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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정 평론가의 더 갤러리 (104) 작가 손희민] ‘인류의 근원’인 바다 생명과학을 조각으로 빚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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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757호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2023.10.17 09:14:59

(문화경제 = 이문정 미술평론가, 연구소 리포에틱 대표) 더 갤러리 이번 회는 물성을 가진 생물을 또 다른 물성과 형태를 지닌 조각으로 만들어내며 인간을 비롯한 생물과 세계의 근원을 다루는 손희민 작가와의 인터뷰를 싣는다. 작가에게 과학적 지식은 예술적 아이디어의 발생과 확장의 원천이 된다.

- 손희민의 작업 이미지는 원시적이고 고대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동시에 미래적이어서 SF 소설이나 영화에 등장하는 생명체를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보안1942에서의 개인전 ‘HMS Challenger’(2023) 도록에는 작가가 본, 게의 유생인 조에아(Zoea)의 표본이 “SF 영화에 나올법한 외계인의 형태를 떠올리게 했다”고 적혀 있다. 혹시 SF에 관심이 있는가?

인공지능이나 휴머노이드에 관한 영화를 보긴 하지만 SF 장르 자체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니다. 시각적인 영감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나는 생물학자의 책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내가 좋아하는 생물학자인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의 ‘생명이란 무엇인가?(What is life?)’나 진화를 추적했던 생물학자들의 일화를 다룬 ‘진화를 묻다(The tangled tree: a radical new history of life)’ 같은 책의 내용이 내 작업과 더 연관된다. 최근에는 고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의 ‘생명, 그 경이로움에 대하여(Wonderful Life: The Burgess Shale and the Nature of History)’도 재미있게 읽었다. 다만 공상과학(science fiction)의 뜻만 놓고 보면 내 작업이 SF적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과학적 정보나 과학자들의 사고에 영감을 받아 작업으로 옮길 때 허구적 요소가 반영되기 때문이다.
 

‘HMS Challenger’, 전시 전경, 2023. 보안1942(통의동 보안여관), 서울, 촬영 = 배한솔, 도판 제공 = 손희민

- 작업 초기부터 생물학(과학)이 작품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어려서부터 생물학에 관심이 있었는가?

내 작업의 시작은 과학이고, 과학적 지식을 알아가는 과정이 작업의 원천인 것은 맞다. 중학교에 처음 배운 분자 개념은 내가 생명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세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미시 세계가 있고, 상상하기 어려운 정말 작은 단위가 모여 생물을 이룬다는 점, 또 그 작은 입자가 궤도 운동하는 - 비어있는 것 같은 - 공간이 있다는 점이 너무 놀라웠다. 이는 몸의 세포가 노화해 신진대사를 멈추면 뇌로 전달되던 전기 화학적 신고가 중단되어 나의 의식도 무(無)가 되는 죽음에 관한 생각으로 연결되었다. 이후 내가 의식하고 살고 죽는다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사고로 이어졌다. 그래서 브라이언 그린(Brani Greene)의 ‘우주의 구조: 시간과 공간, 그 근원을 찾아서(The Fabric of Cosmos: Space, Time, and the Texture of Reality) 같은 당시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과학책을 읽으며 공상했다. 과학고를 지망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과학은 가설을 증명해 나가는 것인데 나는 과학적인 가설이나 아이디어로부터 영감을 얻어 상상하고 공상하기를 즐겨하는 사람임을 깨달은 뒤 미술을 선택하게 되었다.
 

‘테스트 플라이트: 날과 날의 사고’, 전시 전경, 2022, 아트스페이스 카고, 인천, 촬영 = 배한솔, 도판 제공 = 손희민

- ‘진화적 조각’(2022)과 ‘변이적 조각’(2022)에서 갑각류(게)의 유생(단계)인 조에아, 메갈로파(Megalopa) 같은 특정 개체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가 궁금하다. 작업 초기부터 물속 생물이 다뤄지고 있는데, 물은 과학적으로나 상징적으로 세상의 근원과 연결된다.

해양에 관심을 갖게 된 시작에는 키틴(chitin)이 있다. 도축된 동물의 사체를 캐스팅하거나 형태를 본뜨는 작업을 이어 오다 게의 형태와 구성 성분에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야릇한 원의 층(2020)’을 만들기 3~4년 전부터 음식점 같은 데에서 버려지는 동물(소, 돼지 문어 등)의 사체를 구해 부분을 캐스팅하거나 그것들의 특징적인 부분을 유리나 도자기, 시멘트 조형물로 만들면서 생물의 질감이나 부분적 형상을 극대화하는 작업을 했다. 사실 이러한 맥락의 작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재학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뉴스에서 전염병 때문에 소와 돼지를 살처분하는 장면을 본 뒤 생으로 매장된 동물들이 화석화되어 굳은 것 같은 형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무리 폐기 처분될 사체라 해도 그것을 사용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윤리적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내 관심사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소재가 필요했다. 그리고 게 껍데기의 구성 성분인 키틴은 게뿐만 아니라 물고기, 개구리, 새 부리, 달팽이 껍질, 버섯 세포벽에 이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형태와 물성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생물에 대한 작업을 지속성 있게 보여줄 수 있는 소재였다.

키틴 그 자체는 분자처럼 인간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인간이 식별할 수 없는 생물을 다뤄보기로 마음먹게 되었고 키틴이 구성 요소인 가장 작은 생명체인 요각류, 조에아와 메갈로파를 선택하게 되었다. 미시적 대상을 거시적인 크기로 보고 싶고, 보여주고 싶었다. 바다에서 생명이 처음 출현했고,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온 생물체가 진화해 현재까지 이어진다. 인간의 흐름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에 대해 조사하다 보면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들은 바다와 깊게 연결된다. 그래서 점점 더 바다를 둘러싼 인간의 행위에 집중하게 되었다.
 

손희민, ‘진화적 조각(시리즈)’, 2022, 우레탄 및 에폭시 레진, 실리콘, 17.5 × 8 × 20cm approx, 촬영 = 배한솔, 도판 제공 = 손희민

- 요각류 등을 실제로 관찰하고 제작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어디에서 구하는가? 원하는 개체를 구할 수 있는가? 화석을 다루는 경우 책을 참고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운이 좋게도 예술에 관심이 많은 생물학자인 이동주 선생님께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분과 바닷가에 가서 요각류를 채집하고 현미경으로 관찰했다. 조에아 같은 경우는 이동주 선생님이 재직 중인 부산 신라대학교의 다른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표본을 볼 수 있었다. ‘캄브리아기 동물군(Cambrian fauna)’이나 ‘에디아카라 생물군(Ediacara biota)’의 경우 멸종했기 때문에 화석 산지에 가기도 하고, 화석 자료를 바탕으로 고생물학자들이 그린 드로잉, 자연사 박물관에 있는 자료 등을 조사했다. 그런데 현미경으로 관찰한 생물의 느낌이 너무 납작했다. 렌즈를 통해서 보는 건 3D일 수가 없다. 또 그것을 사진 찍든 드로잉하든 모두 평면적인 이미지이기 때문에 내가 입체로 구현하는 여정이 흥미로웠다. 생물학자들은 내가 만든 입체물에서 해부학적으로 틀린 부분을 찾아내지만, 작업의 목표가 정확한 표본을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변형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력적이라 생각한다.
 

손희민, ‘변이적 조각G’, 2022, 우레탄 에폭시 레진, 16 x 17 x 28cm, 촬영 = 배한솔, 도판 제공 = 손희민

- 결과가 표본과 다르다고 해도 누군가는 과학적인 지식을 재현해서 옮겨놓는 차원에 머무르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할 수 있다.

실제로 과학적 정보를 옮기는 데에 집중하면 그것이 표본 모형과 다를 게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결과물이 구상적 조각이어서 더 그런 것 같다. 나의 답은 “재현하는 과정에서 내가 선택하는 재료와 표현법이 갖는 물성이나 질감에 나의 조각적 탐구가 반영되고 있으므로 작가의 작품이 될 수 있다”이다. 예술에서의 재현은 창작자의 시대, 환경, 사고에 따라 다양한 인식론과 시각 체계, 기호와 표상 등이 발현되는 일 같다. 현미경의 발달로 해양 미소 동물을 관찰할 수 있게 된 것, 고생물학자들이 6억 년 전 화석 자료를 발굴한 것은 모두 최근 3세기 내의 일이다. 그리고 그것을 우레탄과 에폭시라는 불과 100여 년 정도밖에 안 된 신물질로 만들어내는 것도 모두 현대라서 가능하다. 예술가가 주목한 과학적 지식, 선택하는 물질과 같은 요소들은 과학이 목표로 하는 복원과는 다른 영역이다. 내 작품은 생물 모형의 가치가 전혀 없는 것들이다. 표본이 정확성을 목표로 놓고 구현한다면 나의 조각은 내가 선택한 조형 탐구 실현이 목표이다. 물성을 지닌 생물을 또 다른 물성과 형태를 지닌 조각으로 만들어낸다는 것이 나에게는 중요하다. 참고로 예술적 변형이 가장 많은 작업은 ‘진화적 조각’과 ‘변이적 조각’이다.

- 앞의 질문과 연결되는 내용이다. 작업 초기부터 ‘조각’과 ‘생물군’이라는 키워드를 작가 스스로 말하고 있다. 두 영역을 완벽히 이분법적으로 분리할 수는 없으나 각각 형식과 내용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과학적 지식은 친근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매우 탄탄한 영감의 원천이 될 수 있다. 다만 그 원천 자체의 성격이 너무 강해서 작가적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도 있다. 이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듣고 싶다.

키틴으로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진행 중인 작업은 레퍼런스를 반영하는 데에서 머물지 않는다. 과학적 정보는 아이디어들의 발생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확장을 위한 원천이다. 또한 내 관심은 생물의 근원뿐 아니라 인간이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가 16~17세기를 지나면서 어떻게 달라졌는가로 옮겨가는 중이다. 예를 들어 ‘진화적 조각’은 ‘생존을 위해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것인 진화가 생물에 어떻게 나타날 수 있을까? 그것을 담아낼 수 있는 조각적 재료는 무엇인가?’ 등을 표현하는 것이다.
 

손희민, ‘에디아카라 생물군(시리즈)’, 2023, 우레탄, 에폭시, 실리콘, 스테인리스 좌대 위 설치, 촬영 = 고정균, 도판 제공 = 그블루갤러리

- 작업을 통해 전달받는 일부의 메시지뿐 아니라 인류세를 직접 언급한 작가 노트 등에서 환경과 생태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손희민의 작업은 인간 중심적이라는 인상이 강하다. 현미경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행위는 절대자와 같은 인간이 전제되어 있다. 생물학자, 복원 등의 키워드 역시 그렇다. 인류세 역시 인간이 세상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다는 전제가 깔려있어 그 자체에 대한 비판적 논의가 이뤄지기도 한다. 물론 어떻게 해도 인간은 인간 중심적 태도를 온전히 벗어날 수 없으며 반드시 비인간적 사유를 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다만 작가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언급한 만큼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해 어떤 답을 해줄 수 있는지 궁금하다.

모든 작가가 그렇겠지만 작업에 대한 작가의 설명 중 일부만 강조되어 전파되는 것이 걱정될 때가 있다. 어느 한쪽이 아니라 이쪽, 저쪽 다 연결될 수도 있는데 둘 다 동등하게 다뤄지기 힘든 것 같다. 그래서 내 작업이 인간 중심적이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정말 조심스럽다. 다만 극단적으로 말하면 생물 종을 위협하고 환경과 생태계를 위협하는 인류의 행위에만 초점을 둔다면, 예술을 멈춰야 할지도 모른다. 특히 많은 물질을 사용하는 조각이 그러하다. 예술 자체가 이미 너무 인본주의적이다. 예술 대부분에는 인간이 아닌 종을 위하는 직접적 행위가 거의 없다. 내 작업도 비인간 종에게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하기 어렵다. 그런데 생물의 진화가 선형적인 진보가 아닌 다양성이듯, 많은 변화와 다양함 속에서 더 많은 우발적 사건과 탄생이 나타날 수 있다. 인간의 여러 시도도 그러한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만들어낸 플라스틱의 예만 들어도 어느 한쪽의 태도를 강조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설명할 수 있다. 플라스틱이 발명된 지 100년 조금 넘었는데 플라스티글로머레이트(plastiglomerate)라는 새로운 물질이 생겼고 심해 깊은 곳에 있는 미생물의 소화기관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 인간이 만들어낸 신물질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플라스틱의 사용을 문제라고만 배척하기에는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너무 크다. 그 내구성과 단열성 때문에 우주선에 사용될 정도이다. 플라스틱이 있어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다. 이것이 인간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인간이 살기 적합하지 않은 지구 밖 어딘가에 씨앗을 보내는 것처럼 다른 생명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린 마굴리스의 책에도 이와 같은 뉘앙스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인간으로 인한 기후 위기나 환경오염의 악영향이 인간과 비인간 종들을 힘들게 하지만 그럼에도 생명은 어느 환경에서든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이 모든 상황이 지속성을 갖는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인본주의만을 중심에 놓는 것은 아니다. 인류세나 비인간종에 관해서는 이견이 많기 때문에 나 역시 늘 고민하고 있다.

손희민, ‘보이지 않는 생물(시리즈)’, 2023, 수초항에 우레탄 레진 조각, 촬영 = 손희민, 도판 제공 = 손희민

- 올해 많은 전시에 참여했다. 최근 테이블에 요청한 작품이 서빙되는 방식의 전시인 ‘PRPT(PromptSet): Table Service’(2023)에 참여했다. 이에 대한 설명을 부탁한다. 마지막으로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진행 중인 개인전 ‘보이지 않는 생물’(2023)을 소개해주면 좋겠다.

‘PRPT(PromptSet): Table Service’는 대중에게 가까워지기 위한 일환으로 참여했다. ‘테스트 플라이트: 날과 날의 사고’(2022)에 참여할 때인데 한 아이가 자기 친구들에게 ‘저기 미생물 조각이 있는데 보러 갈래?’라고 하며 내 작품 앞으로 가는 것을 보고 더 많은 사람이 나의 작업을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PRPT(PromptSet): Table Service’에서는 관객이 원하는 작품을 그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마치 음식처럼 놓아준다. 더 가깝게 실질적으로 작품을 경험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았다.

청주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 릴레이 개인전인 ‘보이지 않는 생물’은 현대 해양 미소 동물과 원시 바다의 고대 생물 형상을 한 조각들을 수초항이나 테라리움(terrarium), 모래 정원에 설치해서 실재와 거짓이 뒤섞이는 상황을 보여준다. 상황 연출이 더해졌다. 나는 생명에 대한 기원적 형태를 탐구하고 그것의 진화적 형태를 상상한다. 즉 생물이라는 물질적 형태로 나타나고 진화하는 생명을 다루는 작가이다. ‘보이지 않는 생물’는 너무 작아서, 멸종해서 인간의 차원에서 볼 수 없는 생물들이 살아서 공존하는 상황을 제시함으로써 생명의 이어짐이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임을 이야기하는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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