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06-607합본호(추석) 김주경 기자⁄ 2018.09.27 10:34:56
(CNB저널 = 김주경 기자) 아마존의 무서운 성장세가 국내 기업들을 자극하고 있다. 유통업계는 저마다 ‘한국형 아마존’을 지향하며 전략을 벤치마킹하는 중이다. ‘한국형 아마존’은 탄생할 수 있을까. e커머스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누가 한국판 아마존이 될 것인가? 국내 유통기업들 간의 ‘쩐의 전쟁’이 시작됐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 시장규모는 80조원에 육박했다. 관련업계는 내년까지 1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한다.
아마존은 전세계 전자상거래 기업(이하 e커머스) 중 독보적인 1위다. 지난해 매출은 1779억달러(약200조원)다. 이 중 온라인에서만 1080억달러(약121조원)을 벌어들였다.
지난 4일에는 시가총액 1조 달러(약1120조원)를 돌파한 기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애플에 이어 두 번째다. 아마존 주가는 4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장중 한때 2% 가량 상승해 2050.5달러를 넘어섰다.
1조 달러는 ‘꿈의 시총’으로 불린다. 구글·마이크로소프트 등 해외 대기업들이 숱하게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1조 달러는 삼성전자 시총(약300조원) 보다 4배 가까이 많은 금액이다.
아마존 성공배경은 일찌감치 e커머스 시장 선점을 통한 사업 다각화다. 초창기에는 온라인서점을 통한 책을 판매했다. 이후 온라인 쇼핑의 가능성을 예견하고 신발·의류·전자기기 등으로 물품을 늘려 e커머스로 사업규모를 키운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
아마존 성공신화는 국내 대기업에게 자극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 11번가다. 이들은 과감한 투자와 첨단기술 개발을 통해 e커머스 시장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지다.
롯데는 온라인사업에 사활을 걸었다. 롯데쇼핑은 지난 5월 e커머스를 신성장동력으로 삼고 5년 간 3조원 투자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지난달에는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본부를 신설한 데 이어 별개로 운영되던 8개 유통사 온라인 채널을 하나로 묶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고객 유치를 위한 전략도 내놨다. 그동안 롯데쇼핑이 강조해왔던 ‘옴니채널(온·오프라인을 아우르는 유통채널)’ 완성을 위해 ‘O4O(오프라인에 기반한 온라인 강화)’ 전략을 통해 2022년까지 온라인 매출 20조원을 달성한다는 목표다.
다른 기업과의 업무제휴로 시너지를 강화하고 있는 점도 눈길을 끈다. 롯데쇼핑 e커머스사업본부는 동원산업(동원 F&B)에 이어 지난달 뷰티기업 아모레퍼시픽과 손을 잡았다. 이들과의 업무협약을 통해 공동 상품 개발, 시즌 프로모션 등 공동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
신세계는 ‘한국형 아마존’ 모델을 목표로 e커머스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다. 신세계몰·이마트몰로 나눠졌던 온라인 사업을 2014년 ‘SSG닷컴’으로 통합했다. 올해 초부터는 온라인사업을 확대하기 위해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퀴티파트너스(이하 어피너티)로부터 1조원을 투자받아 온라인 통합법인 설립을 목표로 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신세계 측에 따르면 늦어도 내년 초까지는 통합법인 설립을 완료할 계획이다.
새로운 합작법인이 만들어지면 신선식품을 전면에 내세워 사업추진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기존 온라인몰에서 비중이 약했던 신선식품을 앞세워 시장을 선점한다는 것.
신세계 관계자는 CNB에 “신선식품의 장점을 잘 살려 e커머스 사업에 적용하는 한편 패션·프리미엄 분야의 강화도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온라인만이 능사 아니다”
현대백화점은 최근 아마존 기술계열사 ‘아마존웹서비스(AWS)’와 손잡고 미래형 백화점 매장에 적합한 첨단기술시스템 공동연구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2020년 개장하는 ‘현대백화점 여의도점’에 아마존 첨단기술을 선보여 새로운 쇼핑경험을 제공할 생각이다. 여기에는 아마존의 ‘저스트 워크 아웃(쇼핑 후 자동결제되는 시스템)’ 기술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 또 드론으로 매장 식음료 배달, 인공지능을 활용한 무인 안내 등 다양한 아마존의 신기술이 응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e커머스 사업을 확대하기는 힘들다는 입장이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온라인 쇼핑몰이 더현대닷컴·현대Hmall 등 2곳에 불과하며, 오프라인 매장 의존도가 큰 편이다. ‘오프라인의 강자’라는 장점을 살려 고객들이 백화점에 방문해서 좀 더 재미있고 편리하게 쇼핑하는 데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
현대백화점 관계자는 CNB에 “ 45년 유통 노하우를 보유한 현대백화점그룹과 첨단 기술력을 보유한 아마존이 만나 사업을 추진하는 것 자체가 큰 성과”라며 “이번 협업을 통해 국내 오프라인 매장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겠다”고 말했다.
오픈마켓 업계 2위인 11번가는 지난 1일 SK플래닛에서 분사해 ‘11번가 주식회사’라는 독립법인으로 공식 출범했다. 국민연금과 외국계 투자운용사 H&Q 등에서 유치한 5000억원을 발판삼아 ‘한국형 아마존’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다. 이를 위해 SK그룹의 ICT 계열사인 SK플래닛·SK텔레콤·SK브로드밴드와 힘을 합쳐 시너지를 낼 계획이다.
SK플래닛 관계자는 CNB에 “투자받은 재원으로 빅데이터와 AI기술 시스템을 도입해 제품 검색·결제·배송·반품·환불에 이르기까지 쇼핑의 전 단계에서 고객 눈에 맞춘 온라인쇼핑몰로 거듭 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e커머스 미래가 밝기만한 것은 아니다. e커머스 사업이 성공하려면 물류기지 구축과 배송시스템 확보 등에 상당한 자본이 투입돼야 한다. 또 빠른 배송 시간을 맞추기 위해 설비 투자가 꾸준히 이뤄져야 한다. 독일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잘란도(Zalando)와 영국의 전자상거래업체인 아소스(Asos)와 같은 업체들이 전자상거래업을 유지하게 위해 지출하는 금액은 천문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커머스 관계자는 CNB에 “이커머스가 잘 되기 위해서는 막강한 자본을 가지고 효율성있게 자본을 잘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기업만이 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아무나 나서다간 힘들어진단 얘기다. 실제로 이런 문제들 때문에 영국 등 일부 유럽지역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할인점이 여전히 성업 중이다.
장우석 유에스스탁 본부장은 CNB에 “유럽의 대표적인 오프라인 의류할인매장인 프라이마크(Primark)의 매출성장률이 여러 전자상거래 업체를 앞지르고 있는 점은 e커머스 사업을 확대하고 있는 국내 유통대기업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온라인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온·오프라인 둘 다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매출전략이 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