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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공모 당선작가 ④ 박기평] 시멘트에 갖힌 세상…내 마음 뉘일 집은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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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480호 김연수⁄ 2016.04.22 13:38:10

▲박기평, ‘평범한 비참함’. 시멘트, 철근, 레진, 종이, 65 x 23.5 x 9cm. 2015.


창조적 사고와 우울한 감정은 역사적으로도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다. "철학이든 정치, 문학, 예술에서든 남보다 뛰어난 인간은 우울한 것 같다"는 기원전 4세기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부터 "예술가의 뇌와, 우울증을 앓고 있는 뇌의 상태는 비슷하다"는 최근의 견해까지 있다. 외부로부터 오는 자극을 거르지 않고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더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는 공통점이 그 근거로 제시되기도 한다.


창조적인 사고가 필요한 일을 하는 사람이 단순히 정신적으로 아픈 사람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우울한 감정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불러일으킨 원인을 더욱 직시하고 천착한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예술 창조의 과정은 인간의 감정을 심화시키고 파탄에 이르게 하는 위험성을 갖고 있다.


반면, 예술가 특유의 예민한 감각과 감정이 스며든 결과물은 가장 솔직한 모습으로 외부의 세계, 즉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예술가는 언제나 개인의 감정과 사회가 요구하는 이성 사이에서 방황하거나 줄타기를 한다.


작가 박기평은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과 경험을 작업으로 옮겼다. 그것은 아픈 것이었고 숨기지 않았기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린 사회의 모습이기도 했다.


▲작업실의 박기평 작가. (사진=김연수 기자)


"평범한 비참함"


각이 날카롭게 선 육면체 시멘트에 박힌 철근들. 그 위에 또다시 얹혀진 투명 육면체 안에 사람의 형상이 보인다. 서 있는 사람은 팔을 힘없이 늘어뜨린 채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다. 서 있는 사람 형상의 양쪽으로 그 키의 7~8배되는 시멘트 덩어리가 버티고 있는 또 다른 작품도 있다. 사람의 앞-뒤쪽은 반투명한 판재로 막혀 있다. ‘평범한 비참함’이라고 명명된 작업들이다.


▲박기평, ‘평범한 비참함’. 시멘트, 철근, 레진, 41.5 x 9.5 x 9.5cm. 2015.


이야기를 편하게 시작해보려 했다. 무엇을 표현하려 했나?는 질문에 박기평은 “고립감, 상실감”이라고 답했다. “3년가량을 매일같이 울면서 지냈다”고 덧붙인다. 우울증이었다. 비참했고, 혼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보였다.


유리보다 더 투명한 재료로 만들어진 직육면체는 물속의 한 공간을 칼로 베어와 옮겨 놓은 것 같다. 사람의 형상과 더불어 그가 내뱉어 놓은 기포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너무나도 투명해 금방이라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지만, 기포마저 나갈 수 없는 답답한 그 사람의 공간이다.


▲작품 '평범한 비참함'의 부분. (사진=박기평)


미술을 시작하고 작업에 몰두하면서 어둡고 부정적인 감정들은 더욱 심화됐고, 지겹도록 그 감정에 시달린 후 무뎌질 때 쯤, 다른 사람들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슴 한쪽에 외로움과 고립감을 끌어안고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를 그토록 괴롭히던 비참한 감정은 평범한 것이 됐다.


"우리집 안녕"


그의 우울증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감정을 형상화하기 이전 작업인 ‘손상된 대피’ 시리즈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감정의 도화선이 된 사건을 더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용접된 철근 덩어리 아래 깔린 손 발, 외부 계단이 양쪽으로 붙어 있는 옛날식 아파트의 옆면, 지붕이 있는 집의 이미지와 숫자가 음각된 문패 등. 이런 이미지들은 시멘트로 캐스팅되거나 철근이 섞여 노출된 시멘트 벽이 가지는 오래된 도시의 느낌과 재료 자체의 중량감이 더해져 표현된다.


▲박기평, ‘즐거운 우리집’. 시멘트, 철근, 78 x 54 x 4.5cm. 2015.


작가가 예전에 살던 집은 재개발지역에 있었다. 앞뒤 사정이 어쨌든 한 부부가 살림을 시작하고 아이 둘을 낳아 장성할 때까지 길렀던 한 가족의 역사가 서린 공간을 타의에 의해 내줘야 했던 사건은 큰 상처가 아닐 수 없었다. 박기평은 “이사는 가면 그뿐이었지만 그 상실감은 회복하기 힘든 것이었다”고 말한다. 가족에게 그것은 단순히 물리적 공간의 이동이 아니라, 외부의 자극으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안주할 수 있었던 든든한 보호막을 사회로부터 강탈당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박기평, ‘손상된 대피’. 철근, 합성수지, 63 x 110 x 64cm. 2015.


이제 시멘트의 느낌으로 차가워진 손발을 짓누르고 있는 철근의 형상은 대피소의 마크이자 쓰러진 빌딩의 형상이다. 계단 난간에 기대어 차마 울 수 없는 작아져 버린 한 가장의 형상이고, 비석이 되어버린 아파트의 문패가 보인다.


▲'손상된 대피'의 부분.(사진=박기평)


작가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건드리는 의도 없이 개인적인 사건을 다룬 것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과연 삶의 터전을 잃은 한 가정의 이야기, 한 때 우울증을 앓았던 한 사람의 이야기로만 볼 수 있을까. 그의 작업은 ‘집’을 표현하는 동시에 절망을 드러낸다. 그런 모순적인 이미지 작업은 자본에 이끌려 고전적인 의미의 집이란 의미가 사라진 현대에서 끊임없이 사람에게 혹은 어느 무엇인가에 안주할 곳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박기평, ‘아빠는 왜 안 울어’. 철근, 합성수지, 78 x 54 x 4.5cm. 2015.

▲작품 '아빠는 왜 안 울어'의 부분.(사진= 박기평)


"손상된 대피"


박기평은 이 작업들이 "심리적으로 많은 안정을 찾은 다음에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작업을 통해 그 부정적인 감정들에 다시 몰두했을까. 그는 스스로 “나의 내성적이고 폐쇄적인 성격의 반작용으로 작업을 통해 내 감정을 더 드러내고 싶은 욕구가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 하지만, 점점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될수록 ‘과연 그래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고 있다고.


작가가 가진 생각의 변화는 재료에 대한 태도와 표현 방식의 변화에서 나타난다. 그의 작품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철근과 콘크리트는 도시 재개발 과정에서 봤던 근현대 산업 재료의 이미지로서 인상 깊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작업 과정에서 그 재료들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성질을 발견했고, 이제는 더 이상 그 재료들에게 아픈 경험의 감정을 이입하고 싶지 않아졌단다.


 

▲시멘트를 사용한 재료 실험.(사진=박기평)

또한, 강한 은유가 담긴 이미지들과 재료의 구성으로 서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던 작업들은 그가 재료에 호기심을 느낌에 따라 재료 실험의 형태로 점점 추상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그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이 말보다 더 직접적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언어나 이미지나 개인의 경험에 따라 곡해가 일어나는 것은 마찬가지인 것 같다”고 이야기한다. 이와 더불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거나 이해받으려 노력하는 것보다 일반적인 감정에서 느낄 수 있지만 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는 작업을 하는 것이 현재의 작업 방향”이라고 밝힌다.


▲시멘트와 투명 소재, 비추는 소재를 이용한 재료 실험.(사진= 박기평)


현대 미술에서 이제는 듣기 힘들어진 “조각가가 되고 싶다”는 그의 말마따나 작가 박기평의 작업 태도는 이미 조각가라는 이름에 걸맞은 듯하다. 그를 얽매였던 부정적인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와 빠른 변화 속도를 보이는 그의 작업은 이제 더 이상 방황이 아니라 방향성을 가진 삶의 과정 그 자체로 보인다. 예술가의 작업은 답이 될 수 없다. 변화하는 작업의 모습을 따라 작가와 그 작업을 바라보는 관객이 그때 그때 공감하고 이 세상에 혼자가 아니라는 것만 느껴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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