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경제
[주목 작가 – 라틀라스] 갤러리 들어온 그래피티, 한지-도장과 만나다
아트웍스파리서울서 개인전 ‘씰(Seal)’
기사입력 2018.04.19 15:23:14 | 최종수정 2018.04.19 15:23:14 | 김금영 | geumyoung@gmail.com
 


라틀라스 작가.(사진=김금영 기자)




(CNB저널 = 김금영 기자) 프랑스 작가가 한국의 도장(圖章)에 매료됐다. 그래피티 아티스트 라틀라스(본명 쥴 드데 그라넬)가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에서 개인전 ‘씰(Seal)’을 5월 31일까지 연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한국 도장의 예술성을 탐구하고, 그것을 한지에 올린 작업 16점을 소개한다.



 



국제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작업했다. 2008년 퐁피두센터가 주문한 대형 나침반, 2012년 툴루즈 시와의 협업으로 진행한 카티폴 광장 작업 등이 유명하다. 2016년엔 ‘위대한 낙서’전에 참여하며 한국을 찾았다.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 외벽이 그의 작업으로 채워졌다. 이때 전시를 위해 방문한 한국에서 처음 접한 한국의 서체와 한지가 작가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고 한다.



 





라틀라스 작가의 개인전 ‘씰(Seal)’이 열리는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사진=김금영 기자)




“저는 80년대에 그래피티 아트를 시작했어요. 그래피티에 주로 문자를 사용했는데 이것이 서체에 대한 관심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죠. 1988~89년엔 모로코, 시리아 등을 다니며 문체를 배웠고, 일본과 중국도 갔어요. 여러 문화를 제 작업에 담았는데 한국에 왔을 때 한지의 제작 과정과 사용법을 처음 접했어요. 무엇보다 놀란 건 종이의 질이에요. 유럽에서는 보통 캔버스 위에 작업을 하는데, 한지는 매우 얇지만 질기고, 물감이 스며드는 정도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줬죠. 프랑스와 달리 한국에는 전통적인 종이가 존재한다는 사실도 놀라웠고요.”



 



작가는 앞서 2005년부터 탁본 작업을 이어 왔었다. 발길이 닿는 곳마다 맨홀 뚜껑을 발견하면 그 위에 염료를 바르고 종이를 올려 찍어내면서 도시의 맥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짚어냈다. 캔버스 위에 물감을 얹어가는 작업과 달리, 탁본 작업은 물감이 어느 정도 종이에 묻어났느냐에 따라 달라졌다. 하지만 이 예측할 수 없는 작업이 작가에게는 오히려 매력적이었단다. 작가는 “그 전까지 형태를 내기 위해 물감을 사용했다면 이때부터는 재질을 깊이 있게 표현하는 도구로서 물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라틀라스, ‘씰(Seal)° N 19’. 캔버스 위 한지에 아크릴, 60 x 60cm. 2018.(사진=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그리고 이 탁본 기법과 한지가 라틀라스의 작업에서 만났다. 그의 화면은 QR코드처럼, 미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낯선 가운데 익숙함이 있다. 작가가 이번 전시에서 한국의 한지를 사용하면서 전통을 거슬러 올라가 한국 도장에 대한 관심까지 드러내기 때문.



 



“한국 가게들을 다니면서 한지를 알고, 도장도 자연스럽게 접했어요. 과거 맨홀 뚜껑 작업을 했었기에 탁본 기법을 사용하는 도장이 흥미로웠죠. 도장 윗부분에 물감을 얹어 찍어내는데, 한지의 자연스러움이 회화적인 느낌을 배가시켰어요.”



 



2016년 예술의전당 전시에서 작가는 평면 위에 테이프를 붙여 서체를 만드는 작업을 선보였다. 이번엔 한지를 사용하며 동서양의 융합을 꾀했다. 나무에 미로와 같은 날인을 조각했고, 먹을 사용해 찍어냈다. 또 이건 작가의 도장과도 같다. 문자를 바로 읽어내긴 힘들지만 화면엔 작가의 예명 라틀라스(L’Atlas)가 숨겨져 있다.



 





라틀라스, ‘씰(Seal)° N 1’. 한지에 옻칠한 캔버스, 120 x 120cm. 2017.(사진=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예명 라틀라스는 지도, 책을 뜻하는 아틀라스에서 비롯됐어요. 아틀라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천계를 어지럽혔다는 죄로 천공을 떠받치는 벌을 받은 존재이기도 하죠. 저는 각국의 문자를 접하고, 새로운 문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지구를 계속 도는 제 행동에서 아틀라스와의 연관성을 느꼈어요. 그래서 지도, 그리고 지구를 떠돌아다니는 이중적인 의미에서 라틀라스를 예명으로 택했죠. 제 화면에서 드러나는 라틀라스 알파벳은 하나의 소재로 쓰이기도 하고요. 이 알파벳을 꼭 찾아내주기를 바라기보다는 조형적 변형으로 글의 해독이 불가능해지는 찰나에 집중해주길 바라요.”



 



미로와도 같이 만들어진 날인

예측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에 매료



 





라틀라스, ‘씰(Seal)° N 4’. 한지에 옻칠한 캔버스, 120 x 120cm. 2017.(사진=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예명 라틀라스처럼 작가는 명확하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한다. 첫 번째로 프랑스 작가가 한지로 작업을 하면서 동서양의 융합을 시도했다. 한지에 작업을 하고, 이 한지를 캔버스 위에 올릴 때는 장인의 도움을 받았다. 한국 동양화에도 필요한 작업이다.



 



두 번째로는 그래피티 작업을 갤러리 안에 들여왔다. 작가는 “요즘엔 그래피티 작업이 전시장 안으로 많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일반적으로 그래피티를 떠올렸을 때 밖에서 만날 수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난 이 그래피티 작업을 갤러리 안으로 끌어들이며 애매모호한 경계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길거리 예술가라 불려온 그가 전시장에 들어와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을 시도하는 것.



 





라틀라스, ‘씰(Seal)° N 14’. 캔버스 위 실크에 먹, 79 x 80cm. 2018.(사진=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세 번째로 작업에 존재하는 모호함이다. 작가는 글자를 통해 사람들이 익숙함과 낯설음을 동시에 느끼길 바란다고도 했다. 작가는 “제 작품을 봤을 때 옛날 작품인지, 오늘날 작가의 작품인지 애매모호함이 느껴지는데 이 부분에서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탁본 기법을 사용했기에 한국, 중국 사람들이 제 작업을 친숙하게 느낄 수 있어요. 그런가 하면 아랍 사람이 봤을 때는 아랍 문자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각자 자신이 태어나고 자라며 쌓아 온 경험을 바탕으로 제 작업을 바라볼 거예요.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문화적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서체를 만들어 보여주고 싶어요.”



 





라틀라스, ‘씰(Seal)° N 12’. 캔버스 위 실크에 먹, 96.5 x 100.5cm. 2018.(사진=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이번 전시를 기획한 아트웍스파리서울 갤러리 공동대표인 파비앙 마씨코 씨는 “프랑스인인 라틀라스는 유럽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자랐지만, 아시아의 전통적인 서예법, 그리고 한지를 사용하면서 그래피티가 회화 장르로 넘어오는 흥미로운 과정을 보여준다”며 “이번 전시는 프랑스와 한국 문화가 섞인 예시”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라틀라스뿐 아니라 한국과 프랑스 두 문화의 연결고리가 되는 전시를 앞으로도 열 계획이다. 1960~70년대엔 서양 문화가 한국 작가들에게 영향을 더 많이 줬다면, 이젠 한류 등 한국 문화가 전 세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세계 미술 시장이 단색화뿐 아니라 한국 작가들에게 주목하고 있다”며 “프랑스에서 한국적 전통을 갖고 배움과 작업의 시간을 가진 한국 작가들도 소개하려 한다.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연결고리의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씰(Seal)’전에 라틀라스 작가의 작품이 설치된 모습.(사진=김금영 기자)


 
 
김금영 (geumyo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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