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호⁄ 2025.11.14 14:04:17
국립중앙박물관이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소장품 총 81점을 국내 최초로 공개하는 특별전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 빛을 수집한 사람들’을 11월 14일부터 2026년 3월 15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The Metropolitan Museum of Art)의 ‘로버트 리먼 컬렉션(Robert Lehman Collection)’을 중심으로 기획된 전시를 국립중앙박물관이 협력하여 한국 관람객의 시선에 맞게 새롭게 재구성한 것이다. 출품작 대부분은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의 대표 소장품인 리먼 컬렉션에 속하며, ‘인상주의에서 초기 모더니즘까지’라는 주제를 한 수집가의 안목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로버트 리먼 컬렉션’은 1910년대 부친 필립 리먼(Philip Lehman, 1861~1947)으로부터 시작해, 로버트 리먼(1891~1969)에 이르기까지 두 세대에 걸쳐 축적된 방대한 수집품이다. 로버트 리먼은 특히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로 이어지는 프랑스 회화, 즉 인상주의와 그 이후의 미술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작품을 모았다. 그는 전문 자문에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감식안으로 작품을 선택한 독립적 수집가로, 그 탁월한 안목은 오늘날 메트로폴리탄박물관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컬렉션을 형성했다. 이번 전시는 리먼이 주목했던 인상주의의 예술적 본질과 그의 수집 철학을 함께 조명하며, 관람객이 한 수집가의 시선을 통해 인상주의가 열어젖힌 예술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도록 이끈다.
인상주의는 국내에서 매우 인기가 있어, 이미 여러 차례 인상주의 전시가 열렸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전시 대부분은 화가 개인 또는 화풍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이번 전시는 미술사의 중요한 전환점으로서 인상주의가 갖는 특징을 조명한다.
전시는 프롤로그 ‘빛의 여정’, 1부 ‘더 인간다운, 몸’, 2부 ‘기금의 얼굴, 초상과 개성’, 3부 ‘영원한 순간, 자연에서’, 4부 ‘서로 다른 새로움, 도시에서 전원으로’, 5부 ‘거울처럼 비치는, 물결 속에서’, 에필로그 ‘빛의 유산’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시는 ‘레이스를 뜨는 여인’으로 시작한다. 이 작품은 17세기 네덜란드의 거장으로 꼽히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모사한 것이다. 작품은 놀랍게도 살바도르 달리가 그렸다. 달리는 조연 현실주의의 선구자로 왜 이런 작품을 달리가 그렸나 라는 것에 대해서 먼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이 작품은 로버트 리먼이 직접 주문해서 리먼 컬렉션으로 수집된 작품이라는 것이다. 로버트 리머는 그것을 알고 리먼 컬렉션에서 아직 페르메이르 작품을 수집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작품의 모사본을 그려준다면 네덜란드 학파를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자료가 될 것이라고 주문의 의미를 설명을 하고 있다.
전시의 5가지 테마는 몸으로부터 시작해서 점점 확장되는 그런 시선의 변화를 보여준다. 먼저 드로잉 세 점은 19세기에 아카데미에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던 누드의 예를 보여주는데 이 전통에서 누드 드로잉이라는 것이 화가들이 그림을 정말 잘 그릴 자격을 갖추었는가를 가늠하는 기준이었다고 한다.
코르벤은 사실주의 화가이지만 그 당시 19세기에 활동하던 화가들 중에서 전통을 혁파하고 새로운 길로 나아간 화가들도 시작을 아카데미에 베이스를 두었던 화가들도 있었다는 점이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이다.
여기에서부터 시작해서 변주된 한 가지 주제가 목욕하는 사람들이다. ‘엿보다’라는 어떤 관점을 보여줄 수 있어서 극적인 구조를 창출할 수 있었고 많은 화가들이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그려 오던 주제였다. 폴 세잔의 작품은 사람과 자연이 어우러지는 풍경을 끌어 내며 목욕하는 사람들을 변주한다. 고갱의 작품은 새로운 이상향을 오세아니아 남태평양의 타히티섬에서 찾았다.
2부에서는 초상화가 어떻게 변했는지 보여준다. 화가들이 포착해서 그리기 시작한 것이 더 이상 이제 신화나 성경 속의 주제가 아니라 점차 일상, 지금 사람들이 생활하는 모습 속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이다. 스페인 화가 집안 출신의 라이문도 데 마드라소의 작품은 여전히 아카데미 선풍을 보여주지만 주제는 풍속화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밀애를 즐기고 있는 연인의 모습을 굉장히 다양한 질감을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아름다운 작품으로 그려 아카데미 화풍이지만 주제가 변화한 예이다.
이번 전시에는 에두아르 뷔야르라는 화가의 작품이 총 6점이 전시됐다. 에두아르 뷔야르는 상징주의의 계열이면서 장식성이 또 강조가 된 나비파의 일원으로 활동 했다. 뷔야르의 어머니는 재봉사였다. 그래서 천의 패턴이라든지 벽지의 패턴, 테이블 보처럼 다양한 천의 질감들이 굉장히 세밀하게 묘사된 것은 어머니의 영향이다. 이번 전시 공간에서도 작품에서 보이는 그런 패턴들을 이용해 인테리어 효과를 냈다.
르누아르의 ‘피아노를 치는 두 소녀’는 1891년에 프랑스 정부가 르누아르에게 직접 의뢰한 작품이다. 국가가 인상주의 화가에게 작품을 의뢰했다는 것은 이제 인상주의 미술이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것으로도 보였기 때문에 굉장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르누아르는 1892년에 6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4점은 유화 완성본이고, 유화 스케치, 드로잉 등게 6점의 작품을 남겼는데 유화 4점 중의 두 점은 개인 소장이 되었다. 나머지 두 점 중의 하나가 전시된 리먼 컬렉션에 소장된 작품이다. 나머지 하나는 오르세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악기를 연주하는 소녀들이란 주제도 굉장히 전통적인데 그것을 프랑스의 부르주아 가정의 소녀들이 음악을 연주하는 것으로 그려, 전통적인 주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르누아르 특유의 부드럽고 또 생생한 색감이 굉장히 잘 살아 있는 대표작이다.
2부의 초반부를 이루는 공간은 여성을 주제로 하고 있다. 여성을 그렸거나 또 여성 화가들이 그린 작품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19세기 후반에 여성의 달라진 지위 그리고 여성의 달라진 생활 반경, 일상들을 담아낸 작품이다. 특히 전시된 3점의 작품은 메리 카사트라는 미국 출신의 인상주의 화가의 작품이다. 그의 작품 중 ‘봄: 정원에 서 있는 마고’는 이웃에 사는 마고라는 소녀를 그린 것이다. 소녀들의 생활과 소녀가 가지고 있는 감성을 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작품이다.
3부에서는 풍경화를 볼 수 있다. 이때 화가들은 직접 풍경으로 나아가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밖에 나가서 직접 본 어떤 공기의 느낌, 바람의 방향, 빛의 효과 이런 것들에 착안해 그리기 시작한 게 인상주의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이젤이나 튜브 물감과 같은 것들이 발명되면서 화가들이 밖에 나가서 직접 자연을 보고 그릴 수 있게 됐다. 그런 과정 속에서 풍경화는 근대 풍경화로 많은 변화를 겪게 되는데 그것을 시작하는 화파가 바르비종 학파이다. 바르비종 학파는 퐁텐블로 숲이라는 왕실 사냥터였던 곳에서 그 인근 마을인 바르비종에 화가들이 모여 살면서 이 숲을 그린 것에서 출발했다. 숲이 가지고 있는 습한 느낌, 아침과 저녁에 또 다른 어떤 색감의 느낌이나 이런 것들을 많이 관찰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남겼다.
대표적인 두 점의 작품은 테오도르 루소의 작품이다. 루소는 풍경화를 역사화의 지위로 끌어올렸다고까지 평가받는 아주 당시에도 명성을 떨쳤던 풍경 화가이다. 쥘 뒤프레 역시 바르비종 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되는 화가다. ‘소 떼가 있는 리무쟁의 풍경’은 낭만주의 풍경화의 드라마틱한 구름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고, 특히 하얗게 군데군데 칠한 것은 빛이 빛날 때의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폴 세잔의 작품은 이번 전시의 대표작 중의 하나이다. 보통 후기 인상주의라고 할 때 그게 인상주의와 얼마나 다른 것인가에 대해 궁금할 수 있다. 그리고 신인상주의라는 것도 있다. 인상주의는 빛의 효과를 포착해 인상주의 화가라고 부른다. 이 자연을 재해석해 내는 과정에서 훨씬 화가의 개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났을 때 그걸 이제 후기 인상주의 하나의 계열로 구분한다.
폴 세잔은 후기 인상주의의 하나를 보여주고 또 반 고흐도 대표적인 후기 인상주의자로 꼽히는데, 색감에 감정을 실어서 과감하게 표현한 작품으로 또 유명하다. 폴 세잔은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가족들과 내려가 살면서 굉장히 마음의 평안을 느꼈고, 그때 살던 집을 배경으로 하는 그림을 굉장히 많이 그렸다. ‘자 드 부팡 근처의 나무와 집들’은 나무와 집들의 구도가 특이하다. 앞에 나무들을 되게 비정형으로 배치한 것 같으면서도 나무를 겹겹이 쌓아 나가는 그런 중첩된 시선을 보여주는 깊이를 보여주는 것이 세잔 작품의 특징이기도 하다.
4부에서는 19세기 파리의 사회 문화적인 변화 속에서 어떤 공간성이 나타났는가를 세 가지 주제로 나눠서 보여주는 섹션이다. 그 중 첫 번째가 도시이다. 파리는 사실 길도 굉장히 좁고 구불구불하고 위생 설비도 잘 갖추지 못한 그런 도시였다. 그래서 19세기 중반에 대규모의 도시 재개발이 진행됐다. 광장과 광장을 중심으로 큰 대로가 이어지는 지금과 같은 근대 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된 것은 19세기 중후반이다. 그러면서 이 도시 근대 도시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자 사람들은 파리라는 도시를 매우 사랑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을 거리에서 관찰하면서 그렸던 화가들도 있었다. 그중 한 점이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이다. 그는 호텔방 하나를 잡아 그 위에서 대로를 내려다보며 많은 연작을 남겼다.
이즘 새롭게 나타난 개념이 여가라는 개념이다. 농업 사회 기반이었을 때는 일하고 쉬고 이런 것이 분명하지 않았는데 산업화하면서 일할 때는 일을 하고 쉴 때는 쉬면서 여가의 개념이 생겼다. 또 철도가 발달이 되면서 파리의 시민들은 굉장히 쉽게 인근 교외로 나갈 수가 있게 됐고 그 지역을 따라서 크고 작은 도시들 또 해안선의 마을들이 휴양지로 발달하기 시작한다. 알프레드 시슬레의 ‘모레의 외젠 무수아르 거리의 겨울 풍경’은 밤나무길과 겨울 풍경을 그렸다. 시슬레는 풍경화의 정말 진심이었던 화가였다. 눈이 와도 이젤을 놓고 그림을 그렸기로도 유명하다.
키스 반 동겐의 ‘경마장에서’는 1950년대 작품이다. 19세기 중후반에 나타났던 고급 취미 중의 하나가 경마였다. 특히 프랑스 북부 지역의 독일이나 토르빌과 같은 곳에서 경마장들이 많이 만들어졌고, 경마를 배경으로 하는 그림들이 많이 그려졌다. 로버트 리먼도 경마 애호가였다고 한다. 그래서 로버트 리먼이 사망을 했을 때 그가 직접 관리하던 말이 거의 50마리에 이를 정도로 굉장히 경마를 좋아했던 사람이었고, 이 작품은 아니지만 키스반 동겐이 그린 다른 경마장 그림을 리먼 브라더스 사무실에 걸어놓았고 그 안에서 찍은 사진도 있다.
도시와 교외가 나타났지만 여전히 프랑스가 가지고 있었던 땅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보여주는 전원 풍경도 함께 그려졌다. 조르주 쇠라의 ‘풀 베는 사람’은 반복되는 노동의 획일적인 리듬감을 느낄 수 있도록 구도가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 주제인 물에서는 르누아르가 그린 ‘노르망디 바르제몽 근처의 바닷가’를 만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붓질이 사선으로 되어 있는데 북쪽이 바람이 굉장히 많이 부는 지역이었기 때문에 바람의 방향을 같이 나타낸 것이다.
오퀴스트 르누아르의 ‘해변의 사람들’은 두 명의 소녀 너머로 바다가 있고 강아지처럼 재밌는 요소들이 많다. 앙리 에르몽 크로스의 ‘베네치아: 구세주 축제의 밤’은 베네치아에서 불꽃놀이를 직접 보고 불꽃놀이가 터질 때 바다에 반사되는 황홀경을 표현한 수채화이다
로버트 리먼은 가족과 함께 수집한 미술품과 그것이 주는 기쁨을 많은 사랑과 나누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수집품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그의 꿈이 대한민국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펼쳐진다. 빛을 화폭에 담아 예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던 화가들, 그리고 빛을 담은 그림을 모아 기쁨을 나누고자 했던 컬렉터 로버트 리먼…. 이제 그 빛을 눈과 마음에 담아갈 주인공은 바로 관람객이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