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안 될 길’ 걷는 李대통령 … 오랜 李지지자도 “걱정” 왜?

최영태 기자 2025.09.03 14:27:41

KBS 기자 출신의 경제학 박사 박종훈의 근저 ‘세계 경제 지각변동’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통상 혁신에 투자해서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아무리 짧아도 3년 이상의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혁신에 대한 투자는 실패할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 임기는 5년이고 임기 중반에 총선이 있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사실상 대통령에게 주어진 시간은 길어 봐야 2~3년입니다. 이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불확실한 혁신 투자보다 자신의 임기 안에 빠르고 확실한 효과를 낼 수 있는 부동산 부양책에 몰두해 왔던 것입니다.”(270~271쪽)

AI 산업 같은 혁신 성장에 투자해 성과를 올리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고, 시간도 많이 걸리기 때문에 역대 정권들(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은 대개 부동산을 통한 경기 부양에 매달렸다는 설명입니다.

 

집값만 말아올린 역대 한국 정권들


그럼, 이렇게 정권들이 대를 이어 집값 관리에 정성을 쏟아서 한국 집주인들은 부자가 됐나요? 박 박사의 진단은 다릅니다.

“달러 기준으로 보면 전국 집값은 지난 7년간 17% 하락했고, 강남 집값도 6% 하락한 것입니다.”(269쪽)

달러 대비 원하의 하락폭이 워낙 커 국제(달러) 기준으로는 지난 7년간 한국 집주인들은 쪽박만 찬 거라니 대비가 놀랍습니다.

현재 이재명 정권은 그 잘 안 될 길, 즉 혁신 성장의 길을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난 3년간 윤석열 정권 기간 중 한국이 얼마나 망해가는 나라였는지는, AI 산업 투자액에서 드러납니다.

다시 박 박사의 책에서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AI 혁명은 2022년 11월 챗GPT의 등장과 함께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이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이후 세계 각국은 AI 혁명에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를 놓고 중대한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중요한 결정의 순간이었던 2023년에 한국은 AI 연구 개발에 8천억 원의 예산을 투입했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은 우리 돈으로 22조 원의 예산을 AI 연구 개발에 투자했습니다.”(259~260쪽)

2023년이라는 결정적 시기에 한국의 투자액은 중국의 28분의 1. 처참한 숫자지요.

2023년 9월 '인공지능으로 대한민국 도약'을 내건 윤석열 직전 대통령 주재 제20차 비상경제민생회의 현장. 말만 거창했을 뿐, 2023년 한국의 AI 투자액은 중국의 28분의 1에 불과했다. (사진=대통령실) 

지난 제36회(7월 29일)에 이어 어제 두 번째로 제39회 국무회의(9월 2일)가 생중계됐습니다. 국무회의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어제 국무회의는 경제와 관련된 온갖 숫자들이 난무하면서 한국의 살길을 찾는 모색이어서 더 재미있었습니다.

대통령 입에서 이처럼 숫자가 많이 나오는 걸 보면서 예전에 읽었던 책 구절이 생각납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신체제 완성 뒤, 즉 사실상의 ‘왕’이 된 상태에서도 국회 시정연설 등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온갖 경제 수치를 나열하며 연설한 모습에 그 역사학자가 깜짝 놀랐다는 내용입니다.

왕이 돼서도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그의 욕망만큼은 대단했기에, 그리고 사실 그러한 욕망은 국민 일반의 욕망이었기에, 아직도 박정희란 이름은 회자됩니다.

1970년 4월 1일 포항제철소 착공식의 (왼쪽부터) 박태준 포철 사장, 박정희 대통령, 김학렬 경제부총리. (사진=포스코)

역대 대통령 중 숫자를 입에 많이 올린 경우로 박정희, 김대중, 이명박에 이어 이 대통령이 꼽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이 중에는 공익 아닌 사익, 즉 자기 주머니를 채우기 위해 숫자를 많이 말했을 법한 전직 대통령도 있습니다.

어쨌든, 박 대통령처럼 경제 숫자 얘기를 많이 할수록 경제 실적이 좋아질 듯은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 대통령이 경제-민생에 집중하는 요즈음, 이 대통령을 오랫동안 지지해온 사람들의 입에서도 일부지만 “잘 될까? 저렇게 보수를 껴안다가 다 흐지부지되는 거 아냐”라는 걱정들입니다.

현재 양상은, 대통령은 경제-민생을 챙기고, 민주당은 검찰-사법-언론 개혁을 챙긴다는 역할 분담이 돼 있는 모양새입니다. 개혁 대상 3자 중 검찰은 좀 풀이 죽은 듯하지만, 사법부와 언론은 “두고 봐라”면서 내리칠 칼날을 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선 민생 후 개혁’ 잘 될까

흔히 정권 초기의 6개월 또는 1년이라는 ‘골든 타임’이 지나면 개혁하기 힘들다고 말합니다. 이 시기가 지나면서 뭔가 정권의 실책들이 나오면 언론들이 힘 모아 공격하기 딱 좋은, 그리고 그러한 공격이 국민 귀에 쏙쏙 들어가는 시기가 도래한다는 뜻이지요.

이제 집권 6개월이 지나면, 혁신 성장이라는 게 3년이 지나야 성과가 겨우 나올까 말까라니, “경제를 성장시킨다고 그 난리를 떨더니 결국 성과가 요거야?” 이러면서 언론들은 집중 포화를 쏴댈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대통령 지지자라도 귀가 얇은 순서대로 “그래. 이거 뭔가 이상했어”라면서 흔들리지 않을까요?

이런 상황을 이 대통령도 아는 듯 2일 국무회의에서 이런 발언을 했습니다.

“1%대까지 추락한 잠재 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지 않으면 어떤 정책도 결국은 반짝 효과에 그칠 것이 분명합니다”라고.

이 대통령의 구상은 ‘경제를 먼저 살리고 그 토대 위에서 개혁을 해야 오래가는 개혁을 할 수 있다’는, 즉 ‘선 민생 후 그 토대 위의 개혁 확실화’로 보입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개혁을 맡은 민주당 진용이 정청래 당대표, 추미애 법사위원장 등으로 단단하게 갖춰져 있다는 점입니다. 민주당이 계획대로 차질 없이 개혁을 밀어붙인다면, 대통령과 당의 역할 분담이 효과를 발휘할 것 같습니다.

반면, 한국의 오래된 신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수법인 “민주당 안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등의 기사가 득세를 하면, 즉 민주당 안의 저항 세력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걸 언론들이 증폭하면서 민심이 흔들리면, 경제도 안 되고, 개혁도 안 될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위 박종훈의 책에는 이런 내용도 나옵니다. 경제 성장이라는 게 결국 생산 가능 인구(15~64세 인구) 숫자와 직결되기 때문에, 일본이건 유럽이건 미국이건 가릴 것 없이,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든 뒤 20년 정도 지나면 경제 성장이 푹 꺼지기 마련이며, 그래서 한국 경제도 내려앉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설명입니다.

KDI가 내놓은 한국 경제의 장기 전망치. 급격한 인구 감소 탓에 성장률 저하가 확실하게 전망되고 있다. (그래픽=연합뉴스) 

윤 정권 3년간 나라를 망쳐먹은 데 이어 인구 감소 탓에 경제 침체가 분명한 한국에서, 이 대통령은 거의 매일 “성장”을 말하고 있으니, ‘망할 게 분명한 길’을 가고 있다고 예언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그리고 그런 앞날, 즉 애는 썼으나 성적은 안 좋을 게 분명한 몇 달 뒤를 이 대통령을 저주하는 세력들은 하루하루 손가락을 꼽으며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김 총리가 지켜본 ‘대통령의 천재적 집단 대화술’

이래저래 불안하면서도 한 가지 믿을 만한 점은 있습니다. 바로 이 대통령의 ‘천재적인 집단 대화술’입니다. 이에 대해선 지난 대선 기간 중 김민석 현 국무총리가 펴낸 ‘이재명에 관하여 - 정치적 동지 김민석이 말하는 이재명의 참모습’이란 책에도 언급이 나옵니다.

 

“토론의 결론을 맹숭맹숭한 뻔한 소리로 끝내지 않는 디테일이 있습니다. (중략) 그런 토론의 바탕에는 집단지성의 우월함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뢰가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8쪽)

“이재명 대표는 본능적인 민생실용파입니다. 계엄 이전 윤석열 정권의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 시도를 비판할 때, ‘전쟁이냐 평화냐’라는 전통적인 프레임과 달리 ‘전쟁이냐 민생이냐’라는 대칭으로 상황을 정리하는 것을 보면서, 이재명 대표는 학생운동 출신의 이른바 동년배 586 정치인들과는 확실히 감각이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흥미로웠고 다행스러웠습니다.” (118쪽)

이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들을 김 총리가 지켜보면서 ‘토론의 결론을 이끌어내는’ 기술에 놀랐다는 소리지요. 그리고 이러한 특징은 또래의 운동권 출신(이념적 지향을 중시하는)과는 확실히 다르다며 “나도 배워야겠다”는 게 김 총리는 경험입니다.

유튜브 생중계로 ‘국민에 직접 일러바친다’

심리학자 김태형은 이 대통령의 성공 요인으로 ‘국민에게 일러바치는 기술’을 듭니다. 성남시 의회, 그리고 기자실을 온통 적대 세력들이 휘어잡고 있을 때 ‘변방의 장수’ 이재명은 토건-언론에 무릎꿇거나 타협하지 않고, SNS를 통해 시민에게 직접 일러바치는 방법으로 행정 동력을 유지해 나갔다는 게지요.

그런 동력을 요즘 대통령실이 전폭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유튜브 생중계’가 거두고 있는 듯 합니다. ‘환장할 정도로 재미없어도 상관없는’ 독일 공영방송은 이러한 해법 찾기 토론을 몇 시간이고 생중계하겠지만, 공영방송이라면서도 시청률과 광고에 목을 매는 한국 실정에서는 ‘언론의 여과장치를 통과한 뉴스’만으로는 현실에 대한 왜곡을 언론기관들이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기에 하는 말입니다.

지난 2일 생중계된 국무회의에서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구윤철 경제부총리의 책 'AI 코리아'를 들어보이자 이 대통령이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예컨대, 유튜브 같은 대안 언론이 전혀 없었던 노무현 시절에는 아무리 밑바닥 경제가 튼튼해도 기성 언론들이 비판하기 딱 좋은 수치만 선택적으로 들어올리면서 “이 숫자를 봐라. 형편없지 않느냐”고 힘합쳐 외치기만 하면 경제는 실제로 망가진 것으로 파악되고, ‘여당 안에서도 비판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등등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정권은 넋을 놓기 쉬웠지요.

지금도 기성 언론들은 이런 작전을 펼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는 듯 싶지만, 그래도 유튜브 생중계로 대통령의 말과 실행을 지켜보는 깨어 있는 시민들은 “음, 저렇게 준비해 가는구나” “지금 당장 경제 숫자가 좋아지지는 않아도 기다려볼 만 하구나”라고 느낄 수도 있을 듯 싶습니다.

분명 담장 위 좁은 길(자칫하면 떨어지기 쉬운)을 걸어가는 것은 분명한데, 그래도 해맑게 그 위를 걸어가는 이 대통령을 보면서 아슬아슬하면서도 묘한 재미를 느끼는 용산의 하루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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