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가 넘는 시간 동안 안과와 피부과 시술 현장을 지배해온 것은 ‘화학 마취제’였다. 환자들은 마취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수십 분을 대기해야 했고, 시술 후에는 시야 흐림이나 부종 같은 부작용을 감내해야 했다. 이 오래된 의료 현장의 문법을 ‘정밀 냉각 기술’이라는 신기술로 깨뜨리려는 기업이 있다. 오는 3월 코스닥 상장을 앞둔 리센스메디컬이다.
리센스메디컬의 경쟁력은 ‘얼마나 차갑게 만드는가’가 아닌, ‘얼마나 정밀하게 다스리는가’에서 나온다. 김건호 공동대표(UNIST 기계공학과 교수)가 발명한 ‘극저온-열전복합 급속정밀냉각 기술’은 기존 의료기기 시장의 기술적 문법을 바꾸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핵심 플랫폼은 극저온-열전복합 급속정밀냉각 기술
과거 의료 현장에서 사용되던 냉각 기술은 액체질소 등을 이용한 극저온 냉매 방식이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제어'가 불가능해 자칫하면 조직이 사멸하는 동상 부작용을 초래하기 일쑤였다.
반면, 회사의 주요 기술적 차별점은 인체의 온도를 실시간으로 읽어내고, 그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지능형 피드백 제어’에 있다. 이 기술은 환자마다 다른 피부 온도와 체열, 나아가 시술실의 습도까지 계산하여 ‘조각’하듯 온도를 맞추는 이른바 ‘브레인 냉각’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갖추고 있다.
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리센스메디컬은 피부 시술 시 통증을 즉각 줄여주는 '타겟쿨(TargetCool)', 화학 약물 없이 10초 만에 안구를 마취하는 미국 FDA 승인 기기 '오큐쿨(OcuCool)', 그리고 반려동물에게 통증 없이 약물을 전달하는 비침습 치료기 '벳이즈(VetEase)'의 3대 제품 라인업을 갖췄다.
특히 안구 마취 기기인 ‘오큐쿨’의 경우, 안구 표면의 미세한 온도 변화와 접촉 상태를 감지하는 알고리즘이 탑재되어 있다. 안구와 기기 사이의 결빙 현상(빙부착)을 방지하기 위해 예비 냉각과 본 냉각 단계를 정교하게 나누어 관리하며, ‘과냉각’ 등 이상 온도 감지 시 즉각 분사를 차단하거나 온도를 보정해 시각 세포를 보호한다.
오큐쿨’은 국내 의료기기 기업 최초로 미국 FDA로부터 ‘De Novo(디 노보)’ 승인을 획득했다. ‘De Novo’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유형의 혁신 기술에만 부여되는 등급이다. 회사에 따르면 임상 3상 결과, 환자의 만족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했고 시술 효율성은 3배 이상 개선됐다.
피부과용 기기인 ‘타겟쿨’은 ±1°C 범위 내에서 온도를 제어해 동상 위험 없이 즉각적인 마취 효과를 낸다. 단순 마취를 넘어 여드름 병변 90.25% 감소, 지루성 두피염 가려움 50.4% 감소 등 냉각을 통한 직접적인 치료 효과까지 입증하며 ‘냉각 치료(Cryotherapy)’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다.
이 제품들은 시술 시간에서도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기존 화학 마취제는 약물이 흡수될 때까지 환자가 5~10분을 대기해야 했으나, 오큐쿨은 접촉 즉시 냉각 마취를 유도해 단 10초 만에 시술 준비를 끝낸다. 피부과용 기기인 ‘타겟쿨’ 역시 35°C의 피부 온도를 0°C로 낮추는 데 단 2초가 소요된다. 이는 의료진에게는 시술 시간 단축을 통한 운영 효율성을, 환자에게는 화학 약물 부작용과 통증으로부터의 해방을 목표로 한다.
‘바늘 없는 주사’… 약물 전달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리센스메디컬이 미래 먹거리로 내세운 초음속 미세동결입자 약물전달 기술(PIPD)은 의료계의 숙원인 ‘무통 주사’를 현실화했다. 액상 약물을 극초음속 제트로 분사해 5~30μm 크기의 미세 얼음 입자로 변환, 각질층을 통과시키는 원리다.
바늘이 없기에 통증이 거의 없고, 피코리터(pL) 단위의 미세한 입자로 약물을 전달해 피부층에 고르게 확산시킨다. 특히 동결과 해동이 수초 내에 이뤄져 엑소좀 등 열에 취약한 바이오 의약품의 특성을 완벽히 보존한다는 점이 글로벌 빅파마들의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이미 동물용 기기인 ‘VetEase(벳이즈)’를 통해 그 시장성을 확인했으며, 출시 2개월 만에 목표 매출을 달성했다.
리센스메디컬에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안정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다. 기기(Device)를 한 번 판매하면 시술마다 사용되는 일회용 카트리지와 소모품 팁의 반복 매출이 발생하는 ‘레이저-앤-블레이드’ 모델(면도기 판매 후 면도날로 이익을 내는 수익 모델)를 갖췄다. 즉, 장비 보급 대수가 누적될수록 마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소모품의 매출 비중이 확대되는 구조다.
타겟쿨·벳이즈 매출 주도… 전년 대비 실적 개선세 뚜렷
현재 리센스메디컬의 주요 매출원은 피부과용 ‘TargetCool(타겟쿨)’과 동물 의료용 ‘VetEase(벳이즈)’다.
전 세계 44개국 유통망을 확보한 타겟쿨은 현재 전체 매출액의 약 65%를 점유하며 핵심 사업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4년 말 출시된 동물용 기기 벳이즈는 비침습적 치료 방식을 선호하는 동물병원 시장에 안착하며 매출 비중 26%를 기록, 새로운 수익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제품군의 판매 호조에 따라 2025년 3분기 누적 매출은 75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2024년 동기 대비 약 90% 증가한 수치로, 상업화 단계 진입 이후 매출 성장세가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향후 주요 매출 증대 요소로는 안과용 기기 ‘오큐쿨’의 미국 시장 본격 공급이 꼽힌다. 국내 의료기기 중 최초로 미국 FDA De Novo 승인을 받은 이 제품은 2027년부터 연간 2,000만 건 규모의 미국 유리체강 내 주사(IVT) 시장에 공급될 예정이다.
회사는 기존 화학 마취제의 대기 시간(약 10분)을 10초 내외로 단축시킨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미국 내 시장 점유율을 확보할 계획이다. 아울러 탈모 치료 및 당뇨성 피부 궤양(욕창) 치료용 약물 전달 기기 등 만성 질환 치료를 위한 신규 파이프라인의 임상 및 상용화를 단계적으로 진행하여 글로벌 냉각 의료 플랫폼 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원천 기술 기반의 B2C 시장 진출… 홈케어 파이프라인 구축
리센스메디컬은 전문가용 의료기기 개발 과정에서 확보한 ‘미세 동결 입자’ 기술을 활용해 ‘홈 뷰티 디바이스’ 시장 진입을 추진 중이다. 해당 기기는 정밀 냉각을 통해 피부 장벽의 투과성을 일시적으로 조절, 화장품 유효 성분이 진피층까지 전달되는 효율을 개선하는 원리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고기능성 화장품의 흡수율을 제고하고자 하는 소비자 수요를 겨냥한 것으로, 약 18조 원 규모로 추산되는 글로벌 홈 뷰티 시장에서 기술적 차별성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한편, 회사는 상장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생산 공정을 자동화하고 내재화해 원가 경쟁력을 더욱 높인다는 구상이다. 이를 통해 2026년 매출 190억 원 달성, 2027년 흑자 전환을 이뤄내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장밋빛 전망 속 주의할 리스크는?
다만, 기술특례상장 기업으로서 극복해야 할 과제도 명확하다. 현재 지속 중인 영업적자에서 흑자 전환 시점이 지연될 경우 재무적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 회사는 2027년 흑자 전환을 목표하고 있으나, 기술 경쟁 심화에 따라 예상보다 연구개발비가 증가하거나 사업 확대에 따른 인건비 부담이 가중될 경우 흑자 전환 시점이 지연될 수 있다.
대외적인 정책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미국 시장 비중이 높은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강화는 수출 원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소다. 또한, 50년 넘게 화학 마취제에 익숙해진 의료진의 ‘보수적 시술 관행’을 뚫고 얼마나 빠르게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릴지가 관건이다.
리센스메디컬의 상장 직후 유통 가능 물량은 31.69% 수준이나, 최대주주가 경영 안정성을 위해 5년 의무보유를 확약한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
리센스메디컬은 오는 3월 19일부터 20일까지 일반 청약을 거쳐 코스닥 시장에 입성할 예정이다. 상장 주관사는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다.
<문화경제 김예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