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디자인 - 현대카드 라이브러리] “공간 자체가 음악”

디자인·여행 이은 세 번째 ‘공간 경영’

안창현 기자 기자 2015.10.22 08:51:57

▲뮤직 라이브러리는 마치 큰 창문처럼 시야를 확보해 방문객들이 탁 트인 풍경을 직접 맞닥뜨리게 배려했다. 사진 = 현대카드

CNB저널, CNBJOURNAL, 씨앤비저널

(CNB저널 = 안창현 기자) 최근 미술관과 공연장이 연이어 들어서며 새로운 문화공간의 중심지로 부상한 이태원은 국내 대중음악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 장소다. 한국의 록과 댄스 음악이 이곳에서 태동했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 5월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라는 음악 전문 도서관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현대카드는 재작년과 작년, 차례로 디자인과 여행 도서관을 선보였는데, 이번 음악 도서관까지 벌써 3개의 라이브러리가 현대카드 간판을 달았다.

현대카드는 지난 10여 년간 ‘슈퍼 콘서트’나 ‘컬처 프로젝트’를 통해 전 세계 유명 예술가와 뮤지션들의 내한 공연을 꾸준히 개최했다. 이번에 새롭게 문을 연 뮤직 라이브러리를 통해 현대카드의 활동 무대를 보다 다양한 음악과 문화 영역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런 활동은 ‘공간-문화 마케팅’으로 부를 수 있다. 특색 있는 문화 공간 운영을 통해 ‘색깔이 다른’ 기업이라는 점을 과시하고, 고객에게 다른 카드사와는 다른 차별화된 서비스를 받는다는 경험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는 그냥 좋은 IT 기계를 제공하는 게 아니라 ‘애플 생태계’를 조성해 지구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애플이 하는 것, 애플에서 나온 것이라면 무조건 좋다고 추종하는 이른바 ‘애플빠’가 생겨난 근거다. 현대카드의 문화 공간 마케팅이 이른바 ‘현대카드빠’를 생산해낼 수 있을지가 앞으로의 관심거리다. 

▲3000권 가량의 건축 및 디자인 관련 희귀 서적, 절판본을 소장한 디자인 라이브러리. 사진 = 현대카드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2013년 2월 문을 연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는 북촌 한옥마을에 자리 잡았다. 전통과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으로 도서관의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도서관 공간 역시 전통 서재에서 영감을 얻어 주변 풍경과 건물, 책이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대카드는 디자인 도서관에 대해 “디지털이 시대적 대세인 흐름 속에서 책이라는 아날로그적 반전을 통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려 했다. 책을 읽는 행위는 지식이나 철학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종이라는 책의 물성(物性)과 주변 환경의 정서가 어우러져 진정한 몰입의 경험을 선물한다”고 소개한다.

잠시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삶의 가치를 회복하고, 사람들에게 몰입의 시간을 통해 지적인 영감을 얻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현대카드가 라이브러리를 만든 이유라는 설명이었다.

▲도서 선정 원칙과 도서 라벨, 청구기호 등 운영 전반에서 디자인 전문 도서관의 특색을 엿볼 수 있다. 사진 = 현대카드

이 도서관은 바우하우스(Bauhaus) 이후 디자인을 조망한 1만 1500여 권의 국내외 도서를 보유하고 있다. 바우하우스는 현대적인 디자인의 원류로, 현대카드가 추구하는 디자인의 지향점이다. 특히 이곳은 국내외 도서전문가들을 ‘북 큐레이터’로 초빙해 전체 도서를 한 권, 한 권씩 선별해 눈길을 끈다.

전체 도서 중 70% 이상이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책들이다. 3000권 가량은 더 이상 출판되지 않는 절판본이나 세계적인 희귀 서적이다. 또 1928년 이탈리아에서 창간된 건축·디자인 전문잡지인 도무스(DOMUS)와 포토저널리즘의 정수로 평가받는 라이프(LIFE) 지의 전 컬렉션을 볼 수 있다.

‘북 큐레이터’가 고른 희귀본 눈길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인 파이돈(Phaidon)이나 타센(Taschen)의 한정판(Limited Edition) 등도 비치됐다. 디자인 영역의 분류부터 도서 선정 원칙과 도서 라벨, 청구 기호 등 라이브러리 운영 전반을 공간 특성에 맞는 방식으로 구성한 것이 특색이다.

디자인 라이브러리에 이어 작년 5월 두 번째로 현대카드가 선보인 도서관이 청담동에 여행 전문 도서관으로 개관한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다. 몰입과 영감의 공간인 디자인 라이브러리보다 더 적극적이고 입체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됐다.

▲현대카드 트래블 라이브러리는 126년 역사의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권, 세계 최초의 여행지리 저널 ‘이마고 문디’ 등 방대한 여행 관련 서적을 갖췄다. 사진 = 현대카드

현대카드는 여행과 책이라는 두 개의 핵심 키워드를 결합해 기존에 없던 이색 도서관을 만들었다. 단지 여행을 떠나기 전 들러 여행지와 여행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공간이 아니다. 책을 통해 방문자를 세계와 연결시키는 통로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가 흥미진진한 책들을 만나는 또 하나의 여행지다.

건물 밖에서 보면 2층 구조인데, 내부에 들어가면 3개 층으로 나뉜다. 1층에서부터 중앙에 위치한 크고 독특한 형태의 흰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1.5층과 2층으로 올라가게 된다. 1.5층에서 2층으로 넘어가는 도서관 열람실의 모습이 독특하다.

트래블 라이브러리의 건축 및 인테리어는 일본의 건축사무소 원더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사미치 카타야마가 맡았다. 그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건축으로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본 하라주쿠의 나이키 플래그십 스토어, 미국 LA 베이프 스토어, 뉴욕 유니클로, 프랑스 파리 콜레트 등이 그의 작품이다.

▲벽면에 이어 천장까지 거대한 책장처럼 짜인 공간 구성이 흥미롭다. 사진 = 현대카드

그런데 현대카드의 여행 전문 도서관은 왜 하필 청담동에 위치했을까? 현대카드는 “소비와 변화의 중심지인 도심 한복판에 예상치 못한 일탈의 공간을 선보임으로써 평범한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는 여행을 제안하기 위해”라고 밝혔다.

도서관 1층은 끊임없이 떠나고 도착하는 사람들로 붐비는 공항을 떠올리게 한다. 여행 숍과 북 카페, 야외 테라스로 구성된 1층은 책과 함께 하는 여행, 책이라는 여행지로 떠나는 통로다.

책을 통해 여행지를 발견했다면 그곳에 이르는 구체적인 경로를 보여주는 공간도 있다. 2층 서가의 빈틈에 위치한 거대한 푸른 지구는 ‘구글 어스(Google Earth)’를 통해 여행 추천 경로와 자신만의 여정을 실제로 경험시켜주는 장치다.

여행 전문 도서관인만큼 서적 분류는 마치 위도와 경도처럼, 테마와 지역의 두 축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아트 앤 아키텍처(Arts & Architecture), 어드벤처(Adventure), 트래블 포토그래피(Travel Photography) 등 13개의 주요 테마와 전 세계 196개국을 망라한 지역별 분류는 새로운 여행 루트를 발견하도록 돕는다.

▲이태원 한남동에 문을 연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 내부 장식. 사진 = 현대카드

특히 ‘지구의 일기장’이라 불리는 126년 역사의 다큐멘터리 전문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전권,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여행지리 저널 ‘이마고 문디’ 전권과 전 세계 뮤지엄의 최신 동향을 섭렵한 ‘뮤지엄북’ 등 방대한 서적이 존재를 과시한다.

지난 5월 세 번째로 선보인 현대카드 뮤직 라이브러리에는 1950년대 이후 대중음악사에서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1만 71장의 음반과 3298권의 음악 관련 전문도서가 있다. 이곳에서 방문객은 아날로그 사운드를 듣고, 예술 작품과 견줄 만한 오래된 음반 커버를 보고 만지며 음악 여행을 할 수 있다.

이태원 한남동에 위치한 뮤직 라이브러리는 1층 지상 공간을 과감히 비웠다. 이곳의 많은 건물이 남산과 한강의 풍광을 가로막는 상황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뮤직 라이브러리는 마치 큰 창문처럼 시야를 확보해 방문객들이 탁 트인 풍경을 직접 맞닥뜨리게 배려했다.

뮤직 라이브러리를 설계한 최문규 연세대 건축학과 교수는 주어진 공간을 건축물로 가득 채우는 대신 최대한 비우는 열린 디자인을 추구했다. 최종 인테리어 마감은 미국의 겐슬러(Gensler) 사가 맡았고, 실내외는 하나의 거대한 갤러리를 연상시킨다. 실제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의 개성 넘치는 작품이 공간 곳곳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기도 하다.

현대카드는 독자적 시각과 전문성을 확보한 글로벌 큐레이터를 선정해 “듣는 이에게 영감과 생동감을 주고, 선구적인 음악이거나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음악”이라는 원칙을 세워 음반과 관련 서적을 모았다. 1년간 11개국의 개인 수입가와 레코드숍을 찾아다니며 음반들을 수집했다.

지하 1층의 스튜디오(Studio)는 연습부터 곡 작업, 데모 녹음까지 가능한 장소다. 지하 1층과 자연스레 연결되는 지하 2층 스테이지(Stage)는 35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소규모 스탠딩 공연장으로 최고 수준의 음향과 조명 설비를 갖췄다. 

▲대중음악사에 중요한 발자취를 남긴 1만 71장의 음반과 3298권의 음악 관련 전문도서를 보유한 뮤직 라이브러리. 사진 = 현대카드

현대카드는 뮤직 라이브러리의 높은 층고를 활용해 한 개 층을 레벨(Level) 1과 2, 두 공간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장르와 시대를 두 축으로 재즈나 록, 힙합 등 주요 장르가 시대에 따라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 왔는지 음반과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게 했다.

희귀 컬렉션도 관심을 끈다. 비틀즈 음반인 ‘Yesterday and Today’의 유명한 커버를 비롯해 롤링 스톤즈 음악 세계를 한 번에 느낄 수 있는 100장 한정판 ‘A Special Radio Promotional Album In Limited Edition’과 레드 제플린의 ‘Led Zeppelin’ 초회 음반 등 소문이나 기사를 통해서만 접했던 250장의 희귀 음반을 실물로 만날 수 있다.
이와 함께 대중음악을 넘어 전 세계 대중문화사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잡지 ‘롤링스톤(Rolling Stone)’도 1967년 창간호부터 현재 발행되고 있는 최신호까지 1161권이 전권 비치돼 있다. 이 전권 컬렉션은 롤링 스톤지 본사에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맨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