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뜨거운 비엔나 정통 뮤지컬로 오세요”
[인터뷰]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기사입력 2010.01.12 20:22:01 | 최종수정 2010.01.12 20:22:01 | 이우인 | jarrjee@nate.com
 

“뮤지컬 <모차르트!>는 한 달 제작비만 40억 원이나 듭니다. <오페라의 유령>이 1년에 130억 원의 제작비가 드는 데 비하면 어마어마한 제작비죠. <모차르트!>로 돈을 벌지 못할 거라는 점은 이미 각오하고 있어요. 이번 공연은 오로지 오스트리아 작품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국내 관객에게 알려주기 위해서 합니다.”

엄홍현 프로듀서는 1월 20일, 3000석 규모의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뮤지컬 <모차르트!>의 개막을 앞두고 이같이 말했다. 그는 <드라큘라> <네버엔딩 스토리> <햄릿> <삼총사> <살인마 잭> 등 유럽권 뮤지컬을 국내에 소개한 뮤지컬 제작사 (주)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의 대표다. 그동안 올린 뮤지컬이 공동제작이었다면, 뮤지컬 <모차르트!>는 EMK가 단독 컴퍼니로 첫발을 내딛는 작품이라는 큰 의미가 있다.

또한 <모차르트!>는 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시아준수(본명 김준수)가 출연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시아준수는 주인공 모차르트에 캐스팅됐다. 이 뮤지컬은 시아준수의 연기 입문 작품이기도 하다. 이 밖에, 박건형·임태경·박은태·정선아·배해선·윤형렬·서범석·신영숙 등 국내의 내로라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모차르트!> 출연을 확정해 공연을 올리기 전부터 화제가 되고 있다.

<모차르트!>의 라인업이 발표된 며칠 뒤,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EMK뮤지컬컴퍼니 사무실에서 엄 프로듀서를 만났다. 서글서글하면서도 다정다감한 인상이 대작 뮤지컬 제작자와는 어울려보이지 않았지만,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고조되는 음성은 그가 뮤지컬 제작에 얼마나 뜨거운 열정을 가졌는지를 단번에 느끼게 했다.


“유럽 작품에 미쳐 제작하다보니 남은 건 16억 원 빚”

“기자가 보기에도 튀지 않나요? <햄릿> <모차르트!> <엘리자베스> <몬테크리스토 백작> 등 감동적인 유럽 뮤지컬만을 올리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비싼 돈을 내고 오는 관객들에게 10만 원 정도의 가치와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만 만드는 회사가 바로 EMK입니다.”

EMK뮤지컬컴퍼니만의 특색을 물으니, 엄 대표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유럽 뮤지컬’을 강점으로 내세웠다. 그는 제작자이기에 앞서 유럽 뮤지컬에 흠뻑 빠진 ‘광팬’ 중 한 명이다. 젊은 시절 열정만 갖고 접한 첫 뮤지컬 제작.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건 16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빚과 좌절뿐이었다. 6개월 동안 여관 생활을 전전하면서 재기의 방법을 연구하던 그에게 공연 배급사 데아뜨로의 김지원 대표가 구원의 손길을 뻗는다.

그리고 그는 김 대표와 더불어 체코 뮤지컬에 눈을 돌려 <햄릿> <삼총사> <살인마 잭> <클레오파트라> 등의 체코 뮤지컬을 국내에 선보였다. 그러다 <삼총사>가 체코 뮤지컬뿐 아니라 독일에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삼총사>를 비롯한 <루돌프> <모차르트!> 등의 작품을 접하게 된다.

“보자마자 느꼈어요. 이게 바로 ‘숨은 진주’라는 사실을요. 외국인이 아무리 우리나라 판소리를 잘해도 뭔가 부족한 것처럼, 오페라와 뮤지컬의 본고장이랄 수 있는 오스트리아의 수준은 우리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상상을 초월했죠.”

2006년부터 엄 대표는 일본의 토우그룹과 친분이 있는 ‘일본통’ 김지원 대표의 힘을 빌려 독일 뮤지컬의 라이선스를 따내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삼총사> <햄릿> <드라큘라> 등 체코 뮤지컬을 국내에 자리 잡게 한 것처럼, <엘리자베스> <댄스 오브 더 뱀파이어> <루돌프> 등 오스트리아 비엔나의 정통 뮤지컬을 차례로 선보일 각오를 내비쳤다.

유럽 뮤지컬에 흠뻑 빠진 엄홍현 대표에게 유럽 뮤지컬의 매력과 프로듀서로서의 고민, 앞으로의 각오 등을 들어봤다.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통신사·기획사·엔터테인먼트에서 활동하는 등 이력이 다른 프로듀서들보다 다양한데요. 뮤지컬 제작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연극과 뮤지컬 등 공연문화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았던 14~15년 전에 극단 사다리의 대표 때문에 연극을 많이 접하게 됐고, “네가 공연 쪽 사람은 아니지만 경영학을 전공했고 기획을 잘할 것 같다”는 주위의 권유에 제작을 시작했어요. 처음엔 한두 작품에 투자했는데, 제가 투자한 작품들이 자꾸 돈을 까먹는 겁니다. 직접 해볼까 하던 중, 우연히 1998년에 예술의 전당에서 신성우 씨가 출연한 뮤지컬의 DVD 영상을 봤습니다. 이 정도면 음악과 무대도 좋고 드라마도 탄탄한데 어째서 안 됐는지 궁금했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제작에 뛰어들었습니다.

2005년부터 뮤지컬 프로듀서로 활동을 시작해 올해로 6년째 좋은 성과를 올리고 계신데, 그 비결을 듣고 싶습니다.

아픈 경험이 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드라큘라>의 실패를 토대로 두 번 다시 이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거든요. 그래서 제작비부터 배우를 캐스팅하는 기준, 작품 타이틀 등 세세한 것까지 아주 치밀해졌어요. 또 하나는 김지원 대표나 우리 직원들이 저를 믿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모차르트!>는 국내에 선보이는 오스트리아 비엔나 뮤지컬의 첫 번째 작품인데요. 왜 이제껏 많은 제작사가 이처럼 좋은 콘텐츠를 제작하지 않았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많은 제작사가 이쪽 작품(유럽 뮤지컬)이 대단하다는 사실을 알고 접촉을 많이 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히 <엘리자베스>는 웬만한 뮤지컬 제작사가 모두 접촉했지만, 실패했죠.

모차르트 역의 시아준수는 어떻게 캐스팅했는지 궁금합니다. 당시 동방신기 3명(시아준수·영웅재중·믹키유천)이 소속사와 분쟁 중이었죠?

그랬죠. 수도 없이 접촉을 해봤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우연히 제작 조감독이 시아준수의 사촌누나인가를 알더군요. 그래서 일단 만나기만 해보자고 했고, 만나기 전에 <모차르트!>의 영상과 음악·시놉시스를 시아준수에게 전달했습니다. 이 자료들을 본 시아준수가 하겠다고 마음을 먹어 연락이 왔어요. 시아준수와 만나는 데만 한 달이 걸렸어요(웃음).

모차르트 역에 필요한 조건을 시아준수에게서 보았습니까?

모차르트 역의 배우에게 필요한 조건은 높은 음이 많이 올라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두 번째는 약간 ‘미친 끼’가 있어야 하고요. 미친 끼가 없고선 그런 위대한 곡을 쓸 수 없으니까요. 시아준수를 비롯해 모든 모차르트 배우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이진 않잖아요(웃음). 이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다 하는 이미지가 있어야 하고, 처음 만났을 때 에너지가 풍부해야 합니다. 그런 배우들이 모차르트에 캐스팅된 거고요.

모차르트 역에만 임태경ㆍ박건형ㆍ박은태ㆍ시아준수 4명이 캐스팅됐습니다. 앞서 <살인마 잭>의 주인공도 4명이었고요. 한 배역에 이렇게 많은 배우를 캐스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오스트리아나 체코의 작품을 아는 관객이 거의 없어요. 때문에 캐스팅에 힘을 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좋은 배우는 별로 많지 않습니다. 연기를 잘하면 노래를 못하고, 노래를 잘하면 연기가 잘 안 되고, 정말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만족시키는 배우가 없는 거예요. 둘째는, 솔직히 이름 있는 배우들이 출연하면 스케줄을 맞추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스타의 빈자리를 누군가가 메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세 번째 이유이자 가장 큰 이유는 이겁니다. 12만 원이나 되는 돈을 주고 공연을 보는데 이름 없는 사람이 주인공이면 솔직히 보기 힘듭니다. 그렇지만 스타가 나오면 얘기는 달라지죠.

인기 배우의 겹치기 출연에 대해 프로듀서로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티켓 파워가 있으면서 노래도 잘하고 실력 있는 배우가 국내엔 별로 없어요. 그런데 작품은 1년에 몇백 개나 오르죠. 1월에 <모차르트!>와 경쟁하는 작품도 20여 개나 되더군요. 실력과 티켓 파워를 겸비한 배우들이 많이 나오면 해결되겠지만, 지금으로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엘리자베스> <댄스 오브 더 뱀파이어> <루돌프> 등 계속해서 비엔나 정통 뮤지컬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를 내비치셨습니다. 독일어권 유럽 뮤지컬이 국내 관객의 정서에 맞다고 보는 이유가 있다면요.

독일 뮤지컬은 독특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눈물을 좋아하는데, 독일 뮤지컬은 감성을 흔드는 멜로디와 드라마가 대부분입니다. 신나고 즐거워지고 싶다면 브로드웨이를 찾으면 되고, 감동과 눈물을 찾고 싶다면 독일 뮤지컬을 보면 됩니다.

그동안 함께 일한 배우 가운데 가장 높이 사는 남녀 배우를 꼽아주십시오.

하하하. 참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군요. 좋아하는 배우를 말하자면 배해선 씨죠. 해선 씨는 연기도 잘하고, 뮤지컬뿐 아니라 연극을 사랑하는 진정한 배우입니다. 주인공이 아니라도 배역만 좋으면 언제든지 출연하고, 배역을 100% 흡수하는 배우입니다. 남자 배우 중에는 민영기 씨 역시 어떤 배역을 맡더라도 잘 소화하는 참 좋은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엄 대표의 마음을 가장 잘 읽는 스태프는 누구인가요?

누구 한 사람을 꼽을 순 없지만, 배급하는 김지원 대표와 이란영 안무 선생, 서숙진 무대 디자이너, 김미경 기술감독 등이 떠오르는군요. 말해놓고 보니 모두 여자네요(웃음).

특히 애착이 가는 작품이 있다면 꼽아주십시오.

아직 올리기 전이지만, 오는 4월에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공연 예정인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정말 기대되는 작품입니다. 사랑과 야망·배신·성공·복수·화해 등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소재가 모두 모여 있고요. 여기에 프랭크 와일드혼(Frank Wildhorn)이라는 <지킬 앤 하이드> 작곡가의 음악과 알렉상드르 뒤마가 쓴 탄탄한 스토리가 합쳐진 완벽한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끝으로 ‘CNB저널’ 독자들에게 한마디 해 주신다면….

EMK가 다른 제작사와 다르게 유럽 뮤지컬, 즉 어려운 작품을 하지만, 알고 보면 감성을 잘 울릴 수 있는 작품들이니 많이 봐주세요. 뮤지컬은 무대 위에서 펼치는 장르 중 가장 빨리 감성을 울릴 수 있는 것 같아요. 뮤지컬 한 편으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내세요.


 
 
이우인 (jarrjee@nate.com)
ⓒ 2004~2024 Copyright by CNBNEWS.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