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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이미경 수상소감, 영화계 CJ 위상 재조명 기회 됐다

“발언 자격 충분” “세계에 메시지 전해” 영화계 긍정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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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670호 윤지원⁄ 2020.02.26 14:29:01

‘기생충’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었을 때,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작품상 수상소감을 말한 것을 두고 온-오프라인에서 크고 작은 시시비비가 일어났다. 이 부회장의 발언 자격 여부를 두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과정에서 지난 20여 년간 이 부회장과 그가 이끈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부문이 한국영화와 대중문화 산업 전반에 끼친 지대한 영향이 재조명됐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앞줄 가운데)이 지난 9일(현지 시각)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영화 '기생충'이 작품상을 받은 뒤 수상소감을 발언하고 있다. 이 부회장의 왼쪽은 허민회 CJ ENM 대표, 오른쪽은 '기생충'의 제작자인 곽신애 바른손 이앤에이 대표. (사진 = 방송 화면 캡처)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영화 ‘기생충’ 팀을 청와대 오찬에 초청했다. ‘기생충’이 지난 9일(현지 시각) 열린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포함 4개 부문을 수상한 것을 축하하고, 격려하기 위한 자리였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2주 이상 지났지만, ‘기생충’에 대한 대중적 관심은 여전히 높고 호의적이다. 봉준호 감독과 ‘기생충’에 관한 부정적 언급은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히딩크 감독과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이 4강 진출의 쾌거를 이루었을 때 만큼이나 드문 것으로 보인다.

거의 유일하다시피 했던 논란이라면 아마도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의 마지막 수상소감을 얘기한 이미경 CJ그룹 부회장과 관련된 것 뿐이었을 것이다. 그나마도 이 논란 역시 훈훈한 방향으로 정리되고 있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기생충' 팀을 오찬에 초청했다. 봉준호 감독과 배우 이선균 등이 문 대통령과 함께 오찬장으로 입장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책임프로듀서 이 부회장, 수상자격 없다" 주장도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 기준은?


이 부회장이 과연 ‘기생충’의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과 관련해서 그 무대 위에서 소감을 발언할 자격이 있는지가 이번 논란의 핵심이었다.

이번 아카데미 작품상의 수상자는 ‘기생충’의 프로듀서 자격을 지닌 두 사람, 바른손 E&A 곽신애 대표와 봉준호 감독이다. 칸 국제영화제가 감독(연출자)을 작품의 대표자로 보고 황금종려상을 작품의 감독에게 수여한다면, 아카데미는 영화의 프로듀서(제작자)를 작품의 대표자로 간주한다.

이 부회장은 ‘기생충’의 투자·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를 총괄하는 위치에서 영화 제작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 크레딧에는 ‘이그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 책임프로듀서, 총괄제작자)로 올라 있다. ‘기생충’에서 매우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지만, 작품상 수상자는 아니다.

하지만 수상자에게만 수상소감 발언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과거 대리 수상 사례가 몇 차례나 존재했듯, 수상자는 수상소감 발언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양보할 수 있다.

실제로 수상 당사자인 곽 대표는 시상식 직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해당 논란에 관해 언급했다. 곽 대표에 따르면 작품상 수상소감 순서가 왔을 때 봉 감독은 앞서 세 차례 수상으로 ‘소감 소진’ 상태라 별도로 다시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발언 후 이 부회장이 발언하는 것은 ‘기생충’ 팀끼리 미리 정해놓은 사안이었다고 밝혔다.

또, 여러 온·오프라인 대화의 장을 통해 많은 사람이 이 부회장이 제작비 투자 외에 글로벌 홍보에도 투자를 아끼지 않았기에 ‘기생충’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부터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이어진 여러 글로벌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는 데 기여한 점을 언급하며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고 옹호했다.
 

이미경 부회장. (사진 = CJ ENM)


CJ, 한국영화산업 현대화 이끌어

한국영화 제작 현장에 종사하는 영화인 상당수도 이 부회장의 당시 발언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특히 한 관계자는 1990년대 삼성영상사업단에 몸담았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 부회장과 CJ는 과거에 머물러 있던 한국영화 산업을 미래로 끌고 왔다”고 평가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이전의 한국영화 산업에 대해 “내가 기억하는 충무로는 합리성, 공정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근대적이고 불합리한 시스템이었다”라며 당시 충무로가 전국 배급권을 독점하다시피 한 소수 극장 자본에 권력이 집중된 비정상적인 구조였다고 설명했다.

88 서울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우리나라 경제와 문화 수준이 급성장했음에도 충무로의 영화 제작, 배급 관행은 1990년대 후반까지도 과거의 방식에 머물러 있었다. 입장권 매출은 투명하게 정산되지 않고, 제작비 투자는 소수 권력자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그런데 삼성, 현대, 대우, CJ 등 대기업들이 관련 산업에 진출하면서 많은 것이 획기적으로 변했다. 이 관계자는 “막대한 양질의 투자금이 늘어나기도 했고, 무엇보다 대기업의 합리적, 체계적인 업무 시스템과 투명한 자금 관리 시스템이 함께 도입된 것이 중요한 변화였다”고 말했다.

이와 더불어 CJ가 1998년 현대적인 시설을 갖춘 멀티플렉스 CGV강변을 개관한 것도 한국영화산업 도약의 중요한 발판으로 언급됐다. 레이저디스크, DVD 등 고화질 미디어의 보급 확대와 ‘스크린’, ‘키노’, ‘씨네21’ 같은 영화 전문매체들의 인기로 인해 달라진 관객들의 눈높이에 어울리는 극장이 등장한 것이다.
 

CGV의 고품격 상영관 씨네 드 셰프 용산 아이파크몰점. (사진 = CGV)


또한, 멀티플렉스는 대형 쇼핑몰, 푸드코트 등 편리하고 깨끗한 주변 시설과 어우러지며 영화 관람 문화를 바꾸고, 극장 나들이에 소극적이던 잠재 수요까지 불러내며 ‘천만 관객’ 시대를 여는 등 산업 규모를 키우는 데 큰 몫을 했다. 지난해 국내 극장 관객 수는 천만 영화 5편에 힘입어 2억 668만 명이었다. 1인당 연평균 영화 관람횟수는 4.37회다. 이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횟수다.

멀티플렉스의 증가는 전국 극장의 입장권 수익을 정확하게 집계하는 통합 전산망의 설치 및 시행을 가능하게 했고, 그 결과 투명한 자본의 흐름으로 인한 한국영화산업의 현대화를 앞당기는 데 일조했다.

기존의 극장들은 멀티플렉스에 비해 낙후된 시설 때문에 도태되고, 사라졌으며, 그들이 언제까지나 쥐고 있을 것 같던 영화계 권력 또한 흩어졌다.

현재는 한국영화 4대 메이저 회사라 불리는 CJ엔터테인먼트, 롯데엔터테인먼트, NEW, 쇼박스 등이 투자, 배급 경쟁을 이어가고 있으며,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등 할리우드 직배사와도 대등하게 겨루고 있다.

눈에 띄는 것은 대기업 가운데 삼성, 대우 등 재계 최대 그룹들은 IMF 등을 계기로 영화 관련 사업에서 일찌감치 발을 뺐고, 상대적으로 작은 그룹이던 CJ, 롯데, 오리온(쇼박스) 등이 지금도 남아 있다는 점이다.

4대 메이저 중에서는 CJ엔터테인먼트가 첫손가락에 꼽히며, CJ ENM은 케이팝, 드라마, 각종 방송 콘텐츠 등 2000년대 이후 한류가 형성되고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데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명실공히 한국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다.
 

(윗줄 왼쪽부터) 뤽 베송 감독, 배우 양자경, 배우 줄리안 샌즈 등이 이 부회장(아랫줄 오른쪽 2번째) 아카데미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 양자경 인스타그램)


세계에 한국영화와 CJ 홍보

또 다른 영화계 관계자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전 세계로 방송되는 중요한 홍보의 장인 만큼, ‘기생충’ 제작진과 이미경 부회장이 이를 적절히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이 부회장은 이날 ‘기생충’을 지지한 이들에 대한 감사에 이어 “불가능해 보이는 꿈조차, 우리가 그 꿈을 꿀 수 있도록 언제나 후원해준 남동생에게 감사한다”며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언급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언제나 거침없는 비판으로 영화인들로 하여금 안주하지 않고 도전할 수 있게 해 준 한국영화 관객 모두에게 감사한다고 강조했다.

관계자는 이러한 발언이 “수상 주체인 영화 제작진 말고도 영화시장의 시작과 끝인 투자자와 관객을 아우르고, 이를 통해 한국영화산업의 경쟁력을 존재가 있게 드러낸 것”이라며 “이날 ‘기생충’ 한 편이 아니라 한국의 영화계가 할리우드와 글로벌 영화산업을 접수한다는 메시지를 전했으며, 국제 영화계에서 이름이 알려진 이 부회장이 그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계자의 분석처럼 작품상 발표를 앞둔 ‘기생충’ 제작진이 이러한 파급력을 고려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실제로 이 부회장의 수상소감은 국제적으로 큰 화제가 됐고, 이는 CJ와 한국영화 산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아카데미 영화제 직전 이 부회장에 관해 폭넓게 조명한 '할리우드 리포터' 기사. (사진 = 웹페이지 화면 캡처)


미국의 ‘할리우드 리포터’ 같은 주요 글로벌 영화 매체들은 물론이고 ABC, CNN, 월스트리트저널, LA타임스 등 메이저 매체들도 ‘기생충’과는 별개의 뉴스로 한국 재벌 3세 미키 리(이 부회장의 영어 이름)에 관한 소개를 크게 다뤘다.

또 케이팝, 한국 드라마 등 현재 전 세계적으로 파급력을 점점 키워나가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이 부회장 및 CJ의 행보에 관해서도 집중적으로 다뤘다.

CJ ENM은 ‘기생충’ 이후로도 글로벌 영화 시장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행보를 본격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직후인 11일에는 ‘미션임파서블’, ‘터미네이터’ 등 인기 영화 시리즈를 제작한 미국의 영화제작사 ‘스카이댄스’에 일부 투자하고 콘텐츠 공동기획·개발 제작에 나서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또, ‘신과함께’ 시리즈 등에 참여한 국내 최대 시각특수효과 전문 기업 덱스터 스튜디오에 지분 투자를 통해 2대 주주가 됐고, 김용화 감독이 설립한 신생 제작사 블라드 스튜디오에도 지분 투자했다.

허민회 CJ ENM 대표는 "CJ ENM은 콘텐츠 파트너사와의 협업을 통해 세계 시장에 통할 수 있는 콘텐츠 제작에 박차를 가하겠다"며 "뛰어난 창작자들의 국외 진출을 적극 지원하고 글로벌 트렌드 및 신기술에 기반한 글로벌향 대형 IP를 제작해 한국의 문화콘텐츠 사업의 글로벌화를 위해 총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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