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현대미술관(관장 강승완)은 11월 29일부터 2026년 3월 22일까지 전시실 4,5(지상 1,2층)에서 연례전《2025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_나의 집이 나》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부산현대미술관 플랫폼》은 2023년 ‘자연과 인간’, 2024년 ‘인간과 인공지능의 경계’를 주제로 이어온 연례전으로, 세 번째 회차인 올해 전시는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주거위기, 고령화, 돌봄의 재편 등 도시가 직면한 현실적 과제를 건축·도시적 상상력으로 다시 살핀다.
이번 전시는 인구 감소와 도시 축소가 일상이 된 시대를 배경으로, “작아지는 세계, 다시 짓는 삶의 구조”를 주제로 삼아 축소의 현실을 새로운 도시·건축적 전략으로 전환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21세기 도시는 역설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성장을 전제로 구축된 도시 시스템은, 인구의 감소와 사회 구조의 해체 앞에서 균열을 드러내고, 지방은 소멸하며 도시는 비어가고 있다. ‘도시 축소(Urban Shrinkage)’는 더 이상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대한민국 도시가 직면한 구조적 조건으로 자리잡았다.
김가현 학예사는 "공간 디자인을 건축 전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건축의 기본적인 단위를 재료로 디자인을 했다. 철판이나 건축에 쓰는 파레트 공간과 벽, 좌대 등을 구성해 이번 전시의 주제에 맞도록 노력했다"라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현실을 회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출발해, ‘축소지향적 공간(right-sized urbanism)’이라는 건축적·도시적 전략을 제안한다. 이는 더 작고 덜 소비적인 방식으로 도시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이자, 무너지는 기반 위에 새로운 공동체적 삶의 구조를 세우기 위한 사유의 결과이고, 지역소멸·1인 가구·고령화·돌봄의 재편과 같은 현실적 과제 속에서 삶을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한 실험적 해석이다.
지난 3월 공모를 통해 작가·건축가·연구자 등 다학제팀 10팀이 선정되었으며,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소 시대의 도시를 재사유한 실험적 공간을 제안한다.
참여 10팀은 에이디에이치디(ADHD), 리슨투더시티(Listen to the City), 강해성·문소정·한경태(Haeseong Kang + Sojung Moon + Kyungtai Han), 유림도시건축(Yoolim Architects), 포자몽(Pozamong), 서울퀴어콜렉티브(Seoul Queer Collective), 주현제바우쿤스트(HyunjeJoo_Baukunst), 랩.WWW(lab.WWW), 공감각(Common Senses), 더 파일룸(The File Room)이다.
'이동하는 모듈러 만물상'은 청춘 만물 트럭 사장에게 영감을 받았다. 그는 만물상 트럭을 가지고 소도시를 다니면서 물건을 팔기도 하고 마을에 손이 닿지 않는 곳을 고쳐주기도 한다. 작품은 이동식 수리 및 의료 행위를 지원하는 '개러지 모던'으로 구성된다. 관습적 의미의 만물상과는 달리 강해성+문소정+한경태 팀은 참여자의 적극적 행위를 유도한다.
한편, 전시의 주요 제안은 △독립성과 연대를 동시에 수용하는 ‘작은 집’의 재편 △‘돌봄이 닿는 거리’를 새로운 도시의 측량 기준으로 설정 △재순환 가능한 재료와 감당 가능한 규모의 건축 실험 △관계·리듬·기억을 삶의 구조로 다시 짓는 공간적 서사로 구성된다.
참여 팀의 프로젝트는 ‘축소’를 결핍의 언어가 아닌 전환·회복·재구성의 언어로 해석하며, 작아진 도시 속에서도 새로운 밀도와 공동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번 전시는 미술관 실내외 곳곳에 조성된 ‘10개의 파빌리온(pavilion)’형태로, 축소도시의 삶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포자몽의 '마이코셀 유니버스: 균류와 인간의 공조'는 곰팡이와 인간 간의 공존에 관한 작품이다. 가난한 작가가 자취를 할 때 방에 있던 곰팡이를 보고 '이 공간은 내 공간인가 아니면 곰팡이의 공간인가'라는 질문이 대규모 작업까지 이어지는 인터렉티브 바이오 설치 작품이 탄생했다. 유림도시 건축의 '인피니티 루프'는 도시 재생과 지배 확장의 의미를 간략한 재료로 제작했다.
10개 팀이 제안한 파빌리온은 단순한 전시 설치물이 아니라 관람자가 직접 걷고, 통과하고, 접고, 확장하고,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험형 공간이다. 각 구조물은 주거 불안, 돌봄의 거리, 관계의 재배열, 비인간 생명과의 공존, 도시 비움의 감각 등 축소도시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건축적으로 제시한다.
관람자는 실내외에 분산 배치된 파빌리온들을 순례하듯 이동하며, 축소 시대의 도시가 품을 수 있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직접 경험하게 된다.
부산현대미술관은 부산광역시건축사회와 협력하여 도시와 건축을 주제로 한 특별 영화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이번 프로그램은 부산광역시건축사회의 후원으로 △〈그린 오버 그레이: 에밀리오 암바스〉 △〈도시, 인도를 짓다〉 △〈코펜힐 건축 교향곡〉 △〈파워 오브 유토피아〉 등 네 편의 영화를 전시실 5(2층)에서 전시 기간 상시 상영하며, 모든 상영은 무료이다.
또한,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참여와 체험을 통해 작품과의 깊이 있는 소통을 위해 특별 강연, 워크숍, 퍼포먼스 등 다양한 연계 프로그램도 마련한다.
2025년 12월 13일(토) 서울퀴어콜렉티브의 〈우리는 퀴어로 노년이 될 수 있을까〉를 시작으로, 2026년 1~2월에는 도시와 건축을 주제로 한 강연과 작가와의 대화가 이어질 예정이다.
2026년 3월에는 〈이동하는 모듈러 만물상〉에 영감을 제공한 ‘청춘만물트럭’의 조상하와 함께하는 ‘돌봄의 거리’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강승완 부산현대미술관장은 “이번 플랫폼 전시는 인구 감소 시대라는 현실의 조건을 직시하며, 도시·인간·건축의 관계를 탐구, 재설정하기 위한 사유의 장이 될 것”이라며, “축소의 시대를 전환의 기회로 삼아 새로운 도시적 상상력이 열리고 활발한 대안적 논의가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화경제 안용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