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현장] 초가을, 롯데갤러리 전시장에 만개한 갈리나 먼로의 꽃

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서 국내 첫 개인전

김금영 기자 2024.10.04 16:08:16

롯데갤러리 갈리나 먼로 개인전 전시장. 사진=김금영 기자

“사랑해줘, 내가 다시 나일 때까지.”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것 같지만, 그 기저엔 스스로의 진정한 모습을 따라가고, 이를 사랑하고자 하는 강한 자존감이 느껴진다. 이로부터 타인에 대한 사랑이 비로소 시작된다는 전제다. 갈리나 먼로 작가의 손에서 탄생한 그림들의 서사다.

롯데백화점이 운영하는 롯데갤러리가 갈리나 먼로의 국내 첫 개인전을 선보이고 있다. 영국 노펀에 기반을 둔 프랑스계 영국인 갈리나 먼로는 1993년생으로, 현재 미술신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신예 작가다.

갈리나 먼로의 작품을 감상하는 관람객들. 사진=김금영 기자

작가는 2016년 명문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예술대학에서 미술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정물화 작업으로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근엔 코펜하겐 브릭스 갤러리, 런던 유니언 갤러리, 시드니 피어마크 갤러리 등에서 개인전을 하는 등 미주 및 유럽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이번엔 롯데갤러리를 통해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을 마련했다. 성인의 키를 훌쩍 넘는 작품 20여 점이 전시장을 가득 채웠다. 이에 따라 찬바람이 부는 초가을, 전시장에 꽃이 만개했다. 작가의 작품에선 알록달록한 색상의 꽃이 한눈에 들어온다. 태양광을 머문 것 같은 밝고 온화한 색상 그리고 대담하면서도 단순한 구성 방식은 작품 감상의 몰입도를 더욱 높인다.

갈리나 먼로의 작품 속엔 꽃, 그리고 꽃을 든 인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사진=김금영 기자

롯데백화점 아트콘텐츠팀 이정혜 큐레이터는 “작가는 화면에 콜라주 방식을 도입해 직관적으로 형태가 조합된 공간을 구성함으로써 시각뿐만 아니라 촉각적으로도 느낄 수 있는 통합적인 화면을 만들어낸다”며 “그는 내향적인 자신의 성격을 외부로 표출하는 방식으로 밝은 색채를 사용하고 대담하게 화면을 구성함으로써 명확하게 사물에 대한 인식을 전달한다”고 작가의 작업을 소개했다.

하지만 단지 꽃의 외형적인 아름다움만 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작가는 변화무쌍한 자연 속에서 피어나고 지는 꽃의 서사를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갈리나 먼로는 피고 지는 꽃의 서사를 통해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여준다. 사진=김금영 기자

삶은 결코 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다. 하지만 그렇기에 작가는 슬픔 속 기쁨, 절망 속 희망의 가능성을 봤다. 시들해져 져버린 꽃이 꽃씨를 뿌려 이내 다시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내 작품을 우리가 일상에서 끊임없이 목격하는 잔인함에 대한 항의의 한 형태로 보기 시작했다”며 “우리의 삶이 어두워질수록 내 그림은 더 밝아져야 한다”는 작가의 말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피고 지는 꽃 통해 빛나는 삶의 여정 따라가

갈리나 먼로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또한 이 삶의 여정을 더 빛나게 하는, 눈에 보이진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아름다운 마음이 관람객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이정혜 큐레이터는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쁨을 전하고 공유하고 싶을 때 꽃을 선물한다. 작가에게도 꽃과 함께 있는 순간은 환희와 기쁨의 결정체와도 같다”며 “또한 서로에게 꽃을 주고, 그것을 화병에 꽂는 순간 모두가 삶의 일부다. 작가는 삶의 일부로서 꽃과 함께하는 순간을 작품 곳곳에 묘사하면서 꽃을 통해 대화하고 공존하는 조화로운 삶의 모습을 그린다”로 말했다.

꽃을 들고 있는 손도 묵직한 존재감을 발한다. 특히 꽃을 든 손의 주인공들은 여성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이정혜 큐레이터는 “작가는 서양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공예적 기법과 아름다움, 감성, 공감, 쾌락 등의 주제를 통해 남성 화가의 지배적인 내러티브와는 다른 조용하고 섬세함이 조화된 화면을 보여준다”며 “이번 전시에서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힘차게 꽃을 움켜잡은 여성의 손은 여성적 시선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주도적인 에너지를 보여준다. 곧 시들 것을 알고 있기에 더 아름다운 꽃의 형상은 여성의 섬세한 손길로 세상에 나타난다”고 부연했다.

갈리나 먼로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 사진=김금영 기자

특히 모든 장면들은 상황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그 일부를 확대한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 이에 따라 꽃을 준 인물은 누구이고, 동시에 꽃을 받은 주인공은 누구인지, 이들은 어떤 대화를 주고받았으며,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감정을 교류했는지 등 다양한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정혜 큐레이터는 “화면에 크롭돼 큰 크기로 나타나는 꽃과 나무 인물의 모습은 관람객을 더욱 집중하게 하고 사물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창출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복잡하게 꼬지 않고 삶의 소중한 순간순간에 집중하는 작가의 작업은 삶의 무상함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내면의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환기하도록 돕는다.

갈리나 먼로의 작품 속 장면들은 상황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그 일부를 확대한 방식으로 보이지 않는 장면들을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뒀다. 사진=김금영 기자

이정혜 큐레이터는 “작가는 풍만한 꽃과 꽃을 들고 있는 손, 안정감이 느껴지는 인물의 모습을 대담하게 표현함으로써 자신만의 도상을 창조했다. 생명력이 넘쳐나는 작가의 화면은 자연의 에너지와 삶의 아름다움을 대변한다”며 “이번 전시가 꽃을 건네고 받는 순간의 환희를 함께 공유하며, 관계를 통한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아가는 행복한 여정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롯데백화점 잠실 에비뉴엘 아트홀에서 11월 3일까지.

< 문화경제 김금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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