의 누리꾼들은 웨이보(微博) 같은 SNS나 각종 매체에 실린 관련 보도에 대한 댓글로 지원에 대한 감사 인사를 보내고 있다. “어려울 때 돕는 게 진정한 친구”, “우정의 손길에 감사하다” 등의 표현들이 나온다. 기업의 사회 활동에 대한 댓가, 이거면 족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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