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싯길 (28) 평창] 시 8수와 함께 걷는 평창강 굽이굽이

이한성 옛길 답사가 기자 2026.04.13 14:35:24

(문화경제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가을도 익어가는 1460년, 매월당은 다시 나그네길에 오른다. 선로(禪老) 노사(老師)가 일러 준 대로 정선, 영월 방향이다. 봄에 왔던 길을 거꾸로 내려간다. 가을 물빛을 띄고 흘러내리는 오대천을 따라 가면 진부 지나 정선 가는 길로 이어진다. 도중에 만나는 큰 마을이 마평리(馬坪里)인데 이곳은 길손들 쉬어가는 마장(馬場)이 있던 마을이다. 마을 입구 오대천 기암절벽에는 청심대(淸心臺)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절경이 있다. 태종 때 강릉 부사로 온 박신을 떠나보내며 기생 청심이가 슬픔을 이기지 못해 자진했다는 곳이다. 이곳을 지났을 매월당은 세상을 잊은 이라 시(詩) 한 줄 남기지 않았다.

오대천을 따라 잠시 내려가면 수항리(水項里)라는 마을이 있다. 그곳에는 수항리 사지(寺址)로 알려진 절터가 있는데 밭 가운데 고졸한 석탑이 서 있고 옛 손길이 깊이 남아 있다. 삼국유사 의해(義解) 편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자장율사) 만년에 경주를 떠나 강릉군에 수다사(水多寺)를 창건하고 거처했는데(暮年 謝辭京輦 於江陵郡 創水多寺 居焉)”.

 

단원이 그린 청심대. 

이곳 절터를 1990년대에 발굴한 결과 ‘태백곡 수다사(太白谷 水多寺)’라는 명문과, ‘多’ 자가 분명한 기와 명문이 출토되었다. 지금은 잊힌 밭 가운데 절터이지만 유서 깊은 절터인 셈이다.

한편 삼국유사의 월정사를 다룬 다른 부분은 ‘수다사의 장로(長老) 유연(有緣)이 와서 큰 절을 이루었다(水多寺長老 有緣 來住而漸成大寺)’라고 했다. 원주 법천사 지광국사 탑비에도 국사가 수다사에서 주석했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와 고려 때에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사찰의 하나였던 셈이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이름을 남긴 후 동국여지승람에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조선 왕조의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것일까?

 

밭 사이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수다사 석탑.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우리 시대에도 역시나 잊힌 절터로 기록되어 있다. 아직도 고졸한 저 석탑은 ‘수다사 석탑’이라는 이름을 되찾지 못하고 ‘수항리 사지 삼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다. 이곳 지명도 태백곡(太白谷)은 어느새 잊혀 조선시대 지도에는 수다(水多)로 기록되었는데 그나마도 언젠가 슬그머니 수항(水項)이 되었다.

이 글을 쓰기 전 다시 수다사 옛터를 찾았다. 눈발이 내리는 날 절터는 적막했다. 넓고 너른 밭 남쪽 끝 석탑은 천오백년 절터를 지키고 있지만 석탑을 보러 가는 접근로는 아직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밭에 작물이 심겨 있는 때에 오면 밭고랑 사이를 지나야 했고, 이날은 진흙투성이 밭을 지나야 했다. 비지정 문화재의 애환이여.

더욱 애석한 것은 매월당이 평창 땅을 밟았을 때 수다사를 다녀갔는지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그때까지는 사세(寺勢)가 유지되었을 유서깊은 절을 그냥 지나갔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주변 산을 배경으로 평창강이 넉넉하게 흐른다.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뱃재’가 만든 우스갯소리

매월당은 마평리를 지나 모릿재(옛 지도에는 毛老峙)를 넘어 대화로 내려왔을 것이다. 강릉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이다. 길은 대화천(大化川)을 끼고 내려간다. 대화천은 하안미에서, 흥정산에서 발원하여 봉평지나 금당계곡을 만들고 내려온 평창강에 합류한다. 물길을 따라 가면 방림(芳林)으로 가는데 방림고을 들어가기 전 길은 갈라져(지금의 상방림교 부근) 평창고을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만난다. 뱃재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고갯길은 빡세다. 전국에는 흔히 뱃재라는 이름이 붙은 고갯길이 많다. 우리 고유의 이름인데 지도를 그리면서 한자로 기록하다 보니 이현, 이치(梨峴, 梨峙)로 기록하거나 주현, 주치(舟峴, 舟峙)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거꾸로 웃지못할 일도 생겼다. 필자의 어떤 산 친구는 뱃재만 만나면 못 오르겠다고 “내 배 째라” 한다. 어떤 이들은 ‘옛날 이 고개에 배나무가 많아 뱃재가 되었다’ 하기도 하고 어떤 이는 옛날 옛날에 우리나라에 크나큰 홍수가 있었는데 그때 배가 이 높은 곳까지 올라왔다고 한국판 ‘노아의 방주’ 이야기를 만든다. ‘케데헌’에서 보듯 한국인들은 스토리텔링에 강한 민족이다.

그런데 사실 뱃재는 비앗재가 준 말이다. 비앗은 비탈의 방언이다. 이 고을에서 저 고을로 넘어가는 비탈 가파른 고개는 배(梨)도 낳고 배(舟)도 만들었다. 이제는 뱃재가 31번 국도가 되어 차도 쌩쌩 달리고 터널도 뚫렸다. 매월당을 모시고 와서 드라이브 한 번 시켜 드렸으면….

뱃재를 넘어가면 만나는 고을이 주진리(舟津里, 注津里)다. 이곳에는 아직도 주막거리라는 옛길 시절 이름이 남아 있다. 매월당도 가을 고갯길을 넘어 왔으니 해질녘 한 잔 하셨을까? 방림을 돌아온 평창강은 숨찰 일 없이 마을 앞을 고요히 흐른다. 평창고을로 들어오는 큰 길이었지만 강폭은 그다지 넓지 않아 작은 나루가 있었다.

배나루 주진(舟津, 注津). 옛 지도는 이곳에 다리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 섶다리였을지도 모르겠다. 매월당은 배나루를 건너며 시(詩)를 남기지 않아 배를 탔는지는 알 수 없다. 필자는 차를 타고 콘크리트 다리(주진교)가 놓인 배나루를 건넌다. 매월당이 지나간 지 560여 년이 지난 날이다.

그날 배나루를 건넌 매월당은 아마도 평창고을 객사에 든 것 같다. 평창의 진산인 노산(魯山, 魯城山) 남쪽에 평창관아가 자리했는데 관아의 동쪽에는 객사, 서쪽에는 향교가 자리 잡고 있었다. 평창은 진산의 이름을 빌려 노산(魯山)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고, 객사는 신라시대 평창을 백오현(白烏縣)이라 부른 데서 연유하여 백오지관(白烏之館)이라 부르기도 했다.

지금은 관아도, 객관도 사라지고 향교만 남아 관아와 객관의 위치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향교는 평창의 옛 영화를 말해주는 듯 우뚝한 정문 풍화루(風化樓)가 남아 평창 관아의 풍모를 지키고 있다. 매월당이 객관에 든 그날 저녁 무렵에는 가을비가 내리고 있었다. 객창을 울리는 가을 빗소리는 쓸쓸하기만 하다. 그 마음을 시 한 수로 달랬다.

평창관에서 묵으며
한 해도 저물녘 먼 곳을 떠돌다가
평창의 가을 홀로 객관에 드네
오동잎 난간 밖에서 흔들리고
상머리 귀뚜라미 말을 거누나
이미 강호(江湖)를 두루 다녔거니
세월이 다 감에 자주 놀래네
나그네 회포 누구와 나눌거나
창가 가을비만 쓸쓸하구나

宿平昌館
歲暮獨遠遊. 平昌孤館秋. 梧桐搖檻外. 蟋蟀語床頭. 已歷江湖遍. 頻驚歲月遒. 客懷誰與話. 窓畔雨湫湫.

평창 객사에서 머문 매월당은 읍내를 두루 다녀 본 것 같다. 고을의 진산인 노성산에 남아 있던 산성도 들러 본다. 고구려의 옛 땅을 물려받은 신라는 이 산에 성을 쌓았다. 거란과 몽고의 침략을 경험한 고려도 성을 유지하였다. 우리가 노산성(魯山城)이라 부르는 산성인데 이 산성을 거닐면서 마을 여기저기에서 다듬이 소리를 듣는다. 추석이 다가오는 계절이라 아낙들 바느질거리가 많았나 보다. 후세에 임진왜란 때는 군수 권두문과 백성들이 왜군과 전투를 벌였던 곳이다. 지금은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산 위에는 1982년 세운 임진노성전적비(壬辰魯城戰績碑)가 세워져 있다.

매월당은 저녁 무렵 읍내의 남쪽 하리(下里)의 나루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지금은 잊힌 이름 백양나루인데 우리 시대에는 종부교가 놓여 도보로 쉽게 건널 수 있다. 강 남쪽에는 나지막한 산 남산이 있고 종부리(宗府里)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매월당이 강을 건널 저녁 무렵 평창강은 뽀얗게 물안개가 내려앉았고 갈대는 흰 이슬에 젖은 가운데 어부의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백양나루를 건너며 평창
저물녘 백양나루 건너는데
낮은 물결 돌은 맑고 맑네
목동 피리 소리 촌마을 저녁 이내는 피고
저녁 물가엔 어부의 노래 소리
갈대는 흰 이슬 머금고
기장 밭에는 황금빛 구름
산성 안 적적하게 지나가는데
곳곳에서 들려오는 다듬잇소리

渡白楊津 平昌
白楊津晚渡. 波淺石粼粼. 牧笛煙村暮. 漁歌秋水濱. 蒹葭含白露. 黍稷弄黃雲. 寂歷山城裏. 砧聲處處閒.

 

아름답지만 아픈 사연을 품은 송학루.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우리 시대에 종부교를 건너면 남산에 남산산림욕장이 자리하고 있고 입구에는 이 고을의 발전을 위해 애쓴 이들의 공로를 기리는 비석들이 서 있다. 삼림욕장을 향해 층계 길을 오르는데 제법 고졸한 누각이 강과 평창고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송학루(松鶴樓)라는 편액은 걸려 있다. 풍광과 어우러져 풍류 있는 이름이지만 실은 가슴 아픈 누각이다.

1928년 평창관아가 헐려 나가자 관아의 정문이었던 대외루(大畏樓)를 이곳으로 옮겨 짓고 송학루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것이다. 내 고장의 관아가 일제에 의해 헐려 나가자 유지와 주민들이 성금을 모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 그때 동참했던 이들의 이름이 누각 2층에 남아 있다. 매월당이 머물었던 객사는(후에 여러 번 중수했겠지만) 한국전쟁 중에 소실되었다 하니 아쉽기만 하다.

매월당에게 있어 평창은 단순히 지나가는 여정(旅程)이 아니었다. 산자수명(山紫水明: 산색 곱고 물 맑은)의 고을, 힐링이 되는 고장이었다. 어느 날은 산골 집에 머문다.

산골 집에서 지냄
산 골 집에는 가을이 사각사각 오는데
마당에는 배와 감 떨어졌네
알곡 익어 술 담그고
배추도 살지니 김치 담글 만하네
배고픈 매 고목에서 울고
마른 송아지 쓸쓸한 벌판에 풀 뜯는다
저물녘 개와 닭 수선스러운데
마을 앞엔 고을 아전이 지나가네

遊山家
山家秋索索. 梨栗落庭除. 秫熟堪爲酒. 菘肥可作菹. 飢鷹號老樹. 羸犢嚙荒墟. 日晚喧鷄犬. 前村過里胥.

 

옛 약수역 앞의 거대 고목.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가을 깊어 가는 산골 작은 집 마당에는 배와 감이 떨어져 있고, 살림은 넉넉지 않아도 곡식 여물어 술 담그고 김장도 할 만큼 배추도 실하다. 고목에는 매가 앉아 있고 벌판에는 송아지가 풀을 뜯는다. 개는 멍멍, 닭은 꼬끼오. 문득 사립문 바라보니 사립 밖으로 고을 아전이 지나간다. 560여 년 전 평창 산골마을에서 만나는 한 편의 수채화(水彩畵)다.


그는 또 배도 타 본다. 달 떠오르는 밤, 평창강에 단풍은 울긋불긋하고 가을 바람 솔솔 부는 가운데 배 띄우고 시(詩)도 한 수 읊는다. 어느 절에선가 저녁 종소리 들려오네. 이곳 평창강 절경 절벽 위에는 후세에 아양정(娥洋亭)이 지어졌다.
 

평창강 절경 위에 세워진 아양정(娥洋亭) 안내석.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돛배 타고
수국(水國)에 가을 바람 일고
산성에는 한 해도 저물어 가는데
물안개 뚫고 이제 닻줄을 푸네
달 싣고 시(詩)도 읊지
들에 물은 두세 자인데
강 단풍은 천 가지 만 가지
우연히 흥(興)에 겨워 돌아오는데
구름 너머로 늦은 저녁 종소리

泛舟
水國秋風起. 山城歲暮時. 衝煙初解纜. 載月又吟詩. 野水二三尺. 江楓千萬枝. 偶然乘興返. 雲外暮鍾遲.

 

평창강변 매화마을의 석회암 절벽 밑에 응암굴이 보인다.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이렇게 지내면서 그는 이곳의 명승(名勝) 응암굴(鷹巖窟) 구경도 다녀온다. 지금은 평창에서 영월로 넘어가는 길이 31번 국도로 시원하게 뚫려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이런 길 없이 평창강변 따라 가는 길이라서 비만 오면 길이 범람하고 아양정 절벽 길은 가파르고 아슬아슬했다. 응암리(매화마을)은 평창강변 옛 마을이다. 지금은 31번 국도에서 까마득히 떨어져 있는 강변 오지마을이 되었다. 마을 앞 석회암 절벽은 상당한 절경인데 이곳에는 두 개의 석회암 동굴이 있다. 매월당은 이곳에서 잠시 갈매기와 희롱하는 압구(狎鷗) 낙(樂)을 꿈꾼다.

응암굴에서
옛 굴은 물안개에 싸여 있고
맑은 강엔 고기 자라 두둥실
송골매는 푸른 풀 절벽에 깃들고
물오리는 수초 흰 물가에서 물놀이하네
외진 곳이라 사람 자취 드믄데
바위 높이 나무는 휘어졌네
이곳에 이 한 몸 깃들어 지내면
사슴도 벗하고 갈매기 떼와 허물없이 지내겠지

鷹巖窟
古窟煙霞繞. 淸江魚鼈浮. 鶻巢蒼蘚壁. 鳧浴白蘋洲. 地僻人蹤罕. 巖高樹木樛. 可堪棲此地. 伴鹿狎群鷗.

그런데 매월당이 지나간 130여 년 뒤 이 응암굴에서 가슴 아픈 일이 발생하였다. 임진왜란 때 노성산성이 함락되기 직전 권두문(權斗文) 군수는 남은 병력과 군민들을 데리고 매화굴(梅花窟: 응암굴)로 피신했다. 군수는 아래 민굴과의 연락을 취하기 위하여 매의 발목에 서신을 매달아 서로 연락을 취했는데 이로 인해 굴이 발각되었다. 끝내 굴은 왜군에게 함락되고 권 군수는 칼을 휘둘러 대적했으나 팔을 베이고 적의 포로가 되고 말았다. 군수에게는 애첩 강소사(康召史)가 있었는데, 군수를 지키려 적의 칼날을 몸으로 막았으나 자신도 포로가 되었다. 몸을 더럽힐까 굴 앞에서 왜병을 밀치고 강물에 뛰어 내려 자진했으니 애석하다. 이때의 일을 탈출한 권 군수가 개인의 기록 ‘호구일록’(虎口日錄)과 공식 기록 ‘응암지’(鷹岩誌)로 남겼다.

이제 가을도 깊어가 매월당은 이곳에서 추석을 맞는다. 객지에서 맞는 명절은 나그네의 등을 더욱 시리게 한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남쪽 지방(호남 여행)을 꿈꾸는 일이었다.

나그네 길에서, 한가위 달을 바라보며
한가위에 무엇으로 맑은 수심 위로할까
맛있는 새 차 옥 사발에 가득 채우네
만리향 저 나무 몇 해를 겪었을까
찬 보름달 변함없이 가을 하늘 떠올랐네
이태백이 달을 잡으러 뛰어든 우저의 옛일을 이야기하네
흥이 올라 남루에서 옛날 놀던 일 떠올리고
내년에는 어디에서 볼지 알 수는 없지만
흐르는 물빛은 넉넉히 남녘 땅에 두루 지나겠지

客中. 望中秋月
中秋何以慰淸愁. 一味新茶滿玉甌. 丹桂*幾經寒暑變. 氷輪應輾古今秋. 夜談牛渚**追前事. 乘興南樓憶舊遊. 來歲不知何處看. 十分流彩遍南州.

*단계(丹桂): 가을에 작은 황금색 꽃을 피우는 작은 나무. 향이 좋아 일명 만리향(萬里香)이라 함. 차(茶) 또는 향으로 쓴다. 매월당은 이날 단계차(丹桂茶)를 마셨을 것임.

**우저(牛渚): 이백이 거나하게 취해 달을 잡으러 뛰어들었다는 장강(長江)의 우저산(牛渚山). 이날을 회고한 시가 야박우저회고(夜泊牛渚懷古: 밤에 우저에 정박한 일을 회고함).

자 이제 평창과도 이별이다. 매월당은 마제(馬蹄, 馬池, 麻池, 麻之)나루로 향한다. 평창 읍내에서 약수역(藥水驛) 지나 유동리 석탑 동네를 지나면 도돈리마을이다. 여기에서 마제나루를 건너면 마지리가 된다. 현재는 이곳에 도돈교가 세워져 나루를 대신한다.

마제진을 건너며
들판 나루 사람은 없고 물가에 바람만 부는데
흰 마름 붉은 여뀌 고깃배에 비치네
강단풍 잠긴 곳 일렁이는 물빛은 차고
울타리에 국화 피어 들판 흥취 깊어질 때
목동의 피리소리 관북(關北)의 한(恨) 넘쳐 나는데
길 떠난 기러기 울어예는 고개 남녘의 가을
푸르슴한 두 강언덕 그림 같이 아련한데
열 폭 부들 돛배 돌머리로 접어드네

渡馬蹄津
野渡無人風滿洲. 白蘋紅蓼映漁舟. 江楓湛處波光冷. 籬菊開時野興幽. 牧笛剩生關北恨. 征鴻叫向嶺南秋. 蒼崖兩岸渾如畫. 十幅蒲帆入石頭.

마제나루(도돈교)를 건너면 31번 국도는 영월로 향하는 고갯길이다. 영월 북면 공기리(恭基里)에 가까이 갈 즈음 마지2리 고산골에 고산사(高山寺)가 있었다 한다. 매월당은 영월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이곳에서 쉬어 간다.

고산사에서
들판 절에는 스님도 거의 없고
산은 깊어 길도 다했다
돌배는 비 끝에 떨어지고
단 과일은 서리 속에 붉구나
돌길은 실보다도 가는데
구름은 떠돌이처럼 구르네
이 몸은 만리의 나그네 되어
마음은 길 떠난 기러기를 쫓는다네
고개 북으로 승조(僧稠)대사는 지팡이(석장: 錫杖)를 날렸고
호수 남쪽으로는 구름을 줄세워 타고 다녔네
넓고 넓은 광야에 떠도는 일 즐기니
부스럼투성이 같은 나 자신을 기뻐하네
어느 곳에 은거해 살아 볼거나
온 숲속에 이내와 노을이군

高山寺
野寺僧偏少. 山深路亦窮. 酸梨經雨落. 甜果帶霜紅. 石逕微於線. 雲裝轉似蓬*. 身爲萬里客. 心逐一征鴻. 嶺北飛稠錫**. 湖南駕列風. 耽遊廣漠野. 自喜臃腫躬. 何處堪投隱. 煙霞萬木中.

*봉(蓬): 쑥(蓬)이 아니라 떠돌이를 표현한 것으로 여겨짐. 굴원의 초사(楚辭)에 표풍봉용(飄風蓬龍: 회오리 바람과 떠도는 용)이란 표현이 있다.

**조석(稠錫): 남북조 시대 중국 하남성 숭산(崇山) 소림사에 주석하던 승조(僧稠: 480~560년) 대사의 지팡이(석장: 錫杖)라는 뜻. 그는 도력이 깊어 어느 날 격하게 싸우는 호랑이 둘을 아무도 말리지 못했는데 그가 지팡이를 던지니 두 호랑이가 싸움을 멈추고 얌전해졌다 함. 또한 구름을 타고 숭산 넘어, 동정호 남쪽으로 다녔다 한다. 운수납자 매월당은 그와 같은 호기로움을 읊었다.

 

평창시장의 전통 메밀전. 사진 = 이한성 옛길 답사가

구름처럼 떠도는 나그네. 늦가을만큼이나 깊은 26세 매월당의 여정은 쓸쓸하다. 매월당을 생각하며 필자도 전통시장에 들려 메밀전에 막걸리를 곁들여 평창 여정을 마무리한다. 고개를 넘으면 영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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